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의 공식 - 첫눈에 독자를 홀리는 역대급 주인공 만들기 어차피 작품은 캐릭터다 2
사샤 블랙 지음, 정지현 옮김 / 윌북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히어로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주인공이라서가 아니다. 히어로는 작품의 얼굴 그 이상이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히어로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빌런이 이야기의 갈등이라면, 히어로는 이야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곧 ‘변화’다. 아무 소설이나 영화를 떠올려보자. 그것이 무엇이든, 전부 처음과 끝이 다를 것이다(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처음과 끝 사이의 변화하는 과정, 그것이 바로 이야기의 본질이다. 그리고 히어로는 그 변화를 겪는 인물이다. 제대로 그려내기만 한다면, 독자는 히어로와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p.16

 

이 책은 작가를 위한 사전 시리즈 저자인 안젤라 애커만이 극찬한 ‘어차피 작품은 캐릭터다’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빌런, 히어로, 사이드 캐릭터 편으로 나뉘어 출간이 되는데, 먼저 <빌런의 공식>과 <히어로의 공식>이 함께 출간되었고, 곧 <사이드 캐릭터의 공식>도 나올 예정이다. 첫 번째 책인 <빌런의 공식>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바로 두 번째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작법서가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기가 참 쉽지 않은데 말이다.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작가들의 글쓰기 선생님이기도 한 사샤 블랙은 정말 맛깔나게 글을 쓴다. 스스로 자신이 수준급의 블랙 유머를 구사하는 사람이라며, 작법서를 독파하며 유머 감각까지 체득할 수 있다니 일타쌍피가 아니냐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특히나 작가 역시 오랜 이야기 중독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어, 더욱 공감하며 읽게 되는 책이기도 했다. 좋아하던 소설이나 시리즈가 끝났을 때 상실감을 느껴본 적이 있다던가, 소설 속에 너무 깊이 빠져든 나머지 왜 내가 소설 속에 있을 수 없는 건지 속상하기도 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게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 중독자들을 구원할 히어로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니 정말 지루할 틈이 없는 작법서였다.

 

 

 

왜 히어로를 고문해야 할까? 사실성 때문이다.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소설에서도 원하는 것을 얻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유명한 자기계발서는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라고 하는데,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더 자주 목격하는 건 우주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우리를 시험하고 쓰러뜨리고 장애물을 던지는 상황이다. 따라서 작가는 히어로가 원하는 것을 얻기 전까지 그를 고문할 필요가 있다. 히어로를 괴롭히는 게 괴롭더라도, 주리를 틀고 몽둥이를 마구 휘둘러야 한다. 작가는 때로 무자비할 필요가 있다.         p.136

 

히어로라고 하면 보통 배트맨이나 블랙 위도우 같은 슈퍼히어로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히어로는 장르나 캐릭터의 특징과는 상관없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을 뜻한다. <빌런의 공식>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빌런이 이야기의 갈등이라면, 히어로는 이야기 그 자체'라는 말에 더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사실 히어로는 어느 정도 예측이 되는 지점이 많은, 뻔한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했었는데, 사샤 블랙은 히어로가 절대 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완벽한 캐릭터에겐 결함이 있다며 불완전함의 심리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캐릭터 아크를 완성하는 매우 중요한 장치로 '캐릭터가 믿는 거짓'에 대해 알려 주고, MBTI를 이용해 캐릭터의 성격 유형 만드는 것도 해본다. 그 외에도 동기에 디테일을 부여하는 법, 보글러의 이야기 구조 12단계, 캐릭터 아크의 네 가지 원칙, 갈등을 만드는 가장 간단한 방법, 매슬로의 욕구 5단계, 클리셰와 트롭 활용법, 캐릭터 업그레이드하는 법 등 다양한 정보들이 우리를 매력적인 히어로에게로 안내한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해당 내용에 대한 요약, '생각해볼 질문들'과 직접 써 볼 수 있는 연습 페이지가 수록되어 있다. 후반부에는 부록으로 캐릭터의 긍정적 특징과 부정적 특징, 영혼의 상처를 비롯해 다양한 목록을 실어 캐릭터를 만들어 나갈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직접 이야기를 쓰는 작가 혹은 지망생들에게는 정말 현실적인 팁들이 가득해 도움이 될 것 같고, 그저 영화나 소설 등 이야기를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대단히 흥미롭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 작품의 무대를 찢어놓을 히어로를 탄생시키는 비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서관은 살아 있다 온(on) 시리즈 2
도서관여행자 지음 / 마티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에 대한 책을 즐겨 읽는 내가 사서로서 공감하며 읽은 책이 있다.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다. 저자는 책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 <특성 없는 남자>에 사서로 등장하는 한 남자의 말을 인용한다. "훌륭한 사서가 되는 비결은 자신이 맡은 모든 책들에서 제목과 목차 외에는 절대 읽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야.... 책의 내용 속으로 코를 들이미는 자는 도서관에서 일하긴 글러먹은 사람이오! 그는 절대로 총체적 시각을 가질 수 없단 말입니다!" 그렇다. 나는 오직 훌륭한 사서가 되기 위해서 책 읽기를 스스로 자제하며 책의 내용 속으로 코를 들이밀지 않았다.        p.30~31

 

어린 시절 크고 웅장한 도서관 안으로 처음 들어갔던 그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미로처럼 빼곡한 서가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기억도 난다. 당시만 해도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쓰는 아이였으므로 원하는 책을 전부 사서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네에 있는 책 대여점에서 돈을 내고 빌려 보거나, 주말 아침 일찍부터 집에서는 꽤 먼 거리였던 도서관으로 향했다. 무슨 수험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침 일찍 도서관에 도착해 실컷 책을 쌓아두고 보다가 도서관 식당에 내려가서 아주 저렴한 가격이었던 우동을 먹고, 다시 열람실로 올라가서 어두워질 때까지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것은 도서관에만 가면 맡을 수 있었던 낡은 종이 냄새, 오래된 챔 냄새였다. 그 냄새를 맡으면서 책을 읽고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도서관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도서관에 관련된 책은 무조건 찾아서 읽는 편이다. 이 책은 트위터에서 도서관 애호가이자 비평가로 정평이 난 '도서관여행자'의 첫 책이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 도서관 사서로 근무한 저자는 도서관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는다. 사실 어릴 때는 도서관 사서가 꿈같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면 사서는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직업은 아니어서 실망했던 적이 있다. 사서는 책과 이용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 그러기 위해서는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책들을 직접 읽는 것보다 그 외의 일들을 더 많이 해야 하니 말이다.

 

 

 

여기서 잠깐, 퀴즈를 풀어보자. 다음 인물들의 공통점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데이비드 흄, 마르셀 프루스트, 비벌리 클리어리, 로라 부시, 노자, 카사노바. 정답은... 이들은 사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한때 사서였던 유명인이다. 처음 듣는 소리인 게 당연하다. 인간 사서는 명성을 떨치기가 어렵다. 부를 얻기도 힘들다. 도서관이 생긴 이래 사서여서 유명해진 인간은 없을 것이다. 반면 고양이 사서는 운이 좋으면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듀이가 대표적인 예다.          p.138

 

모든 세대와 계층이 이용하는 공공 도서관은 다채로운 활동이 펼쳐지는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열려 있는 곳,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환대하는 곳이다. 저자는 캘리포니아의 공공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동안 다양한 이용자들의 삶을 읽었다고 한다. 건물과 장서 중심의 정적인 도서관보다 시끄럽게 살아 있는 도서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그는 우리가 흔히 찾는 공공도서관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를 흘리고 가는지를 이 책에 담았다.

 

모든 에피소드들이 흥미로웠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장서폐기의 괴로움'이란 장이었다. 도서관에서는 장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평가해 불필요한 자료를 제거한다고 한다. 장서의 '보존'보다 장서의 '이용'에 무게를 두는 공공도서관에서는 입고된 책의 수만큼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을 처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책을 아끼는 사서가 누구보다도 책을 많이 버려야 한다니 아이러니 같지만,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책은 계속 새로 나오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폐기 위험에 처한 책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사서들의 이야기는 어딘가 뭉클했다. 한 도서관의 관장은 다른 이름으로 도서관 카드를 만들어 9개월 동안 무려 2361권의 책을 대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1년 이상 대출되지 않아 폐기 위험에 처한 책들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당신의 즐겨찾기에 담아야 할 디지털도서관 15곳, 당신의 여행 계획에 넣어야 할 도서관 여행지 48곳 등 알찬 정보들도 수록되어 있고, 후반부에 소개된 도서관여행자의 서재 리스트도 애서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소외된 책들을 독자에게 연결해주는 도서관, 진짜 살아 움직이는 도서관의 생생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빌런의 공식 - 욕하면서 끌리는 마성의 악당 만들기 어차피 작품은 캐릭터다 1
사샤 블랙 지음, 정지현 옮김 / 윌북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제는 그럴듯한 빌런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이 클리셰가 묻힌 지뢰밭을 헤쳐나가는 것과 같다는 점이다. 위험 지대라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게을렀다. 너무 오랫동안 히어로만 사랑하고 주인공에게만 집중한 결과, 빌런은 낡고 낡은 클리셰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이제 그러지 말아야 한다. 영웅은 엿이나 먹어라. 사악한 여왕이여, 만수무강하소서.            p.153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다크 나이트>의 조커,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피터 팬>의 후크 선장, <101마리 달마시안>의 크루엘라, <해리 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 등 잘 만든 빌런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주인공보다 빌런이 더 사랑받는 경우도 있고, 역대급 빌런으로 인해 주인공이 빛나는 경우도 많다. 모든 성공한 히어로 뒤에는 완벽한 빌런이 있다는 사실! 게다가 히어로는 멋있지만 대개 예측이 가능한데 비해, 사악한 눈빛을 반짝이는 빌런은 무슨 짓을 할지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해 더욱 매력적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마성의 빌런을 만들 수 있는 작법 13단계를 알려 준다.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작가들의 글쓰기 선생님이기도 한 사샤 블랙은 빌런이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 매력적인 빌런의 성격과 특성, 빌런의 심리와 캐릭터 아크, 빌런의 9가지 유형, 클리셰를 피하는 방법, 갈등과 클라이맥스 등 빌런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핵심 요소들을 단계별로 알려준다. 무엇보다 각종 영화와 소설 등의 친숙한 예시를 동원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어 여타의 딱딱한 작법서에 비해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직접 이야기를 쓰는 작가 혹은 지망생이라면 정말 현실적인 팁들이 가득해 도움이 될 것 같고, 단순히 영화나 소설 등 이야기를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대단히 흥미롭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빌런 캐릭터의 모든 것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

 

 

 

갈등은 모든 소설의 토대다. 갈등이 없는 소설은 저승사자가 와서 끌고 간다. 아무리 훌륭한 의사라도 그런 소설은 살려낼 수 없다. 심폐 소생술을 하고 아드레날린 주사를 놓아도 살아나기 힘들다. 갈등은 이야기의 산소이므로 갈등이 없는 소설은 꼼짝없이 저승행이다. 히어로 캐릭터를 아끼는 마음에 빌런, 안타고니스트, 갈등으로 히어로를 괴롭히기가 쉽지 않을 수 있지만,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한다.          p.205

 

이 책의 거의 모든 페이지에 밑줄을 긋고 싶을 만큼 빌런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데 필요한 사샤 블랙의 이야기는 예리하고, 공감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히어로에게 동기가 필요한 만큼 빌런에게도 동기가 필요하다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히어로의 동기는 거의 비슷하지만, 빌런의 목적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빌런에게 실질적인 동기가 있어야만 줄거리에 현실감이 생기고 갈고리처럼 독자들을 낚아채 끝까지 책을 읽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성 있는 빌런은 아무리 사악하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는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굳게 믿는 빌런일수록 더 무섭게 마련이다. 이렇듯 사샤 블랙은 정말 현실적이고, 사실처럼 느껴질 수 있는 빌런의 공식에 대해 알려 준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해당 내용에 대한 요약, '생각해볼 질문들'과 직접 써 볼 수 있는 연습 페이지가 수록되어 있다. 후반부에는 부록으로 분석해볼 만한 유명한 빌런들을 포함해 다양한 리스트를 담았다. 소설과 영화 속 빌런 목록, 반영웅 목록, 캐릭터 성격, 특징, 가치, 영혼의 상처를 리스트로 정리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은 작가를 위한 사전 시리즈 저자인 안젤라 애커만이 극찬한 ‘어차피 작품은 캐릭터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빌런, 히어로, 사이드 캐릭터 편으로 나뉘어 출간된다. 이번에 <빌런의 공식>과 <히어로의 공식>이 함께 출간되었고, 곧 <사이드 캐릭터의 공식>도 나올 예정이다. 이야기를 완성하는 숨은 동력,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서사와 주인공을 ‘제대로 굴려주는’ 빌런 만드는 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어드 - 인류의 역사와 뇌 구조까지 바꿔놓은 문화적 진화의 힘
조지프 헨릭 지음, 유강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확실히 이런 종류의 경쟁이 지난 1만 2,000년에 걸쳐 인간 사회의 규모 확대를 추동했지만, 그 중요성은 우리의 진화사에서 한참 전까지, 그러니까 농경의 기원 이전까지 확대될 수 있다. 이런 아주 오래된 경쟁의 성격과 정도에 관한 풍부한 통찰은 민족지학과 역사학을 통해 알려진 수렵채집인들에 대한 분석에서 나온다. 북극에서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세계 곳곳에서 수렵채집인 인구 집단들은 경쟁을 하며 제도외 기술을 가장 잘 결합한 집단이 확장하면서 효과가 떨어지는 문화적 요소를 지닌 집단을 점차 대체하거나 동화해왔다.      p.118

 

하버드대학교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인 조지프 헨릭은 오래 전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에서 심리학과와 경제학과에서 교수를 맡았을 당시, 사회심리학자와 함께 인간 심리 실험에 대한 연구를 모았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 심리 실험의 결과들이 대부분 서구 사회의 대상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서구의 표본은 대체로 한쪽 극단에 고정되어 있으며, 심리학적으로 이상하다(weird)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심리와 행동 실험에서 가장 흔히 활용되는 인구 집단에 'W.E.I.R.D.'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WEIRD(위어드)’는 서구의(Western), 교육 수준이 높고(Educated), 산업화된(Industrializ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인(Democratic)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이 책은 위어드(WEIRD)라는 5가지 키워드를 통해 인간의 심리와 사회의 진화론을 파헤친다. 최재천 교수는 이 책에 대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에드워드 윌슨의 <지구의 정복자>를 잇는 책이라고 극찬했다. 뿐만 아니라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 〈블룸버그〉 선정 최고의 논픽션, 〈뉴욕타임스〉 선정 주목할 만한 책 등의 타이틀을 거머쥐며 전 세계 출판계와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심리학자들은 대체로 미국인을 비롯한 WEIRD의 인성의 양상과 차원이 인간의 양상을 대표한다고 믿는다. 나는 이런 믿음이 틀렸다고 본다. 진화론적 접근에서는 개인과 인구 집단이 생애와 세대에 걸쳐 맞닥뜨리는 사회, 경제, 생태적 환경의 안정적이고 지속성 있는 영역에 (적어도 부분적으로) 자신의 성향을 적응시키거나 조정한다고 말한다. 발달 차원에서 볼 때, 우리는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마주치는 세계의 윤곽, 그 세계에서 주어지는 기회, 행동 유도성에 자신의 인성을 적응시킨다고 기대한다.           p.483

 

오늘날 국제 사회의 주류라고 여겨지는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가진 위어드(WEIRD)라는 집단은 대단히 개인주의적이고,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며, 통제 지향적이고, 일반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으며, 분석적이다. 그들은 자신의 믿음이나 관찰, 선호와 상충될 때면 좀처럼 남들에게 순응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내심이 많고 대개 부지런히 일하는 그들은 강한 자기규제를 통해 현재의 불편과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경제적 보상, 쾌락, 안전 등의) 만족을 미래로 유예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개인주의적이고 자기 집착적인 성향이 강하면서도 공평한 규칙이나 원칙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어, 정직하고 공정하고 협조적인 태도를 취한다. 물론 이는 심리학이라는 영역의 몇 가지 사례일 뿐이다. 이 책은 이들이 어떻게 그러한 독특한 심리를 갖게 된 것인지, 그들은 왜 다른 것인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따라 간다.

 

여러 가지 흥미로운 대목들이 많은 책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일부일처제의 심리학과 사회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챕터가 인상적이었다. 집단생활을 하는 영장류 가운데 어느 것도 일부일처혼에 해당하는 비문화적 짝 결속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일부일처제'가 상당히 독특한 제도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와 비교해서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중동의 많은 지역에서는 여전히 합법인 일부다처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일부다처제의 수학 문제, 결혼 제도가 남성 호르몬에 미치는 영향과 심리적 변화, 일부일처혼과 범죄율의 상관관계 등 읽을 거리가 많은 챕터였다. 책을 읽다 보니 왜 <총,균,쇠>, <사피엔스> 등에 비견되는지 알 것도 같았다.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해 인류학과 심리학, 경제학과 진화생물학의 첨단 연구를 넘나 들며 광대한 범위를 세부적으로 파고들고 있으니 말이다. 두툼한 두께의 벽돌책이 담고 있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 진화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락다운
피터 메이 지음, 고상숙 옮김 / 북레시피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니 도대체 뭐가 들어 있길래 그래요?" 현장감독은 초조한 듯이 물었다. 구덩이 안에서 남자가 조심스럽게 가방 안을 쳐다보며 말했다. "뼈예요." 숨죽여 말했지만 모두가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람 뼈."
"그게 사람 뼈란 걸 어떻게 알아요?" 사람들 무리 중 누군가가 물었다. 깜짝 놀랄 만큼 시끄러운 목소리였다.
"왜냐면, 지금 망할 두개골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거든." 그러면서 이 키 큰 남자는 자기의 두개골을 돌려 위쪽을 올려다보았는데 두개골 사이의 피부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듯했다. "그런데 어른의 뼈라기엔 너무 작은데. 이건 분명 어린아이의 뼈예요."           p.18

 

수도 전역에 봉쇄령이 떨어진 런던,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정부로부터 허가 받은 사람들 뿐이었다. 시대 곳곳에는 군대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었고, 총기를 든 군인들 외에 거리는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해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영국으로 들어오거나 영국을 나가는 것 모두가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바이러스가 영국을 벗어나 전 세계로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대중교통도 운행이 중지되었고, 공항은 무기한 폐쇄되었으며, 런던의 수도권 경제는 급락했다. 응급 의료 서비스는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선 상황, 임시 병원을 짓기 위한 건설 현장에서 사람 뼈가 든 가방이 발견된다.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린아이의 유골이었다.

 

런던 경찰청의 맥닐 형사는 마지막 근무를 채 몇 시간 남겨두지 않은 상태였다. 아내와 별거 중인 그는 여덟 살 아들 션을 위해 충분히 시간을 내지 못했던 지난 날을 만회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런데, 션이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학교도 전부 폐쇄되어서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일도 거의 없었고, 불과 일주일 전에 만났을 때만 해도 아무런 문제도, 어떤 증상도 없었는데 말이다. 감기처럼 시작된 증상은 순식간에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고, 아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맥닐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퇴직을 하루 앞둔 형사, 그의 앞에 놓인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살인 사건, 유골의 정체가 탄로 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킬러와 그의 배후, 팬데믹으로 인해 봉쇄되어버린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숨가쁘게 끝을 향해 달려 간다.

 

 

 

맥닐이 가는 곳마다 사람이 죽어 나갔다. 누군가 입을 막기 위해 사람들을 처단하고 있었다. 살인범의 조급한 마음이 맥닐한테까지 느껴졌고, 맥닐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는 자세한 이유도, 결과도 아무 것도 모르지만 시급을 다투어 이 일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직감했다... 아주 미미한 달빛의 흔적만이 구름 사이로 투과되어 나오고 있었다. 얼음장 같은 바람이 정원의 숨을 조르고 있는 죽은 잔디 사이로 바스락거리며 지나갔고, 사람의 손길이 끊겨 제멋대로 자란 관목을 흔들고 지나갔다.       p.261~262

 

배리상을 수상한 <블랙하우스>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피터 메이의 최신작이다. 사실 피터 메이는 조류독감이 팬데믹을 유발한다는 소설을 2005년에 이미 썼지만, 모든 출판사로부터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2020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팬데믹이 발생하고 나서야 그의 작품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영국의 편집장들은 런던이 일종의 보이지 않는 적인 바이러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는 상황이 비현실적이고,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 퍼진 코로나 바이러스는 실제 <락다운>에 묘사된 상황과 유사한 일들을 고스란히 재현해 내었으니 소름 끼치고,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팬데믹 상황에 대한 예측과 뛰어난 묘사 외에도 이 작품은 스릴러로서의 매력이 충분하다. 보통 유골이 발견이 될 경우 피해자는 죽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인 경우가 많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뼈만 남게 된 것이 아니라, 이 작품에서는 뼈에서 역한 냄새가 날 정도로 최근까지 살아 있었던 사람의 유골이 발견되었으니 말이다. 날카로운 절단 장비를 써 뼈에서 살가죽을 발라내고, 세척을 해서 매끈하고 깨끗하게 만들어진 뼈라니, 그 어떤 스릴러 작품에서도 만나기 쉽지 않은 것임에 분명하다. 뼈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퍼즐처럼 뼛조각을 맞추고, 전문지식과 상상을 토대로 얼굴을 복원해 내는 과정 또한 흥미진진하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팬데믹의 배후에 있는 음모 세력이 만들어 내는 서스펜스 또한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 주고 있다. 팬데믹으로부터 벗어나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루할 틈 없이 달려가는 서스펜스 스릴러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