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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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잠자는 감각을 일깨우고, 욕구를 채워주고, 자아상을 규정하고, 매혹의 가마솥을 휘젓고, 위험을 경고하며, 유혹에 무릎 꿇게 하고, 종교적인 열정을 부채질하고, 이곳을 천국으로 변화시키고, 스타일을 만들어주며, 쾌락에 젖게 해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냄새는 가장 필요가 적은 감각, 즉 헬렌 켈러가 극적으로 표현한 대로 "추락한 천사"가 되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인간이 냄새를 통해 하등동물이 지각하는 것과 똑같은 정보를 지각한다고 주장한다.         p.74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이 2004년 국내 출간된 이후 19년 만에 새롭게 단장한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세련된 표지 이미지가 시선을 사로잡는 이번 개정판은 판형이 조금 작아졌고, 대신 페이지수가 늘어났다. 다이앤 애커먼은 에세이스트이자 시인, 이라고 소개되지만 '자연의 언어를 문학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 공감각까지 인간의 여섯 가지 감각에 대한 온갖 이야기를 예술과 철학, 인류학과 과학을 넘나들면서 우아하게 풀어내고 있다. 다이앤 애커먼의 손끝에서 그려지는 '감각이 만들어지고 성장하고 변화하여 소멸하는 그 모든 과정'은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다양한 역사적, 과학적 사례는 물론 사적인 경험을 곁들여 풀어내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너무도 아름답다.

 

후각, 즉 냄새는 우리를 수천 미터 떨어진 곳으로 많은 시간을 건너뛰어 데려다 주는 힘센 마술사다. 냄새는 모든 감각 가운데 가장 직접적이고, 시각이나 소리보다 더 확실하게 심금을 울린다. 기억하기 쉽다는 것도 냄새만의 특징이다. 우리는 특정 향기를 통해 어린 시절의 여름을 떠올리기도 하고, 해변에서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기도 하며,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를 기억하기도 한다. 냄새의 뇌관을 건드리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냄새가 생존에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없으면 우리는 상실과 고립을 느끼게 된다. 그에 비해 촉각은 가장 오래된, 필수 불가결한 감각이다. 촉각은 시각과 더불어 우리가 삼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촉각을 느끼는 피부는 우리와 세계 사이에 있다. 피부는 우리에게 개인적인 형태를 부여해주고, 외부로부터 보호해주며, 필요에 따라 우리를 시원하게도 따뜻하게도 해준다.

 

 

 

색깔은 세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 오래된 역설적인 질문을 떠올려보자. 숲속에서 나무 한 그루가 쓰러졌는데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없었다면, 소리는 울린 것인가? 시각에 관한 비슷한 질문이 있다. 옆에서 보는 사람의 눈이 없어도, 사과는 정말 붉은 것인가?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사과는 우리가 의미하는 붉은색으로 붉은 것이 아니다. 다른 동물들은 고유의 화학적 과정에 근거해서 우리와는 다르게 색깔을 지각한다.         p.438~439

 

다른 감각들은 혼자서도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길 수 있지만, 미각은 대단히 사회적이다. 혼자 식사하는 것을 꺼리는 인간에게 음식은 대단히 사회적인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다. 세계 어디를 가나 중요한 사업은 식사를 하는 동안 이루어지고, 결혼식은 피로연으로 끝나며, 친구들은 기념 만찬 자리에서 재회한다. 미각이 사회적 감각이라는 것도 흥미로운데, 청각 역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우리는 소리를 피와 살이 있는 구체적 힘이라기보다 뭔가 초자연적인 것, 공기보다 가볍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소리'라 부르는 것은 크든 작든, 어떤 물체의 움직임과 함께 시작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공기 분자의 파동이다. 소리의 파동은 물결처럼 퍼져서 귀까지 도달해 고막을 진동시키고, 인체에서 가장 작은 뼈들을 움직인다.

 

시각, 즉 보는 것이 눈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뇌에서 이루어진다는 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며칠 전, 심지어 몇 년 전의 광경을 기억하기도 하고, 상상 속의 일을 눈앞에 그려볼 수도 있으니, 생생하고 자세하게 보는 일에 눈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감각을 느끼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인지 능력의 화석'이라 불린다. 여러 가지 감각을 동시에 느끼는 공감각에 대한 부분은 여섯 가지 감각 중에서는 가장 적은 분량이 담겨 있지만, 사실 나머지 다섯 가지 감각에 대해 워낙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터라 그 감각들에 대해 완전히 인지한다면 공감각도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이앤 애커먼의 글은 그 어떤 시보다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웬만한 문학 작품보다 섬세하고 우아해서 읽는 내내 눈이 호강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감각'을 통해 인간과 자연, 세상을 이해해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신비롭고, 매혹적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세상이 얼마나 황홀하고 감각적인지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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