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인사이드 - 감옥 안에서 열린 아주 특별한 철학 수업
앤디 웨스트 지음, 박설영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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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업을 시작한다. 내가 몇 분 동안 기억과 정체성에 대해 얘기한 뒤 묻는다. "만약 기억을 잃는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일까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나다워지는 것 같아요." 디타라는 여자가 말한다... "이곳에 오고부터 내가 점점 나다워지는 것처럼요." 그녀가 말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 이들 중 일부는 노숙자였거나, 열다섯에 부모가 됐거나, 성매매를 하고 포주에게 대금의 10퍼센트를 받았다.              p.215

 

철학이란 것이 난해하고 어려울 것 같고, 추상적이고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학문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편견을 사정없이 부숴주는 책이다. 철학은 애매모호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나 하는 학문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만 해도 감옥에서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철학 강의라니, 너무도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곳에는 글을 모르는 사람들, 학교를 못 마친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앤디 웨스트는 왜 철학이라는 건 뭐에 써먹는 거냐고, 그걸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이들을 붙들고 철학 수업을 하게 된 것일까. 그는 일반 강의실이 아닌 감옥에서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철학을 가르쳤다. 이 책은 감옥 안 철학 수업에 대한 기록이자, 감옥의 그늘에서 보낸 한 삶에 대한 회고록이다.

 

자유와는 가장 먼 장소인 감옥에 있는 이들에게 누가 가장 자유롭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니라고 증명할 방법이 있는지, 사람의 본성은 바뀌지 않을까? 진실은 항상 옳은 것일까?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같은 사람인지, 용서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감옥 안에서 열띤 토론이 이어진다. 평생을 감옥에 있어야 하는 이들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인지, 가해자에게 용서란 개념은 무엇인지, 중독에서 벗어난 이들에게 욕망이란 어떤 것일지... 어떤 질문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보다 막다른 벼랑 끝에서 훨씬 더 시급하고 절실하게 다가온다.

 

 

 

"어떻게 생각해요, 마틴? 우리의 현재 모습은 우리 책임일까요?"
내가 물었다.
"아니면 누구 책임인지 모르겠네요." 마틴이 말했다.
"니체에 따르면 도덕적 책임은 가혹하고 상상력이 부족한 개념이에요." 내가 말했다.
... "누구나 살면서 나쁜 짓을 하잖아요? 우리는 바깥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요." 키트가 말했다.          p.420~421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 중에 하나는 저자의 아버지, 삼촌, 그리고 형이 모두 감옥에서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덕분에 앤디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는데, 어른이 되어 철학 수업을 하기 위해 감옥에 찾아가는 지금도 여전히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언젠가 자신에게도 가족의 운명이 반복될 것을 두려워하며, 머릿속의 사형집행인과 부단히 싸우고 있다. 그렇게 앤디는 과거에서 현재로, 감옥의 방문객에서 감옥의 교사로, 가족들로부터 자신으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철학 수업을 이어나간다. 그의 수업을 듣는 재소자들은 (아마도 옷차림 때문에) 그를 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이성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고, 게이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교실 분위기가 너무 따뜻하고 너그러웠기 때문에 말이다. 학생들이 그를 게이라고 믿으면서 덜 위협적인 존재로 느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앤디의 철학 수업과 그의 개인사를 넘나 들면서 교차 진행된다. 서른하나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가족들로부터 죄를 물려받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들을 보며 그들이 받는 형벌이 내 것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일상이란 어떤 느낌일지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과 같은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감시할 사형집행인을 임명했고, 덕분에 감옥에 가지는 않았지만 자유를 얻지도 못했다고 말하는 그의 삶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해서 그 경계를 드나드는 순간들이 이 책에 눈을 뗄 수 없는 서사를 만들어 주고 있다. 살면서 한 번도 철학이 재미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철학이 이렇게 쉽고 재미날 수가 있다니, 감탄했다. 어려운 말 하나 없이도 철학이란 무엇인가, 한 방에 이해하도록 만들어 주는 책이라 웬만한 소설보다도 더 페이지가 술술 잘 넘어간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철학 수업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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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의 세이렌
커트 보니것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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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십만 년 동안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의 우주선과 화성의 전쟁 노력은 모두 UWTB, 즉 '무언가가 되려는 우주적 의지Universal Will to Become'로 알려진 현상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았다. UWTB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우주를 만들어내는 존재, 아무것도 아닌 것이 무언가가 되려 하도록 만드는 존재였다.
수많은 지구인들은 지구에 UWTB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p.178

 

커트 보니것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번에 신간 3종이 한꺼번에 출간되었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문학작품의 압도적으로 눈부신 시각적 번역작' 이라는 평을 받은 그래픽노블 버전의 <제5도살장>, 보니것이 소설가로서 은퇴를 선언하기 전 발표한 마지막 작품 <타임퀘이크>, 스페이스오페라 장르의 클래식이자 코믹-SF계의 원조인 보니것의 두번째 장편 <타이탄의 세이렌>, 이렇게 세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2003년에 <타이탄의 미녀>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가 절판 이후 세 배가 넘는 가격에 중고 거래가 되었던 <타이탄의 세이렌>이 기대가 되어 먼저 만나보았다.

 

서른한 살의 콘스턴스는 물려받은 재산만 30억 달러나 되는 젊은 부호이다. 사람들은 미국 최고 부자인 그를 인류 역사상 가장 운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당사자인 콘스턴스는 이 놀라운 행운의 이유에 대해 "저 위의 누군가가 날 좋아하나보죠."라고 말할 뿐이다. 그는 럼포드 부인의 초대를 받아 오십구 일에 한 번씩 자신의 개와 함께 물질화하는 윈스턴 나일스 럼포드의 저택에 간다. 럼포트는 토성의 위성 중 하나인 타이탄에서 콘스턴스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 콘스턴스는 타이탄에 가본 적도,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난 적도 없었다. 사실 럼포드는 특정 시간대의 관점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가 말한 것은 미래의 어느 순간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내와 콘스턴스가 화성에서 결혼하게 될 거라고 말한다. 화성인들은 인간을 가축 취급하며 교배시킨다고 말이다. 게다가 콘스턴트가 화성과 수성, 지구에 들른 뒤에 목적지인 타이탄에 가게 될 거라고 말한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경주에서 그가 짊어질 핸디캡이었다.
그는 48파운드를 짊어지고 다녔다. 기꺼이. 더 힘이 센 사람은 더 많은 무게를, 더 약한 사람은 더 적은 무게를 지고 다녔다. 레드와인의 신도 중 힘이 센 사람은 누구나 기꺼이 핸디캡을 받아들이고, 어디에나 그것을 자랑스럽게 차고 다녔다.
이제야 가장 나약하고 미약한 자들도 인생이라는 경주가 공정하다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p.288

 

콘스턴트는 자신이 왜 그곳으로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갈 생각도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얼마 뒤,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지구에서의 법적인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화성군 중령직을 제안 받아 화성으로 향하게 된다. 극중 화성에는 군사적이고 산업화된 사회가 자리잡고 있었고, 지구로부터 징집된 사람들과 비행접시를 타고 화성으로 이송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렇게 우주여행을 떠났다가 사고로 ‘크로노-신클래스틱 인펀디뷸럼’이라는 4차원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간 뒤,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에 걸쳐 존재하며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된 남자와 전혀 애쓰지 않고도 돈방석에 앉아 운명의 장난인 것만 같은 시련의 연속으로 재산도, 기억도, 가족도 잃어버리고는 행운이 와도 불행이 와도 그저 정해진 운명인 양 받아들이는 남자의 만남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삶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이 작품은 블랙 유머와 풍자의 대가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반전 작가인 커트 보니것의 두 번째 장편이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제3차대공황이 닥치기 전 어느 시점의 미래, 신우주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개인의 운명과 삶의 무의미함에 대해서 유쾌하게 노래한다. 워낙 엉뚱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스타일이라 다소 정신없지만, 보니것만의 시니컬한 위트를 좋아한다면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게다가 아폴로 11호가 최초로 달에 착륙했던 것이 1969년이고, 이 작품이 발표된 것이 1959년이니 인류가 지구 이외의 천체에 발을 내딛기도 전에 이렇게나 '우주적인' 소설을 쓴 보니것의 독창적이고 놀라운 상상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극중 시련의 연속으로 재산도, 기억도, 가족도 잃어버린 한 남자는 자신이 일련의 우연에 희생당한 사람이라고.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냐는 이야기를 한다. 정해진 운명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저 우연의 선택일 뿐이고, 아둥바둥 힘들게 뭔가를 이루려고 하지만 삶이란 우주만큼이나 무의미한 것이며, 세상에 절대적 진실이란 없다는 보니것식 농담이 여운처럼 길게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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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권을 이기는 초등 1문장 입체 독서법
김종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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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책을 너무 읽지 않아요. 읽어도 만화책이나 학습 만화만 읽고, 글자가 많은 책은 전혀 손을 대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 대부분의 부모가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 사실 독서란 매우 하기 힘든 고난이도의 지적 행위다. 그 가치는 모두 알고 있지만, 실제로 해내기는 매우 힘들다. 무엇보다 독서에 전혀 의욕이 없는 아이들을 독서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독서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p.21~22

 

집 안 환경을 도서관처럼 꾸며주고, 아이가 흥미를 느낄만한 책들을 쥐어주고, 부모가 종일 옆에서 책을 읽고 있어도 사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책을 읽기 싫어하는 아이가 참 많다. 그렇다면 책을 읽지 않는 아이를 독서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의 말>,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 시리즈 등으로 새로운 교육 인사이트를 제공해온 김종원 작가는 “많이, 빨리 읽지 마라. 단 한 줄을 읽어도 천천히, 입체적으로 읽어라”라고 말한다. 그가 지난 20년간 연구해온 문해력 향상 프로그램을 집대성한 이 책은 한 문장 읽기만으로 100권 이상의 효과를 거두는 ‘1문장 입체 독서법’을 제안하는 독서 교육서이다.

 

사실 책을 많이 읽더라도 '읽긴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자주 들어봤을 것이다. 열심히 밑줄을 긋고 책장 모서리를 접어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우리는 왜 읽고도 이해하지 못하고, 같은 글을 다르게 이해하는 걸까. '초기 문해력'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이 높아진 요즘, <100권을 이기는 초등 1문장 입체 독서법>은 정말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그저 '읽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단어 하나, 문장 한 줄만으로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활동을 끌어내는 입체적 독서 활동이라 문해력 향상에 아주 도움이 될 것 같다.

 

 

 

왜 자꾸만 권수에 집착하는가? 왜 한 권의 책을 백 번 읽지 않고, 백 권의 책을 한 번 읽기에만 집착하는가?
100개의 직업에 대한 소개를 들었다고 해서 우리가 100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지 않는 것처럼, 권수에만 집착하면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게 된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글도 백 번 반복해서 읽으면 누구나 결국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이해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바로 독서하는 사람의 마음이어야 한다.            p.93

 

빠르게 책을 다 읽었다는 속도와 결과에 신경을 쓰지 말고, 책을 읽고 느낀 부분을 빠르게 답하지 못한다고 비판하지 말고, 읽는 속도가 느리다고 진정성을 의심하면 안된다는 대목에서 속이 뜨끔한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느낀 점을 말로는 하지만 글로는 쓰지 못한다고 글쓰기 능력이 없다고 속단하면 안되고, 다른 아이들은 쉽게 읽고 이해하는 책을 우리 아이만 읽지 못한다고 해서 아이의 독서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대목도 그렇다. 무엇보다 '많이 읽으라'는 것이 많은 책을 읽으라는 것도, 다양한 영역의 책을 읽으라는 말도 아니라는 것, 하나의 책과 하나의 문장을 반복해서 읽으라는 뜻이라는 저자의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세상 모든 부모들이 궁금해할 '아이들은 왜 책 읽는 것을 싫어할까?'에 대한 솔직한 답이 '책은 원래 읽기 힘든 것이다.'라는 점만 깨닫게 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거기서부터 내 아이를 위한 제대로 된 독서 교육을 시작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다독과 속독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독서 교육이라는 점과 책의 내용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재미있는 독후 활동이 있다는 점, 그리고 창의력, 융합적 사고력을 함께 키워주는 독서법을 알려주고 있어 문해력 뿐만 아니라 논술 수업에도 대비가 가능할 것 같다. 읽은 것이 그대로 뇌에 새겨지는 '1문장 입체 독서법'의 기적이 궁금하다면, 공부에 필요한 힘인 문해력 코칭 프로그램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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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이 되는 세상 - 시작하는 작가를 위한 세계관 설정 노트 내가 신이 되는 세상 1
도리이 아야네 지음, 최서희 옮김, 에노모토 아키 감수 / 영진.com(영진닷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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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탄탄한 세계관 설정이다. 책을 읽는 독자들 모두 이 이야기가 만들어진 가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 인물과 함께 모험하고, 감동하게 되는 것은 바로 진짜 현실처럼 생생한 세계관 구축에서 온다. 이는 만화, 게임, 소설, 드라마, 영화 등 모든 장르에서 마찬가지이다.

 

 

이야기를 만들 때는 캐릭터, 스토리, 세계관이라는 세 개의 기둥이 필요하다. 특히나 세계관은 그럴듯하게 설정이 된다면, 이야기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기둥이다. 역사, 문화, 종교, 계급, 지형, 기후, 경제, 음식 등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이야기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설정이라도 그곳은 캐릭터가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하나의 세계관을 창작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모순 없이, 진짜처럼 말이 되도록, 생각하는 방안에 대해 설명해준다.

 

 

세계는, 나라는, 마을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발전해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알아보고, 사람들이 어떤 문화를 이루고, 어떤 종교를 믿는지, 국가의 형태는 어떠하고, 계급과 신분제도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하나씩 살펴본다. 특히나 계급은 실전 부대의 조직 단위와 유럽의 귀족 작위, 현대의 일반 기업의 서열에 이르기까지 디테일하게 도표로 정리되어 있어 활용하기에 좋다.

 

캐릭터가 살아가는 지형은 어떤지, 기후는 어떤지, 그리고 설정된 시대에 맞는 음식과 경제와 기술, 국가에 대해서도 정리하고 있다. 특히나 판타지 세상을 만들 때는 기술이 어떻게, 어디까지 발전했느냐에 따라 시대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이다. 내가 만든 세계에서 과학이 어디까지 발달해 있느냐에 따라 캐릭터들의 생각이나 가치관도 달라지니, 이야기를 창작할 때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존재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세상을 구축하고, 내가 신이 되어보는 경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법을 사용해도 되고,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환상적인 존재를 등장시켜도 된다. 물론 그럼에도 지금까지 역사나 과학적으로 모순이 없도록 다방면으로 생각하면서 만들어야 하지만 말이다. 존재하지 않는 생물인 드래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인 요정과 유령, 몬스터 등 초현실적인 존재들에게 현실성을 부여해서 겉돌지 않도록 만들어야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이 그들 캐릭터에게 감정을 이입시킬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요소를 넣더라도 '세계 전체에 얼마나 알려져 있고, 얼마나 녹아들어 있는가?'이다. 이런 작은 부분들을 소홀히 하면 세계 전체가 흔들리게 되니 주의해야 한다.

 

 

자, 세계의 요소에 관해 디테일하게 정리를 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캐릭터들을 그 세계 속으로 뛰어들게 만들어야 한다. 이 책에는 실제 작품 만들기에 돌입해볼 수 있도록 순서대로 상상할 수 있는 5개의 템플릿이 제공된다. 이세계 판타지, 근미래 판타지, 현대 판타지, 원미래 판타지, 학원도시 판타지, 이렇게 5가지로 구성된 세계관 창작 노트이다. 마법, 초능력 등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등장시킬 수 있는 이세계, 현대를 기반으로 하지만 지금은 실편 불가능한 기술을 포함하기 가장 적합한 근미래, 우리가 사는 세계와 거의 다르지 않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현대 판타지, 수천 년, 나아가서 더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원미래, 그리고 아이들이 통치하는 아이들만의 사회인 학원도시 판타지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문가의 5개 템플릿 샘플을 제공해서 내가 만든 것과 비교도 해보고, 실제 프로들은 어떻게 만드는 지도 배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알려주는 내용을 따라가며 노트에 적기만 해도 세계관이 창조되는 마법의 가이드북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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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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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싼 산의 나무들은 하루하루 색이 바뀌고, 낮 시간은 눈에 띌 정도로 점점 짧아져 갔다.
나는 새로 열 식당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한편으로는 난생처음 보는 것 같은 신비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을 되찾을 수 있는 비밀 동굴 같은 장소.          p.67

 

조용한 산골 마을에 위치한 달팽이 식당은 손님을 하루에 한 팀만 받는다. 전날까지 손님과 대화를 주고받아 무엇이 먹고 싶은지, 가족 구성과 예산 등은 어떤지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그날의 메뉴가 정해진다. 달팽이 식당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음식을 맛보게 하는 것이 요리의 목적이다. 식당 주변에는 계단식 논과 소와 양이 있는 광대한 목장, 그리고 포도밭과 과수원, 허브 밭도 있어 좋은 식재료를 구하기에 너무 좋은 곳이다. 갓이 열리기 전에 딴 훌륭한 송이버섯, 숲에 벌레 먹어서 떨어진 나무 열매로 만든 증류주, 계절 야채로 만든 수프 등 정해진 메뉴 없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요리들에는 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

 

식당을 운영하는 여주인공 링고는 도시에서 열심히 일하며 돈을 모았지만, 남자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한 푼도 없는 상태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 것뿐만 아니라 가재도구도, 조리 기구도, 돈도, 갖고 있던 것은 모두 잃어버려 완전히 빈털털이가 되어 버린 채로 말이다.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온갖 가재도구들과 모아둔 돈까지 모조리 사라진 텅 빈 집을 보면서 링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삼 년 치의 추억과 귀중한 재산들을 잃어버린 절망에 링고는 어느 순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조금 놀랐지만 슬프지는 않았다고, 담담한 태도로 그녀는 심야 고속버스를 탄다.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도저히 진심으로 좋아할 수가 없었던' 엄마 곁으로 향한다. 그곳은 엄마가 딸보다 더 애지중지하는 돼지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링고의 어린 시절 기억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엄마의 집 창고를 빌려 작은 식당을 열게 된 것이다. 요리라면 링고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자신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겨울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마법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십이월의 어느 아침, 커튼을 걷자 세상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창밖은 끝없이 이어지는 우윳빛. 마치 엄청난 양의 머랭을 폭신폭신하게 씌운 듯했다. 화려한 코트를 걸친 첩할머니의 어깨에도 새하얀 가루눈이 쌓였을 것이다.            p.168

 

 

삶의 절벽 끝에 도달했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링고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도 어쩐지 가까워질 수 없었던 엄마 곁에서, 간절히 바랬던 오랜 꿈이자 로망이었던 식당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조용한 산속 마을에서 링고는 자신에게 주어진 매일을 감사하며, 작은 순간에도 행복을 느끼며 식당을 운영해 나간다. 먹는 이의 마음을 생각하며 온 정성을 다해 요리를 하다 보니, 저마다의 상처를 지닌 손님들은 달팽이 식당의 특별한 요리를 먹고 나서 작은 변화들을 겪게 된다. 그리고 점점 달팽이 식당의 요리를 먹으면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퍼지게 된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하는 내내 너무 행복해서 가슴이 메어 온다고 생각하는 요리사의 음식이라면 상처를 치유하고, 마법 같은 기적을 일으킨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식당이 정말 현실에 존재한다면,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작품은 <라이온의 간식>, <츠바키 문구점> 등 국내에도 많은 작품이 소개되어 있는 오가와 이토의 데뷔작이다. 국내에는 2010년에 출간되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고 개정판이 나왔다. 아름다운 손편지로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가슴 뭉클한 기적을 보여줬던 <츠바키 문구점>,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소한 음식들이 풍요로운 힐링을 전해줬던 <양식당 오가와>, 경건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동화 같은 소박한 이야기 <마리카의 장갑>, 결코 과하지 않게, 적절한 감정선을 유지하면서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는 기분이 들게 했던 <라이온의 간식> 등 오가와 이토의 소설들은 매번 섬세하고 따뜻했다. 평범한 일상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내는 보통날의 기적을 보여주는 이야기말로 오가와 이토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점이 아닐까 싶다. 전세계 100만 독자를 사로잡은 일본 힐링 소설의 원조, 오가와 이토의 눈부신 데뷔작을 만나 보자. 달팽이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고단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근사한 요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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