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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즈
무라야마 유카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려서부터 얼마나 많은 종이책이 자신을 구해주었던가. 책을 읽다가 주인공과 동화해서 분노로 부들거린 적도 있다. 눈물로 페이지가 얼룩진 날도, 다 읽은 책을 끌어안고 잠든 밤도 있다. 전자책으로는 그럴 수 없다. 은은하게 단내가 나는 낡은 종이 냄새를 맡을 수 없고, 꺼끌꺼끌한 촉감이나 두툼한 무게에 용기를 얻지도 못한다. 그때그때 자신이 품에 그러안았던 것은, 페이지 안에서 펼쳐지는 끝없는 이야기 세계인 동시에 '책'이라는 실체 있는 보물이었다. p.90~91
아모 카인은 끊이지 않고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키면서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된 작품도 다수인 인기 작가이다. 초판 5만 부, 출간도 하기 전에 증쇄 3만 부를 찍을 정도로 단단한 팬층이 있고, 전국 서점 직원이 뽑는 서점 대상에는 매년 후보로 오를 만큼 단골인데, 이상하게도 프로 작가가 심사하는 유명 문학상은 매번 코앞에서 미끄러졌다. 나오키상에도 두 번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받지 못했다. 판매 부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인데, 대체 왜 상을 받지 못하는 걸까. 아모 카인은 자기 작품의 어디가 문제인지, 문학상을 받기에 뭐가 부족한 지 알 수 없어 더 억울하고 분했다. 그리고 그만큼 간절하게 나오키 상을 받고 싶었다. 프로 작가에게 주어지는 문학상은 스무 개가 넘었고, 제각각 심사 과정이 다르다. 그 중에서도 나오키상의 심사 과정은 아주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다른 상과 비교해도 대중의 주목도나 인지도의 차원이 다르다.
한편 아모 카인은 내년에 출간되는 장편소설의 초교 교정지를 받아 보고 화가 난다. 교정 담당자가 요소요소 적어놓은 연필 흔적에 짜증이 치솟고 심란해졌다. 지적이 하나하나 초점을 벗어났던 것이다. 담당자는 큰 흐름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소름 끼칠 정도로 아무 의미 없는 것만 소상하게 찔러대고 있었다. 멍청한 소리들을 읽다 보니 어이가 없어 한숨만 나왔다. 교열이라는 업무에 큰 도움을 받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가끔 상성이 최악이면 교정지를 살피는 내내 성질이 가라앉지 않았는데, 이번 교정이 딱 그랬다. 이런 교정지를 보낸 담당 편집자에게도 분노가 치솟아서, 원고를 아무것도 고치지 않고 다시 담당자에게 돌려 보냈다. 결국 글을 연재했던 출판사가 아니라 다른 출판사와 책을 내기로 한다. 이번 편집자는 자신의 글을 믿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선생님 편이 되겠다고 말할 정도로 믿음직스러웠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며, 조금씩 사이가 가까워지는데... 과연 두 사람이 만들어낸 신작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까. 아모 카인은 이번 신작으로 염원하던 나오키 상을 수상할 수 있을까.

"인제 와서 새삼스럽지만 저요, 이번 <테세우스>가 정말 좋아요. 지금까지 작품과 확연하게 달라요. 이것도 실례되는 말이겠지만, 수준이 다른 깊이가 있어서, 지금까지 가지 못한 곳에 도달한 것 같아요. 게다가 저는 그 두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애틋해서...... 진정한 악인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데 왜 이토록 잘 풀리지 않을까, 왜 다들 이런 상처를 받아야 할까, 하지만 인생이란, 산다는 건 분명 그런 거다...... 싶어요. 왠지 저 자신을 투영하는 마음으로 읽게 돼요. 몇 번을 다시 읽어도 감동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점점 깊어져요. 대단한 작품이에요." p.350~351
나오키상과 아쿠타가와상은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이다. 상반기와 하반기 연 2회 진행되고, 그 결과는 국내 출판계에도 영향을 끼칠 정도로 늘 화제가 되곤 했다. 작년 7월,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 선정 위원회는 두 상 모두 '해당 작품 없음'을 발표했다. 신인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아쿠타가와상은 14년 만에 수상작을 배출하지 못했다. 두 문학상이 동시에 수상작을 선정하지 못한 것은 무려 27년 만이다. 일본 출판계의 축제라 불리는 두 상의 선정 불발 후, 전국 서점 직원들이 “지금이야말로 이 책을 읽어야 할 때!”라며 수상작을 대신해 꺼내 든 책이 바로 이 작품 <프라이즈>이다. 무라야마 유카는 에쿠니 가오리, 미야베 미유키와 함께 사랑받는 일본의 3대 여성 작가이자 제129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출간 직후부터 화제가 되어, 올해 서점 대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언급되고 있는 중이다.
이 작품은 출판사 편집자와 작가의 교정 과정부터 문학계 안팎의 리얼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일본 최고 문학상을 차지하기 위해 혼신을 바치고, 최선을 다하는 편집자의 열정과 작가의 욕망을 아주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기에 독자 입장에서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작가는 목숨을 걸고 쓰고, 편집자는 몸을 갈아 넣어 만든다. 온 마음을 다 쏟아붓는 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 세계가 얼마나 치열하고 진지한지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출판계라는 특수한 업계의 현실을 엿본다는 설레임과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정받고 싶은 갈망에 대한 공감이 어우러져 너무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나오키상을 비롯해 일본의 문학상들은 우리 나라에 번역 소개되는 작품들에도 꽤나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푹 빠져서 읽을 만한 작품이다. 자, 하이퍼 리얼리즘 출판 서스펜스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