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
김나현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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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 두 사람은 내가 쓴 이야기를 실제 자기들 인생으로 살아내고 있는 거예요."

그것은 상식적인 생각이 아니었다. 왜 이런 시나리오 따위를 살아내는 건가? 자신의 멀쩡한 삶을 놔두고? 윤 감독은 거장 소리를 듣는 만큼이나 영화에 미쳐 있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예술가로서는 천재적이지만 평범한 생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기이한 생각에 시달리는 사람이지 않을까. 자신의 이야기에 갇혀버린? 그 순간, 윤 감독이 놓친 부분이 머릿속에 번쩍였다.             p.118~119


스물셋 나을은 7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한 신입 배우였다. 제작만 하면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은 물론 국제 영화제에도 자주 노미네이트되는 거장 감독의 신작에 주연으로 캐스팅된 후 나을은 줄곧 지상에서 한 발 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온라인 게시판에 학교폭력 고발 글을 올렸고, 신작의 제작 발표와 공개를 앞두고 민감한 시기였기에 수습을 해야 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글을 쓴 건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던 나을은 십년 전 앵두 머리끈을 하고 자신을 괴롭히던 한 아이를 기억해 낸다. 그리고 그 괴롭힘을 막아주었던 친구 시우를 떠올린다. 


그렇게 이야기는 나을이 열세살이던 시절로 간다. 아빠가 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사와 바람이 나서 엄마와 이혼을 한 뒤, 추잡한 소문이 동네에 퍼져 이사를 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6학년 새 학기가 되고, 나을의 아빠가 의사라는 이유로 이해할 수 없는 괴롭힘이 시작된다. 소문에 의하면 앵두라는 아이의 아빠가 의료 사고 피해자라고 하는데, 그 후 주변에서 부모가 의사인 아이만 마주치면 맹목적으로 괴롭혀왔다고 한다. 그리고 시우라는 전학생이 오고, 곧 앵두의 표적이 나을에게서 시우로 옮겨 간다. 하지만 시우는 나을과는 달리 당당하게 맞서는 아이였다. 엄마가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에 나을을 돌봐줄 선생님으로 한주 선생님이 집에 오는데, 시우와 함께 였다. 한주 선생님이 시우의 엄마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우와 나을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간다. 어느 날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 이후로 갑작스럽게 멀어지기 전까지는. 




그 어린 시절의 순수한 호의가 여태껏 자신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 우정이 모두 거짓에 토대를 둔 유령 같은 것이었는데도 나을은 그런 우정이라도 영원히 추억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으면 충분히 좋은 것이 아니냐고 했다. 나는 그 따뜻한 말을 수없이 돌이켜보면서 그런 말들이 정말로 내가 들은 것인가, 아니면 내가 바란 것을 그저 마음으로 그려낸 것인가 혼란스러워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주먹을 꼭 쥐고서 그것을, 나에게 온 행운을, 내 곁에 남아 있을 운명으로 빋어보고 싶었다.             p.228~229


나을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난 윤감독은 직접 그를 찾으러 가자는 제안을 한다. "나을 씨, 그 시우란 친구 말이에요. 혹시 내가 만나봐도 될까요?" 아무래도 확인할 게 있다는 감독의 수수께끼 같은 말은 그가 오래 전에 썼던 시나리오와 관련이 있었다. 시우와 한주가 윤감독이 무명 시절 썼다가 도둑맞은 시나리오 속 인물의 서사를 그대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한주, 이시우라는 이름부터 모든 것이 나을이 어린 시절 알고 있던 것과 똑같았다. 누군가 쓴 이야기를 실제 자기들 인생으로 살아내고 있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왜 멀쩡한 자신의 삶을 두고 허구의 이야기를 살아내야 하는 걸까. 대체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이야기는 나을의 스물셋 현재에서 시작해 나을의 열세살로 갔다가 서른셋의 하영, 마흔셋의 시우를 거치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오가며 펼쳐진다.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는 반전을 거듭하며 이야기는 각각의 인물이 살아낸 수많은 세계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미래의 내가 살았을지도 모를 세계가 무수한 가능성의 우주가 되어 펼쳐지는 것이다. 살면서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삶에 대해 가끔 상상해 보곤 한다. 그때 만약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의 이 삶은 없었을 것이다. 대신 다른 삶을 살았을 테고, 나는 얼마쯤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물론 정해진 운명같은 게 있다면 어떤 시간을 거치든 도달하는 곳은 비슷할 것이다. 그쪽의 나도, 지금의 나도, 어찌되었든 나 자신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가끔은 궁금해진다. 내가 다른 역할을 맡아서 살아가는 모습이, 새로운 세계 속에서의 경험이,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결말이.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책을 읽는다. 이야기의 우주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이 작품은 바로 그런 이들에게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다정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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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 하다 앤솔러지 2
김솔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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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정서가 저한테 하려던 말은 뭐였을까요?」

옥경 씨가 유나를 빤히 쳐다봤다. 유나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정서를 불러 줬으면 했다. 하지만 옥경 씨는 정서가 누구냐고 되묻지 않았다. 

「답으로 사는 게 아니야. 물음이 있어서 사는 거지.」

욕경 씨의 시선이 재봉틀로 돌아갔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구멍 나고 헤진 드래곤의 날개를 기웠다.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니까 계속 살아.」               - 김홍, '드래곤 세탁소' 중에서, p.8


유나는 관계가 소원해진 친구 정서와 오랜만에 만날 약속을 한다. 중학교때부터 평생을 알아온 정서는 매일같이 연락하고, 걱정하다, 미워하고, 그러다 처음부터 존재한 적 없었던 것처럼 살기 위해 노력했던 친구였다.  정서는 유나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고, 그들은 예전에 늘 만나던 카페에서 보기로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카페는 세탁소로 바뀌어 있었다.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유나는 그 앞에서 두 시간을 기다린다. 정서는 오지 않았고, 집에 돌아와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정서의 차가 가로수를 들이받았다고 했다. 정서는 약속 장소로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결국 유나는 정서가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영원히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유나는 정서를 걱정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게 되고 말았다. 


그날부터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 유나는 불면에 지쳐 밤거리를 쏘다니기 시작한다. 겨울의 막바지였고, 하루하루 날이 풀려 가더니 어느새 봄이 온다. 그날도 유나는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뿌리치고 계속 걷다가, 정서와의 마지막 약속 장소에 가보기로 한다. 늦게 도착한 정서가 그곳에서 여전히 유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정서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아 걸음이 빨라졌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드래곤 세탁소 앞에 도착한다. 세탁소는 비어 있었고, 희미한 형광등 불빛이 빼곡히 걸려 있는 옷들을 비추고 있었다. 유나의 목덜미에 찬바람이 쌩 불었고, 죽음을 이불처럼 두른 기분으로 세탁소 문을 연다. 그렇게 다림질을 하던 주인 아줌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를 얻어 마신다. 유나는 다음날도 세탁소를 찾아가고, 딱히 할 일이 없다는 그녀에게 주인 아줌마는 세탁소에서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한다. 여전히 죽은 친구가 자신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던 유나는 세탁소의 주인 아줌마와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몰랐던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조금씩 달라지는 새소리를 들으며 질문하지 않는다.

누구의 잘못인지 모른다.

용서하거나 이해할 수 있나?

그는 갑자기 쏟아지는 눈을 맞는다.

살릴 수 없었나?

그는 살아 있는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살았다.

묻는다.                   - 윤해서, '조건' 중에서, p.199


다섯 명의 소설가가 하나의 주제로 함께 글을 쓰는 열린 책들의 '하다 앤솔러지' 두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우리가 평소 하는 다섯 가지 행동 즉 걷다, 묻다, 보다, 듣다, 안다, 라는 동사를 테마로 진행되고 있다. 그 두 번째 책 <묻다>에는 김솔, 김홍, 박지영, 오한기, 윤해서 작가가 참여했다.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다섯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새롭게 해석한 <고도를 묻다>라는 작품은 희곡 형식으로 쓰여 있어 아무래도 가독성은 떨어졌지만 매우 흥미로웠다. 작가가 사뮈엘 베케트의 소설이나 연출가 고 임영웅 선생님의 연극에 깊이 감명받아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하는데, 고도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고도가 누구인지에 상관없이 어떻게 끊임없이 묻고 답할 것이냐,에 중점을 두고 풀어 나가는 이야기라 인상적이었다. 딸아이의 방과 후 교실 과제인 공포 동화 쓰기를 하는 소설가 아빠의 이야기를 그린 <방과 후 교실>은 아주 유쾌하게 읽었다. 실제로 오한기 작가가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딸이 자신의 작품을 읽고 질문을 하면서였다고 하는데,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다섯 편의 이야기 중에 김홍 작가의 <드래곤 세탁소>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원래 지으려던 이름이 <세탁소 더 드래곤>이라는 것부터 어딘가 귀엽고도 수상한 세탁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공간되고, 따뜻한 이야기였다. 세탁소의 이름에 관해서는 김홍 작가가 '뭔가 어긋난 듯한,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가게 이름을 상상'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설정이라고 한다. 김홍 작가의 작품은 이번에 만난 것이 처음인데, 다른 작품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시리즈는 반투명한 트레싱지로 옷을 입은 표지가 너무 예쁘고, 책배와 위, 아래에 프린트가 함께 되어 있어 책의 물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래서 시리즈별로 한 권씩 모으기 딱 좋다. 하다 앤솔러지 세 번째 작품 <보다>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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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보내는 마지막 신호들 30 - 중년 이후, 10년 더 건강하게 사는 확실한 방법
최석재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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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탈까, 계단을 이용할까?', '오늘 저녁은 치킨에 맥주 한잔할까, 건강한 식사를 할까?', '이번 주말에는 운동할까, 아니면 그냥 쉴까?' 이런 작은 선택들이 모여 생활 습관을 형성하고, 결국 나의 심장과 혈관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p.23


대한민국 대표 의료진이 펼치는 흥미로운 지식 체험, ‘인생백세’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이다.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전국 대학 각 분야 최고 교수진의 명강의를 책으로 옮긴 것이 '인생명강' 시리즈라면, '인생백세' 시리즈는 시리즈는 의학 지식들을 엄선해 백세시대를 위한 가장 실용적인 건강교양 콘텐츠를 제공한다.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쓴 다이어트 노하우,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알려주는 암을 예방하는 건강 습관,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가 쓴 자세교정 스트레칭과 운동법, 신경외과 전문의가 알려주는 자율신경 회복 솔루션에 이어 이번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들려주는 30가지 응급의학 설명서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음식과 생활습관 중에는 우리 몸에 해를 끼치는 것들이 많다. 저자는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잘못된 식습관과 생활 방식이 지속되어 생긴 질환으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을 매일 만나고 있다고 말한다. 편의점에서 사 먹는 빵과 커피, 급하게 해치우는 패스트푸드, 회식 자리에서의 과도한 고기와 술... 모두 응급실로 향하는 티켓과도 같다. 이 책은 심혈관 질환, 뇌혈관 질환, 만성 대사 질환, 그리고 암까지 점차 늘어 나고 있는 주요 질환들에 대한 원인과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렇게 심각한 질병들의 대부분이 우리의 식습관과 생활습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고칠 수 있는 방법 또한 우리의 일상 속에서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은 무엇을 어떻게 실천해야 몸의 악화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지, 이미 병이 시작된 몸이라 해도 어떻게 정상으로 되돌일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우리의 일상적인 선택과 습관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건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서 응급실에 오는 환자 중 상당수가 "평소에 건강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됐어요."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년, 때로는 수십 년에 걸쳐 조금씩 건강이 나빠지고 몸 곳곳이 변화하고 있었죠. 우리 몸이 조용히 그 변화를 견뎌내고 있었을 뿐입니다.            p.184~185


모든 죽음이 그러하겠지만 가장 허망한 것은 돌연사가 아닐까. 어떤 병의 징조도 없었고, 지병이 있었거나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돌연사의 주요 원인은 바로 심혈관 질환이다. 그런데 돌연사가 더 이상 노인들만의 이야기라는 사실,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다. 혈관 건강을 악화시키는 환경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매일의 사소한 작은 선택들이 심장 질환을 키우고, 혈관을 공격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심혈관 질환만큼이나 무서운 것은 뇌혈관 질환이다. 뇌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크게 두 가지 상황이 발생한다.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과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이다. 어느 쪽이든 골든타임을 놓치면 영구적인 장애가 남거나, 최악의 경우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질환의 전조증상과 위험한 신호를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과, 증상이 생겼을 때의 골든타임에 대해 알려 준다. 


심혈관 질환보다 무려 2.6배나 높은 수치로 사망하는 것이 바로 암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심혈관 질환이 사망 원인 1위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암이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저자는 암의 주요 원인에 대해서 짚어보고, 암을 부르는 습관과 그 증상에 관해, 그리고 사람들이 암에 관해 오해하는 것들에 대한 진실을 알려 준다. 만성 대사 질환이야말로 생활습관에서 비롯되는 질병이다. 특히나 대사 질환은 초기에 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과 같은 대사 질환은 초기에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된다. 그러니 만성 대사 질환은 우리 몸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 신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신호를 무시하고 계속 나쁜 생활습관을 유지한다는 건,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질환들을 내 몸에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피곤하다는 신호, 소화가 안 된다는 신호, 잠이 오지 않는다는 신호... 모두 우리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면, 지금보다 10년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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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인류
이상희 지음 / 김영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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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렇게 부실한 움직임에 인생을 맡겨야 한다니. 인간의 두 발 걷기는 치열한 자연의 삶에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거기다 그다지 빠르지도 않다. 빠르지도 않고 넘어질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데 심지어 두 발 걷기 외에 스스로 이동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 사실상 두 발 걷기가 인간의 이동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에게는 두 발 걷기 외에 이동할 다른 방법이 없다. 하늘을 날지도 못하고, 나무를 타기에도 엄지발가락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 맹수가 뒤쫓아 온다면 포기하는 편이 낫다. 아니, 고민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잡아먹힐 것이다. 자연에서라면 채 하루를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인류 계통은 이런 부실한 두 발 걷기로 수백만 년을 멸종하지 않고 살아왔다.              p.42~43


'대한민국 1호 고인류학자' 이상희 교수의 첫 번째 에세이집이다. 이상희 교수의 <인류의 기원>, <인류의 진화> 모두 인상깊게 읽었었는데, 처음으로 고인류학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해서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고인류학을 선택하게 된 계기부터 미국에서 교수로 임용되는 과정과 일반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쓰게 된 과정까지 여성이자 아시아인, 학자, 아내, 엄마 그리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수없이 다양한 정체성으로 살아온 저자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고인류학자는 수백만 년 전 인류의 화석화된 뼛조각과 유물을 통해 고인류가 남긴 흔적을 찾고 우리 조상의 삶을 추적하는 일을 한다. 인류의 기원과 진화 역사를 연구하는 고인류학자에게는 1만 년 전의 인류도 너무나 요즘 사람이다. 수백만 년, 적어도 수만 년 전의 인류는 되어야 전문적으로 다루는 분야가 되는 것이다. 작년 4월에 발행된 <사이언스>지의 표지 모델은 50세가 된 루시였다. 물론 여기서 루시는 50세가 아니라 330만 년 된 고인류 화석을 말한다. 화석 발견 50주년을 기념해 고인류 복원의 대가인 존 거치가 만들어낸 이미지는 어딘가 모르게 다른 모습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학계와 시대의 변화에 맞게 루시도 조금씩 변해갔으니 말이다. 50년이 지나 과학 잡지의 표지를 장식한 루시는 온몸의 털 사이로 크고 작은 근육을 드러내고, 두툼한 젖가슴 대신 탄탄한 가슴근육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으며,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불분명하게 묘사되엇다. 이는 수백만 년 전의 인류 조상이 남긴 화석을 보며 성별 고정관념을 덧씌우지 않는 성숙한 단계에 이른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고고학, 인류학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도 비교적 최근의 <루시>와 발견 당시의 <루시> 모습을 찾아 본 적이 있는데, 과학계의 생생한 현모습이자 진화 과정을 볼 수 있는 듯해서 아주 인상깊었던 대목이었다. 




먼저 습관의 힘을 빌렸다. 습관은 시간을 짜낼 수 있는 지름길이다. 무슨 일이든 머리를 거치면 일단 시간이 든다. 기억해서 생각한 다음 행동으로 옮기기보다 머리를 거치지 않고 행동으로 직행하는 쪽이 훨씬 빠르다. 기억으로 할 일을 습관화해서 시간을 모으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매일 똑같은 생활, 똑같은 루틴으로 뇌와 시간을 아껴두면 좀 더 재미난 일 혹은 중요한 일에 두 자원을 쓸 수 있다. 습관화는 그래서 중요하다. 무언가 선택해야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움직이도록 몸을 길들이면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뇌를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매일의 일과를 기록한 끝에 내게 가장 적합한 루틴을 만들어냈다.            p.132


과학으로서의 고인류학에 매료되었다는 저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본능적으로 강렬한 감정을 일으키는 인간의 해골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해골을 객관적인 수치로 환산해 통계학적인 추론 과정을 거치는 지점이 특히 좋아는데, 그 과정에서 해골을 향한 공포심과 혐오감은 사라지고 흥미로운 연구 과제만 남게 된다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저자가 극히 소심하고 겁이 많아 별일 아닌 것에도 자주 화들짝 놀라는 성격이라는 거다. 그러니 대학 시절 주검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게다가 인체해부학 실습을 들으며 주검과 함께하는 하루가 이어졌을 때는 단연코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대학과 대학원을 거치고, 박사 학위 논문 연구를 위해 클리블랜드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된 수천 점의 인골을 측정하러 매일 일골관에 드나들 때쯤이 되어서야 인골 따위를 아무렇지 않게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과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저자의 학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아 과학책이 아니라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대목들이 정말 많았다. 


저자는 이 책을 한 개인의 사사로운 이야기라고 시작했지만, 재미있는 것은 일상 속 에피소드들과 생각들이 모두 학자로서의 필터를 통과해 보여진다는 점이다. 병원에서 진료 중에 몽고점을 몰라 걱정하는 의사와의 에피소드를 통해 인종분류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걷다가 자주 넘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인류의 계통과 진화에 대해 생각한다. 우정과 사랑의 개념에 대해 사유하며 진화론과 사회생물학을 가져오고, 여성 연구자로서 고인류학이라는 과학을 하는 것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젠더와 고고학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식이다. 그야말로 삶과 학문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덕분에 너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고인류학이라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학문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편견과 오해들을 걷어내면서 학자로서 개척해 온 길을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친근한 책이다. 거대한 인류로부터 사소한 개인으로의 진화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인류학자의 일상 관찰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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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응전 - 기계·인터넷·AI, 기술 혁명에 응답한 인간의 전략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35
모종린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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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고민하게 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특히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등장은 인간 고유의 창조성과 자율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단순히 기술의 유용성이나 위험성을 논하는 차원을 넘어, 인간의 고유한 창조성과 자율성은 기술 발전 속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p.4


대한민국 대표 교수진이 펼치는 흥미로운 지식 체험, ‘인생명강’ 시리즈의 서른다섯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전국 대학 각 분야 최고 교수진의 명강의를 책으로 옮겨 다양한 분야의 지식 콘텐츠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나온 것은 '골목길 경제학자’로 널리 알려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의 AI 사회 리포트이다. 산업혁명에서 AI 혁명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를 돌아보며 새로운 기술에 '문화'라는 무기로 맞서온 '도전과 응전'의 순환사를 살펴본다. 그리고 AI 시대에 우리가 선택할 새로운 균형과 대응 전략을 제시해준다. 


인류는 19세기 산업 혁명 이후 세 차례의 중요한 기술 혁명을 경험했다. 기술은 인간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기술은 우리의 구원자인가, 파괴자인가. 기술 낙관론과 기술 비관론이라는 두 극단의 관점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인류는 '문화'라는 무기로 맞서왔다. 이 책은 19세기 미술공예 운동, 20세기 대항문화 운동, 현재의 크리에이터 문화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 '기술이 인간의 삶을 위협할지라도, 문화적 응전을 통해 기술을 인간화할 수 있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술과 인간이 만들어온 '도전과 응전'의 순환사를 천천히 되짚어 본다. 1760년도부터 2020년까지 산업 혁명 기술들을 정리하고 그에 대한 대안적 기술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도표로 보여줘서 좋았다. 1차 산업 혁명에 대응해 개인 창작 도구와 공예 디자인 기술을 발전시킨 미술 공예 운동이 있었고, 2차 산업 혁명에 대응해 개인용 디지털 도구와 오픈 소스 기술을 창출한 대응문화 운동이 있었다. 3차 산업 혁명에 대응해 크리에이터, 커먼즈 문화가 AI 협력 창작과 분산형 거버넌스, 공유 경제 기술을 발전시켰다. 




AI 시대를 맞아 우리는 역사상 세 번째 기술 혁명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기술의 미래는 결코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동일한 기술이라도 그것을 둘러싼 문화적 맥락과 사회적 선택에 따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AI가 인간을 대체하고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로 발전할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창조성과 자율성을 확장하는 도구가 될 것인지는 우리의 문화적 선택에 달려 있다... 이제 세 번째 응전을 완성할 때가 왔다. 우리 모두가 크리에이터가 되어, 기술을 인간화하는 새로운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자.               p.316~317


이제 AI와 더불어 사는 삶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AI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설 시점이 머지않았다고, 언젠가는 인간의 일자리를 로봇과 컴퓨터가 차지할 거라고 전망했던 미래가 현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AI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전문적인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는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AI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설 시점이 머지않았다고 불안해하지 말고, 지금이야말로 나자신을 이해하고 인간의 잠재력을 명징하게 바라봐야 한다. 19세기 미술 공예 운동이 산업 기술 속에서 인간성을 보여주고, 20세기 대항문화 운동이 기술의 양면성 속에서 다양한 대안을 찾아 기술의 인간화를 추구했듯이, AI 시대의 새로운 기술에 대해 우리는 또 다시 문화적 응전을 준비해야 한다. 기존에 있었던 세 번의 기술 혁명에 대한 문화 운동은 모두 기술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의미와 사용 방식을 재정의하는 것이었다. 즉 동일한 기술이라도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회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생성형 AI가 언론·예술·교육 현장을 바꾸고, 플랫폼 알고리즘이 여론과 소비를 좌우하는 현실 속에서 지금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기계는 노동을 대신하고, 인터넷과 SNS는 정체성과 욕망을 관리하며, 인공지능은 인간의 창조성·판단력마저 위협하고 있다. 모종린 교수는 두 번의 기술 혁명에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세 번째 순환의 문턱에 선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산업 혁명, 인터넷 혁명, 그리고 오늘의 AI 시대에 이르기까지 기술은 세상을 압도하는 힘으로 등장했지만, 인간은 굴복하지 않고 이 기술들을 ‘인간화’하려는 문화적 응전을 통해 기술을 위협에서 가능성으로 바꾸어 왔다. 기술과 문화를 통합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는데, 기계의 시대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창조적 대응이야말로 가장 시의적절한 인문학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Chat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기술은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고, 점점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기존 인간의 역할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 가고 있다. 과거의 기술이 주로 인간의 물리적 능력을 확장하거나 대체했다면 AI의 발전은 전혀 다른 차원의 도전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을 위협에서 가능성으로 바꾸어 주는 응전의 인문학을 통해 AI 시대를 살아갈 균형과 전략에 대해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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