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 E 샤르코 & 엔벨 시리즈
프랑크 틸리에 지음, 박민정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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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영화 소장품, 필름 판매 광고를 보고 영화 필름들을 구해온 한 남자가, 자신의 개인 영사실에서 정체불명의 단편 영화를 보다가 눈이 멀어 버린다. 단순히 영화를 보았을 뿐인데 실명을 하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공포에 사로잡힌 그가 도움을 요청한 것은 바로 그의 전 여자 친구였던 뤼시 엔벨 형사이다. 그들은 온라인 상으로 만나 7개월 간의 짧은 연애를 했던 상대이다. 휴가 중이던 뤼시는 여덟 살 난 딸 쥘리에트가 바이러스성 위장염으로 입원 중이라 병원에서 간호 중이었다. 같은 시간, 머리가 잘려 나간 시체 다섯 구가 센 강가에서 암매장된 상태로 발견된다. 강력 범죄의 미제 사건을 다루는 행동분석가로 일하는 프랑크 샤르코 역시 휴가 중이지만, 르클레르 청장은 그에게 사건을 맡긴다. 다른 경찰들도 마찬가지로 휴가 중이지만, 그들은 아내와 자식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고 샤르코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 비극적인 사건으로 아내와 딸을 잃고, 항상 그의 곁에 나타나는 환영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실명을 하게 만든 영화 필름 사건과 다섯 구의 시신 사건에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샤르코와 뤼시는 공조 수사를 펼치게 된다.

"경정님을 측은히 여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겠어요. 누군가에게 연민을 느끼는 습관이 제게는 없거든요."

"당신 다소 직설적인 투로 말하고 있군요. 앞에 있는 사람이 당신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습니까, 경위?"

샤르코와 뤼시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다. 윗사람에게 알리지도 않고 단독 행동으로 사건을 조사하는 그녀를 보며 샤르코는 직감한다. 그와 그녀는 같은 부류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머릿속에 당신 아이들의 사진 대신 시체 사진이 들어차 있지 않느냐고, 그러다간 당신도 결국 나처럼 된다고. 뤼시는 그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인상이 벼랑 끝에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이라는 것을 느낀다. 대체 어떤 비극이 그를 집어삼켰기에 저토록 음울하게 침잠하게 된 것일까 생각하지만, 말과 행동은 머릿속 생각과는 다르게 내뱉고 만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의 매끈한 스릴러 영화에서처럼 이들 두 캐릭터의 상반된 매력은 이야기 진행을 더욱 맛깔 나게 만들어준다. 나는 소설의 진짜 힘은 캐릭터에 있다고 믿는데, 특히나 이들 두 캐릭터는 전혀 다른 작품에서 각각 주인공으로 등장했다가 한 시리즈에서 만난 거라 더욱 흥미롭다. 이들 캐릭터의 탄생이 재미있는데, 프랑크 틸리에의 첫번째 소설 <핏빛 천사를 위한 지옥행 열차>의 주인공 프랑크 샤르코 형사와 두번째 소설<죽은 자들의 방>의 주인공 뤼시 엔벨이 한 작품에서 만나게 된 것이 바로 샤르코&엔벨 3부작이 되겠다.

"악착스럽군. 꽤 오래 전에 죽은 기구한 이집트 여인들의 운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이오?"

"경찰이기 때문이죠. 흐르는 시간이 범죄에 대한 분노를 퇴색시키지는 않기 때문이고요."

"정의의 수호자의 그럴싸한 말이군....."

"그저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일 뿐입니다. 무슨 일이든 철저하게 끝장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요."

스스로 '경찰이 견딜 수 있는 최악의 것들을 겪어온 걸어 다니는 캐리커처'라고 말하는 샤르코. 환영에 시달리는 것 때문에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약 기운으로 몸이 부푼, 홀로 늙어가고 있는 그는 산산조각 난 삶의 낙인이 찍힌 남자로 권투 선수의 주먹처럼 직설적인 남자이다.  윗사람들에게 치열하고 철두철미한 여성으로 통했던 뤼시. 그녀는 말단 서기 업무나 담당하다가 '죽은 자들의 방'과 관련된 사건 이후로 사법경찰국의 경위에 오른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백과사전처럼 박식하고 실전에 강하고 명민하지만 간혹 통제 불능의 경향을 보이는 그녀이다. 이렇게 그들은 완전히 극과 극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슷한 면을 갖고 있는 묘하게 어울리는 파트너이기도 하다.

신경과학, 정신의학, 인간의 기억, 감각기관인 눈이 볼 수 있는 사실, 인간의 폭력성과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심오한 고찰까지. 이 작품은 프랑크 틸리에가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집필 전 자료 조사를 했는데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과학적인 진실이 꽤 많이 들려지지만 전혀 지루할 틈이 없으며, 영화라는 평범하고 친근한 매체가 인간의 의도에 의해 얼마나 무섭게 돌변할 수 있는지 오싹할 정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요 며칠간 웃음을 잃어가던 카슈마레크가 뤼시에게 간만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가지. 아이들은 말이야, 우리가 중요하다고 믿고 있었던 게 항상 가장 우선시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 간혹 힘겹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우리 존재를 정돈해주거든."

샤르코&엔벨 3부작 그 첫번째인 <신드롬 E> 은 이후 시리즈는 <가타카>, <아톰카>로 이어진다. <신드롬 E> 는 이미 영화화가 결정되어 시나리오 각색 중이라고 하는데, 그럴만한 것이 빠르게 진행되는 플롯과 매력 넘치는 캐릭터, 현실을 반영하는 드라마, 신경과학과 스릴러의 만남이 가져오는 시너지까지 영상으로 보여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작품이다. 특히나 샤르코와 엔벨은 직접 영상으로 본 것처럼 살아있는 캐릭터라서 다음 시리즈가 더욱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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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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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의 자전적 장편소설이자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는처음으로 논픽션적인 고백을 담은 작품으로 내 인생의 소설 쓰기는 끝났다앞으로 평화와 일본인의 생활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원고나 에세이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데에도 무게가 실리지만, '익사'라는 제목에서 오는 강렬함이 책을 읽기도 전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이 작품이 주인공 조코 코키토는 오에의 소설에서 여러 차례 그의 분신으로 등장했던 소설가이다. 그는 때가 오면 '익사 소설'을 쓸 거라고 늘 생각해왔다. '익사 소설'이 뭘까.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로써 쓰기 시작해 강 아래 물살에 흐르는 대로 몸을 내맡기다가 드디어 이야기를 끝낸 소설가가 단번에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가버리는, 그런 소설"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해서 꾸었던 꿈이기도 하고, 스무 살에 엘리엇의 '황무지 '에서 익사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부터라고.

마지막까지 소설에서는 그 어떤 시도도 현실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지요.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이었는지조차 보여주지 않습니다. 작은 삽화가 여러 익사체의 목소리를 빌려 전개되지만, 말할 수 있는 익사체는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가버렸고.......그걸로 끝나잖아요?

조코가 소설가가 된 것은 무심코 던진 '농담'에 의해서이다. 그가 대학에 들어간 해 아버지의 기일 날 친척 중 한 명이 그의 전공이 문학부라고 했더니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는 건 어렵겠다며 실망한 기색을 드러낸다. 그러자 평소에 늘 조용했던 어머니가 반박에 나서며 "취직이 안 되면 저 아이는 소설가가 될걸요!"라고 말한 것이다. 어머니의 말은 그의 가슴에 깊숙이 자리잡아 결국 그를 소설가의 길로 이끌게 된다. 이 작품에는 '농담'이라는 단어가 한번 더 등장하는데, 두 번째 등장할 때는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바로, 아버지의 죽음이 누군가의 농담을 농담으로 치부하지 않고 관철한 행동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으로. 그렇게 이 작품은 두 개의 농담을 둘러싸고 아버지와 아들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가 '익사 소설'을 쓰기로 한 것은 바로 아버지 때문이었는데, 어린 시절 홍수로 갑자기 불어난 강에서 익사한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서이다. 그날 아버지는 그에게 따라 나와 노를 저으라고 했는데 그가 멈칫거렸고, 성질 급한 아버지가 혼자 노를 저어 가다가 사고가 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날 일을 마음에서 지울 수가 없었고, 어쩌면 '익사 소설'을 쓰는 것으로 어린 시절 자신의, 그리고 아버지의 명예 회복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실제로 붕괴 위기에 처해 있고, 어떻게든 그 위기를 버티려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여전히 이런 글 조각 하나가 의지가 되고 있다고. 그렇게 이해하고 나니 애매한 부분이 있었던 후카세 번역과 엘리엇의 원시가 더할 나위 없이 딱 맞아떨어지더군...

여기서 내가 납득한 사실이 있네. 그건, 이제 내가 노인이 되어 매일 매일 붕괴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한 구절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일세.

어느 날 여동생인 아사가 어머니의 유언으로 붉은 가죽 트렁크를 전해주겠다는 연락이 온다. 어머니는 자신의 사후 십 년이 지난 뒤에 아들이 붉은 가죽 트렁크를 자료로 삼아 익사 소설을 쓸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는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인생 전체를 돌아보며, 일본의 근 현대사를 배경으로 커다랗게 확장된다. 조코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조코와 그의 아들, 이렇게 두 부자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의 소설을 완성시키려는 협력자로 등장하는 우나이코라는 여성의 삶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말 그대로 '익사'처럼 읽는 이를 소용돌이처럼 빠져들게 만든다.

누군가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 아마도 그건 아주 커다란 농담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릴 적에 바라본 아버지의 등은 한없이 넓고 커다랗게만 보였는데, 어른이 된 어느 날 무심코 바라본 그 모습은 작고 왜소하게만 느껴졌다. 아버지가 어떤 삶의 경로를 거쳐서 살아오셨는지, 자식인 내가 모르는 부분이 더 많을 것이다. 가끔은 생각한다. 자식이 부모를 완전하게 이해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 않을까. 다만 그저 흘러가는 대로 지나쳐버리지 말고, 기억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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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춤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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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어의 마법사로 불리는 온다 리쿠는 그녀의 작품 성향과는 상관없이 나에게 언제나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작가이다. 매력적인 작가를 처음 만나면 늘 그렇듯이 온다리쿠의 작품들을 죄다 찾아서 섭렵하던 때가 있었다. 8년 전, 내가 그녀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이 <유지니아>였는데 무더운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해 여름은 회사 이직을 하기 위해 짧게 휴식을 가졌던 시기라 여유로웠지만 날씨 때문에 나른하고, 무더웠지만 에어컨을 끼고 살았기에 청량했고, 갑작스레 주어진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서 책을 미친 듯이 읽었던, 나에게는 평생 단 한 번뿐인 계절이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단 한번도 느긋하게 여름을 보내거나, 넘치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시간을 쪼개어 가며 너무 바쁘게만 일상을 보내다가 갑자기 루스해지니 나는 기존과는 좀 다른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만나게 된 것이 바로 온다 리쿠였다. 특히나 <유지니아>는 아직도 여름만 되면 새록새록 떠오를 정도로 강렬한 색감을 가진 독특한 작품이었는데, 그렇게 2007, 2008년이 아마 그녀의 작품을 가장 많이 읽었던 시기였지 싶다. 이후 <호텔정원에서 생긴 일>, <초콜릿 코스모스> 등의 작품은 지금도 장면 장면이 다 기억날 정도로 이상하게 그 시절에 읽었던 작품들은 나에게 묘한 노스탤지어를 준다. 이번 신작을 읽으면서 또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 것은 '변명'이라는 단편이 <호텔정원에서 생긴 일>에 나오는 에피소드의 숨은 뒷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시는지? 주사위의 윗면에 나온 눈과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밑면의 눈을 합치면 7이 된답니다."

젊은 여자는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주사위 눈은 1부터 6까지만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주사위엔 늘 보이지 않는 7의 그림자가 들러붙어 있어요."

여자는 차가운 눈으로 나를 흘깃 보았다.

                                                                                  -'주사위 7의 눈' 중에서


너무도 반가웠던 '변명' 외에도 이 작품에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19편 수록되어 있다. 재미있는 건 차례에 실린 제목은 18편이라는 거. 그럼 나머지 1편은 어디에 있는 걸까? 정답은 에피소드들을 다 읽고 마지막 작가의 말까지 가야 알 수 있다. 이것 또한 온다 리쿠만의 수수께끼 같은 설정이다.


갑작스레 사라진 회사 동료가 남긴 암호 같은 단서들(변명), 보이지 않는 7의 나라에서 온 여자(주시위 7의 눈), 애완동물과 사람의 기묘한 살인 공작(협력), 그리고 마치 스파이 영화를 보는 듯한 긴박감 넘치는 한편의 소동극(오해), 엄마와 아빠가 결혼한 진짜 사연(이유), 죽은 자에게 어울리는 잔인한 4(죽은 자의 계절), 무대 공포증이 있는 피아니스트가 엄청난 연주를 할 수 있게 된 스토리(둘이서 차를) 등등 짧지만 묵직한 여운을 남겨주는 이야기들은 너무도 다양한 소재와 상상력으로 지루할 틈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어 준다.


흡사 스스로 건 저주 같다.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입 밖에 내어 말하면 안 된다고 한다. 입밖에 내면 마물이 꾄다. 호사다마라는 말도 있다.

반대로, 실현시키고 싶은 일은 항상 주위에 표명해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동기 부여가 되니까 실현시킬 수밖에 없게 되거니와 주위에서도 응원해줄 것이라고.

십중팔구 둘 다 옳을 것이다. 자신에게 저주를 건다는 점에서는 피차 똑같다. 어느 쪽이든, 결국 말이란 무섭다는 이야기다.

                                                                                  -'죽은 자의 계절' 중에서


온다 리쿠의 반전 매력은 섬뜩하게 느껴지는 공포도 아무렇지 않게 그려내고, 너무도 적나라한 표현으로 당황스럽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분명 미스터리 추리물 같은데 완벽하게 열린 결말 때문에 어딘가 모호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이중성'에 있지 않나 싶다. 뭐든 계산적으로 따지고, 자신만 위하는 인간의 행동이 사실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손익이 아니라 감정에 좌우되는 인간의 행동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그녀는 '지기 싫다' '실패하기 싫다'라는 생각 때문에 끼고 있는 문제들을 포기하지 못하는 거라고 말한다. 멜랑콜리하고, 솜사탕 같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예리한 시선들은 같은 소재도 전혀 다른 이야기로 만들어 내곤 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품들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일정한 톤을 유지한다. 독보적인 색깔을 가지고 있고, SF, 판타지, 호러,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지만,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마법 같은 노스탤지어를 담아 내고 있으니 말이다. 멜랑콜리하고 키치적 감성과 풋풋한 소녀의 색깔, 독특한 미스터리와 언제나 열린 결말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본격 미스터리는 ''설득의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설득을 독자가 납득하면 그 작품은 본격 미스터리가 된다. 따라서 닫히지 않았다 싶은 결말이라도 전후 맥락을 납득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아마도 그래서 온다 리쿠가 독특한 팬덤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야기를 하다 만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도 여운처럼 느껴지고, 명확한 설명이 없어 불친절하게 생각이 되어도 그 모호함이 매력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특히나 표제작인 '나와 춤을'의 이야기는 잠시 내가 소녀가 된 듯한 착각이 들었을 정도로 묘한 설레임을 주었다.

나랑 춤추자.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면 언제라도 좋아. 라고 그 손을 덥썩 잡게 될 것 만 같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여러 번 반복해서 꾸는 꿈이 있다. 그런데 온다 리쿠의 작품을 읽다 보면 언젠가는 내 꿈도 현실이 되어서 나타날 것만 같다.

늘 보고 있을게. 늘 보고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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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2015 제39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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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인 12일에서 자주 등장하는 나만 아니면 돼!!' 그리고 무한도전에서 자주 등장하곤 하는 '무한이기주의'는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서 만들어진 멘트이긴 하지만 사실 실제 현실에서도 너무 자주 접하게 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다같이 행복하게 '함께' 살기보다는 '나와 내 가족만' 행복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너무도 익숙해진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길을 가다 사람이 쓰러져 있어도, 혹은 누군가 약자를 괴롭히고 있어도 관심을 기울이려고 하기 보다는 '굳이 내가 나 설 필요 있나. 누군가 나서겠지. 하면서 그냥 지나쳐버린다. 이렇게 '나 하나 쯤이야.'라는 이기적인 생각은 실제로 끔찍한 범죄를 예방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아 누군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누군가를 도와주지 않고 방치해 안타까운 사고를 만들고 만다. 서로 간섭을 안 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정의를 오지랖으로 바꾸어 버리고, 누군가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그저 남일이니 상관없다는 마음이 공감이 없는 삭막한 세상을 만들고 있다. 어떤 비극을 보더라도 그저 나에게 그런 일이 닥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 잘못된 것을 바꾸려는 노력이나 함께 아파하거나 분개하는 마음이 없는 세상은 온기라고는 없이 차갑기만 하다.

 

이렇게 예능 프로에 등장하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이 시대정신처럼 되어 버린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구병모 작가가 말을 건넨다.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이라고 생각하는 당신들의 모습이 사실 이렇다고. 내가 아닌 모든 일에 신경 끄고 서로를 외면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렇게나 삶을 퍽퍽하게 만들고 있다고.

 

하이는 자기 앞에 놓인 사물이나 사람과 유지해야 할 최적의 거리를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증상은 불규칙하게 찾아와 하이가 손을 내밀어 무언가를 잡으려고 하면 어느 때는 맞았지만 대부분 틀렸으며, 조금 떨어져 있는 줄 알고 다가갔다가 아무 사람이나 전봇대하고 부딪쳐 여기저기 깨지기 일쑤였고 바로 눈앞에 있다고 생각되는 무언가를 향해 팔을 뻗어보아도 빈손을 바람으로만 채우기가 예사였으니 결국 누군가가 시야에 들어오면 지레 움츠리거나 물러나기에 이르렀는데, 이를테면 자동차 사이드 미러 하단에 적힌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라는, 거의 늘 그 상태였다.

 -'여기 말고 저기, 그래 어쩌면 거기' 중에서

 

구병모 작가의 단편은 장편만큼이나 임팩트가 강하다. 15층 엘리베이터에서 추락한 엄마의 영향인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도 높은 데를 오르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야 말겠다며 건물 외벽을 맨손으로 등반하는 하이를 보는 친구들의 시선은 처음엔 호기심이었다가, 걱정이었다가 점점 무관심으로 바뀌어 간다. 하이는 본의 아니게 사람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게 되면서 그들과 마음까지 거리를 둔 것 같다고 느긴다. 하이의 거리인식불능증은 사람한테 다가가야 할 때와 멀어져야 할 때를 계속 놓치고 실수하면서 자신의 몸 속에 그렇게나 많은 허허벌판이 있었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만든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적절한 마음의 간격을 유지하고, 적절한 타이밍으로 밀고 당기는 거라는 사실이 하이라는 독특한 인물의 장애로 인해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듯한 기분이다.

사회의 틀에 맞추어 자신을 감추고, 억누르고,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조심조심 하다가 어느 날에는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질러보라. 그럼 '장난감 통에서 쏟아진 레고 블록 무더기처럼 눈앞에 의미 없이 흩어져 있던 세계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할 지도 모른다. 꿈틀하지 않으면 절대로 '여기 아닌 다른 데'로 갈 수 없는 게 인생이니 말이다. 감각 기관에는 이상이 없지만 뇌가 손상을 입어 대상물을 인식하지 못하는 병적인 증상이 인식불능증이라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 관계인식불능증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타인과의 관계를 맺을 때, 혹은 유지하려고 할 때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끊임없이 목숨을 걸고 고층건물에 도전하는 하이의 죽음 이후, 교수의 눈치를 보느라 숨막히게 일상을 보내는 나는 결국 가슴을 막고 있던 고무마개를 뽑아버린다.

 

이왕 당신들이 나더러 정신 나갔다며 가루가 되게 빻아대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밝혀두자면, 내가 그 아이 소식을 듣고 나서 죄책감을 느낀 건 사실이다. 그게 이상한 일인가. 분명히 말하건대 내가 죄책감을 느낀 대상은 그녀가 아니라 그 아이다. 당신들은 옆집에서 오다가다 만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큰 사고를 당하건 목숨을 잃었을 것 같으면, 그 재난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음에도 마음 한구석에 구름이 끼지 않겠는가. 타인의 불행에 어떤 식으로든 공모자가 되었거나 최소한 엮여 있는 것만 같은 불편한 감정을 조금도 느끼지 않을 수 있는가.

                                                                                      -'이창' 중에서

 

이창의 주인공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당신들이 나를 희대의 오지라퍼라고 불러도 좋다'며 이는 우리말인 오지랖에다 그 일을 하는 사람 내지 직업을 뜻하는 영어의 어미 -er을 붙인 신조어라고. 도시화와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출현은 이 낱말은 '만인이 만인이 일에 신경 끌 것'을 지향하는 세계관을 반영한다. '타인의 분노에 공감하고 그의 광기를 제어하려 해 보았자 개입한 사람만이 터진 새우등처럼 만신창이가 되며 보상은커녕 피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인 요즘, 누군가에 대한 동정은 시간과 비용 낭비에 불과하고 정의라곤 깨금발로 서 있을 자리조차 잃은 때' 나는 보기 드문 오지라퍼일지 모른다고. 하핫. 나는 이 작품의 서두부터 그냥 이 인물에게 호감을 느껴버리고 말았다.

 

어느 날 그녀는 맞은 편 동의 아파트에서 한 여자가 거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아이를 발로 걷어차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녀는 긴급 신고 번호를 눌러 어떤 여자가 자기 자식인 듯한 어린애한테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빨리 와달라며 바로 신고를 한다. 하지만 경찰의 단 몇 분간 조사에서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거의 없다. 이웃집 여자는 거실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그녀의 눈빛을 쏘아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후 대형 마트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여자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가보기도 하지만, 아동 학대에 대한 심증만 굳어질 뿐 물증이 시원찮다. 그녀의 남편과 딸 조차 괜히 우리와 상관없는 일에 끼어들지 말라며 면박을 주고, 그러다 결국 그 집 아이는 사망하고 만다. 그녀는 숙제가 많아서 싫다는 딸의 손목을 끌고 장례식장에 간다. 하지만 영정 속의 아이를 차마 바라보지도 못한 채 나온다. 진실을 아는 이는 이제 무덤에 있지만, 과연 그녀가 괜한 트집을 잡아 오해를 한 것일까.

그녀는 정의사회를 구현하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지향하는 시민단체의 모임에서 활동하며, 유조선 침몰 등 각종 불상사가 생기면 어디든지 달려가 무보수 노동을 자처한다. 교회 봉사며, 빈곤층 자녀의 학습 도우미, 어린이 환자들을 위한 재단 봉사 등등 자신이 하는 모든 사소한 일들과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들이 사회 정의를 이루는 근간이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말이다. 누군가는 이를 오지랖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이 사회의 희미하게 남아 있는 양심과 정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선의와 관심이 돌팔매와 비난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더라도 나는 이 역할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그녀의 성격 탓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 조금만 더 조치를 빨리 취했더라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남편을 만나보고 상의했더라면, 어쩌면 그 아이는 무사했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친구의 부고를 듣거나, 아동학대를 우연히 목격하거나, 홀로 육아를 하며 가난에 시달리고, 콜 센터 상담원이 전화를 받느라 감정적으로 피폐해지는 등 일상에서 숱하게 목격하고 겪을 수 있는 일도 있고, 모든 것을 녹아 내리게 만드는 산성비가 내리거나,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고 점거 농성을 하던 남자가 덩굴식물로 변해버리는 전염병이 도는 것처럼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비현실적인 일들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모든 불행한 일들은, 그러니까 그 재난들은 모두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지난해 겪었던 그 엄청난 재난들처럼. 일상이 곧 재난인 세상, 환상보다 참혹한 현실을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은 그래서 세상을 반영하는 리얼한 거울과도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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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9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피오나 2015-05-19 17:26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현실보다 사실같고, 상상보다 검은 순간.. 의외로 자주 맞닥뜨리게 되는 것 같아요.누군가에게 나 이런 일이 있었어. 라고 말하면 참 비현실적인데 말입니다. 구병모 작가님의 책은 항상 현실을 반영하기에 더 많은 생각을 갖게 해주는 것 같아요. ㅎㅎ
 
벚꽃, 다시 벚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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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여사님의 팬으로 기존 에도시대물도 모두 가지고 있지만, 이건 에도를 배경으로 한 독립적인 작품이다. 게다가 판권이 공개 입찰되어 합법적으로 계약을 한건데, 왜 북스피어가 내야 하는 것을 비채가 뺏어서 출간한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잘 안된다. 그저 작품 자체로만 보는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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