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스 고스트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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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말처럼 남의 미래가 보인다는 건 '알고도 어쩔 수 없는' 일의 연속이라 작은 죄의식이 쌓이는 법이리라. '잘하면 내 특이한 체질로 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하고 그 제자 일로 우울함에 빠지기 시작했다. 다행이라고 할까, 아버지가 미리 조언해준 덕분에 잠시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며 약을 처방받아 많이 차도를 보았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씩 덮개가 벗겨져서 흘러나온 시커먼 죄의식이 머리와 가슴을 잠식한다.             p.76~77

 

중학교 교사인 단은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특별한 능력이 있다. 누군가의 비말을 통해 그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다. 미래의 한 장면은 10초 일 때도 있고, 3분 정도일 때도 있다. 그에게 비말을 옮긴, 누군가에게 바로 다음 날 일어날 일이 머릿속에 떠오르거나, 시야에 끼여 드는 식으로 보이는 것이다. 어느 날 단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자신의 반 학생인 사토미 다이치가 탄 기차가 탈선 사고에 휘말리는 장면이었고, 학생에게 그 사실을 알려 사고를 피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되고, 도무지 현실 같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단 선생님이 겪게 되는 현재 상황과 교차로 진행되는 것은 고양이를 학대하는 장면을 찍어 올린 사람과 그를 부추긴 시청자들을 찾아 심판하는 2인조, 러시안블루와 아메쇼의 이야기이다. 5년 전, SNS에 고양이를 학대하고 생방송으로 중계하던 '고양이 도살자'라는 이름의 계정이 있었다. 그 '고양이 도살자'의 시청자이자 후원자였던 이들을 자칭 '고양이를 지옥에 보내는 모임'이라고 불렀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비난하고 신고했으며 뉴스도 탔지만, 법적으로는 큰 죄가 되지 않았다. 범인은 징역 5년에 집행유예를 받았고, 후원자인 고지모에게는 죄를 물을 수도 없었다. 당시에 학대 당했던 고양이 주인에게 고용되어 대신 복수를 해주는 '고지모 사냥꾼'이 등장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사실 단 선생님의 반 학생 중 하나가 습작 소설로 써서 선생님께 읽어봐 달라고 준 원고이기도 한데, 일종의 극중극 개념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러시안블루는 어깨를 움츠렸다. "등장인물의 모델로서 권리를 주장하고 싶을 정도야. 미시마 유키오는 소송을 당했는데." 이 말은 물론 농담조였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되네요."
"제가 말했잖아요. 우리는 소설 속에 있는 거라니까요."
러시안블루는 한숨을 쉬었다. 아메쇼의 말도 신경에 거슬리거니와 단의 이야기도 어쩐지 미심쩍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찜찜한 예감밖에 들지 않았다.          p.276

 

만약 내가 아는 누군가의 선공개 영상을 봤는데, 뭔가 나쁜 일이 벌어지는 거였다면 상대에게 알려줘서 피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본 선공개 영상이 어디 사는 누구의 것인지 모른다면 어떨까. 언제 어디서 마주친 사람인지 알더라도, 대부분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테고 연락할 방법도 없을 것이다. 상대가 곤경에 처한다는 걸 알고도 돕기는커녕 충고조차 못한다면 그것 또한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단의 아버지 또한 그런 일들을 많이 겪어 왔기에 단에게 그런 상황에 대해 미리 말을 해왔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죄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력감이 계속 쌓인다고 할까 정신적으로 힘들어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어떻게도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걸 익혀둬야 한다고 충고했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단은 학생의 사고를 피하게 해준 일로 사토미 다이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선공개 영상을 보기 시작하는데, 화장실에 감금되어 있는 남자와 폭탄을 몸에 두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단은 과연 그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본격적인 문제는 납치당한 단 선생님이 소설 속 2인조 사냥꾼을 실제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진다. 재미있는 건 스스로 소설 속 등장 인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자신이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는 말을 2인조 중의 한 명인 아메쇼가 말한 적이 있다는 거다. 그러던 중 단 선생님이 낯선 사람들에게 납치가 되고 나서 갇혀 있다가 누군가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소설 속 두 남자였던 것이다. 처음 보는 남자 두 명이 자신들을 고지모 사냥꾼이라고 소개하는데, 단은 그들을 보며 저건 후토 마리코의 소설에 나오는 사람이라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마침내 내 머리가 이상해진 모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단의 설명을 듣고는 아메쇼는 역시 그랬구나, 라며 즐거워한다. 자신의 말대로 그들이 소설 속에 있는 거라고 말이다. 단은 자신이 소설 속에서 읽었던 내용과 2인조의 실제 행동과 비교해가며, 점점 더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속해 있던 현실을 벗어나면서 두 이야기가 교차하게 되고, 그 순간부터 또 다른 이야기가 탄생하기 시작한다.

 

이사카 고타로 스스로 '제 소설의 특징을 망라한 듯한 작품'이라고 말했듯이, 이 작품은 그의 특기를 망라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도 등장하는 위트와 유머,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와 문장들, 상상력이 빚어낸 개성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들까지 이사카 월드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니 말이다.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오직 이사카 고타로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재미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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