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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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싼 산의 나무들은 하루하루 색이 바뀌고, 낮 시간은 눈에 띌 정도로 점점 짧아져 갔다.
나는 새로 열 식당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한편으로는 난생처음 보는 것 같은 신비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을 되찾을 수 있는 비밀 동굴 같은 장소.          p.67

 

조용한 산골 마을에 위치한 달팽이 식당은 손님을 하루에 한 팀만 받는다. 전날까지 손님과 대화를 주고받아 무엇이 먹고 싶은지, 가족 구성과 예산 등은 어떤지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그날의 메뉴가 정해진다. 달팽이 식당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음식을 맛보게 하는 것이 요리의 목적이다. 식당 주변에는 계단식 논과 소와 양이 있는 광대한 목장, 그리고 포도밭과 과수원, 허브 밭도 있어 좋은 식재료를 구하기에 너무 좋은 곳이다. 갓이 열리기 전에 딴 훌륭한 송이버섯, 숲에 벌레 먹어서 떨어진 나무 열매로 만든 증류주, 계절 야채로 만든 수프 등 정해진 메뉴 없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요리들에는 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

 

식당을 운영하는 여주인공 링고는 도시에서 열심히 일하며 돈을 모았지만, 남자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한 푼도 없는 상태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 것뿐만 아니라 가재도구도, 조리 기구도, 돈도, 갖고 있던 것은 모두 잃어버려 완전히 빈털털이가 되어 버린 채로 말이다.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온갖 가재도구들과 모아둔 돈까지 모조리 사라진 텅 빈 집을 보면서 링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삼 년 치의 추억과 귀중한 재산들을 잃어버린 절망에 링고는 어느 순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조금 놀랐지만 슬프지는 않았다고, 담담한 태도로 그녀는 심야 고속버스를 탄다.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도저히 진심으로 좋아할 수가 없었던' 엄마 곁으로 향한다. 그곳은 엄마가 딸보다 더 애지중지하는 돼지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링고의 어린 시절 기억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엄마의 집 창고를 빌려 작은 식당을 열게 된 것이다. 요리라면 링고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자신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겨울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마법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십이월의 어느 아침, 커튼을 걷자 세상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창밖은 끝없이 이어지는 우윳빛. 마치 엄청난 양의 머랭을 폭신폭신하게 씌운 듯했다. 화려한 코트를 걸친 첩할머니의 어깨에도 새하얀 가루눈이 쌓였을 것이다.            p.168

 

 

삶의 절벽 끝에 도달했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링고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도 어쩐지 가까워질 수 없었던 엄마 곁에서, 간절히 바랬던 오랜 꿈이자 로망이었던 식당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조용한 산속 마을에서 링고는 자신에게 주어진 매일을 감사하며, 작은 순간에도 행복을 느끼며 식당을 운영해 나간다. 먹는 이의 마음을 생각하며 온 정성을 다해 요리를 하다 보니, 저마다의 상처를 지닌 손님들은 달팽이 식당의 특별한 요리를 먹고 나서 작은 변화들을 겪게 된다. 그리고 점점 달팽이 식당의 요리를 먹으면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퍼지게 된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하는 내내 너무 행복해서 가슴이 메어 온다고 생각하는 요리사의 음식이라면 상처를 치유하고, 마법 같은 기적을 일으킨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식당이 정말 현실에 존재한다면,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작품은 <라이온의 간식>, <츠바키 문구점> 등 국내에도 많은 작품이 소개되어 있는 오가와 이토의 데뷔작이다. 국내에는 2010년에 출간되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고 개정판이 나왔다. 아름다운 손편지로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가슴 뭉클한 기적을 보여줬던 <츠바키 문구점>,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소한 음식들이 풍요로운 힐링을 전해줬던 <양식당 오가와>, 경건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동화 같은 소박한 이야기 <마리카의 장갑>, 결코 과하지 않게, 적절한 감정선을 유지하면서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는 기분이 들게 했던 <라이온의 간식> 등 오가와 이토의 소설들은 매번 섬세하고 따뜻했다. 평범한 일상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내는 보통날의 기적을 보여주는 이야기말로 오가와 이토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점이 아닐까 싶다. 전세계 100만 독자를 사로잡은 일본 힐링 소설의 원조, 오가와 이토의 눈부신 데뷔작을 만나 보자. 달팽이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고단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근사한 요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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