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
온다 리쿠 지음, 이지수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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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이야, 뭔가가 납득이 되면 여기가 딸깍 하고 울리거든. 그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댔다. 사실 그 체조 클럽에서 공중회전을 했을 때는 딸깍 하고 울렸어. 그건 신기했지. 그때 뭔가 예감은 했던 것 같아. 하지만 집에 가는 길에 엄마가 물어봤을 때, 그 장소는 아니라고 본능적으로 느꼈어. 흐음. 그럼 그때는 아직 발레가 머릿속에 없었던 거네.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발레의 ‘ㅂ’도 없었어. 내 사전에는 아직 ‘발레’가 없었지. 본 적도 없었으니까. 그는 문득 먼 곳을 바라봤다.               p.131~132


준은 발레 워크숍에서 유달리 눈길을 끄는 사람을 만난다. 이곳은 해외 발레단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해외의 발레 학교로 유학을 가기 위한 전단계로 여겨지는 곳이다. 아무나 참가할 수 없고, 사전 오디션인 레슨을 통해 선발이 되어야 본 워크숍에 참가할 수 있었다. 다른 참가자들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프로를 목표로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 무용수로서의 기량과 가능성이 한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를 처음 발견했을 때 준이 느꼈던 것은 말로 잘 표현할 수 없었던 위화감이었다. 무언가 다른 질감을 가진 것, 무언가 주위와 다른 존재를 느꼈던 것이다. 


호리호리한 인상에 비율이 좋은 축복받은 체형이었다. 요로즈 하루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자신의 이름이 가진 만 개의 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는 기량도 뛰어났지만, 매번 춤 너머로 무언가 드넓은 풍경을 바라보는 재능이 있었다. 춤추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춤은 어디까지나 수단이며 목적은 그 너머에 있다는 듯이. 결국 하루는 무용수가 아니라 안무가로 세상을 움직이는 존재가 된다. 


이 작품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기 다른 화자가 등장해 저마다의 시선으로 요로즈 하루라는 인물의 삶을 들여다본다. 동료 무용수인 후카쓰 준을 시작으로, 그를 어린 시절부터 지켜봐 온 영문학 교수인 미노루 삼촌, 그의 안무에 곡을 써주는 작곡가 다키자와 나나세,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하루 본인이 화자로 등장한다. 발레 학교 시절이 배경일 때는 하루의 청소년기를 엿볼 수 있고, 가족인 삼촌이 화자일 때는 어린 시절의 일화들을 만날 수 있다. 작곡가와 협업하는 과정이 보여질 때는 작곡과와 안무가의 긴밀한 관계와 천재성이 보여지고 있어 각각의 이야기가 한 인물의 생 전체를 퍼즐 조각처럼 하나씩 완성시켜 나간다. 외부에서 바라보던 시점으로 읽히던 인물이 일인칭이 되면 보다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안무를 만들어 가는 과정과 무대에서 무용수가 공연을 하는 장면들이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어 실제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드는 그런 작품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본’ 것만 같았다. 인간이라는 생물이 그저 순수하게, 움직인다는 목적을 위해, 아름다운 형태만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저걸 내 몸으로 재현해보고 싶다. 역시 첫 체험의 충동에 자극을 받아, 어느새 나는 뛰어오르고 있었다.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았다. 착지한 순간, 가슴 한복판에서 딸깍 하고 무언가가 울렸다. 그 순간을, 그 감각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세상의 문이 열렸다고 해야 할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허락받았다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나는 온몸으로 그 충격을 받아들였다. 감격과 전율과 환희와 절망이 뒤섞인 충격을.                p.408~409



온다 리쿠 데뷔 30주년 기념 작품이다. 구상부터 집필까지 10년 만에 탄생했는데, 작가는 클래식 발레의 세계를 탐구하다 이후 컨템퍼러리 무용으로까지 관심을 넓혀가며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판타지, 미스터리, SF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60여 편이 훌쩍 넘게 발표해왔는데, 이 작품은 <초콜릿 코스모스>, <꿀벌과 천둥>에 이은 '예술가 소설' 3부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초콜릿 코스모스>가 연극, <꿀벌과 천둥>이 피아노, 그리고 <스프링>이 발레의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초기작인 <초콜릿 코스모스>를 너무 좋아했었는데, 연극 무대를 배경으로 타고난 천재와 노력파 두 여배우의 대결 구도와 오디션의 뒷 이야기들이 아주 흥미진진했었다. 얼핏 '유리가면'을 연상시키기도 했었는데, 평소에도 온다 리쿠가 연극의 한 장면 같은 연출을 자주 사용해 왔던 터라 그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었다. 


<꿀벌과 천둥>은 일본서점대상과 나오키 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증명해낸 작품이기도 하다.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한 피아니스트들의 경쟁과 음악 비즈니스의 세계를 함께 다루었던 작품인데, 화려한 비유를 통해 음악을 글로 묘사해내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이번에 나온 <스프링>은 발레 무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오디션이나 무대 뒤의 경쟁 등을 다루지 않을까 했는데 온다 리쿠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천재 무용가가 등장하지만, 그는 상대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단계를 처음부터 초월해버린 듯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춤을 추는 것을 넘어서 춤 동작과 서사를 만들어 내는 안무가로서의 면모가 더욱 부각되는 인물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예술 그 자체에 더욱 집중하는 서사가 만들어졌다. 그는 누구라도 한순간 느꼈던 부러움과 질투마저 금세 사라지게 만드는, 약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보통 탁월한 재능이 등장하면 라이벌 구도라든가 경쟁에 중점을 두게 마련인데, 온다 리쿠가 다른 선택을 한 걸 보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로서 쌓아온 시간만큼 예술을 다루는 방식도 달라지고, 그만큼 이야기에 깊이가 더해진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작품이었다. 그래서 온다 리쿠의 거의 모든 작품을 읽어온 독자로서 이번 작품은 더욱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언어로 빚어낸 아름다움이 페이지마다 만발하는, 만 개의 봄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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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계곡
스콧 알렉산더 하워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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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에드메의 부모님이 이곳에 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에세이 주제가 아닌 현실에서, 다른 밸리의 방문을 승인받을 수 있는 사유는 사별뿐이었다. 산 너머 20년 이후의 삶을 사는 동부 밸리의 세상에는 에드메가 죽고 없는 게 틀림없었다. 피라 부부를 알아봤던 그 순간, 나는 그들이 나를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마음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이제는 죄책감이 들었다.               p.40



하나의 마을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세계가 있다. 동쪽으로는 20년 후의 미래, 40년 후의 미래, 60년 후의 미래가 끝없이 이어져있고, 서쪽으로는 20년 전의 과거, 40년 전의 과거, 60년 전의 과거가 이어진다. 내가 사는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미래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과거인 것이다. 마을과 마을 사이는 철책으로 단절되어 있어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다. 통행을 요청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는 오로지 위무 하나뿐이었다. 청원자가 그 대상을 보지 않고서는 삶을 이어갈 수 없는 경우나 다시 만날 수 없는 친족을 보고 싶어 하는 경우에만 방문 허가가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살고 있는 밸리와 방문하고 싶은 밸리 각각 허가를 구해야했기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오딜은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진로를 결정해야 할 나이인 열여섯 살이 되었고, 기록 보관소에서 일하는 어머니는 오딜에게 '자문 기관'에 들어갈 것을 권유한다. 그곳에 들어가려면 지원서를 내고 선정이 되어야 하고, 심사 프로그램을 거쳐 도중에 탈락하지 않고 버텨야 했다. 오딜은 선생님의 추천을 받고 심사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실제로 다른 밸리를 방문하기 위해 청원을 한 내용에 대해 판단하며 시험을 받게 된다. 기본적으로 오딜은 다른 마을을 방문할 기회가 생기더라도 자신은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과거나 미래를 방문한다고 해도 진정한 위로ㄹ는 받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동쪽에서 온 방문객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들이 에드메의 부모인 것을 알게 된다. 다른 밸리의 방문을 승인받을 수 있는 사유는 사별뿐이었고, 에드메의 부모님이 이곳에 왔다는 것은 산 너머 20년 이후인 동부 밸리의 세상에는 에드메가 죽고 없다는 뜻이었다. 호감을 가지고 점차 가까워지던 친구의 죽음이 곧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오딜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말을 건네려고 했다. 겁먹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발아래로 깊은 틈이 벌어지는 것 같았고, 그 사이로 내 목소리가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소리를 내보려고 했지만 혓바닥 위에서 싹을 틔우려는 모든 단어가 순식간에 기억으로 변하면서 내게 뭔가 말하려고 하는 낯선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억지로 입술을 움직여 모양을 만들려고 애써서 더듬더듬 쉰 목소리로 겨우 어떤 소리를 뱉었지만, 사납게 몰아치는 잡초처럼 과거의 감각이 피어나면서 모든 소리와 몸짓을 집어삼켰다. 새까만 중력처럼 현기증이 몰아쳤다.                p.445



아내가 보고 싶어 다른 밸리에 방문하고 싶다고 청원을 한 홀아비가 있다. 매일같이 아내의 묘를 지켰고, 아내가 죽은 날부터 청원을 바랬다. 세월이 흘러도 그의 고통은 줄지 않았으며, 이제 그는 고령의 노인이 되었다. 그의 안타까운 청원은 승인해줘야 할까. 청원을 승인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꽤나 많다. 방문이 청원자에게 옳은 일인지, 혹인 상황을 더욱 악화할 것인지, 방문에 방해 요소가 생길 위험은 있는지, 거부할 경우 청원자가 도주를 시도할 위험이 있는지, 다른 속셈은 없는지, 더 안전한 방법은 없는지 등등... 심사숙고끝에 결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과거에 간 사람이 예정된 사건을 막거나, 무엇 하나라도 달라지게 만든다면, 현재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경고도 받지 못한 채 그 결과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관계, 직업, 개인, 가족이 사라지고 제거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들은 '개입은 곧 절멸이다'라는 말을 하며 시간의 흐름을 바꾸지 않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는 것과 질서에 순응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게 마련이다. 시간을 가르는 철책 앞에 선 그들의 선택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선택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이 작품은 철학가이자 소설가인 스콧 알렉산더 하워드의 첫 소설이다. 그는 절친하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은 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원고를 공개하자마자 출판사들이 데뷔 소설가에게는 이례적인 억대의 선인세를 제시하며 계약 경쟁을 벌여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현재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영상화 판권을 계약해 제작 중에 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평행우주라는 기발한 설정과 일종의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매우 독창적인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상실과 슬픔을 다루는 아름다운 통찰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예정된 죽음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현재를 살게 될까. 과거로 돌아가 예정된 미래를 바꾸고 싶지 않을까. 혹은 미래의 내가 현재와 너무 동떨어진,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모습이라면 어떨까. 타인의 슬픔을 저울질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열여섯의 나와 서른여섯의 나, 그리고 쉰여섯의 내가 공존하는 세계란 어떤 모습일까. 이 작품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유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서를 읽은 것만큼 긴 여운을 남겨 주었다. 이런 데뷔작을 쓸 수 있는 작가라면, 다음 작품은 또 어떤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줄지 매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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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계곡
스콧 알렉산더 하워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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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쌓인 시간의 계곡을 넘어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통찰해내는 아름다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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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수학 - 수학자들이 들려주는 생활 속 수학의 아름다움
다케무라 도모코.오야마구치 나쓰미.사카이 유키코 지음, 김소영 옮김 / 미디어숲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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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름하여 '너만 보인단 말이야! 집착이 심한 술래와의 술래잡기'다.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술래는 집착이 심하다. 어느 순간에 목표물 A가 시야에 들어오면 A는 계속 그곳에 있을 거라고 믿고 오로지 그곳만 보며 달려간다. 하지만 보통 술래잡기를 할 때는 다들 여기저기 도망가느라 한곳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술래가 A를 목격한 장소에 꽂혀 달려가는 동안에 A는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술래가 이 방법을 끝까지 고수해 봤자 아예 처음부터 술래의 눈앞에 A를 대령해 놓는 특수 상황이 아닌 이상 영원히 A를 잡지 못한다.              p.90~91


5명으로 이루어진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팬이 랜덤으로 나오는 굿즈를 살 때,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나올 때까지 사겠다고 마음먹은 경우, 과연 굿즈를 몇 개까지 구매해야 할까? 5종류의 굿즈가 균등하게 섞여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곳에서 순서대로 사는 경우, 한 번에 최애를 뽑을 확률부터 몇 번만에 최애를 뽑을지의 확률을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 해당 그룹에 최애가 한 명일 때와 두 명일 때가 달라지고, 다섯 명을 전부 다 모으고 싶을 때 구입하는 횟수의 평균도 달라진다. 얼핏 계산하기가 녹록지 않아 보이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배운 확률을 사용하면 계산할 수 있다는 사실! 놀랍지 않은가? 




이 책은 이렇게 수학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일상 속에 수학적 원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재미있게 보여준다. 길가에 핀 예쁜 꽃잎의 개수, 해바라기씨나 솔방울 비늘의 배열과 앵무조개의 껍데기 속에도 수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아주 작은 수학 지식이 일상생활을 다채롭게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는 세 명의 저자들은 각각 대학의 수학과 준교수로 연구와 교육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은 사람들이 수학을 무겁고 어려운 것으로만 여기지 않도록, 도시락도 색이 다양해야 맛깔나 보이는 것처럼 다양한 색깔과 주제로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수식과 간단한 그림들로 유머스럽고, 재미있게 수학적 개념들을 설명해주고 있다. 수학과 별로 친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누구나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대학생 때 배우는 수학에서는 이렇게 숫자가 아닌 것으로 곱셈을 생각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리고 이 사다리 타기 자체도 '모든 사람의 목적지'에 주목하게 되면, 대학 수학에서 배우는 '치환'이나 '군'이라는 수학적 개념에 깊이 파고들 수 있게 된다. 이들은 DNA의 나선구조, 원자구조 등 특히 대칭성을 기술할 때 도움이 되는 개념이다. 어릴 때부터 자주 쓰던 사다리 타기가 그런 복잡한 과학 세계와 관련이 있다니, 참으로 신비하고 흥미롭다. 수학은 생각보다 훨씬 더 우리 주변에 많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p.229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특히나 팬데믹 이후 온라인 쇼핑의 수요는 엄청나게 급증했다고 하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신용카드 범죄라는 말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어쩐지 인터넷상으로 쇼핑을 할 때 신용카드 정보를 이렇게 입력해도 되나 싶은 불안감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전한 사이트에서는 신용카드 결제를 해도 괜찮다. 우리의 소수가 든든하게 지켜주기 때문이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요즘은 온라인 쇼핑 말고도 교통카드를 비롯해 다양한 개인 정보가 전자 데이터로 거래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IC 카드가 인증되는 과정은 수학적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새 가방을 살 때 고려하는 조건들에 대해서도 수학적인 사고가 필요하고, 케이크를 정확히 삼등분하는 것과 황금 비율 레시피를 이용해 요리를 할 때도 숫자의 마법이 존재한다니 수학이란 정말 신비로운 학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소수, 수열, 함수, 삼각비, 무한, 확률, 매듭, 랜덤워크 같은 다양한 수학적 주제를 다루며,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수학적 수수께끼 30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세 명의 저자가 번갈아가면서 토픽을 썼고, 뷔퐁의 바늘, 피보나치 수열, 사면체 타일 정리, 프랙털, 지수함수, 소인수분해,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힐베르트 호텔, 삼각비 등 수학계에서 유명한 이론들을 아주 간단하고, 직관적으로 설명해준다. 복잡한 수식없이도, 손쉽게 계산하고, 수학적으로 사고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가벼운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젊은 수학자들이 이끌어주는 대로 수학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수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덜어내는 데도 이 책이 도움이 되어줄 것 같다. 


왜 그렇게 많은 학생이 수학을 끔찍이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일까. 왜 수학을 포기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된 것일까. 우리는 학창 시절에 문제 풀이와 공식 암기가 전부인 양 공부해 왔고, 수학에 대한 트라우마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수학을 공부하면서 수학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깊은 질문을 던지고, 수학 과목을 구성하는 다양한 연결을 탐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학생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수학이 얼마나 재미있고, 아름다운지, 그리고 우리 일상 속에서 얼마나 가깝게 자리 잡고 있는지 알게 해주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생활 속 수학의 아름다움과 재미를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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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주의자 선언 - 공적 슬픔과 타인의 발견
최태현 지음 / 디플롯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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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타심은 사랑과 동의어가 아닙니다. 최소한 그런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 안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하나 되기의 욕망을 제어하고 그것을 거리 두기로 바꾸어낼 때, 타인을 지향하는 마음은 비로소 서로에게 작열하는 불길이 아니라 따스한 햇살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생각을 할 때면 가슴이 저립니다. 사랑하는 존재와 거리를 두어야 사랑이 완성된다니 참 슬프지요. 하지만 우리는 인간입니다. 거리가 필요합니다. 세계와 우리를 이으면서도 이 둘을 구분해주는 피부가 있듯이 우리 마음에도 피부 같은 것이 있는 듯합니다.              p.39~40


우리는 인간의 이타적 욕구와 선량함이 만들어 내는 다정함과 혐오와 차별, 무관심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하철 선로에 추락한 청년을 구하려고 뛰어든 행인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의 비명소리를 듣고도 모르는 척하는 이웃도 있다. 점점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를 구별하는 것이 어려워진 '각자도생'의 시대, 우리 안의 이타적 마음을 들여다보는 책이 나왔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최태현 교수는 이타심의 시작을 ‘너’가 아닌 ‘나’로 설정하기를 권한다. 그는 매번 학생들에게 당부한다. '조직을 위해 희생할 필요 없다, 자기가 지치면 결국 남에게도 해를 끼치기 때문에 자기가 지치지 않을 만큼만 희생하라'고. 이타적인 삶을 살더라도 내면의 평화를 깨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이다. 특히나 '나를 위해 사는 시간이 남을 위해 사는 시간의 기초가 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타인을 지향하는 마음을 억지로 만들려고 하지 말고, 언젠가는 타인을 지향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시대가 만들어낸 오해의 늪에서 이타심을 건져내고 그것의 가능성을 찾아 나선다. 세월호 참사, 코로나 팬데믹, 10?29 이태원 참사,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 등 공적 슬픔에 적절한 그리고 충분한 애도의 과정과 태도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이타적 마음은 꼭 무언가를 ‘해주려는’ 동기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싸움을 싸웁니다. 모르도르로 향하던 프로도의 싸움처럼 도무지 도와줄 수 없는 싸움일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그가 나를 마지막으로 본 그 자리, 그의 눈에 죽음의 그림자가 임박했을 때 마지막으로 나를 보고 싶어 눈길을 돌려 바라볼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인지 모릅니다. 먼 길을 떠나기 전 그가 언제라도 전화할 수 있도록 마음의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충분히 깊어진 이타심은 무언가를 억지로 하는 마음보다는 그저 소나무처럼 그 자리에 있어주는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p.221


이타심에 대해 말할 때면 자주 소환되는 일화가 있다. 마하트마 간디가 기차를 타다가 한쪽 신발이 벗겨져 밖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기차 안에서 나머지 한쪽 신발을 창밖으로 던진다. 누군가 이유를 묻자, 간디는 이렇게 대답한다. 한쪽 신발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어차피 이 신발은 자신에게 쓸모가 없어졌고, 밖에서 신발을 주운 사람에게도 한쪽만 있으면 쓸모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한쪽 신발도 던지면 최소한 주운 사람은 제대로 된 신발을 신을 수 있을 거란 말이었다. 그렇다면 간디는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이타적인 행동을 한 것일까? 아니면 어차피 자신에게 필요없는 신발을 던졌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 행동이므로 자신의 명성을 드높일 거라 계산했을 수도 있으니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행동인 것일까? 마찬가지로 거액을 기부한 유명 연예인, 처치 곤란했던 물건을 무료로 나눠주는 사람, 사정이 어려운 가게를 '돈쭐'내고 SNS에 인증하는 사람.... 이들은 이타적인가, 이기적인가.


사람들은 흔히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를 구분하지만, 사실 딱 잘라서 이타적인 것과 이기적인 것을 구분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실제 우리의 삶은 이기주의라는 바다와 이타주의라는 육지가 만나는 갯벌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단순한 우리의 행동 이면에는 복잡한 동기들이 있으며, 우리는 단순히 딱 잘라서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여러 마음이 얽혀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더욱 이타적 마음에 대해 사유하는 이 책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개인의 삶이 도대체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어디서 나아갈 수 있는지, 어디서 멈추게 되는지 질문하고 답을 구해나가는 과정은 나를 돌아보고, 타인을 이해해보기 위한 과정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타심은 타고난 마음으로만 영글지 않는다고, 공부를 통해 길러진다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이타심은 타인을 기어코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세상 모든 이를 구원할 수는 없다. 우리의 시간과 땀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일은 결국 '선택'하는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타인을 기어코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로 충만한 세상이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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