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리더란 무엇인가 - 하버드 케네디스쿨 역사 리더십 수업
모식 템킨 지음, 왕수민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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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역사가 리더를 만드는 게 아니라, 리더가 역사를 만든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리더십은 절대 무에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아야 한다. 리더십은 수단만 있다고 뚝딱 만들어지는 자질도 아니거니와, 이것이라고 딱 잘라 가르쳐줄 수 있는 공식도 아니다. 역사를 대강만 훑어도 진정으로 중요한 리더는 위기가 닥쳤을 때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경의 세상에서건, 마키아벨리의 세상에서건, 우리의 세상에서건, 심지어 신이나 운이 리더를 만드는 데 관여하기 마련이라 믿는 사람의 세상에서도.              p.49


역사학자 모식 템킨의 하버드 케네디스쿨 강의 ‘역사 속 리더들과 리더십’을 기반으로 쓴 <다시, 리더란 무엇인가>를 어크로스의 600P 클럽으로 읽었다. 매일 정해진 분량만큼 읽고, 리딩 가이드를 통해 미션과 필사를 하며 차곡차곡 작품 속으로 들어가보는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지금 우리 눈앞의 현실을 보자면, 희망을 상상하기 힘들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합리와 부정한 권력에 저항하고, 용기 있게 싸움에 나선 이들이 있기 때문에 희망을 완전히 놓치는 않게 되는 것 같다. 


대공황시대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여성 참정권 운동의 쌍두마차 캐리 채프먼 캣과 앨리스 폴,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와 미라발 자매,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서 킹과 맬컴 X, 로버트 맥나마라, 마거릿 대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리더들을 역사 속에서 살펴보았다. 위기에 처했을 때 리더의 실질적인 대응 방식, 리더가 권력이 있을 때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그 반대의 경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리더가 맞서 싸워야만 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리더의 이상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리딩 가이드에 수록된 미션 질문들이 이 책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분열이 심화되고 경제가 주저앉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지금, 투사형, 반란자형, 성자형 중 어떤 리더십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오래 고민해보았다. 과연 이러한 시국을 타개해 줄 새로운 리더가 등장해 줄 것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간절한 마음이 되었다.





우리는 리더십을 으레 긍정적인 무언가로 생각하길 좋아한다. 리더십은 하나의 대의를 상징하고 '사람들을 하나로 단결시켜' 변화와 변혁을 이뤄내기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판에 박힌 생각일 뿐이다. 이러한 리더십의 번지르르한 이면에는 살벌하고 변치 않는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바람직한 대의가 현실에서 이뤄지길 바라는 이유, 변모를 갈망하는 이유,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길 바라는 이유는 다름 아닌 지금의 현실이 비루하거나, 점점 더 비루해지고 있어서다. 우리가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들은 인간 자신, 더 정확히 말하면 권력자들이 행한 선택의 결과로 빚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p.312~313


사람들이 위기와 재난에서 자신들을 이끌어줄 인물을 찾는 일은 전 세계에서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이 자기들 리더들 때문에 누차 낙담하는 일도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다. 우울하기만 한 오늘날, 과거 황금기라 일컬어지는 시절을 이끌 리더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리더가 역사를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역사가 리더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저자는 리더십을 둘러싼 두 오랜 논쟁에 주목한다. 리더가 역사를 만들 수 있고 나아가 극복할 수 있다는 마키아벨리 같은 사람과 역사가 리더를 만들고 제약한다는 마르크스 같은 사람이 있다고 말이다. 어떤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에 대해 사유해보는 시간도 매우 흥미로웠다. 이 책은 진정한 리더란 무엇인지,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리더십의 본질과 그 작동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리더가 세상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켰는지를 주로 살펴야 할까, 아니면 세상이 그런 리더를 어떤 식으로 만들고 제약을 가했는지를 살펴야 할까? 


역사에는 암울하고 힘겨운 순간들이 가득하다. 여러모로 볼 때 지금 우리도 그런 순간들을 지나고 있다. 바로 그러한 순간들에 행해지는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 역사 속 리더들과 그들의 리더십을 통해 진정한 리더란 무엇이며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우리 모두 역사의 한 지점을 다 함께 통과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과거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래를 만들어가는 주역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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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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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좀 긴장을 했다고 할지, 런던에 있을 때랑은 달랐어. 피차가 마음을 열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다미코는 생각에 잠긴다.

"마음을, 그렇게 자주 열지 않아도 되잖아?"

다미코가 생각한 대로 말하자,

"에이, 그럼 안 되지. 절대 안 돼. 그러면 허망하잖아."

하고 바로 반박한다. 다미코는 리에답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은 언제나 재지 않고 상대를 대한다.                 p.113


오랜 만에 만나는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이다. 대학 시절 늘 붙어 다녀서 '쓰리 걸스'라 불렸던 세 친구가 오십 대가 되어 다시 만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세 사람은 대학 졸업 이후 30년간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 왔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리에는 외국 금융회사에서 일하느라 영국에서 오래 생활했다. 결혼도, 이혼도 두 번씩 했고, 한 달 전, 일을 그만두면서 해외 생활을 마무리하고 일본으로 귀국했다. 다미코는 글 쓰는 사람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채 여전히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사키는 아들 둘을 낳아 키웠고, 치매를 앓아 요양원에 계시는 시어머니를 무심한 남편 대신 문병하며 사는 주부이다. 돌싱과 싱글, 그리고 가정주부라는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오십대 후반의 세 여자의 모습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을 법해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들이 늘 함께 다니던 대학 시절, 자신의 수십 년 후 미래를 어떤 모습으로 상상했을까. 산다는 건 마음먹은대로 흘러 가지 않게 마련이고, 꿈꾸던 것들을 다 이루는 삶이란 희박하니 대부분 예상과는 다른 인생 후반부를 맞이할 것이다. 그래서 더 정감있고, 공감하며 읽었던 작품이다.





이름도 잊었던 사람과 이렇듯 뜻하지 않게 마시고 있는 것이 스스로도 의외일 만큼 즐거웠다. 여행을 떠나온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잠두콩과 뱅어포, 흑점줄전갱이회 등의 안주를 먹으면서 최근 서로의 일에 대한 얘기며, 지금 막 보고 나온 영화 얘기를 나눈다... 시간이 정말 흐르고 있다는 것을 다미코는 새롭게 느낀다. 어머니와 둘이 생활하는 나날은 10년이 하루 같은데, 그 사이에도 시간은 확실하게 흐르고 있다. 그럴 리는 없지만, 자신들 세계 밖에서만 흐르는 듯한 느낌이다.            p.162~163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은 세 친구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단어다. 대학 시절 독서 동아리에서 만났던 이들이기에 당시 영어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미지의 것들에 대해 지칠 줄 모르고 이야기했었는데, 셔닐은 정체를 알 수 없어 상상과 동경을 부추겼던 특별한 단어다. 그때는 셔닐이 앤티크하고, 로맨틱하고, 섬세한 천일 거라고 상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화려한 색감에 도톰한 파일 천이었던 거다. 캔털루프 멜론도, 참외처럼 표면이 매끈하고 기품 있는 맛일 거라고 속살은 노란색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발견하고 사서 먹어보니 표면도, 속살의 색깔도, 맛도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표면이 매끈하지도 않았고, 속살은 빨간색에, 기품 있는 맛과도 정반대였던 것이다. 이렇듯 막연한 환상은 언젠가는 깨지게 마련이지만, 기대는 부서지고, 예측은 바뀌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디테일들 또한 삶의 진짜 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친구 관계는 좀 신기한 부분이 있다. 아주 가끔 만나고, 만나지 않는 동안은 각자 전혀 다른 생활을 하는데, 만나면 공기가 옛날로 돌아가곤 하니 말이다. 오랜 만에 만나는 친구는 사람 자체가 반갑기도 하지만, 그 친구로 인해 환기되는 옛날의 나 자신을 만나게 되는 것이기도 해서 더 좋은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몇 있다. 어떤 한 시절에는 매일 얼굴을 보고 통화를 하던 사이였는데, 점차 사는 곳이 달라지고, 환경이 바뀌다 보니 어느 순간 일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만나면 바로 어제 만났던 사이처럼 스스럼 없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지금의 내가 아니라 그 친구를 만났던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 작품 속 세 친구도 바로 그런 관계였다. 각자 자신의 나이에 맞게 성실하고, 당당하게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와 내 친구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그 시절 내가 상상했던 대로 살고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지금 모습 그대로 내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내 소중한 친구들과도 자주 만나고 연락해야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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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 - 차원이 다른 삶은 AI로 설계된다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5
이경전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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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AI가 우리를 대체할지도 모르는 미래를 두려워하지만, 그보다 더 분명한 사실은 앞으로의 사회는 AI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눠질 것이라는 점이다. 특이점singularity 시대에 교육이란 결국 범용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을 통해 인간의 활동을 더욱 확장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AI로 어떻게 나의 자본을 확장할 수 있을까?             p.95



대한민국 대표 교수진이 펼치는 흥미로운 지식 체험, ‘인생명강’ 시리즈의 스물 다섯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전국 대학 각 분야 최고 교수진의 명강의를 책으로 옮겨 다양한 분야의 지식 콘텐츠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나온 책은 경희대 빅데이터 연구센터 소장인 이경전 교수가 공개하는 인공지능 시대 새로운 인생론을 담고 있다. 


이제 AI와 더불어 사는 삶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일론 머스크는 “AI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설 시점이 머지않았다”라고 전망했고, 언젠가는 인간의 일자리를 로봇과 컴퓨터가 차지할 거라고, 멀지 않은 미래에는 정말로 기계가 인간을 넘어설 수 있는 순간도 오게 될 거라고 보여지는 증거들이 도처에 널려 있으니 말이다. 30여 년 넘게 AI와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한 이경전 교수는 이 책에서 AI를 통해 개인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AI를 삶의 도구로 삼아 일상을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가치를 창출하라는 것이다. 자, 그럼 일상적으로 AI를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AI와 비즈니스 모델의 관점에서 삶을 분석해본다. 기업이 미래의 가치를 내다보면서 재무관리를 하고 경영의 방향키를 설정하듯, 우리 삶도 과거 혹은 현재의 가치가 아니라 미래의 가치를 고려하면서 운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은 가치 창출인데, 그것을 개인의 라이프 모델로 가져오면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 준다. 





결론적으로 AI는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 대체되는 것은 AI를 활용하지 않는 인간들뿐이다. AI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수십 년 후의 인생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를 가르게 될 것이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AI의 위험을 적극 인지하면서도 AI를 잘 사용하고, 또 인간과의 협업을 장려하는 조직이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게 된다. 쳇GPT를 비롯한 AI를 곁에 두고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AI를 하루에 몇 번이나 사용하는지 체크해보자.                p.247



라이프모델과 지적 자본을 개인에게로 가져와본 뒤에는 AI 도구를 활용해 효율과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실질적인 팁에 대해 다룬다. 취향, 외모, 이미지도 자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는데, AI로 지적 자본을 높이는 방법, 나만의 가치 만들어내기, AI가 일자리를 만드는 원리 등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AI의 원리와 인간의 사고방식을 결합해 지속 가능한 성과를 만드는 법을 다루는데, AI를 활용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인식은 인간도 컴퓨터도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지혜라는 부분을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대단원의 마지막에는 자신의 일상과 가치를 확장하는 방법으로 '디지털 나'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AI 기반 업무 도구 활용, AI를 통한 창의적 활동 강화, 디지털 에이전트(AI 비서)를 통한 일상 관리, AI와 함께하는 개인 브랜딩 등 그야말로 AI와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결론을 내려준다. 


이 책은 기존의 자기계발서와 차별화된 접근법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인적 자본, 사회적 자본, 구조적 자본으로 나뉘는 '지적 자본'이라는 개념부터 AI의 지능과 개인의 창의력을 접목한 '디지털 나(Digital Me)' 개념에 이르기까지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보는 일과 인생에 대한 굉장히 실용적인 강의였다. 변화하는 가치에 맞게, 지금의 시대상에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AI와 함께 성장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이를 잘 활용하고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니 말이다. AI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해 변화를 주도하는 삶이 된다면, AI와 함께 삶의 여러 도전을 극복할 힘도 얻게 되지 않을까. AI 시대는 이제 시작이다. AI로 인해 사라지는 것보다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것이 더 많이 생겨날 것이다. AI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AI를 도구로 쓰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도록 이 책이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불확실한 AI 시대를 슬기롭게 건널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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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 - 대낮의 인간은 잘 모르는 한밤의 생태학
팀 블랙번 지음, 한시아 옮김 / 김영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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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방이 식물과 인간에게 중요한 수분 매개자라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약 5000만 년부터 1억 년 전 사이에 나방의 다양성이 식물의 다양성과 함께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방이 작물과 다른 식물에 미치는 중요성을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했다. 꽃을 찾는 곤충에 관한 연구가 대부분 낮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인 자두, 체리, 사과, 멜론, 호박, 아보카도, 마카다미아, 카다멈을 생산하는 데 벌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두 잘 안다. 나방도 벌만큼이나 귀중할 것이다. 단지 대개 어둠 속에서 조용하고 묵묵히 자신들의 일을 할 뿐이다.                p.13


나비나 벌과는 달리 나방은 사람들에게 그다지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다. 나방은 흔히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작물과 식물을 파괴적으로 소비하는 종도 있어 해충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민속학에서 나방은 자주 죽음과 연관되고, 대중문화에서는 양들의 침묵에 등장하며 식인 연쇄살인범과 연관된다. 사람들이 나방이라는 말만 들어도 미간을 찡그리게 되는 비호감이 된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생태학자 팀 블랙번은 나방을 사랑해 마지않을 이유가 아주 많기 때문에, 미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방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동물이며, 우리가 이 지구를 함께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생물의 일부라고 말이다. 


저자는 아내에게 쉰두 번째 생일선물로 검은색 플라스틱 상자를 받는다. 투명 아크릴판 두 장과 20와트 형광등이 달린 이 상자는 바로 '나방 덫'이었다. 이것은 허공에서 생명을 만들어내는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상자이기도 했다. 7월의 어느 저녁에 저자는 상자를 밖에 내놓고 전선을 연결한 뒤 전구가 서서히 빛을 발하는 것을 지켜본다. 그리고 다음 날 이른 아침에 기대감에 부푼 채 상자를 보러 간다. 그리고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보석이 흩뿌려져 있었다. 정말로 상자가 마법을 부린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The Jewel Box'이다. 저자가 상자 속에 가득한 나방들을 보며 '보석이 흩뿌려져 있었다'고 표현했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책 속에는 상자와 상자 속의 나방들 사진까지 수록되어 있어 이해를 도와준다. 상자 속에는 나방이 80마리가 넘게 있었고, 모든 종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 시급했다. 저자는 나방들을 그들의 이름과 천천히 연결 짓기 시작한다. 한국밤나방, 배저녁나방, 나무이끼나방, 매미나방, 저지호랑이나방, 창백한버드나무얼룩나방 등 그렇게 82마리의 나방이 28개의 종으로 분류된다. 




나방 덫의 내용물은 지구의 생명이 존재한 40억 년에 걸쳐 펼쳐진 연속극의 한 장면이다. 이 연속극의 배경은 자연이고, 그 안의 생태계가 각본을 쓴다. 그러나 등장인물은 진화의 과정을 통해 선택되는데, 인류는 여기에도 관여한다. 우리와 집을, 나라를, 지역을, 지구를 공유하는 종의 수는 궁극적으로 종분화에서 멸종을 뺀 결과다. 그리고 여기에 이주의 효과가 산재해 있다. 이제 우리가 멸종률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해졌다. 현재 멸종의 속도는 공룡이 멸종한 대멸종을 제외하면 우리 예상보다 100~1000배쯤 빠르다. 지구 처지에서는 인간의 존재가 소행성 충돌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p.403


저자가 나방 덫을 옥상에 설치하는 이야기로 시작한 이 책은 그 작은 나방으로 거대한 자연의 퍼즐을 하나씩 맞추어나간다. 그리고 나방의 생태계 속에 담긴 자연의 규칙, 나방의 삶과 죽음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생태학의 여러 이론과 개념들을 살펴보며 생물 다양성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준다. 30년 넘게 생물 다양성 연구에 몰두해온 저자는 이 책이 나방에 관한 책은 아니라고 말한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봉쇄된 시기, ‘나방 덫’에 찾아온 나방의 이름을 찾고 놓아주는 취미에 빠져든 저자는 점차 생태학자의 시선으로 나방의 삶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방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저자는 나방 안에는 40억 년의 지구가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방은 빛에 이끌려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주변 나무나 덤풀 속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숨어 살아가는 데 매우 익숙하다. 나방은 대부분 작으며, 짧고 굵게 산다. 나방은 아무리 커도 포식자인 새나 박쥐에게 맞설 수 없다. 따라서 몸집을 키워 양질의 알을 낳는 대신, 덜 성장하더라도 잡아먹히기 전에 빨리 알을 낳기로 ‘선택’했다. 주어진 환경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나방의 생태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했고, 나방이 벌 못지않은 중요한 수분 매개자라는 사실도 놀라웠다. 밤에 활동한다는 이유로 낮에 활동하는 인간에게 거의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였는데, 이 책을 통해 '재발견'하게 된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자연을 관찰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새삼 깨달았다. 이 책을 통해 '과연 나는 자연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시간이 된다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생태학을 통해 나방 덫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마법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이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자, 매일 밤 어둠 속에서 관찰한 신비로운 밤의 세계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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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 텍스트T 12
이희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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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인은 때때로 화이거에게서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다. 화이거는 비스족의 평화를 지키는 수호자이지만 비스족 이외에 모든 것들을 적으로 간주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지녔다. 피가 튀고 뼈가 잘리는 전장에서는 과감하게 검을 휘두르는 그가 개혁과 변화 앞에서는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다.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이 마음의 적이죠. 두려움은 막아 내는 게 아니라 이겨 내는 겁니다. 그것이 전사의 정신 아닙니까?”               p.125~126



가장 아름답고 기름진 풍요의 땅 실바에 사는 비스족은 오랜 시간 타 부족과 크고 작은 전쟁을 치뤘고, 이제 다른 어떤 부족도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는 강한 힘을 얻었다. 평화의 시대가 왔지만 언제 또 매서운 피의 계절이 돌아올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몇 해 전, 주변의 크고 작은 부족들 중 가장 수가 적고 약한 무리인 피프족이 전설로 내려오는 땅 사라아로 갔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비스족을 다스리는 '쿤'인 부르인은 아무도 시도하지 못한 엄청난 일을 해낸 그들의 비밀이 궁금했다. 곧 열일곱 살이 되는 베아는 비스족을 다스리는 '쿤'인 부르인의 딸이다. 베아와 어린 시절부터 친구인 타이는 쿤을 보호하며 타 부족의 공격으로부터 비스족을 지키는 전사의 수장인 '솔'의 아들이다. 


부르인과 솔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된 베아는 전설의 땅 사라아를 찾기 위해 죽음의 숲 케이브로 가보겠다고 자진해서 나선다. 그렇게 쿤의 후계자인 베아와 그녀를 지키기 위해 여정을 함께 하게 된 소꿉친구 타이는 전설의 땅 사라아를 찾기 위해 죽음의 숲 케이브로 향한다. 사실 베아는 자신이 왜 후계자로 정해졌는지 그 이유에 대해 의문이었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은 비스족을 대표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그렇게 때문에 죽음의 숲에 가고자 했던 것이다. 피프족이 그 죽음의 숲을 통과했다면 분명 비스족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삶과 진짜 검으로 승부를 겨룰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안락한 실바를 떠나 더 넓은 세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이 작품은 테아와 타이가 죽음의 숲 케이브를 지나며 정체성을 찾아가고, 성장하게 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정말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었는지 베아는 수없이 자문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얼마나 큰 오류를 범했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뻥 뚫린 가슴 속으로 사막의 모래바람이 불어왔다. 텅 빈 공간에 싸늘한 분노가 차올랐다. 혹여 이 모든 불행이 새로운 세상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내려진 여신들의 벌이자 저주라면, 절대 멈추지 않고 더 강하고 맹렬하게 그 벽에 온몸을 던질 거다.              p.22



<페인트>, <셰이커>, <테스터>, <페이스> 등의 작품으로 SF와 판타지, 청소년 문학을 넘나들며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던 이희영 작가의 신작이다. 이 작품은 우리의 신화, 단군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판타지 세계를 보여준다. 인물들의 이름에서부터 짐작이 될 것이다. 베아(bear)와 타이(tiger)가 죽음의 숲 케이브(cave)에 들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베아가 곰족을, 전사 타이가 호랑이족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들어간 죽음의 숲 카이브는 동굴을 의미한다. 베아는 케이브에서 마늘꽃 열매만 먹고, 케이브를 빠져나온 후에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새 왕을 만난다. 피프족의 탄과 비스족의 쿤이 동맹을 맺으면 세상은 '탄쿤'이 다스리는 나라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단군설화>이지만 사실 이 작품은 모티브만 가져왔을 뿐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놀라운 상상력의 서사를 보여준다. 


화려한 표지 일러스트에서도 느껴지듯이 주요 서사의 배경이 되는 숲 또한 매력적이다. 이곳은 죽음의 사신과 하늘에서 쫓겨난 악마들이 산다는 소문처럼 독특한 생명체들로 가득하다. 베아와 타이는 움직이는 나무, 반인 반어, 거대 백사, 늑대 등을 만나며 숱한 위기와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마늘꽃, 친절한 인어 님파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묘한 것들도 있다. 하늘까지 치솟은 나무들이 거대한 지붕처럼 온 숲을 뒤덮어 한낮에도 어두운 곳, 낯선 식물들이 자라며 회색과 검은색의 토끼들과 기묘한 날개를 지닌 새들이 사는 그곳에서 사라아에 반드시 다다르겠다는 베아의 욕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예기치 못한 생명체를 만나며 숲을 지나면서 베아는 불안이 자신을 성장하게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베아의 용기로 인해 세상은 새로운 모습으로 건설될 것이고,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질 것이다. 새로운 세대를 이끌 새 왕과 함께, 그 순간부터 또 다른 전설이 시작될 것이다. 자, 다양한 생명체들을 만날 수 있는 신비로운 숲 케이브로 지금 바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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