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숙녀 신사 여러분
유즈키 아사코 지음, 이정민 옮김 / 리드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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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까닭 없이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정말 사소하고 민망한 일로. 엄마가 피곤한 얼굴로 할머니를 은근히 인정 없이 대할 대, 언니가 나를 보는 눈빛이 완전한 보호자의 눈빛일 때, 회사 사람들이 아빠를 별로 안 좋아하겠구나 싶은 몇몇 순간을 맞닥뜨릴 때, 남자 친구가 약간 마초적인 사고방식으로 나를 격려할 때. 전부 내 잘못인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고 나는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매일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생채기가 났다.          - 'Come Come Kan!' 중에서, p.44~45

 

아코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형 마트 푸드 코트에서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몽땅 성형 수술비로 쓰려고 결심한다. 전부터 외모에 컴플렉스가 있어서 남자 친구 한 번 사귄 적이 없는데, 마스크가 필수가 된 이후 사람들로부터 외모로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된 것이다. 왜 여자들이 예뻐지려고 하는지 그제야 깨닫게 된 아코는 성형 수술을 받아 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성형외과 대기실에서 무심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게 되고, <빨간 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 <소공녀 세라> 등 소녀를 위한 명작 동화에서 공통점을 찾게 된다. 어느 이야기든 예외 없이 가난한 여자아이가 부자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거였다. 사랑이나 용기가 아니라 빈곤층이 부유층에 의해 구원받는다는 이야기에 감동한 아코는 자기 자신을 바꾸기보다, 자신에게 금전적 지원을 해 줄 후원자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녀는 현실에서 키다리 아저씨를 만날 수 있을까.

 

한적한 주택가 맨션 지하에 있는 회원제 이탈리안 창작 초밥집은 불륜 커플 명소이기도 했다. 검은색 계열로 내부 인테리어를 한 가게는 네 팀 정도 앉으면 거의 꽉 차는 공간에 어둑한 간접 조명으로 다른 손님의 얼굴은 잘 알아볼 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장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체격 좋은 중년 여성이 등장한다. 회색 추리닝 차림에 거대한 아기를 아기 띠로 가슴에 묶어 매달고, 달콤한 젖내를 주위에 퍼뜨리면서. 모유 수유를 하느라 술과 날 생선에 굶주려서 죽을 것 같았다는 그녀는 셰프의 곤혹스러움과 주위 손님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천연덕스럽게 요리를 주문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굵고 낭랑한 목소리로 당당하게 주문을 하는 것만 보아도 그녀가 대단한 미식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눈살을 찌푸리던 다른 여성 손님들도 점차 아기 엄마가 이곳에서 초밥과 요리를 충분히 즐길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으로 따지면 채 한 시간도 머물지 않았던 아기와 엄마의 등장은 그곳의 분위기를 묘하게 바꾸어 버린다.

 

 

 

아이 외에 아무도 만나지 않으면 시야가 좁아지는 것은 당연하고, 시간에 쫓기다 보면 가장 먼저 손을 놓는 것이 문화생활이다... 마사미가 경멸해야 할 사람은 그 여성이 아니라, 어쩌면 옆에 있는 남자가 아닐까. 그들이 이렇게 다림질이 잘된 셔츠를 입고 젊은 여자와 고급 초밥을 먹는 사이에, 그 등 뒤에는 집안일과 육아에 쫓기는 여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가게의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진 것은 본래는 숨어야 할 존재가 갑작스럽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아기 띠와 불륜 초밥' 중에서, p.157

 

유즈키 아사코의 신작이다. 이 작품집은 2016년 5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월간 문예지 〈올요미모노〉에 발표한 단편 일곱 편을 엮은 것으로, 연작이 아닌 독립된 이야기로 구성된 작가의 첫 작품집이기도 하다. 명작 동화의 교훈을 색다르게 재해석한 <키 작은 아저씨>, 바람 피운 남편과 헤어지려고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돌아왔는데, 얼결에 시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서 있으면 시아버지라도 이용해라〉, 불륜 커플 명소인 고급 초밥 레스토랑에 아기 띠를 메고 등장한 여성의 유쾌한 식도락 〈아기 띠와 불륜 초밥〉, 번번이 편집자에게 퇴짜 맞는 신인 작가에게 어느 날 대문호의 동상이 말을 걸어 오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Come Come Kan!〉 등 고정관념과 편견을 뛰어넘는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유즈키 아사코는 그 동안 여성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다정하게 그려왔다. 이 작품에서는 사회의 선입견에 가뿐하게 맞서는,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통쾌한 매력의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해 신선한 재미를 안겨준다. 타인에게 거리낌 없이 손을 내밀고 도움을 받는 것이 꼭 부끄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남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는 것도 괜찮다는 것을, 여자라고 해서 예뻐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필수는 아니라는 것을, 직장에서 돈을 버는 것보다 집에서 아이를 보며 가사 노동을 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경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음식과 맛에 대한 묘사에 출중한 유즈키 아사코답게 〈아기 띠와 불륜 초밥〉이라는 작품에서 근사한 미식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어 더 좋았다. 어딘가 코믹하면서도 진지한,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여운이 남는, 감각적이면서도 담백한 유즈키 아사코의 단편들은 장편만큼이나 매력적이다. 유즈키 아사코의 전작들을 재미있게 읽어 왔다면 이번 작품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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