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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한 말들 - 차별에서 고통까지, “어쩌라고”가 삼킨 것들
오찬호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래야, 산다. 살기 위해 단순해진다. 그럴수록 한쪽은 더 무례해지고 한쪽은 더 어그러지지만 별수 없다. 해독제 못 찾으면 빨리 진통제라도 먹어야 하니까.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근본적인 치유를 한다는 게 가족끼리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가부장제의 기운에 눌려도, 외모 품평의 대상이 되어도, 학력 차별을 당해도, 직업의 귀천이 있음을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느끼지만 티 낼 수 없다. 가족끼리는 괜찮다는 건, '안 괜찮으면 어쩔 건데'와 같은 뜻이니까. p.60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것인데, '그래도 괜찮은 세상'에 길들여지면 기존과 달라지는 상황들이 어색하고 불편하게 마련이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에 부여하는 역할이 성별 고정관념에 따라 달라야 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가사 노동의 평등을 위해 여자도 군대에 가라는 식의 말을 듣고 있으면 무엇이 공정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로 우리 사회의 민낯을 용감하게 응시해왔던 사회학자 오찬호의 신작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여자도 군대를 가는 게 진정한 성평등"이라는 말은 대부분 왜 남자만 차별받아야 하느냐는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사실 사회에서 특정 성별이 자연스레 '배제되는' 맥락에 집중하면 애초에 여성의 복무를 상상조차 하지 않은 건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고, 그 자체가 남성 중심 사고이다. 그런데 왜 여성이 마치 징집 거부라도 한 것처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고통의 평준화 정책에 어떤 사회적이 이익이 있다는 말인가. 군대 갈 아들에 대한 불안이, 딸도 군대 가면 감쪽같이 사라진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여성'도'라고 하는 순간, 그건 무조건 남자'만'이라는 추임새로 이어지고 자연스레 '왜 여자만'이라는 해묵은 구도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여성은 '여자라는' 선입견 때문에 배제되었고, 남성은 '남자라는' 선입견 때문에 배제되지 않았다. 그러니 여성은 혜택'만' 누린다는 접근은 몰역사적 이해인 거고, 성차별적 편견을 활용해 사회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해법을 근시안적으로 만들게 되는 결론이 되는 것이다. 여성이 군대를 간들 '진정한 성평등'이 실현될 리도 없고 말이다.

평범이 죄인 세상이다. 실제, 특출 날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전투인데 말이다. 이들이 좀 안정적으로 살아가면 큰일이라도 나는 걸까? 생애 과정에서 지루한 학교 생활을 버틸 수 있는 것도, 죽은 학자들만 등장하는 대학의 인문학 강의에 한 번쯤 열과 성을 다해 집중할 수 있는 것도, 그리고 이웃과 연대하고 인류의 고통에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심지어 심신을 바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것도 평범이라도 했기에 가능하다. 평범에서 하나만 삐끗해 현재가 불안하고 미래가 불확실하면, 어떤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이라는 외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한다. p.196~197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할수록 타인에게 날카로워지고, 학력 차별 비판에 공부 못해서 그런 걸 어쩌란 말이냐며 반박하고, 빈부 격차 지적에 자본주의 사회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말하는 건 인간성과 사회 구조를 바라보는 눈이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생각과 언어의 간편함이,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납작하게 찌그러트려버리는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를 고민한다. 우리는 빈부격차에 대해 지적하면 “북한에 가라”라는 빈정거림이, 비정규직의 고충을 이야기하면 “그런 일 하라고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라는 조롱이, 누군가의 아픔에 대해서는 "너만 힘든 것도 아니다"라는 냉소가 돌아오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망가진 소통과 납작한 대화에 대해서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공정은, 어감부터가 단호하다. 사람을 무시하고 깔보는 세상에서 약자들을 지켜주는 방패다. 사람들이 공정이란 말을 많이 할수록 그 사회는 조금이라도 살 만한 세상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차별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단어가 '차별하는 것이 공정이다'라는 문장으로 소비된다. 차별을 옹호하는 이들은 불평등의 이유를 개인의 노력에 따른 공정한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유' 또한 마찬가지다. 장애인 권리 지켜준다고 비장애인이 힘들다고 말하고, 동성애자의 존엄성을 인정하면 이성애자가 불편하다고, 임대 아파트 때문에 자기 집값 오르지 않으면 책임질 거냐고 화를 낸다. 그러면서 싫어할 자유, 혐오할 자유도 있는 것 아니냐고 하는 식이다. 자유와 인권의 가치가, 공정과 연대의 가치가 제대로 사용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공정이 차별의 근거로 활용되고, 연대를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로 매도해 약자의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걸 막는다면 폭력은 더 교묘히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 것이다.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 차별과 혐오의 정당화 등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납작한 말들'이 등장하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경계해야 할 납작한 말들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