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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괴담
온다 리쿠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5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괴담은 왜 이렇게 인기가 있을까. 21세기가 되면 과학의 진보와 함께 없어질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까?"
다몬이 누구한테 묻는 것도 아닌 말투로 중얼거렸다.
"양쪽 다가 아닐까?...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좋은 거야. 믿느냐 안 믿느냐가 아니라, 모르니까 좋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필요로 한다고 생각해." p.59
백주대낫에 한창 일할 나이인 중년 남자 넷이 모여 모임을 갖는다. 이름하여 '커피 괴담' 모임이다. 이 모임은 오로지 찻집만 순례하면서 시원한 바람도 쐬고 번갈아 괴담을 이야기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의 장소에서는 딱 하나의 괴담만 이야기해야 하기에, 괴담이 끝나면 다른 장소로 이동 전에 일상적인 수다를 나눈다. 함께 모인 네 명의 친구는 작곡가 겸 스튜디오 뮤지션인 오노에, 스타일은 펑크 로커처럼 보이지만 의사인 미즈시마, 레코드 회사 프로듀서인 다몬, 금융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 구로다이다.

오봉은 아직 멀었고, 장마가 끝나지도 않은 참으로 어중간한 시기에 이들의 첫 모임이 시작된다. 작곡가인 오노에게 작품이 잘 풀리지 않아 상황 타개를 꾀한다는 명분으로 옛 친구들을 불러 모은 것이 커피 괴담의 시작이었다. 여름의 교토에서 시작된 모임은 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요코하마를 거쳐, 도쿄의 세계 최대 고서점 거리 진보초, 깊어 가는 가을 고베의 번화가, 오사카의 복고적인 찻집을 거쳐 다시 늦가을의 교토로 이어진다. 각자 일상에서 겪었던 괴담이나,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은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드라마틱하게 무섭지는 않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싹해지는 종류의 괴담들이다.

"그럼 시시한 결말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이 부조리의 증거인 것 같아."
"요컨대 위화감이나 어긋남, 그러니까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무서운 거야." 다몬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그래. 예를 들면 다몬의 사고 회로라든가."
..."뭐? 내 사고 회로? 그게 왜?"
"이것 봐. 본인은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지만, 다른 사람은 그걸 이해할 수가 없어서 무서운 거야." p.252
내가 온다 리쿠의 작품을 처음 접했던 것은, 2007년 여름 <유지니아>라는 작품이었다. 매력적인 작가를 처음 만나면 늘 그렇듯이 그 작품 이후로 온다리쿠의 작품들을 죄다 찾아서 섭렵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만났던 온다 리쿠의 작품들은 이후 여름만 되면 새록새록 떠오를 정도로 강렬한 색감을 가진 독특한 이야기들이었다. 벌써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지금도 장면 장면이 다 기억날 정도로 이상하게 그 시절에 읽었던 작품들은 나에게 묘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 섬뜩하게 느껴지는 공포도 아무렇지 않게 그려내고,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과 불안함이 스멀스멀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 온다 리쿠만의 매력이다.
독보적인 색깔을 가지고 있는 작가답게 SF, 판타지, 호러,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로 서정적인 공포를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공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 실제 사건에서 힌트를 얻어 각색한 이야기답게,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져 더욱 오싹해지는 느낌이었다.

온다 리쿠는 덧붙이는 말에서 자신이 과거에는 '맛있는 커피는 밖에서 마신다'는 주의였다고 한다. 집에서는 인스턴트커피밖에 마시지 않았고, 찻집 순례가 취미였다는 것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찻집은 저마다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서 재미있는데, 다른 세계, 다른 시대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곳들도 많아 괴담을 이야기하는 무대로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경험을 살려 쓰인 것이 바로 이 <커피 괴담>인 것이다. 괴담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가게들도 모두 실제로 존재하는 곳들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이상한 예감이 드는 꿈, 오래 전 살인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 낯선 곳에서 만나는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얼굴, 아무리 생각해도 기이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일상생활 곳곳에 괴이한 무언가가 있어도, 그것이 일상의 얼굴을 하고 있다면 알아 차리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이 작품은 그렇게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어 주고, 인간 근원에 놓인 공포라는 감각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해준다. 또한 '무섭다'는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일체감과 괴담을 이야기할 때의 독특한 친밀감으로 공포라는 감정을 친숙하게 느껴지도록 하기도 한다. ‘노스탤지어의 마술사’ 온다 리쿠가 그려내는 서정적 공포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