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성장의
종착점은 죽음이다. 료처럼
바보같이 우쭐대고, 아버지처럼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 쓰고, 그리고 미라이처럼 비참해지고, 그리고, 그리고
우리는 죽는 것이다. 반드시
죽는다.
우리는 죽기 위해 성장하는 것이다.
얼마나
잔인한가. 어째서 성장해야
하는가.
자그마한 온천 마을에 사는 11살 소년 사토시. 주민의 대부분이 온천 여관을 운영하는데,
사토시의 부모 역시 중하 정도의 규모인
아카쓰키칸이라는 여관을 운영 중이다. 마을에서 가장 큰 여관 집의 딸 마나는 가장 먼저 생리를 시작하는 등 여성적인 면모로 남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해왔는데, 어느 날
전학온 고즈에 덕분에 대번에 판도가 달라진다.
고즈에는 엄마와 함께 아카쓰키칸에 왔는데, 입주 종업원이 지내는 기숙사에서 지내게 된다. 고즈에는 마치 중학생 모델처럼 가느다란 다리를
가진 빼어난 미인이었기에, 순식간에 마나의 인기를 뛰어 넘는다.
사토시는 눈에 띄지 않는 걸 좋아하는 성격으로 존재감이 없는 편이었는데, 고즈에가 사토시네 집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의
주목을 받아 그의 일상이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이제 막 사춘기에 발을 들이게 된 사토시는 매일 우울하다.
자신의 몸이 조금씩 변화해가는 것도 징그럽게 느껴지고, 어른 남자가 된다는 것을 야만스럽다고 생각할 만큼
싫어한다. 여러 번 바람을
피우다 엄마에게 걸리고도 여전히 다른 여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아빠의 모습도 불결하고 저질로 느껴졌고, 마을에 자신이 되고 싶을 만큼 동경하는 어른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그딴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데, 자신의 의사와는 별개로 몸이 점점 변해 어른 남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싫었던 것이다. 게다가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체 왜 죽기 위해
성장 당해야 하느냐고, 그냥
앞으로 지금 이 모습으로 계속 있고 싶다고 말이다.
그런 사토시의 삶에 아름답지만 이상하고도 독특한 고즈에라는 소녀가
등장하면서, 조금씩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된다.
"사토시, 고마워."
그러고 나서 고즈에가 한 말을, 나는 한마디도 빠짐없이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나 있지,
눈이 있어서 좋아.
코가,
입이 있어서 좋아.
우리 별에서는 그런 거 필요
없었거든. 이미 영원히 살 수
있으니까, 바로 그 순간에
뭔가를 볼 필요가 없던 거지. 뭔가를 느끼지 않아도 됐던 거야."
고즈에라는 캐릭터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4차원 소녀이다.
빼어난 외모를 가졌지만,
모든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신기하게 바라보고, 뿌릴 수 있는 것은 뭐든 닥치는 대로 뿌리는 것을
좋아한다. 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아이였는데, 거기다
자신이 어떤 별에서 우주선을 타고 왔다고 말한다.
그녀의 함께 지내는 엄마는 생물학적 엄마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별에서 살던
생명체이며, 그 별에서는
누구나 나이가 들지 않고 언제까지나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무슨 어이없는 황당한 소리인가 싶다가도, 그녀의 말을 조금씩 듣고 있자면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아마도 우리 모두 고즈에처럼 11살이었던 순수한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온 우주인이라는 설정 때문에, 그녀가 겪게 되는 모든 일들과 만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 행동들이 그녀에게는 난생 처음 경험하는 신기한 일이라는 것이 고스란히
보여진다. 그런 그녀였기에
사토시가 거부하는 신체적인 성장과 낯선 어른의 세계 조차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너를 이루는
알갱이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이루고 있는 알갱이는 언젠가 모두 새롭게 교체되는 거지."
"교체돼?"
"지금의
너는, 완전히 새로운 너로
다시 태어나.
고즈에는 말한다. 자신이 뿌리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전부 떨어지기 때문에 멋진 거라고. 뭐든 영원히 계속된다면 멋지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영원히 계속되지 않으니까 멋진 거라는 그녀의 말은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매 순간이 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만든다.
지금 내가 무심코 흘려 보내는 이 시간도 역시 생애 단 한 번뿐이다. 그러니 아름다운 거고, 소중한 거라는 말이다. 사토시는 깨닫는다. 고즈에 덕분에 매일 일기를 써
나가면서, 하루하루를 살아
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는 것에 조용히 감동하게 된 것이다.
어제,
오늘,
내일..
하루도 놓치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날마다 변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나로 있다는 것이 기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11살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인데다, UFO, 우주인까지 등장하며 엉뚱한 판타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뭉클한 순간들이 많았다.
특히나 마음에 와 닿았던 장면은 누구나 거짓말쟁이로 취급하는 루이의 말을 곧 대로 믿은 건 바보처럼 보였던 도노 뿐이라는 것을
사토시가 알게 된 순간이었다. 도노는 누군가가 하는 말을 거짓말이라고 비난하거나,
어차피 거짓말일거라고 단정 짓지 않고, 그저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믿는다고 말한다. 사실 같은 건 전혀 상관
없다고, 그저 상대가 믿어
주길 바라면 믿는다고 말이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믿은 것이 거짓말이란 걸 알게 되면,
그때 비로소 제대로 상처입으면 된다는 거다. 믿은 게 거짓말이란 걸 알게 될까 봐 처음부터 믿지 않는 건
싫다고, 전부 믿고 나서
거짓말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그때 상처 입을 거라고 말하는 그의 어눌한 말이 심장에 콕 박히는 느낌이었다. 왜 우리는 그렇게 못할까. 왜 나는 그렇게 누군가를 무조건 믿어 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아마
다들 했을 것이다. 니시
가나코는 나오키 상을 수상했던 작품 <사라바>에서도 믿음에 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자신이 믿을 걸 누군가한테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무슨 일이든,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스스로를 믿으라고
말이다. <우주를 뿌리는
소녀>는 <사라바>에
비해서 분량도, 분위기도
가벼운 느낌이지만 조금 더 마음을 울리는 잔상을 남겨주는 것 같다.
아름답고,
뭉클하고,
따뜻한 이 작품은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우리에게도, 그리고 아직 어른이 되는 것이 두려운
소년, 소녀들에게도 멋진
선물이 되어 줄 것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