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린의 전쟁 같은 휴가
벤 파운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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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 세계에서 이보다 큰 스포츠 대회는 없다. 브라보 대원들은 그 거품 낀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 그들은 이틀 후면 이라크에 재배치되어 남은 11개월의 복무를 마쳐야 하지만, 지금은 온갖 미국적인 것이 자궁처럼 안전하게 그들을 감싸고 있다. 풋볼, 추수감사절, 텔레비전, 여덟 종류는 되는 경찰과 보안요원, 그리고 3억 명의 호의적인 국민. 클리블랜드에서는 한 노인이 몸을 떨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들이 바로 미국이야.”

플러시천을 씌운 리무진 좌석에는 모두 열 명이 앉아 있었다. 브라보 분대의 남은 병사 여덟 명과 공보부에서 나온 호송관, 그리고 영화 제작자. 빌리와 브라보 분대의 병사들은 사방에서 폭탄이 터지고 적들이 아군을 쏘고, 그래서 무작정 싸워야만 했던 이라크 전투 영상으로 일약 국민적 스타가 되어 승전 여행 중이다. 그들은 곧 전설적인 텍사스 카우보이스 스타디움에서 하프타임 쇼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무려 데스티니스 차일드와 함께 말이다. 이야기는 그들이 경기 시작 두 시간 전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다시 전쟁터를 향해 스타디움을 떠나는 데서 끝이 난다. 그렇게 그곳에서 벌어지는 현재의 이야기들과 이 주라는 기간 동안 승전 여행을 다니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들, 각자의 고향집 방문과 전쟁이 벌어지던 순간의 과거가 교차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2004년 댈러스 카우보이스와 시카고 베어스의 풋볼 경기일에 데스티니스 차일드가 공연하고 군복 차림의 미군들이 행진하는 이벤트가 열렸다. 작가인 벤 파운틴은 그것을 보고는 그때 등장한 마르고 검게 그을린 군복 차림의 군인들과 사선을 넘나드는 전투 현장에 있던 그들이 광란의 한복판에 떨어진 그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상황에 대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전쟁을 한낱 오락거리로 소비하는 행태와 군인들이 느꼈을 혼란과 절망이 고스란히 담기게 된 것이다. "전쟁에 나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가끔은 전쟁이 필요하다는 걸 누구나 알지." 라는 극중 대사처럼 이것이 바로 미국의 실상이다. 이 작품은 여전히 전쟁의 광기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전쟁 강박을 여과없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영웅 대접을 받는 건 고달픈 일이며, 시민들과의 접점인 통로 쪽 좌석에 앉으면 그 고달픔은 배가된다. , 감사합니다. , 부인,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빌리는 브라보 대원들의 사인을 원하는 시민들이 내미는 팸플릿을 대원들에게 돌리고, 사인이 끝날 때까지 대화에 응해야 한다... 빌리는 단 한 번이라도 누가 자신을 아기 살인자라고 불러주길 바라지만, 사람들은 아기들이 살해되었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듯하다. 그들은 민주주의, 발전, 대량살상무기 이야기만 한다. 그들은 너무도 간절히 믿고 싶어하고, 빌리도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 그들은 산타클로스가 정말로 있다고 믿지 않으면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을 까봐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우기는 아이들처럼 열렬하다.

브라보 대원들은 이 주 동안의 승전 여행 동안 비행기와 자동차, 호텔방에서만 지내다 보니 운동할 시간이 없었고 몸도 마음도 풀어졌다. 따라서 그들은 나약해져서는 지치고 신경질적인 상태로, 그만큼 효율성이 떨어진 상태로 전쟁터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틀 후면 이 모든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을 영웅으로 치켜 세우며, 그들에게 열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이 없겠지만 말이다. 빌리는 대원 누구라도 아직 살아 있는 것이 그야말로 기적처럼 느껴진다. 모든 대원들이 간발의 차로 죽음을 피해온 것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전쟁이 진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건 바로 염병할 무작위성이다. 화장실에서 넷째 칸이 아닌 셋째 칸에 들어가거나 고개를 오른쪽이 아닌 왼쪽으로 돌리는 것 따위의 사소한 일에서 생과 사, 끔찍한 부상이 판가름 나기도 하는 것이 바로 전쟁터이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그곳으로 돌아가 다시 전투를 재개해야만 한다.

그들의 현실이 세상을 지배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목숨까지 구해주지는 못한다. 폭탄도 총알도 막아주지 못한다. 그들의 꿈을 산산조각 낼 전사자 수의 포화점이 존재할까, 빌리는 생각한다. 비현실이 얼마나 많은 현실을 취할 수 있을까?

미국인들은 날마다 정신적으로 힘겨운 전쟁을 겪는다. 빌리는 이곳에서 매일 사람들과 접촉할 때마다 전쟁의 열기를 느낀다. 하지만 그는 영웅적인 행위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저 그 행위가 그에게 왔을 뿐. 그리고 그는 그 행위가 다시 찾아오는 것이 두렵다. 빌리는 누나의 사고 이후 파혼한 비겁한 약혼자의 차를 파손시킨 일로 간신히 졸업장만 겨우 받고, 군에 입대했기에 열여덟 이라는 어린 나이에 군인이 되었다. 졸병 중의 졸병 보병대 이등병. 그런 그가 전쟁을 겪고, 승전 여행이라는 코미디 같은 상황을 겪으면서 바라보는 미국이란 어떤 모습일까. 그에게는 미국인들이 나이와 지위와 관계없이 모두 어린애로 보였다. 모두들 전쟁의 완전한 죄악에 대해서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작가는 극중 빌리의 입을 빌어 '미국인들은 성장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가고 가끔 죽기도 해야 하는 어린애'라고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안 감독의 연출로 작년에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로는 크게 성공을 하진 못한 것 같다. 국내에는 개봉하지도 못했고 말이다. 이 작품을 읽어 보니 왜 영화로는 크게 호응을 얻지 못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벤 파운틴이 정말 글을 잘 쓰는 작가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유머러스한 대화와 농담, 웃음 아래에는 자괴감과 비애를 보여주고, 전쟁을 강력히 옹호하면서 정작 자신은 참전을 기피하는 모습을 천역덕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전쟁과 엔터테인먼트가 뒤섞여 충돌하는 블랙코미디라니, 그 어떤 작가가 이런 글을 써낼까 싶을 정도로 '글의 힘'이 뚜렷한 작품이라는 얘기이다. 그러니 이 작품은 당연히 '소설'로 읽어야만 한다. 미국의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굉장히 미국적인 작품인데다, 전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 어느 정도 예상되는 지점이 분명이 있었는데, 실제 작품은 분명 그것을 넘어 선다. 문장은 아름답고, 예리하며, 어조는 거침없고, 신랄하다. 블랙 코미디의 정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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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스
앤디 위어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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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의 첫 번째(그리고 지금까지는 유일한) 도시 아르테미스에 산다. 아르테미스는버블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구() 다섯 개로 이루어져 있다. 버블의 절반은 땅속에 묻혀 있기 때문에 아르테미스는 옛날 SF 소설에서 묘사했던 달 도시의 모습을 정확히 닮아 있다.

....이곳에 오려면 돈이 아주 많이 들고, 이곳에서 살려면 돈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도시라면 부자 관광객과 괴짜 갑부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노동자 계급의 사람도 필요하다. ‘J. 돈많아 넘쳐흘러 3께서 스스로 변기를 닦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도 힘없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다

 

화성에서 조난당한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로 소설은 물론, 영화계까지 제대로 접수했던 앤디 위어의 신작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이번에는 달을 배경으로 색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목인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달의 여신이고, 1960년대 나사에서 추진된 인간의 달 여행 계획인아폴로의 쌍둥이 남매이기도 하다. <마션>의 주인공이 식물학자이자 기계공학자인 우주비행사 마크 와트니였다면, 이번 <아르테미스>의 주인공은 최하층 짐꾼으로 일하는 수학 천재 범죄자 재즈 바샤라이다. 재즈는 금지 물품을 지구로부터 아르테미스로 밀반입해서 배달하는 밀수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녀는 엄밀하게 말해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민이지만, 여섯 살 이후로는 그곳에 가본 적이 없으므로, 스스로는 아르테미스인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어느 날, 아르테미스에서 가장 돈 많은 떼부자들 중 하나인 트론이 그녀에게 특별한 제안을 한다. 알루미늄 산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기존에 이곳에 산소를 공급하는 대가로 전기를 무료로 사용하고 있는 산체스 알루미늄과 맞붙어 경쟁해볼 방법이 없다는 거다. 그의 목적은 산체스의 산소 공급을 중단시켜 그들이 얻고 있는 혜택을 자신이 가로채겠다는 것. 트론은 재즈에게 산체스의 산소 생산을 중단시키기 위해 수확기들을 못 쓰게 만들어주는 댓가로 100만 슬러그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트론이 알루미늄 산업에 진출하는 이유도 뭔가 수상쩍었고, 만약 붙잡히기라도 하면 지구로 추방될 게 뻔했다. 지구로 가게 되면 혼자 살아가는 건 둘째치고 아마 일어서지도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여섯 살 때부터 달의 중력에서 살아왔으니까. 어쩐지 내키지 않았지만 돈이 필요했던 재즈는 그 일을 하겠다고 수락해버리고 만다.

 

 

"넌 아주 재수 없는 년이야." 밥이 말했다.

"밥이 옳아요, 아빠. 난 재수 없는 년이에요. 하지만 지금 아르테미스에는 재수 없는 년이 필요하고, 그래서 내가 나선 거죠."

 

재즈는 산체스의 수확기를 몇 개 망가뜨리는 데는 성공하지만, 일을 다 끝내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된다. 전부터 그녀의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던 루디는 대놓고 그녀가 그 일에 관여했다고 의심하고, 살인 사건까지 벌어지고 그 살인자에 의해 그녀 또한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살인자를 피해 도망 다니면서 노숙자처럼 얼어붙을 것처럼 추운 공간에 숨어서 그녀는 생각한다. 아버지로부터 독립한 뒤 10년 동안 혼자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애썼는데, 지금 다시 처음 그 자리로 돌아와 있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일의 내막을 스스로 파헤쳐보기로 한다. 알고 봤더니 산체스 알루미늄의 주인이 브라질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강력한 폭력조직이었고, 트론의 목적도 단순히 알루미늄 사업을 인수하려던 게 아니었다. 그녀는 점점 더 엄청난 음모 속으로 뛰어 들어가게 되고, 아르테미스 전체의 안위를 위험하게 만드는 일에 맞서기 위해 그 동안 관계가 소원했던 아버지를 비롯해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런, 나 좆된 거지?!" 나는 수확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작품 역시 전작인 <마션> 처럼 각종 과학적 지식들이 달의 도시 아르테미스를 허구가 아니라 실제처럼 느껴지게 하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앤디 위어는 물리학, 화학, 경제학 등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달의 도시가 활성화될 수 있는 여러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놓았다. 그리고 달의 표준 시간이나 화폐, 지구인을 위한 여러 다양한 관광 상품, 통신 수단 등도 흥미진진하게 그려지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들이다. 물리적 법칙에 따라 아르테미스의 커피는 맛이 거지 같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기압이 낮을수록 물의 끓는점이 낮아지기 때문에, 이곳에선 물이 섭씨 61도에서 끓기 때문에 차와 커피가 아무리 뜨거워도 섭씨 61도에 그친다. 당연히 엄청나게 차가울 수밖에 없다. 어쩐지 먹어보지 않아도 상상이 되는 맛이라 저절로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아르테미스에서 정의가 구현되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교도소도, 벌금도 없고,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면 무조건 지구로 추방된다. 그 외의 일들은 모두 아르테미스의 보안책임자인 루디가 해결한다. 예를 들어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른 남자는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폭행을 당한 뒤 의사에게 보내지는 식이다. 이런 소소한 설정들이 아르테미스라는 도시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서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어 주고 있다.

 

 

영화 <마션>의 제작사에서 <아르테미스>역시 영화화를 확정했다고 하는데, 영화로도 너무 기대가 되는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끝내주는 도시 '아르테미스'로의 여행을 즐겨보시길! 향후 70년 후,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꼭 한 번 가보고 싶어하는 꿈의 여행지가 어쩌면 실제가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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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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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집이다. 매일 아침 수도관은 거품이 이는 새로운 감정들을 나르고, 하수구는 말다툼을 씻어 내리고, 환한 창문은 활짝 열려 새로이 다진 선의의 싱그러운 공기를 받아들인다.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토대와 무너지지 않는 천장으로 된 집이다. 그에게도 한때 그런 집이 있었다, 그것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이제 그의 집은 어디에도 없고알파마의 아파트는 수도사의 방처럼 을씨년스럽다어느 집이든 발을 디디면 그의 집이 없다는 사실만 상기될 뿐이다.

1904년 리스본, 고미술 학예사 보조로 일하는 토마스는 일주일 만에 연인과 아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맞게 된다. 인생에서 소중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나서 분노와 절망에 그는 뒤로 걷기 시작한다. 세상을 등지고, 신을 등지고, 반발하면서 걷는다. 달리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그렇게 기이한 애도의 시간을 1년 보내다 어느 날 기록보관소에서 우연히 17세기 고문서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한 신부의 일기장이었고, 사랑하는 이들이 죽은 뒤 토마스는 오직 신부가 만든 물건의 흔적을 쫓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일기 속 내용을 따라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하게 된다.

1939년 포르투갈, 시신을 다루는 병리학자인 에우제비우에게 늦은 밤 아내 마리아가 찾아 온다. 두 사람은 에거서 크리스티의 팬으로 함께 크리스티의 책을 읽고 토론해왔다. 그날 밤 마리아는 크리스티의 소설과 복음서의 유사성에 대해 자신이 발견한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내가 돌아간 뒤 또 다른 마리아가 찾아온다. 그녀는 검은 상복 차림의 노부인으로 가방에 담아온 남편의 시신을 부검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부검을 통해서 남편이 왜 죽었는지가 아니라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다고.

1981년 캐나다, 상원의원 피터는 40여 년을 함께했던 아내가 죽고 나서 엄청난 상실감에 마치 유령처럼 지낸다. 동료들의 권유로 며칠 가벼운 휴가 겸 출장을 떠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한 침팬지를 만나게 된다. 그는 침팬지 오도에게 자석 같은 끌림을 느끼고, 오도 역시 계속 피터의 눈을 가만히 바라본다. 피터는 어쩐지 목구멍이 뻐근하고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이고, 거액을 들려 침팬지를 사겠다고 결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인 포르투갈로 건너가 침팬지와 함께 지내기로 한다.

 

그러고 나니 할 일이 없다. 3주 동안아니 한평생일까? ─ 쉼 없이 움직였는데, 이제 할 일이 없다. 무수한 종속절과 수십 개의 형용사와 부사가 들어가고, 기발한 접속사들이 문장을 새로운 방향으로 끌어가는 와중에예기치 못한 막간의 촌극까지 끼어들고하이픈 없는 명사들이 난무하는 장문이 마침내, 놀랍도록 고요한 마침표와 함께 끝이 난다. 한 시간쯤, 꼭대기 층 계단참에 나가 앉아서, 지치고 조금 긴장이 풀리고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그는 그 마침표에 대해 생각한다. 다음 문장은 무엇을 가져오려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버리고 남겨진 이들에게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상실감으로 세상이 끝난 것 같더라도 살아남은 사람은 어찌 되었든 계속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잔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삶의 이치이다. 각기 다른 시대의 세 사람은 모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죽음으로 잃고 혼자 남겨 졌다. 토마스는 연인과 아들, 아버지를 잃었고, 에우제비우는 의문의 사고로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으며, 피터 역시 40년 동안 함께 했던 아내를 병으로 잃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남겨진 가혹한 삶을 살아 낸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들 세 남자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는 장소를 통해 이어진다. 토마스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그를 기다리는 교회가 있다고 믿고 거기 도착하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나고, 에우제비우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 인근에 살고 있으며, 피터는 자신의 고향이지만 두 살 때 떠나와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포르투갈로 가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슬픈 사실은 의사들이 뭐라고 하든 자연사는 없다는 점이에요. 모든 죽음은 살해로, 사랑하는 이를 부당하게 빼앗긴 것으로 느껴지죠.

이 작품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삶의 전부였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체 왜 살아가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얀 마텔의 대답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연한 죽음이란 이 세상에 없다. 모든 개별적인 죽음은 그 자체로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죽음 앞에서 남겨진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근거는 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되물을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세 남자의 각기 다른 여정은 이야기 자체로서도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었지만, 그들의 끊임없는 고뇌와 사유를 따라다니면서 어쩐지 내가 위로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특히나 병리학자 에우제비우가 노부인의 남편 시신을 부검을 끝내고 나서 우리가 맞이하게 되는, 굉장히 기묘하고 어떻게 보면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드는 그 장면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통해 노부인의 다소 이상한 행동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 부부가 함께한 시간과 사랑을 마치 눈으로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체감할 수 있었다. 토마스가 포르투갈에서 겪게 되는 종교적인 그것도, 피터가 챔팬지 오도와 함께 교감하면서 깨닫게 되는 놀라운 체험도 우아하면서도 아름답게 상실을 겪어내는 인간의 이야기들이었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는 산이 없다. 그저 언덕들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란 어떤 의미일까. 우리가 믿는 믿음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상실을 겪고 슬픔을 견뎌내는 것에 대해 얀 마텔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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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뿌리는 소녀
니시 카나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케미스토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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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성장의 종착점은 죽음이다. 료처럼 바보같이 우쭐대고, 아버지처럼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 쓰고, 그리고 미라이처럼 비참해지고, 그리고, 그리고 우리는 죽는 것이다. 반드시 죽는다.

우리는 죽기 위해 성장하는 것이다.

얼마나 잔인한가. 어째서 성장해야 하는가.

 

자그마한 온천 마을에 사는 11살 소년 사토시. 주민의 대부분이 온천 여관을 운영하는데, 사토시의 부모 역시 중하 정도의 규모인 아카쓰키칸이라는 여관을 운영 중이다. 마을에서 가장 큰 여관 집의 딸 마나는 가장 먼저 생리를 시작하는 등 여성적인 면모로 남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해왔는데, 어느 날 전학온 고즈에 덕분에 대번에 판도가 달라진다. 고즈에는 엄마와 함께 아카쓰키칸에 왔는데, 입주 종업원이 지내는 기숙사에서 지내게 된다. 고즈에는 마치 중학생 모델처럼 가느다란 다리를 가진 빼어난 미인이었기에, 순식간에 마나의 인기를 뛰어 넘는다. 사토시는 눈에 띄지 않는 걸 좋아하는 성격으로 존재감이 없는 편이었는데, 고즈에가 사토시네 집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의 주목을 받아 그의 일상이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이제 막 사춘기에 발을 들이게 된 사토시는 매일 우울하다. 자신의 몸이 조금씩 변화해가는 것도 징그럽게 느껴지고, 어른 남자가 된다는 것을 야만스럽다고 생각할 만큼 싫어한다. 여러 번 바람을 피우다 엄마에게 걸리고도 여전히 다른 여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아빠의 모습도 불결하고 저질로 느껴졌고, 마을에 자신이 되고 싶을 만큼 동경하는 어른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그딴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데, 자신의 의사와는 별개로 몸이 점점 변해 어른 남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싫었던 것이다. 게다가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체 왜 죽기 위해 성장 당해야 하느냐고, 그냥 앞으로 지금 이 모습으로 계속 있고 싶다고 말이다. 그런 사토시의 삶에 아름답지만 이상하고도 독특한 고즈에라는 소녀가 등장하면서, 조금씩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된다.

 

"사토시, 고마워."

그러고 나서 고즈에가 한 말을, 나는 한마디도 빠짐없이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나 있지, 눈이 있어서 좋아. 코가, 입이 있어서 좋아.

우리 별에서는 그런 거 필요 없었거든. 이미 영원히 살 수 있으니까, 바로 그 순간에 뭔가를 볼 필요가 없던 거지. 뭔가를 느끼지 않아도 됐던 거야."

고즈에라는 캐릭터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4차원 소녀이다. 빼어난 외모를 가졌지만, 모든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신기하게 바라보고, 뿌릴 수 있는 것은 뭐든 닥치는 대로 뿌리는 것을 좋아한다. 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아이였는데, 거기다 자신이 어떤 별에서 우주선을 타고 왔다고 말한다. 그녀의 함께 지내는 엄마는 생물학적 엄마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별에서 살던 생명체이며, 그 별에서는 누구나 나이가 들지 않고 언제까지나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무슨 어이없는 황당한 소리인가 싶다가도, 그녀의 말을 조금씩 듣고 있자면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아마도 우리 모두 고즈에처럼 11살이었던 순수한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온 우주인이라는 설정 때문에, 그녀가 겪게 되는 모든 일들과 만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 행동들이 그녀에게는 난생 처음 경험하는 신기한 일이라는 것이 고스란히 보여진다. 그런 그녀였기에 사토시가 거부하는 신체적인 성장과 낯선 어른의 세계 조차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너를 이루는 알갱이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이루고 있는 알갱이는 언젠가 모두 새롭게 교체되는 거지."

"교체돼?"

"지금의 너는, 완전히 새로운 너로 다시 태어나.

 

고즈에는 말한다. 자신이 뿌리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전부 떨어지기 때문에 멋진 거라고. 뭐든 영원히 계속된다면 멋지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영원히 계속되지 않으니까 멋진 거라는 그녀의 말은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매 순간이 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만든다. 지금 내가 무심코 흘려 보내는 이 시간도 역시 생애 단 한 번뿐이다. 그러니 아름다운 거고, 소중한 거라는 말이다. 사토시는 깨닫는다. 고즈에 덕분에 매일 일기를 써 나가면서, 하루하루를 살아 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는 것에 조용히 감동하게 된 것이다. 어제, 오늘, 내일.. 하루도 놓치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날마다 변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나로 있다는 것이 기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11살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인데다, UFO, 우주인까지 등장하며 엉뚱한 판타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뭉클한 순간들이 많았다.

특히나 마음에 와 닿았던 장면은 누구나 거짓말쟁이로 취급하는 루이의 말을 곧 대로 믿은 건 바보처럼 보였던 도노 뿐이라는 것을 사토시가 알게 된 순간이었다. 도노는 누군가가 하는 말을 거짓말이라고 비난하거나, 어차피 거짓말일거라고 단정 짓지 않고, 그저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믿는다고 말한다. 사실 같은 건 전혀 상관 없다고, 그저 상대가 믿어 주길 바라면 믿는다고 말이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믿은 것이 거짓말이란 걸 알게 되면, 그때 비로소 제대로 상처입으면 된다는 거다. 믿은 게 거짓말이란 걸 알게 될까 봐 처음부터 믿지 않는 건 싫다고, 전부 믿고 나서 거짓말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그때 상처 입을 거라고 말하는 그의 어눌한 말이 심장에 콕 박히는 느낌이었다. 왜 우리는 그렇게 못할까. 왜 나는 그렇게 누군가를 무조건 믿어 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아마 다들 했을 것이다. 니시 가나코는 나오키 상을 수상했던 작품 <사라바>에서도 믿음에 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자신이 믿을 걸 누군가한테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무슨 일이든,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스스로를 믿으라고 말이다. <우주를 뿌리는 소녀> <사라바>에 비해서 분량도, 분위기도 가벼운 느낌이지만 조금 더 마음을 울리는 잔상을 남겨주는 것 같다. 아름답고, 뭉클하고, 따뜻한 이 작품은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우리에게도, 그리고 아직 어른이 되는 것이 두려운 소년, 소녀들에게도 멋진 선물이 되어 줄 것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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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 - 유병재 농담집
유병재 지음 / 비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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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근심, 게으름, 시기, 질투, 나태, 친일파, 자격지심, 악성댓글, 독재자, 뻔뻔함, 교만, 식탐, 성욕, 의심, 위선, 이기심, 군부세력, 불평등, 폭력, 성범죄자, 혐오, 피해의식, 적폐, 질투, 차별, 꼰대, 자기혐오를 내 통장에 넣어두고 싶다. 거기는 뭐 넣기만 하면 씨팔 다 없어지던데.

 

 

워낙 티비 쇼프로그램은 잘 보질 않아서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알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가끔 뼈있는 발언을 마치 농담처럼 툭툭 던져 화제가 되곤 하는 유병재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가 책을 출간했다. 이름하여 <블랙코미디> 라는 농담집이다. 이 책에는 지난 3년 동안 저축하듯 모은 에세이, 우화, 아이디어 노트, 미공개 글 138편이 담겨 있다. 그는 이 책의 서두를 "개나 소나 책을 쓴다. 이 땅의 백만 저자들에겐 면목없는 말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나 같은 놈까지 책을 냈으니 말이다"라는 말로 열고 있다. 사실 연예인이 책을 냈다는 소식이 들리면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반응을 한다. 좀 뜨니 책도 내는 구나. 이제 개나 소나 책을 쓴다고 나서네. 라고 말이다. 정말 아무나 글이 아닌 이름으로 책을 낼 수도 있는 시대이지만, 이 책은 그들과는 조금 다르지 않나 싶다. 세상에 일침을 가하는 독설, 위트를 빙자한 그의 쓴소리들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다면 아마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누구나 겪었을 법한, 차마 말로 내뱉지 못했던 일상 속의 부조리를 예리하게 포착하는 그의 짧은 글들은, 길지 않아서 오히려 더 와 닿고, 뜨끔하고, 공감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어느 날 운명이 말했다. 작작 맡기라고." 단 두 문장으로 이렇게 가슴을 콕 찌를 수 있는 작가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말에 가시가 돋아서 기분이 안 좋은 줄 알고 걱정했어. 성격이 안 좋은 거였구나." 이런 문구들은 너무 웃기면서도, 괜히 내 얘기 같아서, 혹은 내가 아는 그 누구의 얘기 같아서 뜨끔했다. "대한민국에서 아들딸로 살기 힘든 이유: 딸 같아서 성희롱하고 아들 같아서 갑질함" 이라는 문구를 보는데, 요즘 한참 뉴스를 떠들썩하게 했던 몇몇 뉴스들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렇듯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어찌 보면 마치 자학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자기반성'이라는 테마와 사회의 이면을 예리하게 바라보며 눈치보지 않고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할말 다 하는 '세상' 그 자체를 읽어내는 테마가 공존하고 있다. 분노를 웃음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정신이 건강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이 짧은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는 건강한 코미디란 바로 이런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물론 내용 자체와 수위는 그리 건전하다고만은 볼 수 없겠지만 말이다. 하핫.

 

 

내가 어떤 사람인지

혹은 어떤 존재인지는,

대부분 담배꽁초 바닥에 버리고, 알바한테 반말하고, 엄마한테 짜증부리고,

이런 기억에도 남지 않을 미세먼지 같은 작은 순간들이 모여 결정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영화나 만화, 혹은 소설을 보면 주인공에게 항상 결정적인 선택의 기로, 드라마틱한 갈등의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그 선택으로 인해 내가 누구인지 정의해줄 수 있을 만한 그런 순간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인생에서 그런 결정적인 순간이란 아예 없거나, 모르고 지나가거나 그러지 않을까. 인생은 영화가 아니니까 말이다. 내가 일상에서 매일 짓는 표정, 자주 내뱉는 말투, 누군가에게 짜증내는 상황, 나도 모르게 하는 습관들이 모여 내가 어떤 사람인지 결정된다는 말은 그래서 참 서글프다. 애초에 내가 기억도 하지 못할, 정말 미세먼지 같은 순간들이 쌓여 나란 존재를 구성한다니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생각한다. 내 인생도 정확하게 기,,,결로 흘러가서 중요한 순간에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리고, 장대한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일상의 사소하거나, 중요하지 않는 순간들은 좀 더 대충, 편하게 흘려 보낼 수도 있을 텐데 하고 말이다.

 

이 책은 페이지마다 글보다 여백이 더 많고, 전체 두께도 얇은 편인데 이상하게 여러 번 들춰서 계속 읽어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미 며칠 전에 다 읽어놓고, 오늘 또 뒤적거리다 눈에 들어온 페이지는 '우리 형'이라는 에피소드였다. 뭐 때문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사소한 일로 형이랑 다투고 난 뒤 형이 정말 너무 미워서 뒤통수만 봐도 짜증이 치밀고 소리만 들려도 부글부글 끓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화가 나서 머릿속으로 상상한 형의 행동 중에 실제로 형이 한 행동은 단 한가지도 없더란 말이다. 그는 생각한다. "내가 미워하는 누군가는 실재하는 누군가인지, 내 상상이 만들어낸 누군가인지" 말이다. 미움도,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가끔은 상대 그 자체보다 그를 사랑하는 내 마음 자체에 빠져서 내가 그를 사랑하는 구나 착각할 때가 있고, 가끔은 상대가 너무 미워서 그에 대한 감정을 자꾸만 키워나가 점점 더 관계가 멀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저자는 자신이 본래 화가 많은 편이라, 용기가 부족해 삼켰던 분노들을 글로 써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기백은 없고 불만만 많은 인간은 이렇게라도 살아야 한다고. 그래서 피해의식과 때때로 술기운까지 곁들여진 부끄러운 글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가. 정의롭고 도덕적인 판단으로 언제나 멋지게 자신의 소신껏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영화처럼 크레딧 오르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인생은 계속 되니 말이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책임 또한 고스란히 스스로 책임져야 하니 말이다. "오해들 하는데, 내가 겁이 많아서 참는 거지 착해서 참는 게 아니야." 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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