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맨 6 - 도그맨, 돌아온 영웅 도그맨 6
대브 필키 지음, 노은정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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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조차 푹 빠져서 읽게 된다는 마성의 그래픽노블 <도그맨> 시리즈 6권이 나왔다. 이번에는 개 머리에 사람 몸을 한 경찰관으로 세상의 모든 악당들로부터 도시의 평화를 지키는 영웅, 도그맨이 하루아침에 은행털이범으로 몰려 교도소에 가게 되는 스토리가 펼쳐진다. 시리즈 1권 <도그맨, 핫도그의 침공>, 2권 <도그맨과 납작 피티>, 3권 <도그맨, 두 고양이 이야기>에 이어 4권 <도그맨과 캣키드>는 존 스타인벡의 기념비적인 대작 『에덴의 동쪽』을 오마주했고, 5권 <도그맨과 벼룩 대왕>은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에 관한 오마주 작품이었다. 이번에는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을 오마주해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도그맨> 시리즈는 전 세계 40개국에 4000만부 판매되었으며 아마존 어린이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독자 리뷰가 무려 15,800여 개가 달린 책이 있다. 드림웍스에서 곧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이 될 예정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가 흥미로운 것은 도그맨이 보통의 영웅들과는 꽤 다르다는 점일 것이다. 도그맨은 사람 말을 못할 뿐만 아니라 개의 본능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툭하면 사람들을 핥아 대고 심지어는 오줌과 똥을 아무 데나 싸는 경찰서의 골칫덩어리이니 말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하고 선한 마음을 가졌고, 매 사건마다 놀라운 기지와 용기를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고야 만다.

 

그리고 '어린이가 직접 쓰고 그린 이야기’라는 콘셉트로 서두를 시작하고 있어, 글과 그림이 더욱 기발하고, 엉뚱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한번 웃어 넘기고 덮어 버리는 책이 아니라, 깔깔대고 웃는 이야기 속에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고, 토닥여 주는 따뜻한 감동도 함께 있다.

 

 

특히나 이번 신작에서는 개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라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는 도그맨의 모습이 그려지고, 세상 악랄한 악당 피티가 아들인 리틀 피티를 통해 조금씩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뭉클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게다가 괴롭힘을 당해 시무룩한 도그맨에게 세상 똑똑한 기자 세라와 아주 서장스러운 경찰 서장 그리고 유명한 영화배우 욜레이까지 자신도 왕따가 된 것 같을 때가 있다고, 사실 다들 왕따라고 느끼며 산다고, 너는 너대로 완벽하니 괴로워할 필요 없다고 말해주는 순간, 어른인 나도 위로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는 작가인 대브 필키가 어릴 적 ADHD와 난독증을 겪으면서 수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거의 매일 교실 밖 복도로 쫓겨나 홀로 만화를 그렸던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어린 시절 겪어 왔던 감정들을 잊지 않고, 작품 속에 투영했기에 어린이들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극중 드디어 도그맨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 영화가 개봉을 하고, 도그맨과 경찰서장 등 무리들이 영화관으로 달려 가지만, 곧 아수라장이 펼쳐진다. 벼룩 원정대가 영화 속 필리에게 ‘뿌리면 살아나’ 스프레이를 쏘는 바람에 점토 인형 필리가 영화 밖으로 걸어 나오게 된 것이다. 만화 속에서 점토 인형 필리는 실사 이미지로 등장해 더욱 실감나고 스펙타클한 소동을 만날 수 있으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차원이 다른 듣도 보도 못한 상상력'이 총집합되어 빵빵 터지는 재미를 안겨주는 <도그맨> 시리즈는 계속될 예정이다. 아이에게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알려 주고 싶다면, 아이가 스스로 읽고 또 읽게 만드는 책을 찾고 있다면 <도그맨> 시리즈를 적극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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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최고의 명강의 10주년 기념판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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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흥미로운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첫째, 비물질적인 영혼이 정말로 존재할까? 그렇다면 인간의 정신을 비물질적인 존재인 영혼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육체와 영혼이 각각 따로 존재하는 걸까? 이것이 첫 번째 질문이다. 둘째, 영혼이 정말 존재한다면, 육체적 죽음 이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건가? 영혼이 육체와는 다른 별개의 존재라고 하더라도, 육체의 소멸과 더불어 사라지는 건 아닐까?          p.33

 

‘죽음 신드롬’을 일으키며 25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글로벌베스트셀러 <죽음이란 무엇인가> 10주년 기념판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이 책은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과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인 예일대 셸리 케이건의 대표작으로, 아이비리그 3대 명강의로 손꼽히는 그의 ‘죽음’ 강의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표지 사진에서도 보여지듯이 강의 시간마다 책상에 올라가는 버릇 때문에 ‘책상 교수님’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케이건은 대중 철학 강의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일생을 '삶'이라고 부른다면,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는 방향대로 우리는 나이를 먹게 되고, 점점 노화가 진행되면서 죽음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산다는 것은 다시 말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고, 나이를 먹은 만큼 노화한 육체는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지만, 그 누구도 죽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자신의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우리가 죽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영혼이란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살아있다는 것은 무슨 뜻이고, 죽음 이후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죽음'의 실체에 대해 접근해 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 살아가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은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핵심이기 때문에 삶의 방식에 전체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카프카는 말했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 카프카 특유의 아름답고 신비스런 표현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별로 특별한 깨달음은 아니다.           p.402

 

죽음이란 무엇인가. 영혼과 육체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면, 죽음이란 그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는 사건이다.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져 있다는 ‘이원론’에 따르면 우리는 육체적 죽음 이후에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킬 수 있다. 영혼이 더 이상 육체를 조종하지 않더라도, 사라지지는 않으니 말이다. 반면 인간이 ‘육체’로만 이뤄져 있다는 ‘물리주의'에 따르면 육체가 인간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그러니 육체가 소멸돼도 인간의 존재는 얼마든지 영속성을 유지해나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은 영혼과 육체, 인격의 각각 관점으로 인간 정체성에 관한 주장들을 살펴보고, 영화와 문학 작품들과 다양한 일상의 사례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사유한다. 전체 14강의 강의는 굉장히 무겁고, 깊고, 방대하며,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매 페이지마다 밑줄 그어가면서 정독하고 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만약 나에게 주어진 생이 단 1년뿐이라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을까 생각해 본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읽고 싶었던 책들을 미루지 말고 읽을 것이며, 좋아하는 음식을 더 즐기고, 가보고 싶었던 곳을 여행하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것이니, 아마도 생각하는 것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쫓기듯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삶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완성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목적'이며, '죽음에 본질을 이해하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삶과 죽음 사이의 마지막 시간을 의미있게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죽음을 다루고 있는 모든 책은 결국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추천사가 여운처럼 남는다.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살기 때문에, 사는 동안 제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고, 어떤 형태의 삶도 영원히 지속될 수 없기 때문에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죽음에 대한 강의를 듣고, 이 책을 읽고 있는 이유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환상에서 벗어나' 더 잘 살기 위해서인 것처럼 말이다. 죽음을 통해 삶을 이해하는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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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작은 책방에 갑니다 - 일본 독립서점 탐방기
와키 마사유키 지음, 정지영 옮김 / 그린페이퍼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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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온 손님이 "고양이가 나온다면 어디 한번 볼까?" 하고 책을 집어 들 수 있다. 그렇게 평소에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도 책을 읽을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고양이라는 관심사 덕분에 새로운 작가의 책으로 독서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책으로 들어가는 입구 같은 책방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p.37

 

프랜차이즈 서점이 등장했다 금세 사라지고, 온라인 쇼핑이 엄청나게 성장하고, 전자책 독자들이 탄생하면서 책과 서점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 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게다가 높은 임대료와 운영비, 책 값을 후려치는 대형 서점 체인 등으로 인해 서점을 운영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서점의 안목으로 고른 책들,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큐레이션, 지역 특색을 가진 서점등.. 얼마나 다양한 독립 서점들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책장 사이로 걸어가면서 들리는 책들의 속삭임, 포근한 종이 냄새와 나무 냄새로 가득한 서점은 그 공간에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마저 주니 말이다.

 

이 책은 일본의 독립서점 23군데를 탐방한 에세이이다. 국내 독립 서점들을 다룬 책들은 몇 번 읽어 봤는데, 일본의 독립서점은 어떤 풍경을 보여줄지 매우 기대가 되었다. 국내의 독립서점들만큼이나 개성이 뚜렷한 작은 책방들이 일본 각지에 많이 있다. 간토 지역, 주부 지역, 간사이 지역, 주고쿠 지역, 규슈 지역으로 구분해 서점들을 소개하고, 책방의 대표나 직원을 인터뷰한 내용과 책방의 구석구석을 촬영한 사진까지 풍부한 정보들을 담았다.

 

 

책방에 좋아하는 책만 둔다니, 깔끔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책이 손에서 떠나는 것이 아쉽지 않을까? 가토 씨의 대답은 마치 벽이 없는 이 집처럼 열려 있었다.
"책을 팔더라도 이 책은 산 사람의 책장으로 이동하는 것일 뿐 변함없이 존재하잖아요. 어딘가 모르는 사람의 곁으로 간다고 하면 없는 것과 같지만, 이 집에 와 준 사람의 품으로 간다면 그것은 제 책장에 있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요?"         p.91

 

책방의 한쪽 벽면에 책방 주인이 몇 번이고 읽고 싶은, 지극히 주관적인 책들만 진열한 서점, 소년 탐정단 시리즈나 세계 명작 동화 전집 등 어린 시절에 읽었던 그리운 책들을 만날 수 있는 책방, 고양이를 키워드로 책을 모아서 진열하고 고양이와 함께 커피나 맥주를 마실 수도 있는 책방, 한 달에 두 번만 여는 독특한 책방, 책장 사이에 지구본과 다육 식물이 놓여 있고, 식물이나 동물을 주제로 한 책도 많고, 안쪽 뜰에는 거북도 살고 있는 중고 책방, 갓 구운 빵과 드립 커피를 책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책방, 창업 140주년이 된 유서 깊은 책방 등등 다양한 컨셉과 운영 철학으로 매력을 발산하는 책방들을 만날 수 있었다.

 

 

책이 가득한 풍경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데, 이 책에 수록된 서점의 풍경들 모두 마치 화보처럼 근사하다. 쉽게 서점하면 떠올리는 그런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들과 책들로 인해 압도되는 느낌의 풍경들까지 책을 읽는 내내 눈이 호강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퀄리티 높은 사진들만큼이나 좋았던 것은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평소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도 책을 읽을 계기를 만들어 주기 위한 고민들과 사람들이 책을 접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어 가끔 오는 사람도 집어 들기 쉬운 책을 일부러 놓아두는 마음 등 책과 사람을 향한 그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뭉클했다.

우리나라에도 동네 책방은 계속 생겨나고 있고, 그 수가 800여 곳에 이른다고 한다. 영업 이익을 내기가 어려운 실정임에도 꽤 많은 수의 서점들이 여기 저기에서 작은 목소리로 책을 향한 진실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매력적인 서점들을 보면서 국내의 동네 책방들에도 관심을 더 가져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언젠가 일본에 여행을 가게 되면, 이 책에서 만난 서점들을 꼭 들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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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숙녀 신사 여러분
유즈키 아사코 지음, 이정민 옮김 / 리드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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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까닭 없이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정말 사소하고 민망한 일로. 엄마가 피곤한 얼굴로 할머니를 은근히 인정 없이 대할 대, 언니가 나를 보는 눈빛이 완전한 보호자의 눈빛일 때, 회사 사람들이 아빠를 별로 안 좋아하겠구나 싶은 몇몇 순간을 맞닥뜨릴 때, 남자 친구가 약간 마초적인 사고방식으로 나를 격려할 때. 전부 내 잘못인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고 나는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매일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생채기가 났다.          - 'Come Come Kan!' 중에서, p.44~45

 

아코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형 마트 푸드 코트에서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몽땅 성형 수술비로 쓰려고 결심한다. 전부터 외모에 컴플렉스가 있어서 남자 친구 한 번 사귄 적이 없는데, 마스크가 필수가 된 이후 사람들로부터 외모로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된 것이다. 왜 여자들이 예뻐지려고 하는지 그제야 깨닫게 된 아코는 성형 수술을 받아 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성형외과 대기실에서 무심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게 되고, <빨간 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 <소공녀 세라> 등 소녀를 위한 명작 동화에서 공통점을 찾게 된다. 어느 이야기든 예외 없이 가난한 여자아이가 부자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거였다. 사랑이나 용기가 아니라 빈곤층이 부유층에 의해 구원받는다는 이야기에 감동한 아코는 자기 자신을 바꾸기보다, 자신에게 금전적 지원을 해 줄 후원자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녀는 현실에서 키다리 아저씨를 만날 수 있을까.

 

한적한 주택가 맨션 지하에 있는 회원제 이탈리안 창작 초밥집은 불륜 커플 명소이기도 했다. 검은색 계열로 내부 인테리어를 한 가게는 네 팀 정도 앉으면 거의 꽉 차는 공간에 어둑한 간접 조명으로 다른 손님의 얼굴은 잘 알아볼 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장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체격 좋은 중년 여성이 등장한다. 회색 추리닝 차림에 거대한 아기를 아기 띠로 가슴에 묶어 매달고, 달콤한 젖내를 주위에 퍼뜨리면서. 모유 수유를 하느라 술과 날 생선에 굶주려서 죽을 것 같았다는 그녀는 셰프의 곤혹스러움과 주위 손님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천연덕스럽게 요리를 주문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굵고 낭랑한 목소리로 당당하게 주문을 하는 것만 보아도 그녀가 대단한 미식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눈살을 찌푸리던 다른 여성 손님들도 점차 아기 엄마가 이곳에서 초밥과 요리를 충분히 즐길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으로 따지면 채 한 시간도 머물지 않았던 아기와 엄마의 등장은 그곳의 분위기를 묘하게 바꾸어 버린다.

 

 

 

아이 외에 아무도 만나지 않으면 시야가 좁아지는 것은 당연하고, 시간에 쫓기다 보면 가장 먼저 손을 놓는 것이 문화생활이다... 마사미가 경멸해야 할 사람은 그 여성이 아니라, 어쩌면 옆에 있는 남자가 아닐까. 그들이 이렇게 다림질이 잘된 셔츠를 입고 젊은 여자와 고급 초밥을 먹는 사이에, 그 등 뒤에는 집안일과 육아에 쫓기는 여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가게의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진 것은 본래는 숨어야 할 존재가 갑작스럽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아기 띠와 불륜 초밥' 중에서, p.157

 

유즈키 아사코의 신작이다. 이 작품집은 2016년 5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월간 문예지 〈올요미모노〉에 발표한 단편 일곱 편을 엮은 것으로, 연작이 아닌 독립된 이야기로 구성된 작가의 첫 작품집이기도 하다. 명작 동화의 교훈을 색다르게 재해석한 <키 작은 아저씨>, 바람 피운 남편과 헤어지려고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돌아왔는데, 얼결에 시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서 있으면 시아버지라도 이용해라〉, 불륜 커플 명소인 고급 초밥 레스토랑에 아기 띠를 메고 등장한 여성의 유쾌한 식도락 〈아기 띠와 불륜 초밥〉, 번번이 편집자에게 퇴짜 맞는 신인 작가에게 어느 날 대문호의 동상이 말을 걸어 오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Come Come Kan!〉 등 고정관념과 편견을 뛰어넘는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유즈키 아사코는 그 동안 여성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다정하게 그려왔다. 이 작품에서는 사회의 선입견에 가뿐하게 맞서는,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통쾌한 매력의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해 신선한 재미를 안겨준다. 타인에게 거리낌 없이 손을 내밀고 도움을 받는 것이 꼭 부끄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남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는 것도 괜찮다는 것을, 여자라고 해서 예뻐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필수는 아니라는 것을, 직장에서 돈을 버는 것보다 집에서 아이를 보며 가사 노동을 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경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음식과 맛에 대한 묘사에 출중한 유즈키 아사코답게 〈아기 띠와 불륜 초밥〉이라는 작품에서 근사한 미식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어 더 좋았다. 어딘가 코믹하면서도 진지한,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여운이 남는, 감각적이면서도 담백한 유즈키 아사코의 단편들은 장편만큼이나 매력적이다. 유즈키 아사코의 전작들을 재미있게 읽어 왔다면 이번 작품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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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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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잠자는 감각을 일깨우고, 욕구를 채워주고, 자아상을 규정하고, 매혹의 가마솥을 휘젓고, 위험을 경고하며, 유혹에 무릎 꿇게 하고, 종교적인 열정을 부채질하고, 이곳을 천국으로 변화시키고, 스타일을 만들어주며, 쾌락에 젖게 해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냄새는 가장 필요가 적은 감각, 즉 헬렌 켈러가 극적으로 표현한 대로 "추락한 천사"가 되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인간이 냄새를 통해 하등동물이 지각하는 것과 똑같은 정보를 지각한다고 주장한다.         p.74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이 2004년 국내 출간된 이후 19년 만에 새롭게 단장한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세련된 표지 이미지가 시선을 사로잡는 이번 개정판은 판형이 조금 작아졌고, 대신 페이지수가 늘어났다. 다이앤 애커먼은 에세이스트이자 시인, 이라고 소개되지만 '자연의 언어를 문학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 공감각까지 인간의 여섯 가지 감각에 대한 온갖 이야기를 예술과 철학, 인류학과 과학을 넘나들면서 우아하게 풀어내고 있다. 다이앤 애커먼의 손끝에서 그려지는 '감각이 만들어지고 성장하고 변화하여 소멸하는 그 모든 과정'은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다양한 역사적, 과학적 사례는 물론 사적인 경험을 곁들여 풀어내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너무도 아름답다.

 

후각, 즉 냄새는 우리를 수천 미터 떨어진 곳으로 많은 시간을 건너뛰어 데려다 주는 힘센 마술사다. 냄새는 모든 감각 가운데 가장 직접적이고, 시각이나 소리보다 더 확실하게 심금을 울린다. 기억하기 쉽다는 것도 냄새만의 특징이다. 우리는 특정 향기를 통해 어린 시절의 여름을 떠올리기도 하고, 해변에서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기도 하며,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를 기억하기도 한다. 냄새의 뇌관을 건드리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냄새가 생존에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없으면 우리는 상실과 고립을 느끼게 된다. 그에 비해 촉각은 가장 오래된, 필수 불가결한 감각이다. 촉각은 시각과 더불어 우리가 삼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촉각을 느끼는 피부는 우리와 세계 사이에 있다. 피부는 우리에게 개인적인 형태를 부여해주고, 외부로부터 보호해주며, 필요에 따라 우리를 시원하게도 따뜻하게도 해준다.

 

 

 

색깔은 세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 오래된 역설적인 질문을 떠올려보자. 숲속에서 나무 한 그루가 쓰러졌는데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없었다면, 소리는 울린 것인가? 시각에 관한 비슷한 질문이 있다. 옆에서 보는 사람의 눈이 없어도, 사과는 정말 붉은 것인가?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사과는 우리가 의미하는 붉은색으로 붉은 것이 아니다. 다른 동물들은 고유의 화학적 과정에 근거해서 우리와는 다르게 색깔을 지각한다.         p.438~439

 

다른 감각들은 혼자서도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길 수 있지만, 미각은 대단히 사회적이다. 혼자 식사하는 것을 꺼리는 인간에게 음식은 대단히 사회적인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다. 세계 어디를 가나 중요한 사업은 식사를 하는 동안 이루어지고, 결혼식은 피로연으로 끝나며, 친구들은 기념 만찬 자리에서 재회한다. 미각이 사회적 감각이라는 것도 흥미로운데, 청각 역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우리는 소리를 피와 살이 있는 구체적 힘이라기보다 뭔가 초자연적인 것, 공기보다 가볍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소리'라 부르는 것은 크든 작든, 어떤 물체의 움직임과 함께 시작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공기 분자의 파동이다. 소리의 파동은 물결처럼 퍼져서 귀까지 도달해 고막을 진동시키고, 인체에서 가장 작은 뼈들을 움직인다.

 

시각, 즉 보는 것이 눈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뇌에서 이루어진다는 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며칠 전, 심지어 몇 년 전의 광경을 기억하기도 하고, 상상 속의 일을 눈앞에 그려볼 수도 있으니, 생생하고 자세하게 보는 일에 눈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감각을 느끼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인지 능력의 화석'이라 불린다. 여러 가지 감각을 동시에 느끼는 공감각에 대한 부분은 여섯 가지 감각 중에서는 가장 적은 분량이 담겨 있지만, 사실 나머지 다섯 가지 감각에 대해 워낙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터라 그 감각들에 대해 완전히 인지한다면 공감각도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이앤 애커먼의 글은 그 어떤 시보다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웬만한 문학 작품보다 섬세하고 우아해서 읽는 내내 눈이 호강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감각'을 통해 인간과 자연, 세상을 이해해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신비롭고, 매혹적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세상이 얼마나 황홀하고 감각적인지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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