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미야모토 테루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금 전 그 식당 주인을 <시부에 추사이>처럼 톺아보면 등장 인물이 수천 명에 이르리라. 특히 중요한 인물로만 범위를 좁혀도 수백 명. 주인의 남편, 아들, 딸, 친척, 친구, 또 그들의 가족..... 증조부, 증조모, 또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와 친구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공로와 죄과를 남겼는가.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 저 노부인이 '있다'. 나 같은 평범한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다. 여기 지금 마키노 고헤가 '있는' 것은 과거에 숱한 사람들과 그들이 살았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p.63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 받겠다고 마음 먹고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채 중화소바집을 운영해온 고헤는 결혼하고 삼십 년 동안 가게를 함께 꾸려온 아내와 갑작스레 사별하게 되자, 미련 없이 가게 문을 닫는다. 만사에 의욕을 잃은 채 장기 휴업중이던 어느 날, 읽기를 미뤄둔 두꺼운 책을 뒤적이다 아내에게 왔던 오래된 엽서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해변인 듯 보이는 손그림과 등대 순례를 다녀왔다는 몇 줄의 인사가 적혀 있다. 아내는 왜 엽서를 자신이 보관하지 않고, 고헤의 책에 끼워두었을까. 고민하던 차에 자신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었던 친구가 갑작스럽게 쓰러져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아내의 엽서와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고헤는 등대 여행을 떠나게 된다.

 

딱히 등대를 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은둔 생활을 벗어나 뭐라도 이유를 만들어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차와 버스를 타고, 때로는 렌터카를 운전해 등대를 찾아가는 여행은 그에게 일상의 소중함과 행복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어 준다. 등대가 비바람과 안개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도록 불빛을 비춰주는 것처럼 고헤의 삶에도 조용히 길을 내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등대 자체의 아름다움과 어딘지 외로워 보이는 고고한 자태에 마음을 빼앗겨 보기도 하고, 난생 처음으로 혼자 여행하는 즐거움도 배우고, 나고야에서 회사 생활을 하는 아들과 모처럼 동행하기도 하고, 지기지우인 오랜 친구의 십대 아들과 여정을 같이하기도 한다. 서른 살의 아내가 모르는 사람한테 엽서를 받았고, 그 후 30년이 지난 뒤 아내와 등대라는 막연한 두 가지만으로 시작한 여행에서 고헤는 아주 특별한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는 여유 없이 앞만 보며 달려온 지난 세월을 뒤로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주변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놀랄 만큼의 행복 따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람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소공자>를 처음 읽었던 스물일곱 살 때, 고헤는 그렇게 반박하고 싶었지만, 마흔을 넘길 즈음 과연 세상에는 놀랄 만큼의 행복이 널려 있는 걸 알게 됐다. 이를테면? 하고 물으면 설명하기 곤란할 정도로 숱한 행복이.         p.223

 

일본 서정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미야모토 테루는 <환상의 빛>, <금수>,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등의 작품으로 특유의 담백하고, 잔잔한 감성을 보여줬었다. 이번 작품에서도 서툴고 평범한 사람들의 선한 일상을 물 흐르듯이 유려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나 좋았던 것은 내 주변의 사람들, 그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떤 존재인지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었다. 아버지 덕분에 맛있는 중화소바 만드는 비법을 배웠고, 부지런한 아내 덕분에 힘든 줄 모르고 가게를 꾸려왔으며, 친구인 간짱이 독서를 권해주었던 덕분에 고등학교를 중퇴했지만 책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고헤는 깨닫는다. 여기 지금 내가 '있는'것은 과거의 숱한 사람들과 그들이 살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묵직하게 여운처럼 남았다.

 

미야모토 테루는 고헤의 여정을 통해서 매일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고 있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다정하고, 따뜻하게 말이다. 누구나 살면서 상실을 겪게 된다. 그럴 때 어두움 바다 위에서 고요하게 빛을 비추어주는 등대처럼 우리는 누군가에게, 혹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그러한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살면서 놀랄 만큼의 행복이 도처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누구의 인생에나 넉넉한 행복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잔잔하고, 아름답고, 기품있게 흘러가는 미야모토 테루의 선한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 옥타비아 버틀러의 우화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머니는 깨어 있을 때와 잠들었을 때를 가리지 않고 그런 꿈을 꿨다. 내가 아는 한 어머니는 지구종의 숙명을 창안하고 지구종 시를 쓸 때에도 바로 그 일을 했다. 꿈을 꿨던 것이다. 힘든 시절을 버텨내려면 누구나 꿈이, 환상이 필요하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현실과 혼동하지만 않으면 환상 자체는 조금도 해롭지 않다. 어머니는 가끔 스스로를 의심했던 것 같지만 그 꿈만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고, 지구종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p.82

 

옥타비아 버틀러의 '우화'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자 완결판이 드디어 나왔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로 시작하여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로 마무리되는 ‘우화’ 시리즈는 드넓은 우주를 열망하는 SF이자, 주인공 로런 오야 올라미나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이야기이며, 예리한 시선으로 몰락 직전의 세상을 그려낸 디스토피아 작품이다.

 

극심한 기후 변화와 잇따른 경제 위기로 황폐해진 2024년 미국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그려졌던 전작에서 로런은 장벽으로 둘러싸인 소도시 ‘로블리도’에 살고 있는 열다섯 살 소녀로 등장했다. 장벽 안에서 안주하려고 하는 사람들 속에서 로런은 홀로 변화를 꿈꾸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여성이고 흑인이며, ‘초공감증후군’이라는 일종의 장애를 가진 소수자이자 빈민인 로런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미친 세상에서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하지 않으면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고, 그것에 대비해왔다. 로런은 어린 흑인 여성이며, ‘초공감증후군’이라는 일종의 장애를 가진 소수자로 그려져 있다. 초공감증후군은 타인의 고통과 쾌락을 똑같이 느끼는 증상으로, 날이면 날마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세상에서는 그야말로 커다란 약점이다. 덕분에 바깥세상에서 생존하기는 더욱 힘들겠지만, 로런은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꿈꾸며 장벽 밖으로 나간다. 이야기의 후반부에 스물세 살이 된 로런은 스스로 창시한 새 신앙 ‘지구종’을 토대로 캘리포니아 주 북부에 평화로운 공동체를 일구었다. 하지만 소수자 탄압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고, 로런은 꿈의 결정체인 지구종을 무사히 지킬 수 있을까,에 대한 여운을 남기며 두 번째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다시 한 차례, 우리는 우리가 살던 집이 불타는 광경을 지켜봤다. 우리는 산속으로 들어갔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외부 출신 수감자들은 우리와 헤어져 다시 고속도로로 돌아가거나 가고 싶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높은 산 위에서, 우리는 잠시 아래를 내려다봤다. 일행들은 대부분 집이 불타는 광경을 전에도 본 적이 있었지만, 불을 지르는 쪽이 되기는 처음이었다. 다만 이번 불은 우리가 기억하는 것과 같은 파괴의 화신이 되기에는 너무 늦게 일어났다. 우리가 창조하고 사랑했던 것들은 일찌감치 파괴됐기 때문이었다.       p.459

 

로런은 집과 가족이 모조리 소멸된 참극에서 살아남은 후 자신이 창시한 새 신앙 ‘지구종’을 토대로 평화로운 공동체를 일구었다. 하지만 극단적 보수주의자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하나님의 은총으로 미국을 강한 크리스천 국가로 만들기 위한 박해의 표적이 된다. 로런의 공동체는 흑인 여성이 이끄는 비주류 종교 집단이라는 이유로 '사이비 종교 공동체'로 취급되어 습격 당하고, 노예가 되어 갖은 핍박을 당하게 된다.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는 전반부 '지구종'이라는 공동체가 비주류 집단에게 피신처를 제공하며 나름의 집단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과 공포와 억압을 수단으로 삼아 통치하는 대통령의 표적이 되어 노예로 지내며 갖은 고생을 하는 중반부, 그리고 그곳을 벗어나 여행을 하며 다시 사람들을 모으고 공동체를 일구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는 로런의 현실과 세월이 흐른 뒤 그녀의 딸이 어머니의 일기를 읽는 방식으로 교차 서술된다. 기존에 만났던 옥타비아 버틀러의 작품들이 초능력자를 흑인 노예에 빗대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역사를 폭로하고,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의 비극을 그려내고, SF라는 장르가 미래나 우주뿐 아니라 시간 그 자체에 대해, 공간에 대해, 역사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 풍성한 은유로 3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 넘는 현실성을 보여주는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를, 이 시간이 계속 되기를 바라며 아껴 읽게 된다는 점이 이 작품이 가진 큰 매력이다. 이것이 허구의 이야기임을, 작가가 그려낸 상상의 산물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스란히 그 모든 것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그려내고 있으니 말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인터뷰에서 이 작품에 대해 '우리가 살던 대로 계속 살아간다고 가정할 때 일어나지 않을 일은 단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 시리즈는 '현실에 없는 것을 상상해서 지어낸 공상 소설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슨 수를 내지 않고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현실이 되어버릴 이야기(역자)'였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꽤 섬뜩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가장 현실적인 디스토피아를 그려내고 있는 1300여 페이지의 밀도 높은 이야기를 만나 보자. 우리가 우화 시리즈에서 본 미래가 곧 현실이 되어 나타날 지도 모르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40만 부 기념 에디션) -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
이근후 지음, 김선경 엮음 / 갤리온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존 러스킨은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무엇으로 채워 가는 것이다. 하루하루 '깨끗한 새 정신'으로 살아야 좋은 인생을 살 수 있다. 65년 전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지금에야 그 뜻을 깨닫고 가슴에 새긴다. 늦었지만 기쁜 통찰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교장 선생님 흉내를 낸다. "오늘도 또 깨끗한 새 정신으로 하루를 살자." 내가 오늘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내 인생의 하루를 그것과 바꾸고 있으니까.           p.130~131

 

생물학적으로 늙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지만, 그 늙어 가는 모습은 모두 제각각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거라면,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 해보면 좋을 것 같다. 나이 든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 아니지만, 나이 들면서 좋은 일, 즐거운 일을 만들어 가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다. 10년 넘게 40만 부가 판매되며 나이 듦에 관한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책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가 10주년 특별 에디션으로 새롭게 나왔다. 새롭게 쓴 저자 서문과 엮은이와의 대담도 수록되어 있으니, 오래 전에 읽었더라도 다시 한번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를 돌보며 살아온 저자의 몸은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육체적으로 쇠약해졌다. 하지만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유쾌하기만 하다. 20년 전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지금은 오른쪽 눈도 희미한 실루엣만 보인다. 이 책을 처음 펴냈던 10년 전에 이미 당뇨, 고혈압, 통풍, 허리디스크 등 일곱 가지 병이 있었는데, 이제는 몇 가지 병이 추가되어 걸음은 더 느려지고 말도 어눌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다할 때까지 즐겁게 살고 싶다는 그의 삶을 대하는 태도는 씩씩하고 긍정적이다. 죽을 때까지 아프지 않고 살면 좋겠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병에 걸렸더라도 내 몸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면 된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명의보다 낫다고 말한다. 병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자는 것이다. 사실 병에 걸리면 건강관리를 제대로 못한 탓인 것 같아 원망하고 자책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당당하게 아파라'는 말을 듣고, 병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은 '여기here'와 '지금now'이다. 행복을 즐길 시간과 공간은 바로 지금, 여기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은 항상 다른 곳, 바깥에만 시선을 두고 불행해한다. 뇌 속에서 행복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물질은 엔도르핀이다. 엔도르핀은 과거의 행복한 기억, 미래에 다가올 행복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다. 지금 내가 즐거워야 엔도르핀이 형성된다. 사람이 어떻게 늘 행복하기만 하느냐고, 슬프고 괴로운 때도 있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는데, 그런 이분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괴롭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즐겁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좋든 나쁘든, 나에게 닥친 이 순간에 충실할 때만이 인생은 즐거워진다.          p.277~278

 

이 책에는 여전히 재미있게 살고자 하는 노학자가 평생을 지켜온 삶의 원칙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나이듦이 두려움보다는 즐거움으로 느껴지도록 일상의 소소한 재미부터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일흔 넘어 시작한 공부가 가장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76세의 나이로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학과를 졸업한 것이다. 당시 1125명의 졸업생 가운데 최고령자이자 문화학과 수석 졸업자였다고 한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대학 교수였고, 정년 퇴임을 하고 나서 다시 시작한 공부이니,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나이가 들어 몸은 늙어도 생각은 녹슬지 않는다는 것, 체력에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생각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쓸데없는 공부'에 대한 마인드도 공감이 되었다. 공부가 꼭 쓸 데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정신분석학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가설이 '정신결정론'이라고 한다. 그 어떤 행동에도 원인이 있다는 가설이다. 쉽게 말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이 말은 우연이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우니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모든 일은 천천히 차곡차곡 진행된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생각이 좋은 행동을, 좋은 삶을 이끈다는 것도 맞는 말일 것이다.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소망이라도 간직하고 바란다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킬 기운과 힘이 생긴다. 그러니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잡고 실천하면서 나는 잘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보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지금의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이 책을 통해 나이 듦의 지혜 53가지를 배워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퍼스 고스트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버지의 말처럼 남의 미래가 보인다는 건 '알고도 어쩔 수 없는' 일의 연속이라 작은 죄의식이 쌓이는 법이리라. '잘하면 내 특이한 체질로 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하고 그 제자 일로 우울함에 빠지기 시작했다. 다행이라고 할까, 아버지가 미리 조언해준 덕분에 잠시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며 약을 처방받아 많이 차도를 보았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씩 덮개가 벗겨져서 흘러나온 시커먼 죄의식이 머리와 가슴을 잠식한다.             p.76~77

 

중학교 교사인 단은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특별한 능력이 있다. 누군가의 비말을 통해 그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다. 미래의 한 장면은 10초 일 때도 있고, 3분 정도일 때도 있다. 그에게 비말을 옮긴, 누군가에게 바로 다음 날 일어날 일이 머릿속에 떠오르거나, 시야에 끼여 드는 식으로 보이는 것이다. 어느 날 단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자신의 반 학생인 사토미 다이치가 탄 기차가 탈선 사고에 휘말리는 장면이었고, 학생에게 그 사실을 알려 사고를 피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되고, 도무지 현실 같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단 선생님이 겪게 되는 현재 상황과 교차로 진행되는 것은 고양이를 학대하는 장면을 찍어 올린 사람과 그를 부추긴 시청자들을 찾아 심판하는 2인조, 러시안블루와 아메쇼의 이야기이다. 5년 전, SNS에 고양이를 학대하고 생방송으로 중계하던 '고양이 도살자'라는 이름의 계정이 있었다. 그 '고양이 도살자'의 시청자이자 후원자였던 이들을 자칭 '고양이를 지옥에 보내는 모임'이라고 불렀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비난하고 신고했으며 뉴스도 탔지만, 법적으로는 큰 죄가 되지 않았다. 범인은 징역 5년에 집행유예를 받았고, 후원자인 고지모에게는 죄를 물을 수도 없었다. 당시에 학대 당했던 고양이 주인에게 고용되어 대신 복수를 해주는 '고지모 사냥꾼'이 등장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사실 단 선생님의 반 학생 중 하나가 습작 소설로 써서 선생님께 읽어봐 달라고 준 원고이기도 한데, 일종의 극중극 개념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러시안블루는 어깨를 움츠렸다. "등장인물의 모델로서 권리를 주장하고 싶을 정도야. 미시마 유키오는 소송을 당했는데." 이 말은 물론 농담조였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되네요."
"제가 말했잖아요. 우리는 소설 속에 있는 거라니까요."
러시안블루는 한숨을 쉬었다. 아메쇼의 말도 신경에 거슬리거니와 단의 이야기도 어쩐지 미심쩍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찜찜한 예감밖에 들지 않았다.          p.276

 

만약 내가 아는 누군가의 선공개 영상을 봤는데, 뭔가 나쁜 일이 벌어지는 거였다면 상대에게 알려줘서 피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본 선공개 영상이 어디 사는 누구의 것인지 모른다면 어떨까. 언제 어디서 마주친 사람인지 알더라도, 대부분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테고 연락할 방법도 없을 것이다. 상대가 곤경에 처한다는 걸 알고도 돕기는커녕 충고조차 못한다면 그것 또한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단의 아버지 또한 그런 일들을 많이 겪어 왔기에 단에게 그런 상황에 대해 미리 말을 해왔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죄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력감이 계속 쌓인다고 할까 정신적으로 힘들어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어떻게도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걸 익혀둬야 한다고 충고했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단은 학생의 사고를 피하게 해준 일로 사토미 다이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선공개 영상을 보기 시작하는데, 화장실에 감금되어 있는 남자와 폭탄을 몸에 두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단은 과연 그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본격적인 문제는 납치당한 단 선생님이 소설 속 2인조 사냥꾼을 실제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진다. 재미있는 건 스스로 소설 속 등장 인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자신이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는 말을 2인조 중의 한 명인 아메쇼가 말한 적이 있다는 거다. 그러던 중 단 선생님이 낯선 사람들에게 납치가 되고 나서 갇혀 있다가 누군가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소설 속 두 남자였던 것이다. 처음 보는 남자 두 명이 자신들을 고지모 사냥꾼이라고 소개하는데, 단은 그들을 보며 저건 후토 마리코의 소설에 나오는 사람이라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마침내 내 머리가 이상해진 모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단의 설명을 듣고는 아메쇼는 역시 그랬구나, 라며 즐거워한다. 자신의 말대로 그들이 소설 속에 있는 거라고 말이다. 단은 자신이 소설 속에서 읽었던 내용과 2인조의 실제 행동과 비교해가며, 점점 더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속해 있던 현실을 벗어나면서 두 이야기가 교차하게 되고, 그 순간부터 또 다른 이야기가 탄생하기 시작한다.

 

이사카 고타로 스스로 '제 소설의 특징을 망라한 듯한 작품'이라고 말했듯이, 이 작품은 그의 특기를 망라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도 등장하는 위트와 유머,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와 문장들, 상상력이 빚어낸 개성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들까지 이사카 월드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니 말이다.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오직 이사카 고타로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재미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이 프럼 더 우즈 보이 프럼 더 우즈
할런 코벤 지음, 노진선 옮김 / 문학수첩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 그들은 벼랑 끝에 서있었다. 인류 역사상 무수한 남자가 여기서 미끄러져 피비린내 나는 폭력 속으로 추락했다. 와일드는 그들이 정말로 싸우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원래 벼랑 끝에선 까딱 잘못하면 떨어진다. 모든 변수를 고려해서 세운 계획도 틀어지기 마련이다. 인간은 악할 수도 있고, 선할 수도 있다. 그건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인간은 자신의 행동이 초래한 결과를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p.110~111

 

초등학교 때만 해도 나오미 파인은 행복한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심하게 아팠던 날 수업 시간에 교실에서 토한 뒤로, 나오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동급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전형적인 왕따가 된 나오미는 어딘가 만만해 보여서 괴롭혀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불러 일으켰다. 선생님들 역시 모두 알고 있었지만, 딱히 그녀를 보호하려고 하지 않았다. 모두들 괴롭힘에 무뎌져서 잘 알아차리지도 못하던 어느 날, 그저 견디기만 하던 나오미가 사라진다.

 

 

나오미와 같은 반인 매슈는 예전에 한 번 아이들이 나오미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나선 적이 있지만 끝이 좋지 않았다. 그 뒤로는 그저 바라볼 뿐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늘 나오미를 지켜봤다. 매일 저 고통을 어떻게 감당할까, 저러고 어떻게 살까 생각했지만 도와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나오미가 사라져버렸고, 나오미를 뮈애 무언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할머니 헤스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헤스터는 변호사이자 방송국의 법률 자문이었고, 자신만의 코너도 방송하는 유명인이었다. 자랄수록 죽은 아들을 닮아가는 손자를 위해 헤스터는 와일드를 찾아간다. 와일드는 죽은 아들의 단짝이자 아들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와일드는 30여 년 전 숲에서 발견된 야생 소년이었고, 헤스터는 어린 시절 그를 돌봐주었던 인연이 있다.

 

 

이제야 앞뒤가 맞아떨어졌다. 헤스터는 자신을 낙천주의자라고도 회의주의자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이 관계가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간밤에 그녀가 오렌과 함께 들어가 있었던 행복한 거품은 너무 약해서 터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 비극적인 밤에 오렌은 그 현장에 있었다. 좋든 싫든 오렌은 헤스터 인생의 최악의 순간과 얽혀있었다. 그 사실을 바꾸는 건 불가능했다.          p.384

 

이 작품은 '숲에서 버려진 야생 소년 발견'이라는 34년 전 신문 기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발견 당시 여섯 살에서 여덟 살 사이로 추정되었던 소년은 자신이 언제부터 숲에서 살았는지, 어쩌다 그곳에서 혼자 살게 되었는지, 부모나 다른 어른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물론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소년은 스타 변호사 헤스터와 훌륭한 위탁 가정의 돌봄 아래서 잘 자라 어른이 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은 와일드라는 별명으로 불리다 그게 이름이 되었고, 무엇이든 다 잘하는 천재였지만 어디서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육군 사관학교 졸업 후 특수 부대에 복무했고, 탐정 일도 잠깐 했지만 결국 '정상적인' 사회에 동화되려고 노력하는 시늉마저 그만둔다. 그리고 자신만의 요새를 지어 숲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헤스터 가족과는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며 왕래가 있었고, 매슈의 대부이기도 했다. 그래서 와일드는 매슈를 위해 나오미의 행방을 찾기 시작한다.

 

 

나오미와 단둘이 살고 있는 양아버지는 전혀 협조적이지 않고, 매슈도 뭔가를 숨기는 눈치에다, 괴롭힘을 주도한 부잣집 아들 크래시 메이너드도 수상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나오미의 실종은 자작극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나오미는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후 나오미의 학교생활은 열 배 더 힘든 지옥이 되었고, 일주일 뒤 그녀는 다시 사라진다. 다들 나오미가 가출했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나흘 뒤, 절단된 손가락 하나가 발견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바로 이제부터 시작된다. 10대 소녀의 실종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야기는 나라 전체를 뒤흔들 수도 있는 비밀을 가진 어른들의 문제로 번지고 할런 코벤 특유의 거듭되는 반전과 속도감있는 전개로 끝을 향해 달려간다.

 

이 작품은 할런 코벤의 새로운 시리즈 신작이다. 할런 코벤은 시리즈보다는 스탠드 얼론 작품이 더 많은 작가인데, '마이런 볼리타'시리즈 외에 아주 오랜만에 '와일드'라는 캐릭터로 <The Boy from the Woods>와 <The Match>라는 두 작품을 썼다. '보이 프럼 더 우즈'의 후속작도 곧 국내에 출간될 예정이다. 후속작에서는 와일드가 궁금해했던 그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할런 코벤표 롤러코스터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