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살아 있다 온(on) 시리즈 2
도서관여행자 지음 / 마티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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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책을 즐겨 읽는 내가 사서로서 공감하며 읽은 책이 있다.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다. 저자는 책에서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 <특성 없는 남자>에 사서로 등장하는 한 남자의 말을 인용한다. "훌륭한 사서가 되는 비결은 자신이 맡은 모든 책들에서 제목과 목차 외에는 절대 읽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야.... 책의 내용 속으로 코를 들이미는 자는 도서관에서 일하긴 글러먹은 사람이오! 그는 절대로 총체적 시각을 가질 수 없단 말입니다!" 그렇다. 나는 오직 훌륭한 사서가 되기 위해서 책 읽기를 스스로 자제하며 책의 내용 속으로 코를 들이밀지 않았다.        p.30~31

 

어린 시절 크고 웅장한 도서관 안으로 처음 들어갔던 그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미로처럼 빼곡한 서가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기억도 난다. 당시만 해도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쓰는 아이였으므로 원하는 책을 전부 사서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네에 있는 책 대여점에서 돈을 내고 빌려 보거나, 주말 아침 일찍부터 집에서는 꽤 먼 거리였던 도서관으로 향했다. 무슨 수험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침 일찍 도서관에 도착해 실컷 책을 쌓아두고 보다가 도서관 식당에 내려가서 아주 저렴한 가격이었던 우동을 먹고, 다시 열람실로 올라가서 어두워질 때까지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것은 도서관에만 가면 맡을 수 있었던 낡은 종이 냄새, 오래된 챔 냄새였다. 그 냄새를 맡으면서 책을 읽고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도서관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도서관에 관련된 책은 무조건 찾아서 읽는 편이다. 이 책은 트위터에서 도서관 애호가이자 비평가로 정평이 난 '도서관여행자'의 첫 책이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 도서관 사서로 근무한 저자는 도서관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는다. 사실 어릴 때는 도서관 사서가 꿈같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면 사서는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직업은 아니어서 실망했던 적이 있다. 사서는 책과 이용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 그러기 위해서는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책들을 직접 읽는 것보다 그 외의 일들을 더 많이 해야 하니 말이다.

 

 

 

여기서 잠깐, 퀴즈를 풀어보자. 다음 인물들의 공통점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데이비드 흄, 마르셀 프루스트, 비벌리 클리어리, 로라 부시, 노자, 카사노바. 정답은... 이들은 사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한때 사서였던 유명인이다. 처음 듣는 소리인 게 당연하다. 인간 사서는 명성을 떨치기가 어렵다. 부를 얻기도 힘들다. 도서관이 생긴 이래 사서여서 유명해진 인간은 없을 것이다. 반면 고양이 사서는 운이 좋으면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듀이가 대표적인 예다.          p.138

 

모든 세대와 계층이 이용하는 공공 도서관은 다채로운 활동이 펼쳐지는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열려 있는 곳,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환대하는 곳이다. 저자는 캘리포니아의 공공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동안 다양한 이용자들의 삶을 읽었다고 한다. 건물과 장서 중심의 정적인 도서관보다 시끄럽게 살아 있는 도서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그는 우리가 흔히 찾는 공공도서관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를 흘리고 가는지를 이 책에 담았다.

 

모든 에피소드들이 흥미로웠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장서폐기의 괴로움'이란 장이었다. 도서관에서는 장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평가해 불필요한 자료를 제거한다고 한다. 장서의 '보존'보다 장서의 '이용'에 무게를 두는 공공도서관에서는 입고된 책의 수만큼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을 처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책을 아끼는 사서가 누구보다도 책을 많이 버려야 한다니 아이러니 같지만,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책은 계속 새로 나오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폐기 위험에 처한 책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사서들의 이야기는 어딘가 뭉클했다. 한 도서관의 관장은 다른 이름으로 도서관 카드를 만들어 9개월 동안 무려 2361권의 책을 대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1년 이상 대출되지 않아 폐기 위험에 처한 책들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당신의 즐겨찾기에 담아야 할 디지털도서관 15곳, 당신의 여행 계획에 넣어야 할 도서관 여행지 48곳 등 알찬 정보들도 수록되어 있고, 후반부에 소개된 도서관여행자의 서재 리스트도 애서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소외된 책들을 독자에게 연결해주는 도서관, 진짜 살아 움직이는 도서관의 생생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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