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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번 랜드 - 에드워드 리 셰프가 안내하는 버번 위스키 가이드북 ㅣ 에드워드 리 컬렉션
에드워드 리 지음, 정연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버번 위스키에는 말린 과일과 단맛이 느껴지는 동시에 쓴맛과 깊은 맛을 선사하는 풍미가 있다. 나는 이 맛을 오로지 '과일 가죽'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마치 옥수수가 어두운 색의 달콤한 과일로 가득 찬 가죽으로 환생한 것 같은 느낌이다. 홉피는 버번 위스키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변수가 너무 많아서 옥수수 풍미가 정확히 어떻게 변하는지 명확히 말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호밀은 스파이시한 풍미를 냅니다. 보리는 전분 느낌이 있지만 단맛이 조금 더 강하죠. 그 어떤 것을 오크통에 넣는다 해도 갈색으로 변하는 것은 마찬가지예요. 마법의 비결은 바로 옥수수라고 할 수 있죠." 그가 말했다. p.92
<스모크 앤 피클스>, <버터밀크 그래피티>에 이은 에드워드 리 셰프의 세 번째 책이다. <스모크 앤 피클스>에서는 에드워드 리의 개인적인 성장 과정과 요리 세계가 확장되는 여정을 따라 소, 돼지, 양, 해산물, 피클, 버번에서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가정에서 다룰 수 있는 모든 식재료에 대해 이야기했다. ‘요리’가 단순한 조리 행위가 아닌 문화와 정체성, 가족, 인간관계를 탐구하는 방식이자 자신의 뿌리와, 딛고 사는 터전에 대한 사랑이라는 그의 철학이 페이지마다 담겨 있어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버터밀크 그래피티>에는 그가 2년 동안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과 음식,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문화와 정체성에 관한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음식의 세계를 여행하며 수많은 이민자를 만나고, 그 과정이 고스란히 이민자들의 요리와 미국 음식의 이야기로 연결되는 아름다운 책이었다.

이번에 나온 <버번 랜드>는 미국 대표 위스키인 ‘버번’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식재료로서의 버번을 활용한 레시피를 담은 책이다. 요리사지만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문학도이기도 한데, 개인적으로 작가로서 더 좋아하기에 이번 책도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버번 위스키가 오크통 속에서 숙성되는 데는 4년에서 6년, 8년, 그보다 더 긴 세월이 필요하다. 그 세월 동안 액체가 숙성되는데, 기업의 비밀과 가문의 레시피, 전승되는 지식, 역사와 전통이 증류소 위를 맴도는 유령처럼 벽을 통과하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그는 버번을 가리켜 언제 만나도 마음 편한,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소개하는데, 그만큼 모든 페이지에 애정이 듬뿍 묻어 있다.
이 책에는 버번 위스키의 제조 과정과 역사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버번 테이스팅 법, 잔과 얼음 고르는 법, 손님들에게 위스키를 대접하는 법, 위스키 수집하는 법 등 그가 애정을 갖고 공들여 탐구하며 알게 된 버번 위스키 정보들이 가득하다. 여타의 위스키 가이드북과는 다른 특별함은 버번을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에드워드 리만의 버번 활용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버번 위스키는 켄터키 최고의 증류주로 시작해서 미국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버번 위스키가 세계를 정복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옥수수를 재배하고, 화이트 오크를 발견하고, 구리를 두들겨 증류기를 만들고, 효모를 잡아내고, 계절이 네 번 지나며 오크통 속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질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던 미국의 작고 구석진 하나의 주인 켄터키에서 시작된 것이다. 다음에 버번 위스키 병을 열 때 이 점을 생각해주길. 그리고 눈을 감고 맛을 보며, 그 모든 역사와 전도유망한 미래가 잔 속에서 뒤섞이는 것을 느껴보자. 건배! p.278
이 책에는 버번 위스키의 제조 과정과 역사, 켄터키의 유명 증류소 투어와 버번의 주요 인물 인터뷰 등 위스키에 대한 정보들이 가득한데 그 중 어떤 것도 단순 나열식 설명으로 그치는 것이 없다. 그의 문장들은 감각적이고, 문학적이며, 사색적이고, 매혹적이다. 특히나 그는 입안에서 느껴지는 것을 단어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다. 위스키를 마셔본 적이 없는 사람조차 그 맛과 향, 풍미를 짐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있으니 말이다.
버번 위스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핵심 요소는 불과 옥수수, 오크, 효모, 구리라고 한다. 이 다섯 가지 구성 요소 안에 버번 위스키의 풍미를 결정하는 핵심이 존재한다. 여섯 번째 요소는 물이지만, 이건 풍미의 구성 요소라고 할 수는 없고, 누군가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지만, 이는 좀 더 철학적인 개념에 가깝다. 향과 단맛과 짠맛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이 책을 읽다 보면 어쩐지 알 것도 같다는 느낌이 든다. 버번 위스키는 도수가 높은 술이라 아직 마셔볼 기회가 없었는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미국 출간 당시부터 위스키 애호가들의 필독서로 불리며 큰 주목을 받았고, 2025 IACP 어워드 와인, 맥주 부문 파이널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이 책은 단순한 위스키 교본이 아니라 버번을 만들고, 마시고, 소비하는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는 여정이며, 한 잔의 술이 담아낸 욕망과 갈등, 자부심과 상처의 기록이기도 하다. 에드워드 리 셰프를 작가로서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음식과 요리에 대한 이야기에도 나름의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웬만한 소설 읽는 것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책 역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버번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 준다.
요리로 즐기는 버번의 세계도 매우 흥미로웠다. 버번을 요리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끓여서 에탄올을 거의 날리고 알코올은 최소한만 남긴 상태로, 풍미가 농축된 액체 상태로 만든 다음에 사용한다고 한다. 이렇게 졸인 버번 위스키는 유리병이나 기존 위스키 병에 담아서 실온에 수 개월간 보관할 수도 있다. 고기에 풍미를 더해주고, 부드럽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생선을 효과적으로 절여주기도 하며, 날카로운 맛을 부드럽게 다듬어주기도 한다. 음식과 페어링해서 마시는 버번 위스키의 맛도 궁금하고, 버번 농축액을 사용한 요리의 풍미도 너무 궁금해졌다. 위스키를 즐기고,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잘 몰라도 상관없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버번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