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라이프 인사이드 - 감옥 안에서 열린 아주 특별한 철학 수업
앤디 웨스트 지음, 박설영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1월
평점 :
나는 수업을 시작한다. 내가 몇 분 동안 기억과 정체성에 대해 얘기한 뒤 묻는다. "만약 기억을 잃는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일까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나다워지는 것 같아요." 디타라는 여자가 말한다... "이곳에 오고부터 내가 점점 나다워지는 것처럼요." 그녀가 말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 이들 중 일부는 노숙자였거나, 열다섯에 부모가 됐거나, 성매매를 하고 포주에게 대금의 10퍼센트를 받았다. p.215
철학이란 것이 난해하고 어려울 것 같고, 추상적이고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학문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편견을 사정없이 부숴주는 책이다. 철학은 애매모호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나 하는 학문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만 해도 감옥에서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철학 강의라니, 너무도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곳에는 글을 모르는 사람들, 학교를 못 마친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앤디 웨스트는 왜 철학이라는 건 뭐에 써먹는 거냐고, 그걸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이들을 붙들고 철학 수업을 하게 된 것일까. 그는 일반 강의실이 아닌 감옥에서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철학을 가르쳤다. 이 책은 감옥 안 철학 수업에 대한 기록이자, 감옥의 그늘에서 보낸 한 삶에 대한 회고록이다.
자유와는 가장 먼 장소인 감옥에 있는 이들에게 누가 가장 자유롭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니라고 증명할 방법이 있는지, 사람의 본성은 바뀌지 않을까? 진실은 항상 옳은 것일까?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같은 사람인지, 용서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감옥 안에서 열띤 토론이 이어진다. 평생을 감옥에 있어야 하는 이들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인지, 가해자에게 용서란 개념은 무엇인지, 중독에서 벗어난 이들에게 욕망이란 어떤 것일지... 어떤 질문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보다 막다른 벼랑 끝에서 훨씬 더 시급하고 절실하게 다가온다.
"어떻게 생각해요, 마틴? 우리의 현재 모습은 우리 책임일까요?"
내가 물었다.
"아니면 누구 책임인지 모르겠네요." 마틴이 말했다.
"니체에 따르면 도덕적 책임은 가혹하고 상상력이 부족한 개념이에요." 내가 말했다.
... "누구나 살면서 나쁜 짓을 하잖아요? 우리는 바깥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요." 키트가 말했다. p.420~421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 중에 하나는 저자의 아버지, 삼촌, 그리고 형이 모두 감옥에서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덕분에 앤디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는데, 어른이 되어 철학 수업을 하기 위해 감옥에 찾아가는 지금도 여전히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언젠가 자신에게도 가족의 운명이 반복될 것을 두려워하며, 머릿속의 사형집행인과 부단히 싸우고 있다. 그렇게 앤디는 과거에서 현재로, 감옥의 방문객에서 감옥의 교사로, 가족들로부터 자신으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철학 수업을 이어나간다. 그의 수업을 듣는 재소자들은 (아마도 옷차림 때문에) 그를 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이성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고, 게이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교실 분위기가 너무 따뜻하고 너그러웠기 때문에 말이다. 학생들이 그를 게이라고 믿으면서 덜 위협적인 존재로 느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앤디의 철학 수업과 그의 개인사를 넘나 들면서 교차 진행된다. 서른하나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가족들로부터 죄를 물려받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들을 보며 그들이 받는 형벌이 내 것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일상이란 어떤 느낌일지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과 같은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감시할 사형집행인을 임명했고, 덕분에 감옥에 가지는 않았지만 자유를 얻지도 못했다고 말하는 그의 삶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해서 그 경계를 드나드는 순간들이 이 책에 눈을 뗄 수 없는 서사를 만들어 주고 있다. 살면서 한 번도 철학이 재미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철학이 이렇게 쉽고 재미날 수가 있다니, 감탄했다. 어려운 말 하나 없이도 철학이란 무엇인가, 한 방에 이해하도록 만들어 주는 책이라 웬만한 소설보다도 더 페이지가 술술 잘 넘어간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철학 수업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