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린의 전쟁 같은 휴가
벤 파운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전 세계에서 이보다 큰 스포츠 대회는 없다. 브라보 대원들은 그 거품 낀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 그들은 이틀 후면 이라크에 재배치되어 남은 11개월의 복무를 마쳐야 하지만, 지금은 온갖 미국적인 것이 자궁처럼 안전하게 그들을 감싸고 있다. 풋볼, 추수감사절, 텔레비전, 여덟 종류는 되는 경찰과 보안요원, 그리고 3억 명의 호의적인 국민. 클리블랜드에서는 한 노인이 몸을 떨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들이 바로 미국이야.”

플러시천을 씌운 리무진 좌석에는 모두 열 명이 앉아 있었다. 브라보 분대의 남은 병사 여덟 명과 공보부에서 나온 호송관, 그리고 영화 제작자. 빌리와 브라보 분대의 병사들은 사방에서 폭탄이 터지고 적들이 아군을 쏘고, 그래서 무작정 싸워야만 했던 이라크 전투 영상으로 일약 국민적 스타가 되어 승전 여행 중이다. 그들은 곧 전설적인 텍사스 카우보이스 스타디움에서 하프타임 쇼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무려 데스티니스 차일드와 함께 말이다. 이야기는 그들이 경기 시작 두 시간 전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다시 전쟁터를 향해 스타디움을 떠나는 데서 끝이 난다. 그렇게 그곳에서 벌어지는 현재의 이야기들과 이 주라는 기간 동안 승전 여행을 다니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들, 각자의 고향집 방문과 전쟁이 벌어지던 순간의 과거가 교차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2004년 댈러스 카우보이스와 시카고 베어스의 풋볼 경기일에 데스티니스 차일드가 공연하고 군복 차림의 미군들이 행진하는 이벤트가 열렸다. 작가인 벤 파운틴은 그것을 보고는 그때 등장한 마르고 검게 그을린 군복 차림의 군인들과 사선을 넘나드는 전투 현장에 있던 그들이 광란의 한복판에 떨어진 그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상황에 대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전쟁을 한낱 오락거리로 소비하는 행태와 군인들이 느꼈을 혼란과 절망이 고스란히 담기게 된 것이다. "전쟁에 나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가끔은 전쟁이 필요하다는 걸 누구나 알지." 라는 극중 대사처럼 이것이 바로 미국의 실상이다. 이 작품은 여전히 전쟁의 광기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전쟁 강박을 여과없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영웅 대접을 받는 건 고달픈 일이며, 시민들과의 접점인 통로 쪽 좌석에 앉으면 그 고달픔은 배가된다. , 감사합니다. , 부인,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빌리는 브라보 대원들의 사인을 원하는 시민들이 내미는 팸플릿을 대원들에게 돌리고, 사인이 끝날 때까지 대화에 응해야 한다... 빌리는 단 한 번이라도 누가 자신을 아기 살인자라고 불러주길 바라지만, 사람들은 아기들이 살해되었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듯하다. 그들은 민주주의, 발전, 대량살상무기 이야기만 한다. 그들은 너무도 간절히 믿고 싶어하고, 빌리도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 그들은 산타클로스가 정말로 있다고 믿지 않으면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을 까봐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우기는 아이들처럼 열렬하다.

브라보 대원들은 이 주 동안의 승전 여행 동안 비행기와 자동차, 호텔방에서만 지내다 보니 운동할 시간이 없었고 몸도 마음도 풀어졌다. 따라서 그들은 나약해져서는 지치고 신경질적인 상태로, 그만큼 효율성이 떨어진 상태로 전쟁터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틀 후면 이 모든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을 영웅으로 치켜 세우며, 그들에게 열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이 없겠지만 말이다. 빌리는 대원 누구라도 아직 살아 있는 것이 그야말로 기적처럼 느껴진다. 모든 대원들이 간발의 차로 죽음을 피해온 것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전쟁이 진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건 바로 염병할 무작위성이다. 화장실에서 넷째 칸이 아닌 셋째 칸에 들어가거나 고개를 오른쪽이 아닌 왼쪽으로 돌리는 것 따위의 사소한 일에서 생과 사, 끔찍한 부상이 판가름 나기도 하는 것이 바로 전쟁터이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그곳으로 돌아가 다시 전투를 재개해야만 한다.

그들의 현실이 세상을 지배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목숨까지 구해주지는 못한다. 폭탄도 총알도 막아주지 못한다. 그들의 꿈을 산산조각 낼 전사자 수의 포화점이 존재할까, 빌리는 생각한다. 비현실이 얼마나 많은 현실을 취할 수 있을까?

미국인들은 날마다 정신적으로 힘겨운 전쟁을 겪는다. 빌리는 이곳에서 매일 사람들과 접촉할 때마다 전쟁의 열기를 느낀다. 하지만 그는 영웅적인 행위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저 그 행위가 그에게 왔을 뿐. 그리고 그는 그 행위가 다시 찾아오는 것이 두렵다. 빌리는 누나의 사고 이후 파혼한 비겁한 약혼자의 차를 파손시킨 일로 간신히 졸업장만 겨우 받고, 군에 입대했기에 열여덟 이라는 어린 나이에 군인이 되었다. 졸병 중의 졸병 보병대 이등병. 그런 그가 전쟁을 겪고, 승전 여행이라는 코미디 같은 상황을 겪으면서 바라보는 미국이란 어떤 모습일까. 그에게는 미국인들이 나이와 지위와 관계없이 모두 어린애로 보였다. 모두들 전쟁의 완전한 죄악에 대해서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작가는 극중 빌리의 입을 빌어 '미국인들은 성장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가고 가끔 죽기도 해야 하는 어린애'라고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안 감독의 연출로 작년에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로는 크게 성공을 하진 못한 것 같다. 국내에는 개봉하지도 못했고 말이다. 이 작품을 읽어 보니 왜 영화로는 크게 호응을 얻지 못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벤 파운틴이 정말 글을 잘 쓰는 작가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유머러스한 대화와 농담, 웃음 아래에는 자괴감과 비애를 보여주고, 전쟁을 강력히 옹호하면서 정작 자신은 참전을 기피하는 모습을 천역덕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전쟁과 엔터테인먼트가 뒤섞여 충돌하는 블랙코미디라니, 그 어떤 작가가 이런 글을 써낼까 싶을 정도로 '글의 힘'이 뚜렷한 작품이라는 얘기이다. 그러니 이 작품은 당연히 '소설'로 읽어야만 한다. 미국의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굉장히 미국적인 작품인데다, 전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 어느 정도 예상되는 지점이 분명이 있었는데, 실제 작품은 분명 그것을 넘어 선다. 문장은 아름답고, 예리하며, 어조는 거침없고, 신랄하다. 블랙 코미디의 정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