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조깅 혁명 - 혈당·비만·노화를 한 번에 잡는 최강의 운동법
다나카 히로아키 지음, 김연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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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특별히 배워야 잘 달릴 수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달리기 기술은 선수나 일반인이나 비슷하다. 신호등의 신호가 바뀔 것 같을 때, 전철이나 버스를 놓칠 것 같을 때 등 급할 때는 누구나 황급히 뛰어간다. 달리기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매우 긴 시간 훈련해온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일반인과 엘리트 러너를 놓고 비교해도 기술적인 면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다.             p.31


운동을 단 한번도 좋아하거나 즐겨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그럼에도 꽤 긴 시간 요가를 다니기도 했고, 거금을 들여 PT를 받기도 했었지만 이미 다 지난 일이 되어 버렸고, 지금은 운동이라고 할 만한 행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하루 만보 걷기 정도.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일상 속에서 뭔가를 하는 것도 전부 체력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무슨 운동을 해야 할까. 뭘 해야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까. 그럴 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슬로 조깅'이다. 


슬로 조깅은 웃으며 달릴 수 있을 정도의 느린 속도로 달리는 '힘들지 않은 운동'이다. 그래서 특별한 기술이 필요치 않고,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시작할 수 있으며, 지방 연소에 매우 효과적이어서 건강을 유지하는 데 무척 좋은 운동이다. 이 책은 슬로 조깅 창안자 다나카 히로아키 교수의 47년간의 연구 성과와 실천 사례를 집대성해서 담고 있다. 슬로 조깅의 기초 이론부터 실전 수업, 운동생리학, 마라톤을 위한 트레이닝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달리기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차근차근 알려준다. '싱글벙글 페이스'라는 명칭부터 재미있는데, 이것은 젖산이 몸에 쌓이기 시작하는 속도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슬로 조깅은 바로 이 '싱글벙글 페이스'로 달리는 거라 초보자라도 바로 도전할 수 있다. 게다가 느린 속도로 달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혈압 치료와 심장 재활에도 추천하는 달리기 방법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동안 달리기라고 하면 힘든 운동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슬로 조깅이라는 신세계를 발견하게 된 것 같아 이제는 미뤄두었던 달리기를 실천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러닝을 하면 혈액량이 증가하여 피부로 보내는 혈액량이 많아지고, 그 결과 몸의 냉각 기능이 향상된다. 따라서 같은 속도로 달릴 경우, 러닝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체온이 덜 올라가게 된다. 더 나아가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 짧은 시간이라도 눈 딱 감고 러닝을 하면, 1~2주라는 짧은 기간 안에 신체가 그 환경에 적응하여 몸 밖으로 배출되는 땀의 양이 늘어나므로 열사병에 걸릴 위험이 낮아진다. 이런 신체 적응 현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p.251


국내 러닝 인구가 1000만 명을 돌파할 만큼 러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초보자가 선뜻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확실히 움직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왜냐하면 걷기와 달리기의 차이점부터 시작해 각각의 에너지 소비량을 비교하고, 주관적 운동 강도와 근육량과 기초대사량의 변화 등 구체적인 수치와 운동생리학적 근거를 토대로 슬로 조깅의 장점에 대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러닝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근력운동을 통해 어느 정도 근력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지금까지 거의 운동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괜찮다고 하는 점도 슬로조깅에 대한 도전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슬로 조깅 실전 수업 장에서는 나에게 맞는 페이스 찾는 법, 싱글벙글 페이스의 기준, 달릴 때 뒤꿈치 작지와 앞꿈치 착지의 비교, 착지 주법 익히기, 달릴 때 주의 사항, 호흡법과 달리는 장소, 그리고 복장과 러닝화에 대한 것까지 단계별로 필요한 모든 것을 알려 주기 때문에 내일 당장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그야말로 달리기 대유행 시대이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해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며 러닝을 해서 살을 빼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각자 달리기의 실력도 다르고 목표도 다르고, 고민이 되는 지점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달리기에 관한 모든 고민을 해결해주는 방법이 있다면 어떨까. 전혀 힘들지 않을뿐더러 걸을 때보다 칼로리를 2배로 소모해 효율적으로 살을 뺄 수도 있다면 말이다. 특히나 초보자도 최소 3개월만 훈련하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고 하니,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슬로 조깅'에 대해 47년간 연구하며 운동생리학의 관전에서 과학적으로 효과를 입증했고, 스스로도 슬로 조깅을 통해 체중을 감량하고, 건강에 도움을 받았다고 하니 믿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니 러닝을 해보고 싶지만 체력에 자신이 없다면, 건강한 습관을 만들어 보고 싶다면, 스트레스 없이 체중 감량을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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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혜린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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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때 모든 것은 변했다. 소년 시절은 내 주위에서 폐허가 되었다. 양친들은 나를 어떠한 난처한 심정을 품고 바라다보았다. 누나들은 나에게 아주 낯설게 되었다. 하나의 꿈에서 깨어남은 익숙했던 감정과 기쁨을 변조시키고 빛을 바래게 했다. 정원은 향기가 없었고, 숲은 유혹하지 않았고, 세상은 내 주위에서 고물을 파는 것처럼 김빠졌고, 매력이 없었고, 책은 종잇조각이었고, 음악은 소음이었다. 가을 나무 주위에는 나뭇잎이 떨어져도 나무는 그것을 느끼지 않는다. 나무 위에 비가 내리고, 햇볕과 서리가 내린다. 그리고 그들의 내부에는 하나의 생명이 서서히 좁은 곳으로, 안으로 물러나 들어갔다. 그러나 죽지는 않았다. 기다리고 있다.                p.116~117


에밀 싱클레어라는 한 청춘의 고독하고 힘든 내면의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는 <데미안>은 세상 모든 청춘들을 대변하며 긴 시간 사랑을 받아왔다. 출간 후 1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에게 읽히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국내에도 굉장히 다양한 판본으로 출간되어 있다. 나 역시 다른 버전으로 여러 번 읽었던 작품인데, 이번에 만난 <데미안>은 조금 특별하다. 바로 전혜린 타계 60주기를 기념해 전혜린이 번역한 판본을 되살린 복원본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 문학소녀라면 누구나 전혜린을 동경했을 것이다. 아무나 쉽게 해외여행을 다닐 수 없던 시절, 독일로 유학을 갔던 천재 작가였고, 뜨거운 열정과 치열함, 그리고 때 이른 죽음으로 '전혜린 신화'로 남게 된 존재였으니 말이다. 나도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좋아했던 문학소녀였다. 그래서 학창시절 교실 한구석에 펼쳐 세운 교과서 안에 책을 숨겨놓고 읽었던 기억 속에서 언제나 전혜린이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라는 책을 정말 여러번 아껴가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독일 유학이후 대학교수로 생활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의 자서전적 에세이라는 점에 매혹되어 읽기 시작했는데, 분위기와 감성, 문장에 매혹되어 그 시절의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책이다. 그러니 이번에 만나는 <데미안>은 정말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번 개정판에는 전혜린이 쓴 헤세 작가론과 <데미안> 작품론 등 두 편의 해설이 수록되어 있어 더 깊이있는 독서의 시간이 되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나는 여러 번 그 글을 읽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것은 데미안의 답장이었다. 그와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새에 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내 그림을 받은 것이다. 그는 나를 이해했고 나로 하여금 해석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서로 관련되는 것일까? 그리고 ─ 무엇보다도 나를 괴롭힌 것은 ─ 아프락사스란 무엇일까? 나는 그런 말을 들은 일도 없었고 읽은 일도 없었다.              p.158


누구나 유년 시절을 거쳐 어른이 된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평화와 안전의 냄새가 풍기는 집을 벗어나 어른이 되어 가는 순간, 그러니까 어린 시절이 끝나는 순간이란 누구에게나 통과의례처럼 다가오게 마련이다. 누구나 데미안처럼 엄청난 혼란에 빠져 온갖 격정과 감정의 분출들로 괴로워하던 시기를 거쳐 예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물론 어른이 되는 과정이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싱클레어가 그랬듯이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야 그 모든 과정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고전을 '다시'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데미안>과 어른이 되어 만난 <데미안>은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싱클레어에게 성서 속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로 선악의 진실에 대해 가르쳐준 데미안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보호하에 누렸던 안전한 생활을 벗어나 자신을 이끌어주는 사람을 만나 성장하게 되는 싱클레어도 뭔가 공감되고, 이해되는 지점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인물들로 바뀌어 있었으니 말이다. 


별다른 생각없이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모두 불만이던 10대를 지나,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20대를 지나고, 산다는 게 얼마나 처참한지, 얼마나 불공평한지 인지하기 시작하는 30대를 거쳐, 삶의 서글픔을 넘어서 최악의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40대가 되고 나면 그제서야 보이는 게 있다.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여유 같은 것, 우리를 겁에 질리게 하는 것들을 제대로 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등등 어제의 나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오늘의 나는 깨닫게 된다. 이번에 <데미안>을 '다시' 읽으면서도 역시나 기존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고, 배우는 시간이었다. 살면서 누구나 자유롭게 날기를 포기하고 사회가 정한 테두리 안에서 걷는 것을 선택하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데미안>이라는 작품이 어떤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일 테고 말이다. 독일어 원문에 가장 충실한 번역으로 만나는, 가장 문학적 감성으로 충만한 <데미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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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당근 스콜라 창작 그림책 100
마리아호 일러스트라호 지음, 김지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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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 한 권과 차 한 잔이면 지루할 틈이 없다는 토끼 씨는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하다. 주변에 친구가 없어 가끔 외로웠지만, 식물들을 돌보고,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왔다. 길고 어두운 겨울이 지나고, 토끼 씨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봄이 왔다. 토끼 씨는 당근 씨앗을 듬뿍 뿌리고, 날마다 물을 주고, 말을 걸고, 노래도 불러 주었다. 그렇게 사랑을 주어 기른 씨앗 하나가 어느 날 눈에 띄게 잘 자란 것을 발견한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며 당기고 당겼더니 커다란 당근이 나타난다.


안녕하세요, 토끼 씨!

세상에, 당근이!




말하고 걸어 다니는 당근이라니, 토끼 씨는 깜짝 놀라서 후다닥 도망친다. 하지만 집까지 따라온 당근 씨는 집 안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니고, 그렇게 차분하고 점잖은 토끼 씨와 발랄하고 쾌활한 당근 씨의 색다른 동거 생활이 시작된다. 누가 집에 같이 있는 게 익숙하지 않은 토끼 씨와 호기심 넘치는 장난꾸러기 당근 씨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당근 씨, 친구는 어떻게 사귀는 거예요?




당근 씨는 소파에서 방방 뛰며 흙을 다 묻혀 놓고, 토끼 씨가 아끼는 음반을 가지고 놀고, 집안을 어지르며 춤을 추고, 불을 꺼버리고, 어항을 흔들기도 하며 당근 씨를 안절부절 못하게 만든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토끼 씨는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시내로 간다. 누군가 당근 씨를 맡아 준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물론 그런 토끼 씨의 마음을 모르는 당근 씨는 외출하는 것이 마냥 신나기만 한다. 당근 씨앗을 샀던 농원에 가고, 슈퍼마켓의 채소 코너에도 가보고, 도서관에 가서 책도 뒤져 보지만 어디에도 걷고 말하는 당근에 대한 설명은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당근 씨는 세상에 딱 하나뿐인 특별한 당근이었으니 말이다. 




스콜라 창작 그림책 100번째 책이다. 이번 작품은 클라우스 플루게상을 수상한 마리아호 일러스트라호 신작 그림책이다. 조용하고 내향적인 토끼와 활발하고 외향적인 당근의 성향 차이가 유쾌하게 펼쳐지는 이 사랑스러운 이야기는 친구를 사귀는 방법이 궁금한 아이들에게도, 우정을 키우는 방법에 대한 조언이 필요한 어른들에게도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 같다. 게다가 섬세한 그림과 따뜻한 색상이 정말 너무 예쁘다. 토끼와 당근의 너무 다른 성격이 컬러의 채도로 대비되는 것도 귀엽고, 만화식 구성으로 둘의 모험이 펼쳐지는 것도 아주 재미있다.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서 두꺼운 고전책을 일부러 찾아 읽곤 했었는데, 오히려 지금은 그때보다 그림책을 더 많이 보는 것 같다. 그림책이 주는 여유와 위로, 상상력이 내가 잊고 있던 것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당신에게 이 사랑스러운 주홍빛 그림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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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 - 파국의 시대를 건너는 필사적 SF 읽기
강양구 지음 / 북트리거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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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이제 힘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던 그들이 다르게 보이죠? <노인의 전쟁>에서 남다른 동료애로 사지를 종횡무진 누비는 노인 병사처럼, 이 순간에도 세상 곳곳에서 노인들은 자신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소설은, 그저 먼 미래의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곁 누군가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p.35


극심한 불평등, 성별, 종교적 갈등, 기후 위기로 인한 재앙, 소셜미디어가 부추기는 극단주의 등 어쩌면 우리는 망가진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디스토피아를 전망한 음울한 SF보다 현실이 더 잿빛인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좋은 SF는 현실을 지배하고 제한하는 틀에서 벗어나는 상상력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지금과 다른 삶을 상상하도록 자극한다. 

이 책은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프랑켄슈타인>, <멋진 신세계>, <1984>를 잇는 SF 열여덟 편의 작품을 발굴해 소개하고 있다. SF의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과학기술과 역사, 정치, 경제, 문화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저자의 유려한 글은 순식간에 지금과 다른 삶을 상상하도록 만들어준다. 


하나의 세계가 끝이 나고, 20년 뒤 종말 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스테이션 일레븐>이라는 작품을 인상적으로 읽었던 적이 있다. 문명이 몰락한 세상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공연하는 유랑 악단, 첨단 우주정거장에서 살며, 지구에서의 삶을 잊으려고 노력하는 물리학자가 등장했던 이 작품은 여타의 디스토피아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었다. 끔찍하고, 무서운 장면들 대신, 평화롭고 아름다운 분위기가 이어진다고 할까. 세상이 종말을 맞이한 뒤에도 단지 생존하는 것 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는 유랑 극단의 존재는 그저 살아남는 것 외에, 인간에게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도록 해주었다. 강양구 작가는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의 <스테이션 일레븐>을 소개하며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예술 활동에 공을 들여온 인류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하기에도 벅찼던 인류가, 먹고사는 일과 무관해 보이는 예술 활동을 활발하게 했던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세상이 망해도, 알 수 없는 인생의 미스터리는 계속된다는 것, 그래서 이러한 작품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크로스토크>를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에겐 혼자서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도서관이나 모두가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든 새벽 세 시의 거리처럼 고요한, '자기만의 방'이 필요합니다. 역설적으로 그런 자기만의 방, 나만의 고요한 공간이 확보되어야만 비로소 타인과 깊이 있고 진정한 소통도 나눌 수 있죠.               p.199


'어느 날 아무런 전조도, 이렇다 할 원인도 없이 달이 폭발했다.' 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로 시작한 <세븐이브스> 또한 흥미롭게 읽었던 적이 있다. 전체 3권으로 된 방대한 분량의 작품이었는데, 과학과 테크놀로지가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어 다소 문체도 다소 딱딱하고, 낯선 용어들과 설정 들이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하드 SF' 장르의 작품이었다. 닐 스티븐슨은 눈부신 상상력과 천재성으로 인류사를 다시 쓰는 장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행성의 충돌로 시작해 지구가 파괴되고, 세계의 해체와 재건의 시간을 지나 인류의 재탄생이라는 우주 대서사극을 만들어냈다. 특히나 이 작품의 매력은 우주물리학, 양자역학, 로켓공학, 로봇공학, 인공지능, 생물학, 유전공학, 무선전신 및 프로그래밍 언어학, 철학, 문화인류학, 심리학, 정치학 등 방대하지만 검증 가능한 이론들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강양구 작가는 SF 미학의 핵심에는 '경이감'이 아니라 정교한 '사고실험'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의 욕망과 과학기술이 데려다 줄 세계를 정교하게 그려 내고, 과연 그것이 최선인지 혹시 다른 가능성은 없는지를 상상하게 하는 그런 사고실험의 결과물이 바로 SF여야 한다고 말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학기술은 삶을 구석구석 좌지우지하는 실체이기 때문에, SF 소설 속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상상력 또한 지금 여기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과 겹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던 <스테이션 일레븐>, <세븐이브스>를 비롯해서 <노인의 전쟁>, <킨> <백년법>, <리틀 브라더>, <영원한 전쟁>, <드라이>, <크로스토크>, <소멸 세계> 등 이 책에 수록된 SF 작품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너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이 책에 실린 SF를 읽지 않아도 내용을 이해하고 주제 의식에 공감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강양구 작가는 오늘이 비록 세상의 마지막이라 하더라도 '그다음'을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SF가 지닌 힘이라고 말한다. 재난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SF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서 비롯된다.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가 SF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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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 야외생물학자의 동물 생활 탐구
이원영 지음 / 글항아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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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는 어느새 기후위기가 되었고, 이제는 기후슬픔이 세계 각지로 번지고 있다. 인간보다 더 취약한 존재인 동물들은 기후변화가 초래한 삶의 위기를 온몸으로 겪어내는 중이다. 그들의 현재는 언제 우리의 미래가 될지 모르며, 이미 얼마간은 현실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는 야생의 위기, 야생의 슬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p.16~17


지구온난화로 인해 발생한 예측 불가능한 이상기후와 해수면 상승,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기후재난은 지구를 살아가는 인간과 동물의 삶을 바꾸고 있다. 특히나 그 중에서도 극지동물들은 하루하루 기후변화의 최전선에서 그 영향을 가장 먼저, 가장 극심하게 겪어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동물이 살 수 없는 곳에선 인간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동물을 위하고 돌보는 일이 좀더 근본적이고 전체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미래를 돌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다.


 '펭귄 박사'로 알려진 저자는 야외생물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이다. 극지연구소 선임 연구원으로 남극과 북극을 오가며 동물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연구한다. 이 책은 ‘야생’이란 길들여지지 않은 장소를 현장 삼아 그곳에서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생존하고 번식하는 온갖 동물의 분투기를 담고 있다.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친 골목부터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야생까지, 드넓은 지구에서 동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연구가 지구의 건강을 되돌리는 데, 동물들에게 살만한 야생을 돌려주는 데 어떠한 역할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쓰인 책이다. 동물의 생존과 번식, 진화의 과정과 그들의 본성까지 다정한 ‘관찰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이 매우 흥미진진했다. 짝짓기, 집단생활, 공생, 인지와 감정, 의사소통, 동물윤리 등 동물 삶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며, 생생한 풀컬러 동물 사진과 구체적인 연구 사례까지 실려 있어 정말 볼거리가 많은, 눈이 즐거운 책이었다. 




팬데믹이 잦아들면서 사람들은 다시 거리를 빼곡하게 채우고, 자동차는 도로를 메웠다. 거리로 나왔던 동물들은 또다시 어디로 자취를 감추었을까? 아마도 어딘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도시가 자신들에게 삶터를 내어줄 날을... 생태계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다양한 동물이 긴 시간에 걸쳐 관계를 만들어온 복잡한 시스템이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진정한 공존은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p.320


동물의 짝짓기에 관련된 장에서는 펭귄의 이혼율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면서 한 짝과 사는 게 자연스럽고 규범적인 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파트너를 바꾸지 않고 일생을 보내는 건 위험한 전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스스로 고른 짝이 좋은지 나쁜지 함께 지내보기 전엔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펭귄 역시 일부일처제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펭귄목 18종 가운데 평생 같은 짝과 함께하는 종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특히 황제펭귄의 이혼율은 85퍼센트, 임금펭귄의 이혼율은 75퍼센트라고 한다. 게다가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엄격한 의미에서 그것이 잘 지켜지지는 않아서, 약 90퍼센트 이상의 조류종에서 혼외 자식이 태어난다는 보고가 있다고 하니 흥미로웠다. 게다가 이런 걸 다 어떻게 조사한 것인지도 매우 놀라울 따름이다. 동물의 세계에선 이처럼 사회적 일부일처가 유전적 일부일처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인간의 관점이 아닌 동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번식과 생존의 세계가 인상적이었다. 


인간처럼 말을 하진 않지만, 동물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점과 단지 본능이라 생각했던 행동도 복잡한 신호가 오가는 체계를 갖춘 동물들 고유의 언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또한 동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누구보다 동물들을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이 크다고 자부하는 저자가 현장에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펭귄을 포함한 야생동물이 자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고백(?)도 재미있었다. 기후위기로 인해 생존의 조건 자체가 흔들리는 지금, 우리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전환기에 내몰리고 있다. 오죽하면 이러한 기후변화를 경험하면서 우울감을 느끼는 심리적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가 생겨나기도 했으니 말이다. 생태슬픔 혹은 기후슬픔이라는 용어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우울로 이어진다. 인간들뿐만 아니라 지구 각지에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주요 동물들도 여러 위기를 겪고 있다. 서식지가 파괴되고, 개체군이 고립되어 사라질 위험에 처하고, 침엽수림 면적이 줄고, 주요 먹이원이 되는 동물의 개체수가 감소하면서 더욱 생존을 위협받고 있으니 말이다. 도시를 포함한 지구는 모든 동물이 공유하는 삶의 터전이다. 이 책을 읽으며 지금이야말로 동물들을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함께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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