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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계곡
스콧 알렉산더 하워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에드메의 부모님이 이곳에 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에세이 주제가 아닌 현실에서, 다른 밸리의 방문을 승인받을 수 있는 사유는 사별뿐이었다. 산 너머 20년 이후의 삶을 사는 동부 밸리의 세상에는 에드메가 죽고 없는 게 틀림없었다. 피라 부부를 알아봤던 그 순간, 나는 그들이 나를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마음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이제는 죄책감이 들었다. p.40
하나의 마을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세계가 있다. 동쪽으로는 20년 후의 미래, 40년 후의 미래, 60년 후의 미래가 끝없이 이어져있고, 서쪽으로는 20년 전의 과거, 40년 전의 과거, 60년 전의 과거가 이어진다. 내가 사는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미래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과거인 것이다. 마을과 마을 사이는 철책으로 단절되어 있어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다. 통행을 요청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는 오로지 위무 하나뿐이었다. 청원자가 그 대상을 보지 않고서는 삶을 이어갈 수 없는 경우나 다시 만날 수 없는 친족을 보고 싶어 하는 경우에만 방문 허가가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살고 있는 밸리와 방문하고 싶은 밸리 각각 허가를 구해야했기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오딜은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진로를 결정해야 할 나이인 열여섯 살이 되었고, 기록 보관소에서 일하는 어머니는 오딜에게 '자문 기관'에 들어갈 것을 권유한다. 그곳에 들어가려면 지원서를 내고 선정이 되어야 하고, 심사 프로그램을 거쳐 도중에 탈락하지 않고 버텨야 했다. 오딜은 선생님의 추천을 받고 심사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실제로 다른 밸리를 방문하기 위해 청원을 한 내용에 대해 판단하며 시험을 받게 된다. 기본적으로 오딜은 다른 마을을 방문할 기회가 생기더라도 자신은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과거나 미래를 방문한다고 해도 진정한 위로ㄹ는 받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동쪽에서 온 방문객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들이 에드메의 부모인 것을 알게 된다. 다른 밸리의 방문을 승인받을 수 있는 사유는 사별뿐이었고, 에드메의 부모님이 이곳에 왔다는 것은 산 너머 20년 이후인 동부 밸리의 세상에는 에드메가 죽고 없다는 뜻이었다. 호감을 가지고 점차 가까워지던 친구의 죽음이 곧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오딜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말을 건네려고 했다. 겁먹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발아래로 깊은 틈이 벌어지는 것 같았고, 그 사이로 내 목소리가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소리를 내보려고 했지만 혓바닥 위에서 싹을 틔우려는 모든 단어가 순식간에 기억으로 변하면서 내게 뭔가 말하려고 하는 낯선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억지로 입술을 움직여 모양을 만들려고 애써서 더듬더듬 쉰 목소리로 겨우 어떤 소리를 뱉었지만, 사납게 몰아치는 잡초처럼 과거의 감각이 피어나면서 모든 소리와 몸짓을 집어삼켰다. 새까만 중력처럼 현기증이 몰아쳤다. p.445
아내가 보고 싶어 다른 밸리에 방문하고 싶다고 청원을 한 홀아비가 있다. 매일같이 아내의 묘를 지켰고, 아내가 죽은 날부터 청원을 바랬다. 세월이 흘러도 그의 고통은 줄지 않았으며, 이제 그는 고령의 노인이 되었다. 그의 안타까운 청원은 승인해줘야 할까. 청원을 승인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꽤나 많다. 방문이 청원자에게 옳은 일인지, 혹인 상황을 더욱 악화할 것인지, 방문에 방해 요소가 생길 위험은 있는지, 거부할 경우 청원자가 도주를 시도할 위험이 있는지, 다른 속셈은 없는지, 더 안전한 방법은 없는지 등등... 심사숙고끝에 결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과거에 간 사람이 예정된 사건을 막거나, 무엇 하나라도 달라지게 만든다면, 현재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경고도 받지 못한 채 그 결과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관계, 직업, 개인, 가족이 사라지고 제거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들은 '개입은 곧 절멸이다'라는 말을 하며 시간의 흐름을 바꾸지 않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는 것과 질서에 순응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게 마련이다. 시간을 가르는 철책 앞에 선 그들의 선택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선택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이 작품은 철학가이자 소설가인 스콧 알렉산더 하워드의 첫 소설이다. 그는 절친하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은 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원고를 공개하자마자 출판사들이 데뷔 소설가에게는 이례적인 억대의 선인세를 제시하며 계약 경쟁을 벌여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현재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영상화 판권을 계약해 제작 중에 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평행우주라는 기발한 설정과 일종의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매우 독창적인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상실과 슬픔을 다루는 아름다운 통찰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예정된 죽음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현재를 살게 될까. 과거로 돌아가 예정된 미래를 바꾸고 싶지 않을까. 혹은 미래의 내가 현재와 너무 동떨어진,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모습이라면 어떨까. 타인의 슬픔을 저울질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열여섯의 나와 서른여섯의 나, 그리고 쉰여섯의 내가 공존하는 세계란 어떤 모습일까. 이 작품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유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서를 읽은 것만큼 긴 여운을 남겨 주었다. 이런 데뷔작을 쓸 수 있는 작가라면, 다음 작품은 또 어떤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줄지 매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