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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 상처 입은 동물들을 구조하며 써내려간 간절함의 기록
김정호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언젠가부터 나는 동물이 죽고 사는 것보다는 사는 동안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아닌지에 관심이 더 많아졌다. 몸의 고통을 빨리 발견하여 해결해주는 것이 수의사로서 동물 복지를 실천하는 길이라 믿는다. 동물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가만히 말해본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그러면 좀 더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p.104
어린 시절에 다들 동물원에 대한 기억이 한두 번쯤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동물들을 보며 신기하고 놀라웠지만, 어른이 되면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는 이상 동물원에 굳이 가지는 않게 되는 것 같다. 그 이유가 뭘까. 아마도 갇혀 있는 동물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야생 동물들을 위한 환경이 열악하기에 우리 속에 있는 동물들의 상태는 건강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가끔 탈출한 동물들이 거리를 질주하다가 사살되었다는 보도를 접하게 되면 마음이 아프다. 야생을 경험해 보지 못한 동물들의 최후가 비극이 되지 않도록, 야생 동물들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이 책은 그런 고민에 대한 일종의 답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실내 동물원에서 굶주린 채 방치돼 갈비뼈만 남은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샀던 '갈비 사자' 바람이의 사연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당시 동물원장을 설득한 끝에 구조한 것이 바로 김정호 수의사다. 바람이는 청주동물원으로 옮긴 지 한두 달 만에 갈비뼈가 보이지 않는 건강한 상태가 되었는데, 이 사연은 유퀴즈에 나오며 더 많이 알려졌다. 이 책은 25년 차 동물원 수의사가 들려주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죽어서야 나올 수 있는 케이지를 살아서 나온 국내 최초의 곰 네 마리 반, 달, 곰, 들, 7년 동안 좁은 공간에 갇혀 무기력하게 지내다 구조된 사자 바람이, 짧은 목줄에 묶인 채 뙤약볕에서 숨을 헐떡이던 래브라도리트리버 수박이 등 동물들의 이야기는 그들 각자에게도 삶이 있고, 그것을 존중해 줘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돌봄과 책임,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것에 대한 의미도 되새겨보게 만들어 주었다.

동물원이 있어야 한다면 사람이 아니라 야생동물에게 필요한 장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가 있거나 노령인 야생동물이 여생을 보내는 곳, 다친 야생동물이 치료를 받고 자연으로 복귀하기 전 적응훈련을 받는 곳, 방문객들이 이러한 야생동물을 경험하고 같이 살아갈 방법을 고민해보는 곳이면 좋겠다. 동물원이 야생동물을 소유하지 않고, 잠시 머무는 존재들이 안식처가 되면 어떨까? 갖지 않기로 하면 더 많은 것을 향유할 수 있다. p.142
야생돌물은 자신의 약점을 본능적으로 숨긴다고 한다. 질병과 부상이 야생의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맹수들은 자신의 아픔을 쉽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저자는 폐사한 동물들을 부검하다 보면 이런 몸 상태로 어떻게 고통을 참고 있었는지 놀라웠을 때가 많았다고 말한다. 동물원에 동물병원이 필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아플 때 잘 치료해주기 위함도 있지만, 아프다고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야생동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몸의 이상을 미리 발견하고자 하기 위해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물도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필수인 것이다. 자연에서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야생동물이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외상은 비교적 잘 아문다고 한다. 관심을 갖고 미리 살펴봐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동물의 안부를 매일 묻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청주동물원의 동물들을 비롯해 각종 전시장에서 늙고 아픈 동물들의 이야기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동물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귀엽지 않고 늙고 장애가 있는 동물도 편안히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저자의 간절한 진심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동물원이 희귀한 동물을 물건처럼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갈 곳 없는 동물의 보호소이자 자연 복귀를 준비하는 야생동물들의 재활치료소이길 바란다'는 저자의 말이 너무도 와 닿았던 책이다. '사람 살기도 힘든데 무슨 동물까지 챙기느냐?'는 의문에 '동물이 살 만하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대답을 돌려줄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책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동물을 살리는 일이 결국은 사람을 살게 하는 일이 되기를, 소외된 동물의 보호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로 확장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