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는 혼란 - 인생의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당신을 위해
박경숙 지음 / 와이즈베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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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열역학이나 정보 이론에서 엔트로피가 높다는 의미는 무질서가 높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엔트로피가 낮다는 의미는 질서도가 높고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공기 중에 있는 무질서하고 자유로운 탄소 분자는 엔트로피가 매우 높다. 탄소 분자가 모여 결정체인 숯이나 다이아몬드로 바뀌면 질서도가 높아지고 엔트로피는 낮아진다. 자유와 엔트로피는 비례한다... 마음에 자유가 많으면 엔트로피가 증가해 무질서해지고 일할 에너지를 방전시킨다. 이때 만약 자유를 제한하지 않으면 방종이 엔트로피를 계속 증가시킨다.                p.86~87

 

인지과학자 박경숙의 마음 문제를 다룬 시리즈 <문제는 무기력이다>, <문제는 저항력이다>에 이은 세 번째 책이다. 이번 책에서는 시종일관 '문제는 엔트로피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제목으로 가져가기에는 조금 어렵게 느껴질 것 같아 <어른이라는 혼란>이라고 한 게 아닌가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엔트로피'라 하면 물리학에 등장하는 열역학 제2법칙부터 떠오르는데, 대체 왜 심리학이 엔트로피로 설명이 되는지 의아할 테니 말이다. 저자는 인생을 표류하게 만드는 '혼란'이라는 마음의 문제가 엔트로피 증가라는 자연 법칙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살면서 무질서의 저주, 혼란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상태에서 마음의 문제를 자각하고,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인지과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심리적 엔트로피 증가가 의식의 무질서로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그에 대한 해법으로 '의식의 자각적 통제' 방법을 제안한다. 특히나 이 책은 저자가 직접 무기력과 저항을 겪은 후 만난 ‘혼란’이라는 늪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스스로 훈련하며 정리한 인지과학 보고서이기도 하다. 저자는 <문제는 무기력이다> 출간 이전 10년 출간 이후 10년, 도합 20년간 마음속 세 가지 문제를 차례로 만나 그것들을 해결하고 자신을 변화시킬 방법을 연구했다. 그 과정은 '내가 만난 혼란기'라는 이름의 챕터로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시기부터 불안과 두려움, 혼란으로부터 질서를 찾는 수 년의 과정이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바닥에서 시작한 사람이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곳까지 올라간 과정, 꼭대기에서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추락하는 과정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서울역의 노숙자가 왜 길거리로 나앉게 됐는지 우리도 정확히 모르지만, 노숙자 본인도 자신이 왜 집도 가족도 직장도 없이 노숙을 하게 됐는지 모를 수 있다. 따라서 경영학에서 오랫동안 조사, 분석, 연구한 기업의 성공과 몰락의 공통점을 보면서 자신 역시 그런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p.290

 

'혼란이 만들어내는 일상'이라는 챕터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혼란이 발생했을 때 우리 일상의 모습이 바로 정돈되지 않은 내 책상의 모습 그 자체였던 것이다.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 책 무더기가 여기 저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각종 연필과 필기구들이 군데군데 있으며, 메모지와 포스트잇플래그, 책상달력, 피규어 등등이 흩어져 있다 보니.. 정작 컴퓨터 키보드를 올려둘 자리 정도 말고는 손 디딜 곳이 제대로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불편하지만, 정리를 하더라도 며칠 안 가서 비슷한 모양새가 되기 때문에 책상 위는 언제나 무질서 상태 그 자체다. 우리 삶과 인생에서 정리되지 않은 책상 위 같은 모습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글을 읽고 있자니, 새삼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혼란이 만들어내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그저 매일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았을 뿐인데, 어느 순간 길을 잃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시작할 때의 목표가 희미해지거나, 아예 사라져버리기도 하고,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막막하고,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기분에 휩싸여 있을 때, 그 모든 일이 내 탓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누구나 겪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인간이 어른으로 성장하다 보면 ‘엔트로피 증가’라는 자연법칙에 지배되어 혼란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무질서가 매우 높은 '고엔트로피' 상태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거라면 말이다.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곤혹스러운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이 날 것만 같다. 그러니 지금 무언가를 할 수 있음에도 '할 수 없다'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무기력에 빠져 있다면, 해내야 하는 중요한 일을 '하지 않고' 버티는 중이라면, 분명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 '하기 싫다'로 바뀌었다면, 지금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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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FOR YOU - 자기 돌봄 101의 기적
엘렌 M. 바드 지음, 오지영 옮김 / 가디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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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종종 뒤죽박죽되어버리기도 합니다. 반면 마음은 아주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마음을 따뜻하고 애틋하게 다독인다면 우리의 가장 큰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집착하는 내면의 소리가 있는데, 그것이 늘 도움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면의 소리가 비판과 비난 일색이거나 너무 가혹할 때, 우리는 자신과의 싸움에 갇혀버립니다. 스스로 엄격하기보다는 너그러운 태도로 자신에 대한 애정을 표현할수록 우리는 심리적으로 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p.52

 

주변 사람에게 신경 쓰느라, 가족을 챙기고 돌보느라,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우리는 정작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며 살고 있다. 나를 내 삶의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이 정도는 괜찮다고, 더 버틸 수 있다고, 참을 수 있다고 믿으면서 자신을 돌보는 것을 미루기만 해왔다면, 이 책을 꼭 만나봐야 한다.

 

저자인 엘렌 M. 바드는 경영 컨설턴트로 10년 동안 정신없이 생활하며 스트레스도 심했고, 건강에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바쁜 일정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기 위해 주말 동안 돌로 지어진 작은 오두막을 하나 예약한다. 와이파이도 없고, 전화벨도 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그렇게 책 몇 권과 펜 몇 자루, 그리고 빈 종이를 잔뜩 가지고 주말을 혼자 보낸 이후 인생이 바뀌게 된다. 뭔가를 성취하려고 느끼던 압박감에서 벗어나 주변을 돌아보고, 타인의 기대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 것이다. 스스로를 책임지고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효과적으로 자기 돌봄을 실천할 방법들을 개발했으며, 이 책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시간이 없었어"라는 말은 자신을 돌보지 못한 우리가 가장 많이 앞세우는 변명 중 하나입니다. 이 장에서는 용기를 내어볼 겁니다. 주어진 시간을 잘 관리하고,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며, 가능한 일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죠. 이는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얄팍하게 나누어주면서 내 공간이 텅 비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방법을 찾아갈 겁니다.          p.130~131

 

이 책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나를 돌보는 효율적인 방법 101가지 방법을 담고 있다. 몸과 마음, 감정, 관계, 시간, 집과 환경, 일, 창의성, 변화까지,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돌아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몸에 귀 기울이기, 깊게 호흡하기, 카페인 줄이기, 더 많이 움직이기 등으로 몸을 돌보고, 잠시 멈춰보는 하루, 뉴스 없는 주말, 불평 줄이기 등으로 마음을 다시 채워본다. 나를 갉아먹는 감정, 수치심 버리기, 비밀 털어놓기, 내가 좋아하는 글귀 등으로 감정을 어루만지며, 부정적인 사람은 내 영역에서 밀어내기, 힘이 되는 사람과 시간 보내기, 도움 구하기, 자기 돌봄 친구 찾기 등으로 관계를 재정비한다. 작가가 들려주는 101가지 이야기들은 삶의 여러 영역에서 재미있는 질문들과 실천법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해준다.

 

<나는 나를 돌보기로 마음먹었다>라는 제목으로 2019년에 출간되었던 이 책은 이번에 원서의 원제대로 제목을 변경하고, 읽고 쓰기에 최적화된 디자인으로 탈바꿈해 리커버판으로 새롭게 나왔다. 겉표지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내지의 구성과 디자인도 모두 변경되어 완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다이어리북 형태로 각각의 방법들에 답을 할 수 있는 질문과 메모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 활용도가 높다. 단답형 Q&A 북이 아닌, 책 속 안내에 따라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기록하는 '기록장'이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르고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는 지인에게,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은 자신에게 선물용으로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의 현재 상태에 맞는 내용을 골라서 살펴보고, 자신과 잘 맞는 방법을 선택해서 실천하면 된다. 그렇게 천천히, 매일, 101개의 마법 같은 주문들이 나를 성장시키고, 변화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더 이상 나를 돌보는 것을 미루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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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2041 - 10개의 결정적 장면으로 읽는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
리카이푸.천치우판 지음, 이현 옮김 / 한빛비즈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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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코끼리>에서 우리는 인터넷이나 금융과 같은 빅데이터 적용 분야에서 딥러닝이 가진 엄청난 잠재력을 확인했다. 인공지능이 빅데이터를 분석해 적용하는 능력에서 인간보다 앞선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나 다른 생명체에만 있는 고유한 능력으로 여겨졌던 '지각 능력'을 인공지능이 갖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p.84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 전반을 송두리째 바꾸게 될 것이라는 전망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첨단 기술과 인공지능이라는, 인간이 잘 살기 위해 만들어낸 기술이 언젠가는 인간의 삶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자각과 더불어 멀지 않은 미래에는 정말로 기계가 인간을 넘어설 수 있는 순간도 오게 될 거라는 두려움이 점차 현실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알파고가 이세돌 기사에게 승리를 거둔 이후 더욱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켜 AI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

 

 

이번에 만난 책은 그 중에서도 단연코 압도적인 재미와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나 이 책은 세계 곳곳을 배경으로 SF 소설적 스토리텔링을 통해 기술의 미래를 설명하고 질문을 던지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 흥미로웠다.

 

실제 SF 작가가 쓴 SF 단편 소설 열 편을 통해서 딥러닝, 딥페이크, 확장현실, 자율주행차, 양자컴퓨팅 등 10개의 결정적 미래를 만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애플에서 인공지능 연구와 제품 개발에 참여한 리카이푸와 데뷔작부터 열풍을 불러일으킨 SF 작가 천치우판이 만나 과학과 소설의 완벽한 융합을 보여주는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이 책이 상상력으로 그려내는 2041년의 풍경이 곧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더 공감하면서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이 엄청난 과제를 맡을 용기와 담대함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우리는 인공지능이 창출할 전례 없는 부를 물려받을 세대로서 인류 번영을 촉진하기 위한 사회계약을 재작성하고 경제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면 우리의 후손에 대해 생각해보라. 인공지능은 우리가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일에서 해방되도록 해주고 자기 마음을 따라 살 기회를 주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더 깊이 생각하게 할 것이다.           p.429

 

저자인 리카이푸는 수년 전 "한국은 세계에서 드물게 독립적인 AI 생태계를 갖고 있는 국가"라며 대부분 구글, 와츠앱 같은 미국 IT 기업의 인터넷 서비스를 쓰지만, 한국은 카카오, 네이버 등 자국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AI 발전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특히나 AI가 고도로 발달한 미래 사회에서 한국이 우위를 가질 산업을 '교육과 엔터네인먼트'라고 전망했다. 다들 알다시피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풍부한 콘텐츠를 무기로 AI, VR, AR이 접목된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이 책 속에 수록된 이야기 중에 <쌍둥이 참새>에서 스마트 인공지능 교사가 쌍둥이 소년들이 잠재력을 실현하도록 일대일로 지원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인공지능 교육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인공지능이 2041년까지 인간의 지능에 얼마나 가깝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말이다.

 

 

사실 빅데이터를 이용해 스스로 학습하는 기술인 딥러닝을 비롯해 인공지능 분야의 획기적인 상업용 기술들은 자세히 들어가면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우리도 모르는 인공지능 기술들이 이미 우리의 삶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게다가 인공지능의 능력은 나날이 더 강화되어 지금은 4시간 만에 체스를 배우고 인간을 이길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니 지금보다 인공지능이 더 많은 곳에 적용되었을 때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가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제대로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인공지능에 관한 문외한들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쓰였다. 20년 후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구현될 기술을 이야기에 녹여냈으니 말이다. SF 소설로서 읽기에도 흥미진진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에 정확한 기술분석에 관한 내용을 덧붙였기에 자연스럽게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해 알게 된다. 2041년, 그리고 그 이후의 미래를 상상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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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지은 집 - 구십 동갑내기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주택 연대기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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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사 년이 된 맞벌이 부부가 국민주택 수준의 집을 마련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는 것은 그 무렵 우리나라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때는 온 국민이 모두 가난한, 절대빈곤의 시기였고 그중에서도 문인들은 더 가난했다.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서 대부분의 문인들이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용 집필실이 있는 작가들이 많은 요즘 문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처절한 빈곤이었다. 글을 쓰라고 제공하는 작가의 집 같은 것은 상상할 수도 없던 시기의 이야기다.            p.182

 

빈손으로 시작해 원하는 집을 찾기까지 십육 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동갑내기 부부의 주택 편련의 연대기를 그리고 있는 책이다. 결혼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들어가 살 장소, 바로 집일 것이다. 이 부부에게 집이 필요한 이유는 거주의 목적 외에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글을 쓰는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각각의 서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어령, 강인숙, 두 사람 모두 대학교수였고 글 쓰는 사람이었기에 그들 부부의 집에는 두 개의 서재가 필수적이었다. 특히 강의 준비나 평론, 논문 등은 책을 많이 펼쳐 놓고 써야 하는 글이어서 다른 곳에서 쓰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혼 후 한 동안은 단칸방에서 살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구석에서 밤을 새워 글을 쓰면, 나머지 가족은 불빛 때문에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들이 서재가 두 개인 집에 장착하기까지 그들은 집 때문에 항상 쪼들리는 살림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 책에는 1958년 성북동 골짜기의 단칸방에서 시작해 1974년 마침내 평창동 집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과 영인문학관을 설립해서 운영 중인 현재가 모두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많은 공간을 거치며 살아 왔던 부부의 삶이 고스란히 스며 들어 있다. 청파동, 한강로, 신당동, 성북동, 그리고 평창동에 이르는 시간들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그들 부부가 일곱 번의 이사를 거쳐 마침내 원하는 크기의 집을 짓는 데 성공한 것은, 1974년의 일이었다. 그들은 사람도 집도 하나도 없는 텅 빈 산 중턱에 외딴집을 지었다. 아이가 셋이었고, 부부 각자를 위한 서재를 위해 방이 아주 많은 큰 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혈족들을 떠나보내는 와중에도, 눈앞에 다가와 있는 삶은 우리에게 '오늘의 과업'을 수행할 것을 강요한다. 현실은 슬프다고 봐주는 법이 없다. 빅토르 위고의 말대로 "오늘의 과제는 싸우는 것" 이어서, 사람들은 장례를 치르면 곧 그 싸움터로 돌아가야 한다. 대학 교수들은 부모님 상을 당해도 닷새 후부터 강의를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요, 현실이다. 그래서 나도 아버지처럼 결국 털고 일어나 집짓기를 마무리했다. 어쩌면 그 바쁜 일정 덕에 그 기간을 살아남았는지도 모른다.          p.380

 

이어령, 강인숙 부부가 십육 년 동안 살아온 여덟 곳의 집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힌다. 도배지 한 장만 새로 붙인 방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하고, 머리맡에 높은 어항이 얼어붙어 있을 정도로 방이 냉골이었던 날도 있었고, 학교 선생으로 일하며 받는 보너스가 이만 오천 원이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4.19와 5.16을 동네 한복판에서 목도했던 순간들과 박경리 선생, 김지하 시인 등 문인들과 교류하던 시간과 대가족이 북적이며 살아온 풍경들도 페이지 가득 펼쳐진다.

 

이들 부부가 마흔한 살부터 일흔넷이 되는 2007년까지 삼십삼 년의 세월을 산 곳은 평창동 집이다. 세 아이의 결혼식도, 여덟 손자의 돌잔치도 그 집에서 치렀고, 열여섯 명의 대가족이 되어 북적거리며 삶의 전성기를 보낸 곳이다. 그러다가 부부 둘만 남는 세월이 온다. 아이들이 자라서 결혼을 하고, 독립을 하다 보니 신혼초처럼 그 넓은 집에서 둘이만 살게 된 것이다. 부부는 슬프고 외로운 마음을 공부하고 글 쓰는 일로 메꾸어 갔다고 한다. 하지만 집이 너무 커서 유지하는 일이 부담이 되기 시작했고, 결국 살던 집을 허물고 문학관을 만들 준비를 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영인문학관이다. 2001년 개관한 영인문학관은 해마다 2~3회의 기획전을 열고 있으며, 이어령 선생이 13년간 '문학사상'을 하면서 수집한 원고, 초상화, 편지 외에 문인, 화가의 부채, 서화, 애장품, 문방사우 등을 소장품으로 가지고 있다. 근대문학의 성숙기인 70~80년대 작가들의 자료를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 영인문학관의 특징이기도 하다. 글 쓰는 부부가 수십 년에 걸쳐 집을 마련하고, 그것이 결국 근대문학의 자료를 소장한 문학관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담백하면서도, 어딘가 뭉클한 여운을 남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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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낼 수 있다
보도 섀퍼 지음, 박성원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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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는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했다. "자네가 어떤 사람에게 내재하는 무언가를 알아보고 인정해주면 그것은 생명을 얻고 현실이 된다네. 자네가 그것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지. 그러므로 우리는 마치 피그말리온이 갈라테이아를 바라보듯이 우리를 사랑스럽게 바라봐주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까이 지내야 해. 우리는 우리 안의 선한 것들을 깨워 일으켜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그들과 함께 지내야 해. 그러면 우리 안의 아름답고 선한 것들이 깨어나 발현된다네.      p.134

 

세계 최고의 머니 코치이자 경영 컨설턴트로 손꼽히는 보도 섀퍼는 ‘인생의 역경을 딛고 일어서 성공한 자수성가형 리더’이다. 26세에 고액의 채무를 지어 파산한 상태였던 그를 구한 것은 코치의 한마디였다. 그 말 덕분에 좌절과 낙담에서 빠져 나와 4년 후인 30세에 재정적 자유를 이루게 된다. 그는 어떻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 수 있었을까. 그러한 자신의 인생을 토대로 쓴 이 책은 경제적 자유와 정서적 자유를 이룩할 수 있는, 그걸 토대로 성공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평범한 인생을 살던 한 남자, 카를은 어느 날 일어난 자동차 사고를 계기로 인생을 바꿔 줄 '멘토' 마크를 만나게 된다. 특히나 '자의식'을 구축하는 것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는데, 보도 섀퍼는 ‘나는 내가 마음에 든다’, ‘나는 잘하고 있다’,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내적 확신을 가지는 것,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바로 자의식이라고 말한다. 마크는 카를에게 묻는다. '자네는 자신이 마음에 드는가? 자네는 자신이 자랑스러운가' 카를은 대답한다. '그저 그래요'라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난 내가 너무도 자랑스럽고, 지금 모습 그대로 만족한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질문은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준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지, 자신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지, 그리고 자신을 신뢰하는지 여부를 알려 주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마크는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카를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나는 너의 일부야. 나는 네가 모든 것을 준비해놓고도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나타나지. 나는 너의 일부야. '난 해낼 수 있어'라고 확신하는 너의 일부야. 너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자문하지. 너의 삶 전체가 너를 이 순간으로 이끌었어. 너는 지난 몇 달 동안 정말 치열하게 연습해 왔지. 그렇게 연습한 결과 이제는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되었고, '난 해낼 수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지.        p.306

 

법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카를은 대학 공부가 전혀 즐겁지 않았고, 매우 힘겨웠다. 그의 부모님은 카를이 자신들처럼 변호사가 되길 기대했지만, 카를은 읽고 쓰기를 매우 힘들어했고, 우등생이 아니었다. 카를은 여태껏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 없다는 마음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아주 우연히 마크를 만나게 된 뒤, 그와 함께 자의식 아카데미에 가게 된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조차 자의식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그는 점차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타인들에 의한 자아상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나온 나의 자아상을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이 책은 자존감이 낮고, 자의식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청년이 어떻게 꿈을 실현하고 성공하는지에 대한 여정을 소설처럼 그려내고 있다. '나는 소중한 존재다. 나는 환영받는 존재다. 나는 스스로가 가장 잘할 수 있고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자기 존중, 즉 자존감을 발견하고, 단단하게 수립해가는 과정은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사고법과 연습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기에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자존감이 낮아서 고민이라면,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면, 그리고 내가 계획하는 모든 바를 이루고, 나는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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