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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2015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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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인 12일에서 자주 등장하는 나만 아니면 돼!!' 그리고 무한도전에서 자주 등장하곤 하는 '무한이기주의'는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서 만들어진 멘트이긴 하지만 사실 실제 현실에서도 너무 자주 접하게 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다같이 행복하게 '함께' 살기보다는 '나와 내 가족만' 행복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너무도 익숙해진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길을 가다 사람이 쓰러져 있어도, 혹은 누군가 약자를 괴롭히고 있어도 관심을 기울이려고 하기 보다는 '굳이 내가 나 설 필요 있나. 누군가 나서겠지. 하면서 그냥 지나쳐버린다. 이렇게 '나 하나 쯤이야.'라는 이기적인 생각은 실제로 끔찍한 범죄를 예방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아 누군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누군가를 도와주지 않고 방치해 안타까운 사고를 만들고 만다. 서로 간섭을 안 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정의를 오지랖으로 바꾸어 버리고, 누군가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그저 남일이니 상관없다는 마음이 공감이 없는 삭막한 세상을 만들고 있다. 어떤 비극을 보더라도 그저 나에게 그런 일이 닥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 잘못된 것을 바꾸려는 노력이나 함께 아파하거나 분개하는 마음이 없는 세상은 온기라고는 없이 차갑기만 하다.

 

이렇게 예능 프로에 등장하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이 시대정신처럼 되어 버린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구병모 작가가 말을 건넨다.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이라고 생각하는 당신들의 모습이 사실 이렇다고. 내가 아닌 모든 일에 신경 끄고 서로를 외면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렇게나 삶을 퍽퍽하게 만들고 있다고.

 

하이는 자기 앞에 놓인 사물이나 사람과 유지해야 할 최적의 거리를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증상은 불규칙하게 찾아와 하이가 손을 내밀어 무언가를 잡으려고 하면 어느 때는 맞았지만 대부분 틀렸으며, 조금 떨어져 있는 줄 알고 다가갔다가 아무 사람이나 전봇대하고 부딪쳐 여기저기 깨지기 일쑤였고 바로 눈앞에 있다고 생각되는 무언가를 향해 팔을 뻗어보아도 빈손을 바람으로만 채우기가 예사였으니 결국 누군가가 시야에 들어오면 지레 움츠리거나 물러나기에 이르렀는데, 이를테면 자동차 사이드 미러 하단에 적힌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라는, 거의 늘 그 상태였다.

 -'여기 말고 저기, 그래 어쩌면 거기' 중에서

 

구병모 작가의 단편은 장편만큼이나 임팩트가 강하다. 15층 엘리베이터에서 추락한 엄마의 영향인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도 높은 데를 오르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야 말겠다며 건물 외벽을 맨손으로 등반하는 하이를 보는 친구들의 시선은 처음엔 호기심이었다가, 걱정이었다가 점점 무관심으로 바뀌어 간다. 하이는 본의 아니게 사람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게 되면서 그들과 마음까지 거리를 둔 것 같다고 느긴다. 하이의 거리인식불능증은 사람한테 다가가야 할 때와 멀어져야 할 때를 계속 놓치고 실수하면서 자신의 몸 속에 그렇게나 많은 허허벌판이 있었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만든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적절한 마음의 간격을 유지하고, 적절한 타이밍으로 밀고 당기는 거라는 사실이 하이라는 독특한 인물의 장애로 인해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듯한 기분이다.

사회의 틀에 맞추어 자신을 감추고, 억누르고,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조심조심 하다가 어느 날에는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질러보라. 그럼 '장난감 통에서 쏟아진 레고 블록 무더기처럼 눈앞에 의미 없이 흩어져 있던 세계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할 지도 모른다. 꿈틀하지 않으면 절대로 '여기 아닌 다른 데'로 갈 수 없는 게 인생이니 말이다. 감각 기관에는 이상이 없지만 뇌가 손상을 입어 대상물을 인식하지 못하는 병적인 증상이 인식불능증이라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 관계인식불능증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타인과의 관계를 맺을 때, 혹은 유지하려고 할 때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끊임없이 목숨을 걸고 고층건물에 도전하는 하이의 죽음 이후, 교수의 눈치를 보느라 숨막히게 일상을 보내는 나는 결국 가슴을 막고 있던 고무마개를 뽑아버린다.

 

이왕 당신들이 나더러 정신 나갔다며 가루가 되게 빻아대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밝혀두자면, 내가 그 아이 소식을 듣고 나서 죄책감을 느낀 건 사실이다. 그게 이상한 일인가. 분명히 말하건대 내가 죄책감을 느낀 대상은 그녀가 아니라 그 아이다. 당신들은 옆집에서 오다가다 만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큰 사고를 당하건 목숨을 잃었을 것 같으면, 그 재난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음에도 마음 한구석에 구름이 끼지 않겠는가. 타인의 불행에 어떤 식으로든 공모자가 되었거나 최소한 엮여 있는 것만 같은 불편한 감정을 조금도 느끼지 않을 수 있는가.

                                                                                      -'이창' 중에서

 

이창의 주인공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당신들이 나를 희대의 오지라퍼라고 불러도 좋다'며 이는 우리말인 오지랖에다 그 일을 하는 사람 내지 직업을 뜻하는 영어의 어미 -er을 붙인 신조어라고. 도시화와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출현은 이 낱말은 '만인이 만인이 일에 신경 끌 것'을 지향하는 세계관을 반영한다. '타인의 분노에 공감하고 그의 광기를 제어하려 해 보았자 개입한 사람만이 터진 새우등처럼 만신창이가 되며 보상은커녕 피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인 요즘, 누군가에 대한 동정은 시간과 비용 낭비에 불과하고 정의라곤 깨금발로 서 있을 자리조차 잃은 때' 나는 보기 드문 오지라퍼일지 모른다고. 하핫. 나는 이 작품의 서두부터 그냥 이 인물에게 호감을 느껴버리고 말았다.

 

어느 날 그녀는 맞은 편 동의 아파트에서 한 여자가 거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아이를 발로 걷어차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녀는 긴급 신고 번호를 눌러 어떤 여자가 자기 자식인 듯한 어린애한테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빨리 와달라며 바로 신고를 한다. 하지만 경찰의 단 몇 분간 조사에서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거의 없다. 이웃집 여자는 거실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그녀의 눈빛을 쏘아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후 대형 마트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여자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가보기도 하지만, 아동 학대에 대한 심증만 굳어질 뿐 물증이 시원찮다. 그녀의 남편과 딸 조차 괜히 우리와 상관없는 일에 끼어들지 말라며 면박을 주고, 그러다 결국 그 집 아이는 사망하고 만다. 그녀는 숙제가 많아서 싫다는 딸의 손목을 끌고 장례식장에 간다. 하지만 영정 속의 아이를 차마 바라보지도 못한 채 나온다. 진실을 아는 이는 이제 무덤에 있지만, 과연 그녀가 괜한 트집을 잡아 오해를 한 것일까.

그녀는 정의사회를 구현하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지향하는 시민단체의 모임에서 활동하며, 유조선 침몰 등 각종 불상사가 생기면 어디든지 달려가 무보수 노동을 자처한다. 교회 봉사며, 빈곤층 자녀의 학습 도우미, 어린이 환자들을 위한 재단 봉사 등등 자신이 하는 모든 사소한 일들과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들이 사회 정의를 이루는 근간이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말이다. 누군가는 이를 오지랖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이 사회의 희미하게 남아 있는 양심과 정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선의와 관심이 돌팔매와 비난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더라도 나는 이 역할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그녀의 성격 탓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 조금만 더 조치를 빨리 취했더라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남편을 만나보고 상의했더라면, 어쩌면 그 아이는 무사했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친구의 부고를 듣거나, 아동학대를 우연히 목격하거나, 홀로 육아를 하며 가난에 시달리고, 콜 센터 상담원이 전화를 받느라 감정적으로 피폐해지는 등 일상에서 숱하게 목격하고 겪을 수 있는 일도 있고, 모든 것을 녹아 내리게 만드는 산성비가 내리거나,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고 점거 농성을 하던 남자가 덩굴식물로 변해버리는 전염병이 도는 것처럼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비현실적인 일들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모든 불행한 일들은, 그러니까 그 재난들은 모두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지난해 겪었던 그 엄청난 재난들처럼. 일상이 곧 재난인 세상, 환상보다 참혹한 현실을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은 그래서 세상을 반영하는 리얼한 거울과도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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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9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피오나 2015-05-19 17:26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현실보다 사실같고, 상상보다 검은 순간.. 의외로 자주 맞닥뜨리게 되는 것 같아요.누군가에게 나 이런 일이 있었어. 라고 말하면 참 비현실적인데 말입니다. 구병모 작가님의 책은 항상 현실을 반영하기에 더 많은 생각을 갖게 해주는 것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