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 옥타비아 버틀러의 우화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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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깨어 있을 때와 잠들었을 때를 가리지 않고 그런 꿈을 꿨다. 내가 아는 한 어머니는 지구종의 숙명을 창안하고 지구종 시를 쓸 때에도 바로 그 일을 했다. 꿈을 꿨던 것이다. 힘든 시절을 버텨내려면 누구나 꿈이, 환상이 필요하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현실과 혼동하지만 않으면 환상 자체는 조금도 해롭지 않다. 어머니는 가끔 스스로를 의심했던 것 같지만 그 꿈만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고, 지구종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p.82

 

옥타비아 버틀러의 '우화'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자 완결판이 드디어 나왔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로 시작하여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로 마무리되는 ‘우화’ 시리즈는 드넓은 우주를 열망하는 SF이자, 주인공 로런 오야 올라미나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이야기이며, 예리한 시선으로 몰락 직전의 세상을 그려낸 디스토피아 작품이다.

 

극심한 기후 변화와 잇따른 경제 위기로 황폐해진 2024년 미국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그려졌던 전작에서 로런은 장벽으로 둘러싸인 소도시 ‘로블리도’에 살고 있는 열다섯 살 소녀로 등장했다. 장벽 안에서 안주하려고 하는 사람들 속에서 로런은 홀로 변화를 꿈꾸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여성이고 흑인이며, ‘초공감증후군’이라는 일종의 장애를 가진 소수자이자 빈민인 로런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미친 세상에서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하지 않으면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고, 그것에 대비해왔다. 로런은 어린 흑인 여성이며, ‘초공감증후군’이라는 일종의 장애를 가진 소수자로 그려져 있다. 초공감증후군은 타인의 고통과 쾌락을 똑같이 느끼는 증상으로, 날이면 날마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세상에서는 그야말로 커다란 약점이다. 덕분에 바깥세상에서 생존하기는 더욱 힘들겠지만, 로런은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꿈꾸며 장벽 밖으로 나간다. 이야기의 후반부에 스물세 살이 된 로런은 스스로 창시한 새 신앙 ‘지구종’을 토대로 캘리포니아 주 북부에 평화로운 공동체를 일구었다. 하지만 소수자 탄압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고, 로런은 꿈의 결정체인 지구종을 무사히 지킬 수 있을까,에 대한 여운을 남기며 두 번째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다시 한 차례, 우리는 우리가 살던 집이 불타는 광경을 지켜봤다. 우리는 산속으로 들어갔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외부 출신 수감자들은 우리와 헤어져 다시 고속도로로 돌아가거나 가고 싶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높은 산 위에서, 우리는 잠시 아래를 내려다봤다. 일행들은 대부분 집이 불타는 광경을 전에도 본 적이 있었지만, 불을 지르는 쪽이 되기는 처음이었다. 다만 이번 불은 우리가 기억하는 것과 같은 파괴의 화신이 되기에는 너무 늦게 일어났다. 우리가 창조하고 사랑했던 것들은 일찌감치 파괴됐기 때문이었다.       p.459

 

로런은 집과 가족이 모조리 소멸된 참극에서 살아남은 후 자신이 창시한 새 신앙 ‘지구종’을 토대로 평화로운 공동체를 일구었다. 하지만 극단적 보수주의자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하나님의 은총으로 미국을 강한 크리스천 국가로 만들기 위한 박해의 표적이 된다. 로런의 공동체는 흑인 여성이 이끄는 비주류 종교 집단이라는 이유로 '사이비 종교 공동체'로 취급되어 습격 당하고, 노예가 되어 갖은 핍박을 당하게 된다.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는 전반부 '지구종'이라는 공동체가 비주류 집단에게 피신처를 제공하며 나름의 집단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과 공포와 억압을 수단으로 삼아 통치하는 대통령의 표적이 되어 노예로 지내며 갖은 고생을 하는 중반부, 그리고 그곳을 벗어나 여행을 하며 다시 사람들을 모으고 공동체를 일구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는 로런의 현실과 세월이 흐른 뒤 그녀의 딸이 어머니의 일기를 읽는 방식으로 교차 서술된다. 기존에 만났던 옥타비아 버틀러의 작품들이 초능력자를 흑인 노예에 빗대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역사를 폭로하고,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의 비극을 그려내고, SF라는 장르가 미래나 우주뿐 아니라 시간 그 자체에 대해, 공간에 대해, 역사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 풍성한 은유로 3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 넘는 현실성을 보여주는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를, 이 시간이 계속 되기를 바라며 아껴 읽게 된다는 점이 이 작품이 가진 큰 매력이다. 이것이 허구의 이야기임을, 작가가 그려낸 상상의 산물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스란히 그 모든 것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그려내고 있으니 말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인터뷰에서 이 작품에 대해 '우리가 살던 대로 계속 살아간다고 가정할 때 일어나지 않을 일은 단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 시리즈는 '현실에 없는 것을 상상해서 지어낸 공상 소설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슨 수를 내지 않고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현실이 되어버릴 이야기(역자)'였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꽤 섬뜩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가장 현실적인 디스토피아를 그려내고 있는 1300여 페이지의 밀도 높은 이야기를 만나 보자. 우리가 우화 시리즈에서 본 미래가 곧 현실이 되어 나타날 지도 모르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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