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사 크리스티 코드 - 다섯 가지 코드로 크리스티를 읽다
오오야 히로코 지음, 이희재 옮김 / 애플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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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열세 가지 수수께끼>에서 마플은 "인간이란 모두 엇비슷한 존재죠. 다만, 아마 다행스럽게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뿐이에요."라고 말한다.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을 추리에 끌고 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관점이나 지위, 시대에 상관 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똑같다는, 그녀의 인생 경험에서 우러난 진리에 근거한 것이다. 미스터리의 주제는 언젠가 낡는다. 하지만 인간의 삶과 심리는 절대로 낡지 않는다... 90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도 마플이 계속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삶을 녹여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p.34


추리소설을 모르는 사람도 애거사 크리스티라는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추리소설에 끼친 영향력은 엄청난데, 보편적 스토리 구성, 클리셰로 정착된 전개 방식 등 추리소설의 틀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셜록 홈즈를 탄생시킨 코난 도일이 추리소설의 캐릭터를 완성했다면, 크리스티는 추리소설의 구성을 완성했다.. 현대의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들 중에 이들의 영향 아래 놓여 있지 않은 작가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크리스티는 참으로 많고 다양한 작품을 썼고, 여러 편의 걸작이 존재한다. 영어권에서만 10억 부가 넘게 팔렸고, 103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도 상당히 많다. 


크리스티는 50여 년간 70여 편의 장편소설과 수많은 중단편, 희곡, 여행기 등을 집필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대체 뭘까. 이 책의 저자는 2018년부터 나고야 사카에 주니치 문화센터에서 「애거사 크리스티를 읽다」라는 강좌를 진행하며 크리스티의 작품에 대해 해설해 왔다. 매달 한 권씩, 크리스티의 작품 중 한 권을 정해 중요 포인트를 짚어 왔는데, 그동안 분석한 크리스티 소설의 숨겨진 코드를 다섯 가지로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탐정으로 읽다, 무대와 시대로 읽다, 인간관계로 읽다, 속임수 기술로 읽다, 독자를 어떻게 함정으로 이끄는가, 의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탐정, 무대와 시대, 인간관계, 속임수, 트릭이라는 다섯 가지 코드는 크리스티의 작품을 관통하는 비밀이기도 하고,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소설적 구조이기도 하다. 크리스티의 작품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혹은 미스터리와 크리스티를 사랑하는 마니아들도 만족할 수 있도록 쓰인 책이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결편을 읽고 나면 그 전까지의 초조한 감정조차 크리스티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음을 깨닫는다. 독자의 입에서 "그렇게 된 거였어?"라는 말이 터져나올 수 있도록, 아주 치밀하고 촘촘한 기획이 깔려 있다. 이 작품은 주요 등장인물이 전 배우, 극작가, 후원자, 무대 의상을 다루는 양장점 주인이고 이야기의 구조가 '3막'으로 표현된 점에서 연극의 형식을 따랐는데, 이조차도 트릭에 기여한다. 진상을 다 알고 다시 처음부터 읽으면 아주 초반부부터 진상을 거의 다 알려주는 힌트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p.214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은 어디에나 있는 시골 마을이나 전원지대다. 크리스티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계관에서는 과도한 폭력, 잔인함, 노골적인 성적 묘사 등이 일절 등장하지 않으며, 생활감과 유머, 그리고 로맨스가 있다. 이웃과의 트러블은 늘상 있지만 마을 사람들끼리 떠드는 가십 거리에 불과하다. 사회의 어둠을 파헤치는 하드 보일드나 누아르와 정반대되는 세계관이라서, 독자에 따라서는 너무 미지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평온한 일상이 살인이라는 비일상적 사건의 위협을 받을 때 독자들은 짜릿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 살인과 의문, 비밀과 거짓말 사이에서 비로소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인간 본성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그때가 크리스티 소설의 묘미이기도 하다. 탐정의 추리로 수수께끼를 풀고 일상의 질서를 되찾을 때는 나도 모르게 안심이 밀려들 것이다. 


크리스티는 자서전에서 탐정소설에 연애 무드가 조성되는 것은 너무 지루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녀의 추리소설 대부분에 크고 작은 로맨스가 나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랄만한 말이다. 사실 작품 속에 로맨스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이 크리스티의 작품이 지금까지 꾸준히 읽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데 말이다. 사랑, 독점욕, 질투심이란 예나 지금이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크리스티의 말은 추리와 로맨스 사이의 밸런스 조절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미스터리의 주제는 언젠가는 낡게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과 심리는 절대로 낡지 않는다는 것. 인간은 어리석고, 실패를 두려워하며, 허세를 부리고, 욕심이 생기면 성급하게 굴고 만다. 반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어리석기에 도리어 사랑스러운 것이 또 인간이다. 수십 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까지도 크리스티의 작품들이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삶을 녹여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약 1세기 전의 소설이 지금까지 꾸준히 읽히고 새로운 번역서와 영화,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비밀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크리스티의 소설에 숨겨진 비밀의 코드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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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알베르트 슈바이처 Who 세계인물 24
임영제 지음, 원 프로덕션 그림, 경기초등사회과교육연구회 감수 / 다산어린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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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개정판으로 출간된 <who? 세계인물> 시리즈! 이번에 만나본 것은 아프리카의 성자라고 일컬어지는 알베르트 슈바이처이다. 의사이자 음악가, 철학자, 신학자이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척박한 아프리카 땅에 병원을 세우고 수많은 생명을 살렸는데, 어린 시절부터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기로 결심한 모든 과정을 만날 수 있었다. 목사의 큰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지만, 가난한 친구들의 고통을 함께하려고 일부러 낡은 옷을 입고 다녔으며, 말 못 하는 짐승의 생명까지도 자신의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긴 소년이었다. 다섯 살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대학에서는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지만, 서른 살 이후부터는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한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돕기 위해 의학 공부를 시작했고, 학자로서의 삶을 버리고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로 향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닭장을 개조한 진료소를 열고 부족한 의약품으로 원주민들을 치료한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전쟁 포로가 되어 병원이 문을 닫기도 하고, 물자와 인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사람들을 돕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는 생명 외경 사상을 전 세계에 전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그야말로 위인의 정석,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 생애에 걸쳐서 배울 점이 많은, 훌륭한 인물이었다. 만화를 통해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어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슈바이처의 성공 열쇠로 이 책은 다섯 가지를 꼽는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존중, 감사하는 마음, 공감 능력, 강한 실행력, 글과 음악을 가까이 한 취미 생활이다. 어릴 때부터 생명이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던 슈바이처는 언제나 자기 주변의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는 진심 어린 공감 능력도 있었고, 하고자 마음먹은 것은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곡 해내는 실행력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뛰어 놀기 보다는 책과 음악을 더 좋아했는데, 피아노 연주는 아프리카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이어졌다. 또한 연주회로 모금 활동을 해서 병원에 필요한 의약품을 구입하기도 했고 말이다. 독서과 글쓰기 습관들도 평생에 걸쳐 이어졌는데, 덕분에 자서전을 비롯해서 여러 권의 책들도 남길 수 있었다. 




Who? 시리즈는 세계인물뿐만 아니라, 한국사, 인물 중국사, 아티스트, 인물 사이언스, 세계 인물, 그리고 스폐셜, K-pop라는 다양한 카테고리로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해왔다.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해당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만화를 통해 인물의 생애를 재미있게 읽어 보고, 각 책의 후반부에는 진로 탐색 워크북을 구성해 인물의 직업 세계를 이해하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생각해보고, 진로를 탐색하고 설계해볼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 who? 한국사시리즈에서 독립 운동가를 만나기도 했고, Who? Special 시리즈에서 오타니 쇼헤이를 비롯한 운동 선수들을 만나기도 했었는데, 학습 만화로 풀어가는 내용이라 아이도 아주 재미있게 읽는 시리즈이다. 




통합지식 플러스 코너를 통해 폭넓고 다양하게 슈바이처라는 인물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진로 탐색 코너를 통해 의사가 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한지도 생각해 보았다. 정치, 경제, 인문, 사상, 인권,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든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who? 세계인물> 시리즈는 다양한 직업군을 다루고 있어 아이들이 스스로 꿈을 찾고 이루어 가는 방법을 느끼게 해준다. 대통령, 변호사, 성직자, 애널리스트, CEO, 사회 운동가, 의사, 철학자, 환경운동가, 문화인류학자, 고고학자, 수필가 등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니 말이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독후활동을 함께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 문해력도 기를 수 있고, 다양한 영역의 통합 교육도 가능하니 일석이조! 자, 세상을 바꾼 위대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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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를 믿다
나스타샤 마르탱 지음, 한국화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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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의사와 나, 그리고 곰이 내 몸 깊숙이 두고 간 정의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할 일은 이제 '이 소통을 유지'하는 데 있다.

곰에 맞서 생존한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다가올 일'에 맞서 생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조적인 변화의 재개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우리를 매료시키는 단일성은 결국 그것의 본래 모습인 환상으로 판가름 난다. 형태는 그것만의 고유한 도식을 가지고 재구성되지만, 그것에 사용되는 요소는 모두 외부에서 온다.            p.90~91



짧게 자란 풀들로 뒤덮인 평원이 붉게 물들고 있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드러나는 것은 갈색 털 뭉치들이 흩어져 있는 가운데 체액과 피로 덮인 모호한 형상을 하고 여성이다. 그녀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인류학자인 나스타샤 마르탱은 시베리아 캄차카 반도의 화산 지대를 홀로 탐방하다가 곰에게 습격을 당한다. 광대뼈와 턱, 얼굴 전체가 찢기고 오른쪽 다리까지 물리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등반용 얼음도끼를 휘둘러 가까스로 곰을 쫓아내고 여덟 시간만에 구조된다. 


러시아 클리우치의 군사기지 병원으로 이송되어 열악한 환경에서 인공 턱을 삽입하는 대수술을 받고 간신히 회복한 뒤 마침내 가족들과 고국인 프랑스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이미 너무도 달라져있었다. 이 책은 생사의 기로를 오가는 강렬하고 생생한 체험을 기반으로 쓰인 일종의 다큐멘터리이자 회고록이다. 눈앞에서 번뜩이는 곰의 이빨과 축축한 숨결,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와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시베리아 곰에게서 생존한 사람을 구경하러 모여드는 사람들, ‘얼굴 훼손은 정체성의 상실’이라며 끊임없이 기분을 묻는 심리치료사와 자신의 몸을 연구 대상으로 대하는 의사들, 더는 함께 일상을 공유할 수 없는 친구들 속에서 저자는 생각이 많아진다. '인간인 그들과 저 위, 고도의 툰드라에 존재하는 곰의 세계 사이를 잇는, 이상야릇한 가교가 된다'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경계, 가장자리,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상태, 접경지대, 그리고 중간 세계에 대해 써왔다. 다른 존재의 힘을 만나는 것이 가능한 곳, 자기가 변질될 위험을 감수하는 곳, 그리고 한번 가면 다시는 되돌아오기 힘든 매우 특별한 공간에 대해서. 나는 매혹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항상 스스로에게 말해왔다. 사냥꾼은 먹잇감의 냄새를 풍기고 그 가죽을 뒤집어쓰고 목소리를 흉내 냄으로써 위장하지만, 가면 너머에서는 여전히 자신인 채로 상대의 세계로 들어간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혹은 우리가 속한 사람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상대를 죽일 수 있는가. 혹은 실패하고 상대에게 집어삼켜져 인간의 세계에서 살기를 멈출 것인가.               p..149



병실에 있는 저자에게 FSB, 러시아 연방보안국 요원이 찾아온다. 클리우치 즉 군사 요충지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어떻게 곰의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한다. 그리고 '이 지역의 러시아 군사 시설을 정찰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파견된 고도로 훈련을 받은 비밀 요원'이 아닌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저자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간첩 행위는 없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세 시간 넘게 설명해야 했다. 이후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로 돌아오지만, 의료진은 러시아의 수술이 잘못되었다며 ‘프랑스식’으로 다시 수술받아야 한다고 진단하고, 다시 또 수술이 시작된다. 육체적인 고통은 점점 심해졌고, 내면에서는 살아 숨 쉬는 곰의 존재를 끊임없이 느낀다. 


이 모든 길고 끔찍한 과정들을 서술하는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시적이다. 곰과의 결투 이후 섬광의 순간, 숲의 자명함, 죽지 않도록 결심하게 만든 명백함, 시간 이전의 시간, 살아갈 세상에 대한 주제로 협상을 구축하는 시간...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사유가 아름다운 언어로 페이지마다 그려지고 있으니 말이다. 곰에 맞서 생존한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다가올 일에 맞서 생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조적인 변화의 재개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가을에 시작되었던 이 이야기는 겨울을 병원에서 보내고, 봄을 거쳐 여름으로 향한다. "나는 우리의 삶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삶의 불확실성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다. 그래서 저자가 피해자로 남는 대신 인류학자로서 다시 서기 위해 한 선택이 더욱 멋지게 느껴졌다. 인간과 짐승이라는 경계를 넘어서면 보이는 세상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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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부자 유전자 - 부자의 삶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30
한민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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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한국은 사회 전반에 ‘부자 신드롬’이 깔려 있는 듯하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사람의 삶을 보면 부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 굉장히 다양한 방면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테슬라나 엔비디아의 주식을 사서 돈을 벌었다거나, 위험을 감수한 덕분에 코인으로 벼락부자가 되었다거나, 갭투자 등으로 부동산에 투자해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 이야기가 종종 들리고 부자가 되는 법, 자산을 늘리는 법을 알려준다는 유튜브 채널도 수없이 많다... 유튜브나 미디어, 소셜미디어를 보다 보면 한국에서 나 혼자만 부자가 아닌 것 같고, 나 혼자만 부자가 되지 못할 것 같고, 나 혼자만 뒤처질 것 같은 불안이 생긴다.              p.15~16



대한민국 대표 교수진이 펼치는 흥미로운 지식 체험, ‘인생명강’ 시리즈의 서른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전국 대학 각 분야 최고 교수진의 명강의를 책으로 옮겨 다양한 분야의 지식 콘텐츠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나온 것은 문화심리학자 한민 교수가 한국인이 겪어온 가난의 역사를 토대로 한국 사회의 부자 열풍 현상의 기원을 문화, 사회, 경제, 심리학적 측면에서 심층 분석하면서 부자가 되지 못했을 때의 삶을 대안을 모색하는 책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의 현대사부터 시작해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지금도 여전히 '더 많은 부'를 원하는 이유, 그로 인한 경쟁과 그에 따른 스트레스, 불안과 우울, 사회적 갈등에 휩싸이게 된 현재를 되짚어 본다. 낮은 행복도와 높은 자살률,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 심화되는 사회 갈등과 늘어나는 혐오 범죄는 부자가 되기 힘들다는 한국인의 좌절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끝없이 부를 좇는 것인지, 부자가 되지 못했을 때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저자는 더 이상 부의 축적이 성공한 삶과 행복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학벌, 연봉, 명품, 아파트로 대표되는 부의 기준에서 벗어나더라도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자기실현’의 추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나는 부자가 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했지만 부자가 되지 못했다. 이런 결과라면 냉정하게 말해서 앞으로도 부자가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용기를 꺾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막연하게 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부자가 되기 위한 직업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투자나 저축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을까? ... 하지만 그전에 부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왜 부자가 되어야 하나? 충분한 돈이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어느 정도인가? ... 부자가 되는 것이 내 삶의 이유인가? 부자가 되지 못하면 내가 아닌가?               p.172~173


제목만 보자면 여타의 많은 책들처럼 '부자가 되는 기술'이라도 알려줄 것 같지만, 이 책은 대신 왜 우리가 끝없이 부를 좇는지, 부자가 되지 못했을 때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이 책이 '살아갈 이유에 대한 '책'이라고 단언한다. 우리는 왜 부자가 되고 싶을까. 부자가 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리고 부자가 되지 못한다면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할까. 하지만 온갖 미디어와 소셜미디어에서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은 것또한 사실이다. 저자는 한국인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 문화적 정서부터 차근차근 들여다본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정서와 삶에 어떤 기준이 있다는 생각이 우리의 현실을 불행하게 만든다. '남 부끄럽지 않은 삶, 또는 '남부럽지 않은 삶'이라는 것이 한국인의 삶의 기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불행하게 만드는 마음 습관 중 하나가 상대적 박탈감이다. 재산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해지는 습관인 것이다. 그렇다면 돈이 전부라 믿는 사회에서 삶을 지켜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돈만 좇느라 정작 삶의 이유와 행복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의 추월차선’에서 벗어나 진짜 성공과 행복을 찾는 방법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또한 부자가 되지 못했을 때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의 가능성을 모색해봐야 한다. 저자는 무한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방법을 안내한다. 학벌, 연봉, 명품, 아파트로 대표되는 부의 기준에서 벗어나더라도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내 삶의 이유는 자신에게서 비롯되어야 한다. 사회적 분위기나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경쟁과 불안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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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넘 숲
엘리너 캐턴 지음, 권진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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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라가 그렇게 원예 농업에 빠진 한 가지 이유는 식물을 돌볼 때면 가차 없는 자기비판 습성에서 한숨 돌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식물을 키우면 명백히 용서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삶의 다른 어떤 영역에서도 불가능한, 영속적으로 이행하며 새로워지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실패하고 실수해도 ─ 예컨대 양파 씨앗은 오래 보관할 수 없다거나, 흙 온도가 낮으면 당근색이 연해진다거나, 회향풀은 다른 식물의 성장을 막기 때문에 따로 번식시켜야 한다는 사실들을 배울 때 ─ 전혀 야단맞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텃밭에서는 진실이 올바름의 형태를 취하지 않았고, 옳음의 반대가 틀림도 아니었다.              p.76



미라는 버려진 땅에서 작물을 키우는 게릴라 가드닝 단체 〈버넘 숲〉의 설립자다. 게릴라 가드닝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땅에 쓰레기 대신 꽃과 식물을 심어 정원을 만든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토지 소유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몰래 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환경 운동가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이상을 품고 있는 미라는 5년간 활동해왔지만 조금씩 침체되어 가고 있는 버넘 숲의 미래를 위한 돌파구를 찾는 중이다. 그녀는 산사태로 고립된 마을 부지 답사에 나섰다가, 제조업체의 CEO이자 억만장자인 로버트 르모인과 우연히 맞닥뜨린다. 


땅의 원래 주인이 알면 안 되는 계획을 각자 품고 있던 미라와 르모인은 원예가와 기업가라는 상반된 직업에 추구하는 가치도 전혀 달랐다. 이론상으로는 철천지원수 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서 묘한 공통점, 자신만만하고 매력적인 야심가라는 점을 발견한다. 미나는 처음에 자신의 가짜 신분 중 하나를 골라서 말하며 그 자리를 회피하려고 했지만, 사실 르모인은 그녀의 이름이 미라라는 것과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간파해낸다. 이유는 그녀를 먼저 발견한 즉시 미라의 휴대 전화와의 강제 연결로 신원 정보에 접근해 그녀에 대해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르모인은 미라에게 '당신이 날 방해하지 않으면 나도 당신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미라와 그녀의 프로젝트를 이용해야겠다고 마 음 먹었기 때문이다. 르모인은 자신이 비밀리에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숨기기 위한 연막작전으로 버넘 숲에 재정 지원을 약속하는데, 그로 인해 갈등이 시작된다. 





「...뭐가 옳은지는 사실 아무도 모르잖아. 내 말은, 뭐가 옳은지 안다고 생각할 수 있고, 안다고 자신에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선택하는 시점에는, 그러니까 그 순간에는 절대 확신하지 못하잖아. 그냥 바랄 뿐이지. 그냥 일단 행동하고 최선의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거지. 지나고 보면, 그게 옳은 일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었을 수도 있지. 아닐 경우에는, 적어도 노력은 했다고 말할 수밖에. 하지만 잘못된 일은 말이야, 종종 훨씬 분명해. 잘못된 일은 많은 경우 옳은 일보다 더 잘 보여. 더 명확해. 이건 내가 안 넘을 걸 아는 선, 이건 내가 절대 하지 않을 일, 이런 식으로.」              p.332~333



공식적으로 버넘 숲은 시내의 열여덟 군데에서 경작하고 있었다. 요양원과 어린이집 정원, 병원 주차장 근처, 학생 임대 아파트 마당 등에 자리하고 있었다. 땅과 수돗물을 사용하는 대가로 땅 주인들에게 모든 수확물의 반을 주고, 나머지 반은 회원들끼리 소비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기도 했다. 누구도 임금을 받지 않았고, 모든 자산은 공동 소유였으며, 활동은 거의 모두 비상근으로 이뤄졌다. 미라의 친구이자 현실적인 조력자인 셸리는 활동 계획을 좀 더 안정적으로 세우기 위해 농산물 구독 서비스를 시작해보자고 의견을 냈지만 결국 실현되지는 못했다. 셸리에 비해 미라가 버넘 숲에 품은 야심은 급직적이고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사회 변화였다. 버넘 숲에는 현명적 목표를 품은 이론 공상적 사회 개량주의자들, 두 개의 파가 존재했다. 미라는 르모인의 제안을 손에 쥐고 버넘 숲의 일원들을 설득하려 한다. 어떤 조건도 없이, 그냥 기부 같은 걸로 자금을 대주겠다고 했다며, 그걸로 우리가 제대로 된 비영리 기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버넘 숲의 일원들은 각자 생각이 달랐다. 


이 작품은 <루미너리스>로  맨부커상 최연소 수상을 했던 엘리너 캐턴이 10년만에 발표한 신작이다. 자본주의 구조 밖에서 활동하던 원예가가 엄청난 자본과 함께 나타난 기업가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단순한 선과 악의 구도를 넘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절대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맥베스의 '버넘 숲'이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떠올려보면, 이 작품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 이들은 과세 신고도 하지 않고 단속도 받지 않으며 때로는 범죄자, 때로는 박애주의 친구 모임 같은 집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억만장자 르모인이 나타나면서 사태가 달라지고, 충격적인 사고와 어두운 비밀이 드러나면서 산사태처럼 휘몰아치는 전개가 이어진다. 우리 시대의 핵심 문제에 대한 깊은 통찰뿐만 아니라 이야기 자체로서도 매우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압도적인 몰입감의 페이지 터너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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