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의 세이렌
커트 보니것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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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십만 년 동안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의 우주선과 화성의 전쟁 노력은 모두 UWTB, 즉 '무언가가 되려는 우주적 의지Universal Will to Become'로 알려진 현상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았다. UWTB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우주를 만들어내는 존재, 아무것도 아닌 것이 무언가가 되려 하도록 만드는 존재였다.
수많은 지구인들은 지구에 UWTB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p.178

 

커트 보니것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번에 신간 3종이 한꺼번에 출간되었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문학작품의 압도적으로 눈부신 시각적 번역작' 이라는 평을 받은 그래픽노블 버전의 <제5도살장>, 보니것이 소설가로서 은퇴를 선언하기 전 발표한 마지막 작품 <타임퀘이크>, 스페이스오페라 장르의 클래식이자 코믹-SF계의 원조인 보니것의 두번째 장편 <타이탄의 세이렌>, 이렇게 세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2003년에 <타이탄의 미녀>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가 절판 이후 세 배가 넘는 가격에 중고 거래가 되었던 <타이탄의 세이렌>이 기대가 되어 먼저 만나보았다.

 

서른한 살의 콘스턴스는 물려받은 재산만 30억 달러나 되는 젊은 부호이다. 사람들은 미국 최고 부자인 그를 인류 역사상 가장 운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당사자인 콘스턴스는 이 놀라운 행운의 이유에 대해 "저 위의 누군가가 날 좋아하나보죠."라고 말할 뿐이다. 그는 럼포드 부인의 초대를 받아 오십구 일에 한 번씩 자신의 개와 함께 물질화하는 윈스턴 나일스 럼포드의 저택에 간다. 럼포트는 토성의 위성 중 하나인 타이탄에서 콘스턴스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 콘스턴스는 타이탄에 가본 적도,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난 적도 없었다. 사실 럼포드는 특정 시간대의 관점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가 말한 것은 미래의 어느 순간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내와 콘스턴스가 화성에서 결혼하게 될 거라고 말한다. 화성인들은 인간을 가축 취급하며 교배시킨다고 말이다. 게다가 콘스턴트가 화성과 수성, 지구에 들른 뒤에 목적지인 타이탄에 가게 될 거라고 말한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경주에서 그가 짊어질 핸디캡이었다.
그는 48파운드를 짊어지고 다녔다. 기꺼이. 더 힘이 센 사람은 더 많은 무게를, 더 약한 사람은 더 적은 무게를 지고 다녔다. 레드와인의 신도 중 힘이 센 사람은 누구나 기꺼이 핸디캡을 받아들이고, 어디에나 그것을 자랑스럽게 차고 다녔다.
이제야 가장 나약하고 미약한 자들도 인생이라는 경주가 공정하다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p.288

 

콘스턴트는 자신이 왜 그곳으로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갈 생각도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얼마 뒤,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지구에서의 법적인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화성군 중령직을 제안 받아 화성으로 향하게 된다. 극중 화성에는 군사적이고 산업화된 사회가 자리잡고 있었고, 지구로부터 징집된 사람들과 비행접시를 타고 화성으로 이송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렇게 우주여행을 떠났다가 사고로 ‘크로노-신클래스틱 인펀디뷸럼’이라는 4차원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간 뒤,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에 걸쳐 존재하며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된 남자와 전혀 애쓰지 않고도 돈방석에 앉아 운명의 장난인 것만 같은 시련의 연속으로 재산도, 기억도, 가족도 잃어버리고는 행운이 와도 불행이 와도 그저 정해진 운명인 양 받아들이는 남자의 만남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삶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이 작품은 블랙 유머와 풍자의 대가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반전 작가인 커트 보니것의 두 번째 장편이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제3차대공황이 닥치기 전 어느 시점의 미래, 신우주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개인의 운명과 삶의 무의미함에 대해서 유쾌하게 노래한다. 워낙 엉뚱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스타일이라 다소 정신없지만, 보니것만의 시니컬한 위트를 좋아한다면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게다가 아폴로 11호가 최초로 달에 착륙했던 것이 1969년이고, 이 작품이 발표된 것이 1959년이니 인류가 지구 이외의 천체에 발을 내딛기도 전에 이렇게나 '우주적인' 소설을 쓴 보니것의 독창적이고 놀라운 상상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극중 시련의 연속으로 재산도, 기억도, 가족도 잃어버린 한 남자는 자신이 일련의 우연에 희생당한 사람이라고.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냐는 이야기를 한다. 정해진 운명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저 우연의 선택일 뿐이고, 아둥바둥 힘들게 뭔가를 이루려고 하지만 삶이란 우주만큼이나 무의미한 것이며, 세상에 절대적 진실이란 없다는 보니것식 농담이 여운처럼 길게 남는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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