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의 기술 - 최소 노력으로 삶에 윤기를 더하는
이노우에 신파치 지음, 지소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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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꾸준히 글을 쓰는 비결은 '매일 하기'다.

매일 하는 것이 곧 무조건 오래가는 '대단한 방법'이다. 정말, 정말로. 날마다 거르지 않고 하면 반드시 이어지니까.

'못 하는 날'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 못하는 날은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건 '매일 한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꾸준함을 쉽게 손에 넣으려면 선택지를 줄이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우선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를 없애버리자. '한다', '하지 않는다'를 날마다 일일이 고민하지 않게 만들면 된다.              p.72


정말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을 만나왔지만, 단연코 시선을 사로잡는, 너무도 흥미로운 자기계발서를 만났다. 바로 북디자이너이자 습관 부자인 이노우에 신파치의 <꾸준함의 기술>이다. 저자는 어시스턴트 없이 혼자 1년에 200권 가까이 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디자인해왔다. 게다가 본업뿐만 아니라 연 1회 사진전 개최를 20년 동안 해왔고, 매일 루틴으로 조깅 25년, 일기 쓰기 22년, 블로그 글쓰기 9년, 춤 연습 3년, 책 한 권 읽기 3년 등을 지속하고 있다. 어떻게 이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는 걸까. 시간이란 모두에게 공평하게 하루 24시간이 주어졌던 게 아니었나. 이런 취미를 이리도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해온다는 게 가능한 일인 것일까.


그렇다. 누구라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러한 '괴물 루틴'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내 취미는 꾸준함'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삶이 너무도 궁금해졌다. 우선 기상은 대부분 4시견에 일어난다. 먼저 물 마시기, 베란다로 나가 하늘 사진 찍기,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기온 추측해 스마트폰에 기록하기, 어제 하루에 대한 감사 인사하기, 스트레칭하기, SNS와 뉴스 체크하기, 기획 구상하기, 명상까지 이 모든 게 20분 정도 걸린다. 이후 아침 업무를 처리하고, 어제 한 일을 체크하고, 오늘 끝낼 일들 순서를 정하하는데까지 9시 무렵에 마무리가 된다. 이후 취미, 기록, 운동을 번갈아 수행하는 루틴이 12시쯤 마무리되는데, 이 모든 루틴을 20년에 걸쳐 다듬으며 지금은 숨 쉬듯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퇴사 후 프리랜서가 된 이후 꾸준한 자기관리가 필수가 되었고, 그러다 점점 꾸준히 하는 것 자체가 취미가 되었다고 말이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처음부터 '성취'나 '발전'을 그리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달성해야 할 목표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발전 따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재미있든 재미없든 상관없다. '이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 없이 시작하면 벽에 부딪힐 일도 없다.

이런 일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건 모른다.

다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꾸준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달라진다는 사실 말이다.

눈에 보이는 발전이 없더라도 끊임없이 계속하면 반드시 변화가 찾아온다.                 p.168~169


저자는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하면 무리 없이 모두 해낼 수 있을지 실험과 검증을 거듭하며 조금씩 고치고 또 고쳤다고 한다. 그렇게 20년이 지나고 보니 어느덧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자동으로, 저절로 '꾸준히 이어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차례차례 연속으로 다양한 과제를 자동으로 처리하며 마치 각각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게임처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저자의 습관 루틴들은 생각보다 접근성이 어렵지 않아 누구라도 따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어떻게 해야 꾸준히 계속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지나치게 애쓰지 않고 쉽게 지속할 수 있을까. 그 답은 바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는 일'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한다'와 '하지 않는다'를 날마다 일일이 고민하지 않도록 만들면, 그것만으로도 꾸준히 하기가 눈에 띄게 쉬워진다. 


이 책에 수록된 저자의 일상 루틴과 습관화의 비결은 그야말로 단순하고, 명쾌하다. 복잡하지 않고, 어렵지 않아서 읽다 보면 꾸준함이 이렇게 쉽게 할 수도 있는 거구나 감탄하게 된다. 없는 시간은 아침에 만든다, 기록하면 인생이 재미있어 진다. 하기 싫은 일일수록 해본다, 목적이 있든 없는 지금 눈앞에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은 되는대로 적당히 시작해본다, 매일 정해진 시간만큼 묵묵히 몰두한다, 쉬려면 내일 쉬자, 오늘은 하자! 등등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팁들이 깨알같이 수록되어 있다. 꾸준함이 취미가 되면, 착실히 쌓은 것들에 의해 사람이 변화한다는 말이 점점 와 닿기 시작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아도 변화는 틀림없이 일어난다는 것. 작은 일을 꾸준히 반복하는 사이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그것이 이윽고 '자신'이 된다는 것을 공감하게 되었다. 일본 서점가를 휩쓴 습관 책 1위답게 정말 실용적이고, 한 눈에 쏙쏙 들어오는 포인트들로 가득한 책이었다. 그저 그런 뻔한 말이 아니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희망이 아니라, 시간과 성실함이 만들어 내는 마법이다. 저자가 실천해 온 26가지 루틴 중에 당신에게 꼭 맞는 것을 부디 발견해보기를, 그렇게 되면 이제 당신도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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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티브는 쉬운 영어로 말한다
션 파블로 지음 / 길벗이지톡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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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영어 공부 좀 안해본 이가 어디 있으랴. 우리는 학교에서 주구장창 주입식 영어 공부를 해왔고, 대학에 가서도, 직장에 가서도, 영어 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덕분에 나 역시 꽤 많은 히스토리를 거쳐오면서 나름 영어 공부를 해왔지만 글쎄, 의지의 문제인지 방법의 문제인지 아직까지 꽤 만족스러울 만한 결과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는, 혹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 한 켠에 있어서 매년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곤 한다. 올해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말이다. 그런 나에게 정말 시선을 잡아 끄는 책이 있었으니, 바로 원어민 영어 학습 유튜브 1위, 미국인 영어 선생님 션 파블로의 첫 책이다.




1억 2,500만 뷰! 구독자 54만을 보유한 션 파블로는 13년 동안 한국에서 생활하며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수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어 왔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를 배우는 한국인들의 고민을 이해하게 되었고, 진짜 네이티브가 쓰는 영어를 알려주자는 마음으로 유튜브 채널을 만들게 되었다. 그렇게 길거리 인터뷰, 문화 비교, 실생활 표현 등 교과서에는 없는 '살아 있는 영어'로 가득한 채널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네이티브들이 매일같이 쓰는 영어 표현 500문장을 엄선해 담고 있다. 평소에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듣는 멋진 표현들을 통해 영어를 배워 왔다면, 실제로 미국에서 아무도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당황할 수 있다. 그것들이 실제 직장, 여행, 친구들과의 대화나 가족 간의 대화 등 일상에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어민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찐 일상 회화 표현은 어떤 것이 있는 것일까. 이 책은 그에 대한 대단히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 준다. 




다양한 종류의 영어 회화책을 만나봤지만, 이 책은 꽤나 두툼한 페이지를 자랑한다. 무려 560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영어 책은 처음이라 더 기대가 되었다. 이 책의 구성은 하루에 5문장을 100일 동안 공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네이티브가 항상 입에 달고 사는 500문장에 어려운 단어는 없지만, 의외로 잘 모르거나 실수하는 표현들만 엄선했다. 미국인 전문 성우들이 실제 대화처럼 녹음한 mp3파일도 무료 제공되니, 정확한 발음으로 함께 익힐 수 있다. 특히나 이 책이 특별한 점은 션 파블로의 영어 설명이다. 각각의 표현에 대해 쉬운 영어로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뒤페이지에는 한국어 해석을 따로 정리해두었다. 영어는 영어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단 몇 장만 공부해봐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This really hits the spot. (정말 딱이야), I wolfed it down. (배고파서 순삭했어요), I told you so! (내가 뭐랬어!), You got ripped off. (너 바가지 썼어. 사기당했어), You nailed it! (정말 잘했어! 완벽했어!) 등등 정말 아는 단어들로만 이루어진 문장인데, 처음 듣는 표현들이 너무 많았다. 그 동안 대체 어떤 영어 표현을 공부해왔는지 새삼 반성하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하루 분량의 공부는 문장 훈련과 대화 연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이티브의 영어 표현 5문장과 그 표현들을 사용해 실제로 네이티브들의 대화에선 어떻게 활용되는지 확인하고 연습하도록 되어 있다. 문장 표현은 앞장이 영어, 뒷장이 한국어로 되어 있고, 대화 연습은 반대로 한국어 표현이 앞면, 영어 대화문이 뒷면에 있어서 실제로 듣고, 말하면서 연습해보기 딱 좋게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게임처럼 재미있게 복습할 수 있도록 10일 분량의 학습이 끝난 뒤 '망각방지 장치'로 내가 배운 표현들을 잊지 않도록 도와준다. 객관식, 주관식, 대화 완성의 3단계로 점검하니, 배운 것들을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진짜 네이티브들이 쓰는 영어 표현을 배우고 싶다면, 단어를 찾아볼 필요 없이 쉬운 영어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네이티브들도 인정한 진짜 현지 영어회화를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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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생활 - 기록으로 취향을 발견하고 나만의 길을 만드는 법
논디 김하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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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는 기록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어요. 새해가 되면 그해에 이루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일을 기록하는데요, 다소 뚱딴지같은 일일지라도 그저 흥미가 가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무조건 적어요. 이렇게 적어두고 종종 들여다보며 하루하루 살다가 나중에 다시 기록을 봤을 때 실제로 이루어낸 것들이 생각보다 많아 놀라곤 합니다. 그럴 때면 잘 살아왔구나 싶어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설령 다 이루지 못했어도 괜찮아요. 기록하는 일 자체만으로도 앞으로의 일상을 살아가는 데 분명 큰 에너지가 되거든요.             p.20



이 책을 쓴 김하영 작가는 '기록이라는 작은 습관'을 통해 퍼스널 브랜딩을 확립하고, 크리에이터 '논디'로 14만 팔로워를 사로잡은 인플루언서가 되고, 자신만의 취향과 가치를 담은 브랜드 '데이오프 프로젝트'를 설립했다. 저자는 어떻게 평범한 회사원에서 불과 1년여만에 파워 인플루언서가 되고 1인 브랜드를 운영하는 등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낸 걸까. 제품 디자이너인 저자는 회사를 그만둔 후 기록으로 스스로를 분석해 '잘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취향을 발견하고, 영감을 얻고,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기록'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에 대해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스케치북, 다이어리, 수첩 등 종이 위에 무언가를 그리고 쓰는 일을 좋아해왔는데, 무엇이든 쓰는 생활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한다. 덕분에 어떤 일을 할 때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것과 짧게라도 종이에 쓰는 것이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경험하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 


실제 기록이 담긴 노트 사진부터 저자의 감각적인 공간과 책상 위 소품들 사진까지 가득 담아서 누구라도 이 책을 넘기다 보면 '기록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투 두 리스트 노트, 모닝페이지, 일기, 업무일지, 소비기록, 위클리 다이어리, 영감 노트, 독서 노트, 아카이브북, 스마트폰 메모 앱과 SNS 저장탭, 드로잉북 등 목적과 유형에 맞는 기록 노하우가 상세히 담겨 있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논디만의 스타일로 완성한 방 꾸미기, 책상 꾸미기에 대한 팁과 추천하는 데스크테리어 아이템도 놓치지 말자. 





책상 공간 하나 정돈해본다고 무엇이 바뀔까 싶지만 1퍼센트라도 내 일상과 생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겠죠.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작업을 하면서,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살고 미래를 계획해 보는 기록을 하면 머리가 맑아지고 운이 트이는 느낌이 듭니다. 반면 책상을 멀리하고 침대에 너무 오래 붙어 있으면 잠깐은 휴식이 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무기력해지고 멍해지는 느낌을 많이 받아 되도록이면 경계하려 합니다.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다면 조금이라도 내 취향을 담아 가꿔놓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p.154



사실 기록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예쁜 다이어리와 노트들을 준비해두고 끝까지 쓰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적 누구나 있을 것이다. 늘 중간에 멈춰버리고, 그 다음해에는 또 새로운 다이어리로 시작하기를 반복하다보니 한 켠에 새 다이어리와 노트만 잔뜩 쌓이게 되고 말이다. 기록하는 습관은 이렇게도 꾸준히, 계속 지속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와닿았던 것 같다. 정말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방법을 담았고, 기록하는 습관의 매력을 근사한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저자의 행보가 기록의 가치를 제대로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가 실제로 사용하는 11개의 노트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이런 식으로 기록을 해보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되어 주기도 하고, 기록을 통해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하니 말이다. 




매일 밤 노트에 내일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적어놓고 다음 날이 되면 적힌 체크리스트 항목을 하나씩 지워가는 습관은 나도 꽤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다. 워낙 매일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시간은 부족하다보니 체크리스트가 필수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와 다른 점은 노트에 차곡차곡 기록해서, 기록을 아카이빙할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늘 그날의 일정을 체크하면서 지우면, 해버린 것들을 다시 돌아볼 시간이 없었던 탓이다. 이 책을 보다보니 저자가 사용하는 포인트오브뷰의 애플저널이 재질도, 사이즈도 딱 좋아 보였다. 이번에는 한 번 저자처럼 기록들을 잘 모아서 아카이빙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 멋지다고 생각한 아이디어나 자료들을 오래 기억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니 이렇게 저자처럼 다양한 기록방법을 통해 최대한 기억을 붙잡아두면 좋겠다는 느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록을 해두는 것으로, 중요한 것들을 오래 기억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어떤 분야에서든 도움이 될테니 말이다. 산만한 생각을 정리해 실행력을 높이고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기록의 힘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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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온다 리쿠 지음, 이지수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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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이야, 뭔가가 납득이 되면 여기가 딸깍 하고 울리거든. 그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댔다. 사실 그 체조 클럽에서 공중회전을 했을 때는 딸깍 하고 울렸어. 그건 신기했지. 그때 뭔가 예감은 했던 것 같아. 하지만 집에 가는 길에 엄마가 물어봤을 때, 그 장소는 아니라고 본능적으로 느꼈어. 흐음. 그럼 그때는 아직 발레가 머릿속에 없었던 거네.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발레의 ‘ㅂ’도 없었어. 내 사전에는 아직 ‘발레’가 없었지. 본 적도 없었으니까. 그는 문득 먼 곳을 바라봤다.               p.131~132


준은 발레 워크숍에서 유달리 눈길을 끄는 사람을 만난다. 이곳은 해외 발레단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해외의 발레 학교로 유학을 가기 위한 전단계로 여겨지는 곳이다. 아무나 참가할 수 없고, 사전 오디션인 레슨을 통해 선발이 되어야 본 워크숍에 참가할 수 있었다. 다른 참가자들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프로를 목표로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 무용수로서의 기량과 가능성이 한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를 처음 발견했을 때 준이 느꼈던 것은 말로 잘 표현할 수 없었던 위화감이었다. 무언가 다른 질감을 가진 것, 무언가 주위와 다른 존재를 느꼈던 것이다. 


호리호리한 인상에 비율이 좋은 축복받은 체형이었다. 요로즈 하루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자신의 이름이 가진 만 개의 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는 기량도 뛰어났지만, 매번 춤 너머로 무언가 드넓은 풍경을 바라보는 재능이 있었다. 춤추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춤은 어디까지나 수단이며 목적은 그 너머에 있다는 듯이. 결국 하루는 무용수가 아니라 안무가로 세상을 움직이는 존재가 된다. 


이 작품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기 다른 화자가 등장해 저마다의 시선으로 요로즈 하루라는 인물의 삶을 들여다본다. 동료 무용수인 후카쓰 준을 시작으로, 그를 어린 시절부터 지켜봐 온 영문학 교수인 미노루 삼촌, 그의 안무에 곡을 써주는 작곡가 다키자와 나나세,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하루 본인이 화자로 등장한다. 발레 학교 시절이 배경일 때는 하루의 청소년기를 엿볼 수 있고, 가족인 삼촌이 화자일 때는 어린 시절의 일화들을 만날 수 있다. 작곡가와 협업하는 과정이 보여질 때는 작곡과와 안무가의 긴밀한 관계와 천재성이 보여지고 있어 각각의 이야기가 한 인물의 생 전체를 퍼즐 조각처럼 하나씩 완성시켜 나간다. 외부에서 바라보던 시점으로 읽히던 인물이 일인칭이 되면 보다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안무를 만들어 가는 과정과 무대에서 무용수가 공연을 하는 장면들이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어 실제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드는 그런 작품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본’ 것만 같았다. 인간이라는 생물이 그저 순수하게, 움직인다는 목적을 위해, 아름다운 형태만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저걸 내 몸으로 재현해보고 싶다. 역시 첫 체험의 충동에 자극을 받아, 어느새 나는 뛰어오르고 있었다.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았다. 착지한 순간, 가슴 한복판에서 딸깍 하고 무언가가 울렸다. 그 순간을, 그 감각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세상의 문이 열렸다고 해야 할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허락받았다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나는 온몸으로 그 충격을 받아들였다. 감격과 전율과 환희와 절망이 뒤섞인 충격을.                p.408~409



온다 리쿠 데뷔 30주년 기념 작품이다. 구상부터 집필까지 10년 만에 탄생했는데, 작가는 클래식 발레의 세계를 탐구하다 이후 컨템퍼러리 무용으로까지 관심을 넓혀가며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판타지, 미스터리, SF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60여 편이 훌쩍 넘게 발표해왔는데, 이 작품은 <초콜릿 코스모스>, <꿀벌과 천둥>에 이은 '예술가 소설' 3부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초콜릿 코스모스>가 연극, <꿀벌과 천둥>이 피아노, 그리고 <스프링>이 발레의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초기작인 <초콜릿 코스모스>를 너무 좋아했었는데, 연극 무대를 배경으로 타고난 천재와 노력파 두 여배우의 대결 구도와 오디션의 뒷 이야기들이 아주 흥미진진했었다. 얼핏 '유리가면'을 연상시키기도 했었는데, 평소에도 온다 리쿠가 연극의 한 장면 같은 연출을 자주 사용해 왔던 터라 그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었다. 


<꿀벌과 천둥>은 일본서점대상과 나오키 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증명해낸 작품이기도 하다.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한 피아니스트들의 경쟁과 음악 비즈니스의 세계를 함께 다루었던 작품인데, 화려한 비유를 통해 음악을 글로 묘사해내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이번에 나온 <스프링>은 발레 무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오디션이나 무대 뒤의 경쟁 등을 다루지 않을까 했는데 온다 리쿠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천재 무용가가 등장하지만, 그는 상대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단계를 처음부터 초월해버린 듯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춤을 추는 것을 넘어서 춤 동작과 서사를 만들어 내는 안무가로서의 면모가 더욱 부각되는 인물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예술 그 자체에 더욱 집중하는 서사가 만들어졌다. 그는 누구라도 한순간 느꼈던 부러움과 질투마저 금세 사라지게 만드는, 약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보통 탁월한 재능이 등장하면 라이벌 구도라든가 경쟁에 중점을 두게 마련인데, 온다 리쿠가 다른 선택을 한 걸 보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로서 쌓아온 시간만큼 예술을 다루는 방식도 달라지고, 그만큼 이야기에 깊이가 더해진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작품이었다. 그래서 온다 리쿠의 거의 모든 작품을 읽어온 독자로서 이번 작품은 더욱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언어로 빚어낸 아름다움이 페이지마다 만발하는, 만 개의 봄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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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계곡
스콧 알렉산더 하워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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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메의 부모님이 이곳에 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에세이 주제가 아닌 현실에서, 다른 밸리의 방문을 승인받을 수 있는 사유는 사별뿐이었다. 산 너머 20년 이후의 삶을 사는 동부 밸리의 세상에는 에드메가 죽고 없는 게 틀림없었다. 피라 부부를 알아봤던 그 순간, 나는 그들이 나를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마음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이제는 죄책감이 들었다.               p.40



하나의 마을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세계가 있다. 동쪽으로는 20년 후의 미래, 40년 후의 미래, 60년 후의 미래가 끝없이 이어져있고, 서쪽으로는 20년 전의 과거, 40년 전의 과거, 60년 전의 과거가 이어진다. 내가 사는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미래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과거인 것이다. 마을과 마을 사이는 철책으로 단절되어 있어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다. 통행을 요청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는 오로지 위무 하나뿐이었다. 청원자가 그 대상을 보지 않고서는 삶을 이어갈 수 없는 경우나 다시 만날 수 없는 친족을 보고 싶어 하는 경우에만 방문 허가가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살고 있는 밸리와 방문하고 싶은 밸리 각각 허가를 구해야했기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오딜은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진로를 결정해야 할 나이인 열여섯 살이 되었고, 기록 보관소에서 일하는 어머니는 오딜에게 '자문 기관'에 들어갈 것을 권유한다. 그곳에 들어가려면 지원서를 내고 선정이 되어야 하고, 심사 프로그램을 거쳐 도중에 탈락하지 않고 버텨야 했다. 오딜은 선생님의 추천을 받고 심사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실제로 다른 밸리를 방문하기 위해 청원을 한 내용에 대해 판단하며 시험을 받게 된다. 기본적으로 오딜은 다른 마을을 방문할 기회가 생기더라도 자신은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과거나 미래를 방문한다고 해도 진정한 위로ㄹ는 받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동쪽에서 온 방문객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들이 에드메의 부모인 것을 알게 된다. 다른 밸리의 방문을 승인받을 수 있는 사유는 사별뿐이었고, 에드메의 부모님이 이곳에 왔다는 것은 산 너머 20년 이후인 동부 밸리의 세상에는 에드메가 죽고 없다는 뜻이었다. 호감을 가지고 점차 가까워지던 친구의 죽음이 곧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오딜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말을 건네려고 했다. 겁먹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발아래로 깊은 틈이 벌어지는 것 같았고, 그 사이로 내 목소리가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소리를 내보려고 했지만 혓바닥 위에서 싹을 틔우려는 모든 단어가 순식간에 기억으로 변하면서 내게 뭔가 말하려고 하는 낯선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억지로 입술을 움직여 모양을 만들려고 애써서 더듬더듬 쉰 목소리로 겨우 어떤 소리를 뱉었지만, 사납게 몰아치는 잡초처럼 과거의 감각이 피어나면서 모든 소리와 몸짓을 집어삼켰다. 새까만 중력처럼 현기증이 몰아쳤다.                p.445



아내가 보고 싶어 다른 밸리에 방문하고 싶다고 청원을 한 홀아비가 있다. 매일같이 아내의 묘를 지켰고, 아내가 죽은 날부터 청원을 바랬다. 세월이 흘러도 그의 고통은 줄지 않았으며, 이제 그는 고령의 노인이 되었다. 그의 안타까운 청원은 승인해줘야 할까. 청원을 승인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꽤나 많다. 방문이 청원자에게 옳은 일인지, 혹인 상황을 더욱 악화할 것인지, 방문에 방해 요소가 생길 위험은 있는지, 거부할 경우 청원자가 도주를 시도할 위험이 있는지, 다른 속셈은 없는지, 더 안전한 방법은 없는지 등등... 심사숙고끝에 결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과거에 간 사람이 예정된 사건을 막거나, 무엇 하나라도 달라지게 만든다면, 현재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경고도 받지 못한 채 그 결과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관계, 직업, 개인, 가족이 사라지고 제거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들은 '개입은 곧 절멸이다'라는 말을 하며 시간의 흐름을 바꾸지 않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는 것과 질서에 순응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게 마련이다. 시간을 가르는 철책 앞에 선 그들의 선택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선택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이 작품은 철학가이자 소설가인 스콧 알렉산더 하워드의 첫 소설이다. 그는 절친하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은 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원고를 공개하자마자 출판사들이 데뷔 소설가에게는 이례적인 억대의 선인세를 제시하며 계약 경쟁을 벌여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현재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영상화 판권을 계약해 제작 중에 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평행우주라는 기발한 설정과 일종의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매우 독창적인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상실과 슬픔을 다루는 아름다운 통찰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예정된 죽음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현재를 살게 될까. 과거로 돌아가 예정된 미래를 바꾸고 싶지 않을까. 혹은 미래의 내가 현재와 너무 동떨어진,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모습이라면 어떨까. 타인의 슬픔을 저울질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열여섯의 나와 서른여섯의 나, 그리고 쉰여섯의 내가 공존하는 세계란 어떤 모습일까. 이 작품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유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서를 읽은 것만큼 긴 여운을 남겨 주었다. 이런 데뷔작을 쓸 수 있는 작가라면, 다음 작품은 또 어떤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줄지 매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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