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공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에리카 종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에리카 종의 작품에 대한 배경을 얘기하자니, 자연스레 마광수 교수가 떠오른다. 그의 작품 <즐거운 사라> 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구속이 되고, 대학교수직에서 면직까지 당했었던 그 당시 우리나라는 1990년대였다. 보수적인 문학계의 엄청난 화제였던 이 일화를 누구나 다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는 무려 1970년대에 출간된 작품이니, 당시 얼마나 사회적인 비판을 받았으며 문학계의 충격이었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전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비행공포>의 출간 이후, 에리카 종의 말을 빌리자면, “욕설을 담은 협박편지와 찬사를 가득 담은 편지들이 동시에 쏟아지는 나날이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였을지 당시 상황이 눈에 훤히 보인다. 이번에 비채에서 출간된 이 작품이 저작권사와 정식 계약한 최초의 한국어판이긴 하지만, 그 동안 다양한 한국어(해적)판이 출간되었었고, 초기에는 음란성을 이유로 소각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니, 문제작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이렇게 많은 비속어가 들어 있으면서 이렇게 지적인 책은 본 적이 없다> <역사적으로 평가 받는 작품이 이렇게 '세속적으로' 재미있기도 힘들 것이다> <이 소설에는 기품과 도도함, 총명함과 예리함이 있다> <이 소설의 서술방식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은 솔직하고 똑똑하면서 재미있다는 것이다> 등등의 평가는 이 작품의 가치와 재미에 대해 말해주는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결혼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실 나는 결혼의 의미를 믿었다. 적개심으로 불타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한 명의 단짝 친구 정도는 둘 필요가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져버리지 않을 한 사람,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져버리지 않을 한 사람. 그러나 결혼생활이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고개 드는 이 갈망은 어쩌란 말인가? 그 불안감, 그 굶주림. 뱃속에서 쿵 하는 울림, 보지에서 쿵 하는 울림, 모든 구멍으로 씹질하고 싶은 이 욕망은 어쩔 것인가? 쌉쌀한 샴페인과 젖은 키스, 어느 6월 밤 작약 향기가 풍겨오는 펜트하우스,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부둣가 초록 불빛에 대한 이 욕망은 어쩔 것인가?

 

이 작품은 시인이자 소설가인 에리카 종의 자전적인 요소가 생생히 담긴 이야기이다. 첫 남편과의 결혼, 이혼 후 정신과 의사인 두 번째 남편과의 결혼 등 네 번의 결혼과 대학원에서의 생활, 학회 참석, 가족들과의 관계, 결혼에의 굴레와 거침없는 성적인 상상과 욕망에의 실현까지 다소 거칠고, 적나라한 언어로 그려진다. 일반적으로 수치스럽다고 표현되는 욕구와 은밀한 생각들까지 독자에게 모두, 전혀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이 인물은 작가 그 자신이자, 현대 여성을 대표하는 일종의 여성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성의 역할과 지위와 현대에 이르면서 많이 변했고, 이혼율이 증가하면서 남녀 관계가 많이 변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여성이라는 주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부분들을 과감히 깨부수는 새로운 형식의 이 작품은 쓰여진 지 4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매혹적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주인공 여성의 성적 모험담' 정도가 되겠지만, 사실 직접 작품을 읽어보면 생각보다 직설적인 표현들이 낯뜨겁다거나, 불쾌하다기보다는 유쾌하게 읽힌다는 것이 당혹스러울 정도이다.

 

 

‘여성은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라는 거대한 질문에 온몸으로 답한 여주인공의 이야기는 40년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 읽어도 여전히 생동감 넘치고, 흥미롭고, 어떤 면에서는 속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최근에 읽었던 '고삐 풀린 뇌'에서도 그렇지만,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그것을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당당한 자아를 찾는 것과도 연관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은밀하게 어두운 곳에서만 즐기거나, 수치스럽다고 해서 감추거나 하지 말고, 아무 거리낄 것 없이 드러낼 수 있어야 비로소 그 욕망에 충실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여자와 남자. 그 둘의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남자들이 사냥꾼이자 원시인이었을 때, 여자들은 평생 임신을 걱정하거나 아기를 낳다가 죽을까 봐 걱정하며 살았다.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런 일이 일어났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차갑고 반응이 없고 뻣뻣하다고 불평했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음탕해지기를 원했다. 거칠어지기를 원했다. 이제 여자들이 음탕해지고 거칠어졌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던가. 남자들이 시들어버렸다. 참으로 절망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말할 때, 적나라한 언어로 표현된 성적인 욕망에 관한 부분이 주요 이슈이긴 하지만, 나는 의외로 그녀의 책에 대한 애착이나 관련된 에피소드들에 더 마음이 갔다. 어쩌면 자전적 요소가 다분한 작품이라 내가 에리카 종이라는 작가와 주인공을 동일시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활자화된 모든 것을 성지로 여기며, 글쓰기가 자신의 삶에 있어 유일한 희망이자 탈출구였다는 대목들.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잘 골라 펼쳐 든 책 한 권은 방패이자 방화벽이며, 투명인간의 망토란 걸 알았다>는 부분들. 시끄러운 집안에서 자라면서, 책을 은신처 삼아 도피하는 법을 배웠다는 어린 그녀가 부모님이 소리를 질러도 들리지 않고 오로지 책에만 몰입하는 장면이 막 그려졌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한 자신은 안전했다고 믿는 그 무모하리만큼 순수한 그 애정에 공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위 '책벌레'라는 인종들을 무조건 편애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니까 '삶이 나를 속이더라도 나는 한 권의 책을 읽겠다'는 식의 막무가내 애정을 가진 이들에게 조건 없이 너그러운 편이다. 그런데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던 에리카 종이라는 작가에게서 의외로 이런 면을 발견한 것이다.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언어의 돌직구에 휘청거리다가 뜻밖에 이런 글쓰기에 대한 애정을 페이지 곳곳에서 맞닥뜨리고는 마음이 설레었다고나 할까. 이렇게 당당하고, 쎈 여성도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반가움과 묘한 이질감 같은 거 말이다. <난 글 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그래야만 계속 쓸 수 있으니까> 라는 마치 선언 같은 문장은 그녀의 성격과 그녀가 지내온 환경을 짐작하게 한다. 책벌레였던 그녀는 삶이 자신을 져버릴 때마다 문학에 매달렸는데, 작품 속에선 항상 자신이 여주인공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대체 남자 주인공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그들은 책 속에, 영화 속에 존재하느라 바빠서 우리의 삶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대목에서는 픽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우리도 잘 그러지 않나. 예를 들어 드라마 '상속자들'을 보면서, 왜 현실에는 이민호 같은 남자가 없는 걸까? 한탄하기도 하고 말이다.

 

구구절절 말이 길었지만, 에리카 종의 이 작품은 가능한 많은 이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단순히 이 작품이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욕망에의 실현 외에도 이 책은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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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는 자살하지 않았다
킴벌리 맥크레이트 지음, 황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타인의 시선은 우리의 감옥이며, 그들의 생각은 우리의 새장이다.

버지니아 울프, 월요일 혹은 화요일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은 가끔 우리를 완벽하게 배신하곤 한다. 그 사람의 말투, 행동, 평상시 습관, 그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들이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거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거짓말쟁이라던가 하는 문제는 아니다. 누구나 여러 가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전부 보여줄 수는 없다는 선택과 다양성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특히나 부부, 부모 자식 관계 등 가족간에 발생할 때 더욱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나 연인 사이라고 하더라도, 가족이 되기 전에는 어쨌거나 남남이기 때문에, 받아야 할 상처가 조금 덜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이에게서, 내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할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엄청난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내가 그 동안 믿고 있던 모든 것이 산산이 깨져버리는 경험은 단순히 '배신'이라는 단어로 치부하기엔 어딘가 부족한, 한 세계가 끝나는 경험인 것이다. <아멜리아는 자살하지 않았다>에서 케이트는 자신의 딸 아멜리아의 친구 관계에 대해 추적하면서, 자신이 전혀 모르는 딸의 모습이 학교에서 존재했다는 걸 깨닫고 충격에 휩싸인다. <제이컵을 위하여>의 앤디는 사건을 조사하면서 숨겨진 사실이 드러나자, 자신이 얼마나 아들을 제대로 알지 못했는지 깨닫기 시작한다. <클라이머즈 하이>의 유키는 자신을 무시하는 아들 준과의 관계가 불편하고, 서먹하기만 하다. <솔로몬의 위증>에서의 부모들은 학교에서 자신의 자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지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 작품에서의 부모들이 틀린 거라고 혹은 자녀들이 잘못했다고 만은 볼 수 없다. 관계와 소통은 한 쪽에서가 아니라, 양 쪽에서 노력해야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케이트는 바쁘게 일하는 싱글 맘이다. 늘상 바쁜 회사 일 때문에 딸인 아멜리아와 많은 시간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항상 주말에 함께 뭔가를 한다거나, 최대한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면서 살았다. 어느 날 그녀는 아멜리아에게 3일 간의 정학처분이 내려졌다는 연락을 받고 학교로 가게 된다. 교통체증을 피해 지하철로 겨우 도착했으나, 학교에는 앰뷸런스와 경찰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차마 마주하기 싫은 현실과 맞닥뜨린다. "따님은 옥상에서 떨어졌습니다. 바론 부인, 따님, 아멜리아는 사망했습니다."라는 경찰의 한 마디. 이후로 그녀의 모든 삶이 다 무너져 내리고 만다. 딸의 죽음은 9일 만에 경찰에서자살로 판결이 내려지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케이트에게 익명의 문자가 온다. <아멜리아는 뛰어내리지 않았어. 라는. 과연 평소 우등생이었고, 모범적인 생활을 했던 아멜리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말 그녀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 개입된 타살이었던 걸까? 이야기는 이후 딸의 죽음에 밝혀진 진실을 쫓아가는 케이트의 스토리와 아멜리아가 죽기 전의 실제 그녀의 삶에 대한 스토리가 일렬로 배치되어 극적인 긴장감을 부여한다. 10대들만의 은밀하고, 순수하지만 폭력적인, 그들만의 세상은 명문 사립학교라는 허울 아래 숨겨진 추악하고 잔인한 진실을 들려준다.

 

"그녀는 아주 어린 아이가 된 듯, 동시에 말할 나위 없이 늙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이 작품은 아사이 료의 <누구>에서처럼 SNS를 주고받는 내용을 고스란히 페이지에 옮겨놓아 실감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네 살 때 읽는 방법을 익힌 후로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모범생 아멜리아가 실제 친구들과 주고 받는 메세지 내용, 페이스 북에 올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속에 나오는 문구들에 대한 것들은 이후에 우리가 도달하게 될 결말에 대한 일종의 복선이 된다. 가상의 공간인 그레이스 홀은 아이비리그 대학 인재들의 요람이자, 해마다 수천만 원의 수업료를 내고 다녀야 하는 고급 명문 사립학교이다. 이런 공간에서 한 여학생이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음을 맞이하고, 그 죽음에 얽힌 진실을 추적하는 케이트의 이야기는 미야베 미유키의 <솔로몬의 위증>을 떠올리게 만든다. 진실을 밝히는 주체가 아이들이냐, 어른이냐의 차이에서 출발하지만, 이 작품은 예기치 못한,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결말로 달려간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은 모두 외우고 있을 정도로 정통해있는 아멜리아가 영어 숙제 표절이라니, 그것 때문에 정학을 받고 수치심에 자살까지 했을 거라는 학교와 경찰의 추측은 정황상 말이 안 된다. 케이트는 익명의 문자 제보를 받고서야 자신이 슬픔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딸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속속 드러나는 진실들은 자신이 전혀 알지 못했던 낯선 것들이었다. 네가 싫어라고 적힌  수십 개의 쪽지, 친아버지가 궁금하지 않느냐는 의문의 문자, 속옷만 입은 채 야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딸의 사진, 표절했다던 숙제와 내용이 다른 또 하나의 숙제.. 이런 단서들은 사립학교에서 펼쳐지는 집단 괴롭힘과 난교, 마약이 횡행하는 비밀 클럽 등 어른들은 알지 못하는, 혹은 알면서도 외면했던 엄청난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뉴욕 최대 로펌의 유능한 변호사인 케이트는 직업적으로는 성공한 여성이지만, 사랑에 서툴어 번번히 실패했었고, 아멜리아를 낳게 된 것조차 실수로 하게 된 임신 때문이었다. 혼자 아이를 키워야했던 싱글 맘으로서 그녀의 고뇌와 그로 인한 그녀의 죄책감은, 아직 엄마가 아닌 내가 보기에도 안쓰러움과 공감이 되도록 잘 묘사되어 있다.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이라면 아마 더욱 공감이 될 만한 현실이라 케이트에게 감정 이입하게 될 것 같다. 나름 아멜리아와 각별한 사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왜 그 고민들을 말하지 않았을까 자책하는 케이트에게 건네는 사촌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나도 부모 노릇 하는 동안 95퍼센트 정도는 끔찍한 기분이 들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나머지 5퍼센트 때문에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있다는 정도야. 가끔 완벽한 순간이 있는 채로, 대부분은 겁에 질려 있는 것. 마약 하는 것 같아. 한번 맛을 보면 중독돼서 멈출 수가 없다니까>라고. 너는 좋은 엄마였다고. 최선을 다해 자식을 사랑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자녀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부모가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걸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 생활의 모든 것을 전부 다 부모에게 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성장하면서 점차 비밀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고민이 만들어지면서 점차 어른이 되어가는 것 일 테니 말이다. 그러니 소통을 위해서는 서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자녀들은 부모님을 위해. 이 작품은 미스터리로서의 뛰어난 스토리 텔링을 보여주는 감각적인 작품이지만,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이런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한 이해가 있어서 더욱 기억이 오래 남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 이런 작품이 데뷔작이라니, 세상엔 왜 이리 뛰어난 작가들이 많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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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송어낚시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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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무에 새겨진 그런 말들은, 세월이 지나면 마치 기차역 옆 식당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즉석 음식을 주문 받는 요리사가 그릴에 깬 계란처럼 알아볼 수 없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부자들은 정식 요리처럼 대리석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 마치 멋진 거리를 떠난 말이 하늘로 날아가듯 할 것이었다.

나는 음영이 드리우는 석양에 그레이브야드 하천에서 낚시를 드리웠으며 꽤 많은 송어를 잡았다. 죽은 자들의 가난만이 나를 괴롭혔다.

 

제목만 보면 웬 낚시하는 방법에 대한 책인가 싶겠지만,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당연히 이 작품에선 송어 낚시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꿈을 찾아 여행을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송어로 상징되는 목가적인 꿈을 찾아, 송어가 뛰놀던 강을 찾는 남자의 여정은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과 미국사회에 대한 풍자성이 짙어, 미국적인 은유와 상징이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내재된 의미를 파악하려고 애쓰지 말고, 스토리적인 면을 따라가려고 하지 않는다면, 반대로 너무나 가볍고 쉬운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자본주의적인 풍요가 정신적인 풍요에까지 이르지는 못하는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므로 잃어버린 인간성을 찾으려고 하는 주인공의 여정이 낯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브라우티건의 팬임을 자처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작품이 순수하고, 엉뚱하고, 즐거운 사고를 한다고 말한다. 짧고 간결한 문체 속에 내포되어 있는 은유들은 우리를 상상도 못했던 곳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마치 송어처럼 투명한 느낌의 단어들과 상상력으로 충만한 문장들은 읽는 재미도 주지만, 머리 속에 잔상도 남겨준다.

 

그것은 아주 간단했다. 나는 내 친구의 삶을 위해 10달러를 지급하고는 208이 지니고 있는 원래의 의미를 알아낸 것이다. 어떻게 그 번호가, 녹아 흘러내리는 눈처럼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와, 오랫동안 다른 고양이를 보지 못한 탓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마지막 고양이라고 믿으며, 전혀 두려움을 모른 채, 화장실 바닥엔 온통 신문이 깔려 있고 프라이팬 위에서는 맛있는 요리가 끓고 있는 '미국의 송어낚시 호텔'에서 장난치며 살고 있는 한 마리 작은 고양이의 이름이 되었는지를.

 

모든 에피소드들이 다 재미있었지만, 특히나 기억에 남는 것 중에 하나는 208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에 대한 에피소드이다. 그 고양이는 아주 작았을 때부터 다른 고양이를 전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을 지구에 살고 있는 유일한 고양이로 생각한다고 했다. 방 밖으로 나가 본 적도 없고, 다른 고양이도 본 적이 없다는 당연히 그러지 않겠는가. 나도 집에서 강아지를 기르고 있는데, 우리 집 강아지도 좀 독특한 놈이다. 이상하게도 이 놈은 어릴 때부터 산책을 데리고 나가거나, 동물 병원을 가거나 할 때 다른 강아지들을 만나도 좀체 관심이 없는 것이다. 산책 길이든 어디든 강아지들은 서로 다른 강아지를 만나면 다가가서 아는 체를 하거나, 냄새를 맡거나 짖게 마련이다. 그렇게 다른 강아지가 다가와도 우리 집 강아지는 모른 체 하거나 관심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이 놈은 분명 자기가 강아지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해. 라고 했을 정도로. 208 고양이에 대한 에피소드를 읽는데, 문득 우리 집 강아지가 떠올라서 피식 피식 웃고 말았다. 어쩜 이렇게 비슷할까 하고. 브로드웨이와 콜럼버스 가에서 반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낡고 싸구려 호텔인 '미국의 송어낚시', 그리고 그 곳에서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마지막 고양이라고 믿으며, 전혀 두려움을 모른 채 살고 있는 한 마리의 작은 고양이 208. 이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하루키의 어떤 작품이 떠오르기도 하면서, 하루키가 브라우티건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도 알 수 있게 된다.

 

이번에 비채에서 출간되고 있는 모던 & 클래식 시리즈의 작품들은 모두 표지가 너무나 산뜻하고 예쁘다. 그래서 이번에 출간된 모던 & 클래식 시리즈 작품인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와 존 스타인 백의 '붉은 망아지, 불만의 겨울' 세 권을 함께 책장에 꽂아두면 책장 전체가 화사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멋진 색감과 디자인의 책은 읽기에도, 소장하기에도 너무나 행복한 일이니 말이다. 어쩜 이렇게 책과 잘 어울리는, 산뜻한 표지를 뽑아낸 건지 감탄스럽다. 게다가 중간중간 삽입된 삽화들도 책의 감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기존에는 꽤 얇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작품에서 보여지는 수많은 메타포들로 인해 난해하고 어렵다고 하는 이들이 꽤 있었는데, 아마도 이번에 출간된 개정판으로 만나보면 그런 불만들이 쏙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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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오늘의 일본문학 12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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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이나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유행해서 다들 짧은 말로 자기소개를 하거나, 타인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고. 그러므로 그 속에서 어떤 말을 선택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난 그건 다르다고 생각해. 짧고 간결하게 자신을 표현해야 하니까 거기 선택되지 못한 말이 압도적으로 많은 거잖아. 그러니까 선택되지 못한 말 쪽이 더 그 사람을 잘 표현할 거라고 생각해. 그 짧은 말 너머에 있는 인간 그 자체를 상상해 주라고, 좀 더.

 

요즘은 전화나 문자보다는 카톡이 더 일상화되어 있는 소셜미디어 시대이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이들에게 SNS는 거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이렇게 트위터나 페이스북, 블로그등을 오랜 기간 사용해본 이들은 모두 알 것이다. 사실은 온라인에서의 나와 오프라인에서의 나가 다르다는 것을. 실제로는 말이 적지만 온라인에서 수다쟁이인 사람도 있는가 하면,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 글 솜씨는 대단히 뛰어난 경우도 있을 테니 말이다. 온라인의 나와 오프라인의 나가 완전히 다르다고 해서, 그걸 꼭 거짓말로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두 가지 모습 모두 내가 가지고 있는 양면성이 될 테니 말이다. 각각을 다른 인물로 파악하는 건 어쩔 수 없이, 온라인 상의 친구들과 오프라인 상의 친구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온라인에서의 만남이 오프로 이어지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각각 구분이 되어 있다. 온라인 상의 친구들이 보는 나와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친구들이 보는 나가 다르다고 해도, 모두 진짜 ''라는 말이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면을 보는 것이고, 누군가는 나의 저런 면을 보는 것이니, 당연히 다르게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온라인 상에서는 의식하지 않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허세를 부리는 경우가 꽤 많을 것이다. 사실은 커피숍에서 오지 않는 친구를 기다리느라 짜증이 나 있는데, 멋진 풍경과 커피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서 분위기 있게 보일 수도 있겠고, 평소에 책이라고는 한 페이지도 안 보면서 책 펼쳐놓고 카페 사진 올리는 사람도 많은 걸로 안다. 하지만 나는 그게 굳이 나쁘다고는 보지 않는다. 허세나 과장 또한 '가짜'라기 보다 그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숨겨진 단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이 작품에서처럼 누군가 내가 온라인상에서 허세를 가득 부리는 걸 몰래 관찰하고 있었다면 어떨까. 그에겐 내가 가식덩어리로 보일 테니, 얼마나 가소롭게 보일 것이며, 나중에 그걸 알게 된 나는 그야말로 등골이 서늘해질 것이다. 극중의 다쿠토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무도 모를 줄 알았던 온라인 상 자신의 모습을, 가까운 누군가가 몰래 관찰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면서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관찰하기와 관찰 당하기, 소셜미디어 시대의 무서운 점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는 트위터에도, 페이스북에도, 메일에도, 그 어디에도 쓰지 않는다. 정말로 호소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데에 쓰고 답장을 받는다고 만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 보여 주는 얼굴은 항상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어느 순간 현실의 얼굴과 괴리가 생긴다. 트위터에서는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으면서, 하고 멋대로 불평한다. 자신의 프로필 사진만이 건강한 모습으로 줄곧 그곳에 있다.

 

이 작품은 최연소 나오키 상 수상으로 화제가 되었던 작가 아사이 료의 작품이다. 이십 대 초반의 작가는 딱 실제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 현실성 있는 이야기를 매우 리얼하게 그려낸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학생들,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매일같이 일상을 타인과 공유하지만 속은 외로운 바로 우리 주변의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즈키를 짝사랑하는 다쿠토는 취업활동을 위해 극단 활동을 멀리 하려고 한다. 그의 룸메이트인 오랜 친구 고타로 역시 취업준비를 위해 밴드에서 은퇴하려고 한다. 고타로의 옛 여자친구인 미즈키는 진지한 성격처럼 이미 취업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상태이다. 미즈키가 유학생 교류회를 통해 알게된 리카는 자신의 명함까지 만들면서 적극적으로 자기 PR을 한다. 그런 리카의 남자친구 다카요시는 취업활동을 하지 않고 독자적인 자기 미래를 모색 중이다. SNS 형식으로 소개된 등장인물부터, 극 중간중간 트위터 메세지가 지속적으로 보여진다. 실제 우리가 스마트폰을 통해서 자주 보는 것같은 딱 그런 모습으로 말이다.

 

이런 5명의 친구들이 취업에 대한 정보를 나누면서 구직활동을 해 나가는 게 주요 스토리이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떨어져서 좌절도 하면서, 이제 처음으로 세상을 향하여 발을 딛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자동적으로 바뀌어 왔잖아? 초등학교 들어가서 6년 지나면 중학생이란 이름으로 바뀌고, 3년 지나면 고등학생이란 이름이 되고, 그런데 앞으로는 스스로 그걸 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거야.>라는 극중 대사처럼 사회에 나간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파악하는 첫 번째 단계가 된다. 그 동안은 부모님이 해주신 밥 먹고,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왔다면, 이제는 그 울타리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위험할 수도 있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더 나은 모습의 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는 나"라는 것. 어떻게 치장하고, 꾸미고, 감추어도 ""란 인간 바뀔 수 없다. 이상적인 모습이야 누구나 가지고 있겠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될 수 없는 건 달라지지 않으니 말이다. 아사이 료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온라인 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사는 점을 꼬집고, 사회로 나가면서 어떻게 자신을 직시 해야 하는지에 대해 리얼하게 이야기한다. 현실에선 그러지 못하면서 온라인상에서만 세상에서 제일 쿨한 척 하는 수많은 이들이라면,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고 몰래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을 훔쳐보던 이들이라면, 아마도 뜨끔할 것이다.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다는 허세를 부리는 이들이나 겉으로는 아닌 척하며 몰래 뒤에서 남의 일상을 관찰하는 이들이나, 나는 어쩐지 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 모두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거나, 외롭기 때문이니 말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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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지승호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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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침묵하는 이웃들에게 던지는 표창원, 지승호 두 남자의 승부구!

“혹시, 당신도 공범 아닙니까?”

 

이 책에 실린 에피소드 중에 이런 게 있다. 전 세계 범죄 전문가들끼리 하는 농담 중에 누가 해결을 잘 하는지 형사 올림픽이 열린다면, 숲 속에 곰 한 마리를 풀어놓고 얼마 만에 잡느냐 경연 대회를 하는 것이다. 참여는 구 소련의 KGB, 미국의 FBI, 중국의 공안, 그리고 대한민국이다. 과연 여러분들은 누가 가장 먼저 곰을 잡아올 것인가? 우선 무기가 우수한 KGB가 미사일 포탄을 쏴서 곰의 잔해를 수습해서 가져온다. 규정에 죽이지 말라는 건 없었으니까. 그렇게 수습해서 가져올 때까지 걸린 시간이 다섯 시간이다. 이번엔 과학 수사로 유명한 FBI '저런 무식한 놈들' 하더니 헬기 3대를 띄워서 적외선 열 감지기를 총동원해 곰의 위치를 찾아낸다. 그리고 투망을 던져 곰을 잡기까지 걸린 시간 세시간. 그 다음엔 인력으로 밀어붙이는 공안이 10만 여명을 숲에 배치해 인해전술을 사용, 한 시간 만에 곰을 잡아온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한국은 두 명의 운동화 신은 형사가 쫄래쫄래 나오더니, 10분 만에 빈손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곰을 잡아 왔다고 하면서 품속에서 토끼를 꺼내, 토끼를 때리면서 "말해, 너 누구야." 하니까 토끼가 겁에 질려 '"저 곰이에요.'"라고 대답했다는 우스갯소리이다. 우습지만, 수사에 얽힌 어려움을 풍자한 슬픈 얘기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도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는 표현이 나오지만, 과거 80년대처럼 일부러 증거를 조작한 예가 아니더라도, 너무 잡고 싶으니까 정황상 그렇게 믿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혹은 상황에 몰려가다 얼떨결에 범인이 아닌데도 자백을 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이렇듯 이 책은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문제점들, 과학수사의 어려움, 사법 시스템의 문제점,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범죄를 사회가 방치하고 있는 부분까지, 잘못된 관행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그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아마도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범죄는 남의 일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범죄를 목격했을 때에도 나에게 피해가 올까 걱정해서 선뜻 나서거나 도와주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말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사회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발생하는 비극적인 범죄의 잠재적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표창원 교수의 신념은 가히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이다. 표창원 교수의 저서는 너무 많지만, 나는 그 중에 <한국의 CSI> <한국의 연쇄살인>이라는 책을 읽어보았다. 한국형 과학수사에 대해, 살인마에 대한 심리분석에 대해 아주 흥미로웠던 책으로 기억한다. 국내 최초의 프로 파일러라는 걸로 유명하신 분이지만, 요즘은 방송에서도 자주 뵐 수 있고, 책도 많이 출간되고 있어 그냥 작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로 알려진 지승호 저자의 글은 재작년 엄청 화제였던 김어준 총수의 인터뷰 <닥치고 정치>를 통해서 처음 만났었다. 인터뷰 대상도 선별해서 정하는 것 같고, 무엇보다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이 인상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지승호가 인터뷰하는 표창원' 이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하겠다.

 

연예인 인권의 그늘, CSI 신드롬과 CSI 이펙트, 범죄 영화에 대한 분석,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과 증가하는 학교 폭력과 가정폭력, 낮아지는 취업률, 심각해지는 빈부 격차, 잦은 권력형 비리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적으로 잠재된 분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한국적인 살인, 사회적 특성에 의해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살인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분석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준다. 그리고 신창원이 표창원 교수에게 직접 보내온 친필 편지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아직도 미제로 남아 있는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언급까지 두 사람의 대화는 어느 지점에서는 속이 다 시원할 만큼 직설적이고, 흥미진진했다. 어느새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뿐인데, 그냥 '공범'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나와 상관없다고 정의를 모른 척 하고, 나에게 혹시라도 피해가 올 까봐 두려워하고, 다들 그렇게 하는데, 굳이 나만 고고한 척 바른 생활을 할 필요 있냐며 묻어가고, 그랬던 건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이들처럼 소신 있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 나선다면, 언젠가는 우리 사회도 좀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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