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수상작
기타가와 에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놀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직장 생활을 십여 년 정도 하고 있는 내 동생은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간수치 검사를 하고, 약을 타온다. 잦은 야근과 휴일 근무로 인한 스트레스에다, 불규칙적인 식사 습관까지 더해 간수치가 높아져 한 동안 병원에 입원도 했었지만, 의사는 스트레스 받지 말고 좀 쉬어야 한다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가. 결국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져 회사를 그만두고 6개월 정도 휴식을 취했지만, 마냥 놀 수 만은 없어 다시 일을 시작했고, 현재는 여전히 주6일 근무, 가끔은 7일 근무도 하면서 휴일 없이 일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 회사가 야근에 휴일 근무를 해도 별도 수당이 없는데다, 직원들을 복지 정책도 현저히 낮다는 것. 그러니 능률도 떨어질뿐더러 성취감도 생길 수가 없고, 스트레스는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다. 하지만 사실, 어디 내 동생만 그렇겠는가. 이 땅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내용만 다를 뿐, 거의 비슷한 강도의 스트레스로 자신의 건강까지 해쳐가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을 것이다.

나도 한때는 매일같이 회사를 때려 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던 직장인이었다. 물론 지금은 육아에 치여 직장 생활보다 더한, 24시간 풀 타임 근무(?)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래서 한 동안 잊고 있었던 직장 생활의 악몽을 이 책 속의 아오야마를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언제부터 웃지 않게 되었을까. 비디오를 되감은 듯한 시간을 그저 소화해 나갈 뿐인 하루하루.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월급은 제자리걸음. 실적을 올리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상사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직원에게는 조금의 서비스도 없으면서 서비스라는 이름의 잔업만이 늘어간다.

토요일 출근은 당연지사. 일요일에 죽은 듯이 자고 있다가 요란한 휴대전화 소리에 억지로 눈을 뜬다. 수화기 너머로 부장이 거래처에서 클레임이 들어왔다고, 내 담당이라고 미친 사람처럼 외친다.

뭐야, 원래는 선배 담당이었잖아. 까다로운 거래처만 떠넘기지 말라고. 내가 입사하기 전 일을 이야기하면 어쩌라는 거야. 애초에 선배가 그만둔 것도 네놈 탓이잖아. 망할 상사.

매일 같이 6시에 기상해서, 8 35분에 회사에 도착하고, 19 35분에 상사가 퇴근하고 나면 나머지 일을 마무리하고 21 15분이 되어서야 마침내 퇴근, 늦은 전철을 타고 22 53분에 집에 도착하면 25시에 잠자리에 든다. 이것이 바로 아오야마가 일주일 중에 무려 엿새를 보내는 규칙적인 스케줄이 되겠다. 새벽에 출근해서 점심 시간에 잠깐 숨 돌리고 야근까지 하고 집에 돌아오면, 이미 녹초가 되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쓰러지듯 잠에 빠져 들고 나면 어느덧 새벽, 다시 좀비처럼 일어나 회사에 가고 반복적인 생활은 마치 기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출퇴근만 반복하다 보면 연애를 할 시간도,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사라져 인간 관계까지 나도 모르게 정리가 되고 만다. 그렇게 나이를 먹다 보면 어느 순간 불쑥,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대체 내가 이 일을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는 거지?'

아오야마가 입사하고 석 달 동안 생각했던 '사람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처럼 말이다.

<미생>에서 장그래는 김 대리에게 직장을 다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김 대리는 김 대리는 딱히 다른 게 없다면 결국 돈과 승진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과연 그럴까. 어쩌면 돈과 승진만 바라보며 직장 생활을 하기에, 우리의 매일매일이 지옥 같았던 건 아닐까.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있나.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정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인생이니 말이다.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다들 잠시 숨을 멈추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꾸기는커녕 이 사회 하나, 이 부서 하나, 마주한 사람 한 명의 마음조차 바꿀 수 없는, 이토록 보잘것없고 장점 하나 없는 인간이 나예요."

어느새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런 나라도 한 가지만은 바꿀 수 있어요. 바로 내 인생입니다."

아오야마는 여느 때처럼 늦은 퇴근 길 지하철 승강장에서 상사의 전화 연락을 받고는 한숨을 푹 내 쉰다. 어차피 내일도 출근할 텐데 왜 이리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고, 그는 끈질기게 울리는 진동을 무시하고 휴대전화 전원을 꺼버린다. 집에 돌아가서도 항상 다음날 출근에 대한 부담으로 늦게까지 잠이 들지 못했기에 차라리 여기서 자버릴까 싶은 생뚱 맞은 생각을 하며 천천히 눈을 감는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선로에 떨어질 뻔한 순간, 누군가 자신의 팔을 꽉 잡고는 그를 구해준다. 떨어진다고 각오한 순간, 갑작스런 힘에 이끌러 다시 현실로 돌아와 멍해 있는 아오야마에게 자신이 초등학교 동창이라며 오랜만이라고 반갑게 떠든다. 정작 아오야마는 그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엄청난 기세로 말을 이어가며 반가워하는 그의 모습에 얼떨결에 자신도 그의 동창이라고 믿어 버린다. 그렇게 만난 그들은 자주 연락을 하고, 만나서 술도 마시고, 쇼핑도 함께, 좋아하는 영화도 보면서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커플처럼 지낸다.

야마모토는 아오야마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하면서 그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고, 어느 순간 아오야마는 직장에서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소리도 듣게 되고, 영업 성적도 조금씩 올라가며, 일에도 점차 자신감이 붙게 된다. 하지만 그러다 야마모토가 자신의 동창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에 대해 찾아보다 그가 3년 전 자살했다는 뉴스 기사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여태 자신의 곁에 있었던 야마모토는 누구인가? 유령이란 말인가? 이야기는 가벼운 에피소드로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어내기 시작하자, 미스터리 적인 요소를 도입해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더욱 빠르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궁금증을 증폭시킨 상태에서, 아오야마는 대형 사고를 치게 되고 자신이 거의 체결해놓았던 큰 계약 건에서 밀려나게 된다.

역시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건가.

아오야마는 한계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자신은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고, 회사 옥상에서 높은 펜스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열려 있는 그 순간만을 기다리게 된다. 그는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리고 대체 야마모토의 정체는 무엇일까. 제목만 보고 별 생각 없이 가볍게 읽기 시작했던 이 책은 미스터리한 긴장감과 유쾌한 재미와 따뜻한 감동까지 안겨주었다. 세상 살기 참 힘들지만, 그래도 한번뿐인 내 인생 내 맘대로, 멋지게 한번 살아보자 싶은 의욕까지 불러일으키며 말이다. 오늘도 희망 없이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밥벌이의 고단함에만 치여 있지 말고, 언젠가는 웃으며 회사를 나가는 그 날이 오기를 바래본다. 인생이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잊지 말라고, 살아만 있다면 인생이란 의외로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자신을 믿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을 기억하고, 내일을 위해 다시 한번 발걸음을 내딛어 보자. 당신은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각의 여왕 - 제2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유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지금 당장이든, 혹은 내일이든, 아니면 수십 년 후라도. 시기만 다를 뿐이지 태어난 이는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니 말이다. 바쁜 일상에 치여 정신 없이 하루를 보내느라, 우리가 잠시 잊어 버리고 살 뿐, 죽음은 그렇게 우리 곁에 함께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여태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장례 지도사 혹은 유품 정리사 등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참 낯설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언젠가는 겪게 될 죽음인데, 뭐 하러 나와 상관없는 타인들의 수많은 죽음을 곁에서 목격하는 직업을 선택했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파지에 빠져 들다 보면 작가가 직접 그녀 귀에 대고 말해줄 때가 있다.

'왜 태어났는지 왜 사는지 왜 죽는지 아니?'

열심히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아니 몰라.'

'모르는 게 당연해. 태어나고 죽는 데는 이유가 없거든.'

해미는 냉소적 비웃음이라고 생각했다. 작가가 세상에 보내는 냉소와 조롱과 야유. 그것이 실은 위로의 말이라는 걸 해미는 그 순간 깨달았다. 죽고 사는 데 아무런 이유가 없다...... 해미는 손에서 힘을 빼고 물러섰다. 이유가 없다잖아.

해미는 재수학원을 다닌 지 석 달 만에, 고물상을 운영하는 아빠의 일을 돕기 시작한다. 할머니도, 엄마도 병을 앓다가 떠나 버린 뒤 그들에게 남은 거라고는 고물상 밖에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아빠가 몰래 하던 유품정리 일을 시작하게 되고, 본격적으로 유품 정리사로 살아가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던 첫 번째 그녀의 작업 현장에서는 오래도록 앓아 누워있던 흔적이 남는 방에는 유황 타는 냄새도 심하게 났고, 분뇨 냄새에, 생선 썩는 내도 났다. 그녀는 방독면을 쓰고, 위생복도 입고, 모자도 쓰고는 악취 제거 제부터 꺼내 들었다. 쓰레기를 모두 처리한 뒤 쓸만한 유품을 정리해서 박스에 담고, 냄새의 진원지를 하나씩 처리하고, 덩치 큰 가구들을 해체하고, 분해하며 죽음의 흔적들을 차례로 지워나갔다. 마지막으로 폐기물 처리장에서 유품들을 소각하고는 아파트로 돌아와 샤워를 여러 번 하고 구석구석 몸을 씻었지만,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몸이 푹 꺼지는 듯한 기분으로 그녀는 아빠의 손에서 바통을 이어 받게 된 것이다.

해미라는 캐릭터가 워낙 밝고, 엉뚱하기에 그렇겠지만, 그녀는 죽음을 꽤나 무심하게, 덤덤하게 여기며 말한다. "자연사를 했든, 자살이든 살인이든, 죄다 똑같아. 부패가 되고 가스로 복부가 부풀어오르고 복부에 든 가스가 새어나오면서 부패액이 흘러나와. 인간이라는 형태가 무너져 내리는 거지...." 유품 정리사 업무를 장에게 설명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인간도, 죽음도 모두 그저 티비 속에 나오는 만져지지 않는 형태의 무엇인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짐작하던 '죽음'과 실제의 '죽음'은 이렇게 다르구나 싶어, 서글퍼지기도 했고 말이다

"있는 줄도 몰랐네."

"일이 끝나니까 따뜻하게 데운 보리차를 가져다 주더라는데?"

"그게 그애가 준 거였구나."

해미는 소파에 몸을 더 깊숙이 묻으며 말했다. 전혀,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기억할 필요도 없었다. 해미는 종종 작업장에 나타난 의뢰인이나 집주인을 보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데도 몰랐다. 안과에 가봤지만 눈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정씨는 안과가 아니라 정신과에 가보라고 했지만 그녀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보고 싶지 않으니까 보이지 않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스스로의 죽음을 부탁하려는 자살 시도자가 있는가 하면, 동거 남이 자살한 방을 정리해달라고 요청한 여자는 며칠 뒤 뱃속 태아를 버려두고 도망가 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죽음을 함부로 취급하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들 또한 죽음이 누군가를 파괴해도 삶은 계속된다는 작가의 덤덤한 목소리를 묵직하게 전달한다. 어릴 때부터 작가가 될 거라고 믿었던 작가는 어머니가 서른 후반에 병으로 돌아가신 뒤, 책을 인공호흡기처럼 끌어안고 살았다고 한다. 자신의 생이 중학생이었던 그 나이에서 끝난 거라고 느껴졌기에, 이후의 삶이 일종의 덤 같다고 생각하면서. 너무 어린 나이에 겪은 죽음은 이렇게 한 사람의 삶의 행로를 완전히 바꾸어 놓기도 한다. 그녀는죽음에 지배된 삶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하는데, 이 작품은 그런 그녀의 생과 이어져 죽음을 독특한 형식으로 풀어놓고 있다.

갈수록 유품 정리사가 필요한 일이 많아진다고 한다. 고령화도 그렇고, 생활고로 인한 5-60대의 자살률이 높아서란다. 매년 증가하고 있는 독거노인들의 홀로사도 그렇고, 50대 중 장년들의 고독사도 그렇고, 쓸쓸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에게는 연락할 가족도 없고, 특별한 지인도 없기에, 죽는 순간까지 외롭고, 죽은 이후에도 아무도 그들을 수습하지 않기에 더욱 고독하다. 엄마의 죽음에 방관 혹은 기여했을지 모른다는 트라우마 속에서 죽은 자들의 유품을 처리하며 살아가는 해미의 이야기는 끔찍한 일에 무심하고, 무거운 일엔 활기차게 진행되다 어느 순간 스스로 소멸하게 된다. 이 험난하고 서글픈 세상 살면서 그저 그런대로 괜찮다면, 그것이 오히려 비정상인 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여름 밤의 비밀 마탈러 형사 시리즈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거의 2년 반 만에 나오는 마탈러 형사 시리즈이다. 전작인 <너무 예쁜 소녀>에서 치명적인 미모의 소녀가 남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이야기를 했던 얀 제거스는 이번 <한 여름 밤의 비밀>에서 더욱 탄탄해진 플롯과 빠른 전개로 흡입력 있는 스토리를 보여주고 있다. 전작에서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어린 소녀가 연쇄 살인범일수도 있다는 매혹적인 전제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결말이 다소 허약해 끝나고 나면 어딘지 낚였다는 기분이 들어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주인공 소녀 마농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설명도 너무 없어서 뭔가 부족했는데, 그에 비해 마탈러 형사와 그의 팀원들이 사건 해결을 위해 뛰어다니는 부분은 매우 탄탄해서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서두가 길었지만, 그렇게 다소의 걱정과 기대감으로 이번 작품을 읽었는데, 전작보다는 훨씬 풍부한 배경과 진행으로 몰입도를 만들어 주었다.

사람들은 영문을 모른 채 그의 얼굴만 쳐다봤다.

몇 장 넘기니 악보가 나왔다.

"이건 악보예요." 그가 말했다. "오페레타 악보죠. 이 곡의 제목은 <한여름 밤의 비밀>." 그는 계속 미소 지었다.

"무슨 말씀이시죠?" 발레리가 물었다. "전 지금까지 그런 제목의 오페레타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세계적인 음악가의 친필 악보가 새로 발견되는데, 수백만 유로의 가치가 있는 미발표곡이라 여기저기에서 저작권을 사려고 전화가 빗발친다. 악보를 가진 이는 파리에서 극장을 운영했던 70대 노인 호프만, 그는 티비 생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우연히 자신이 유대인이며 60년 동안 독일에 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밝힌다. 방송이 나간 직후,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고 그의 아버지가 아우슈비츠에서 자신에게 남겼다는 봉투를 건네 받게 된다. 그것의 정체가 바로 오페라 거장의 미출간 친필 악보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 엄청난 유명세를 치르게 되고, 또한 부자가 될 수 있지만 그 모두에 관심도 없고, 다시 독일로 돌아갈 생각도 없는 호프만 대신, 그를 방송 출연으로 이끌었던 기자 발레리가 그의 대리인으로 저작권 계약을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향한다.

, 짧은 서막은 여기까지, 그 이후로는 프랑크푸르트의 선상 레스토랑에서 벌어진 무차별 살인으로 인해 다섯 명이 살해되고, 한 명이 실종된 사건 수사에 이야기가 집중된다. 우리의 마탈러 형사가 등장하고, 그의 팀원들이 현장을 수색하고, 증거를 수집하고, 용의자를 추려 사건의 중심에 다가가는 스토리는 꽤나 짜임새 있다. 동기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살해 현장, 신원 미상의 사체 다섯 구에서 시작하여 피해자들의 신원이 밝혀지고, 현장의 증거로부터 누군가 그곳에 더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누군가가 파리에서 온 방송 기자 발레리라는 것까지 찾아낸다. 그리고 그녀의 행방을 찾으면서, 그녀가 프랑크푸르트에 온 이유로부터 사건의 배경과 동기에 대해 파악하게 된다.

마탈러는 나치 만행에 대한 사실의 대부분은 잊고 있었다. 마음이 불편하고 끔찍하다는 생각 그 이상은 아니었다. 불편한 심기와 흐릿한 죄책감이 항상 마음속에 자리 잡고는 있었다. 동료 중 누군가가 유대인에 대한 우스갯소리를 하면 동료들에게 뼈 있는 한마디를 던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까. 끔찍했던 역사의 기록에 대해서 자신도 모르게 무관심해지려고 하거나, 굳이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어느 정도 그것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당시에 일어났던 믿을 수 없는 일에 대해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과거의 끔찍한 그것에 대해 너무 자세히 알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탈러 형사처럼, 그것에 직접적으로 다가가보면 자신이 얼마나 막연하고 불확실하게 생각했었는지 깨닫곤 한다. 특히나 그것이 나치의 만행,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있었던 일이라면 사진과 기사, 자료들을 보면서도 눈앞에 있는 내용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끔찍할 테니 말이다. 

얀 제거스는 사건의 동기에 잔인했던 역사적 사건을 두고 전형적인 추리 소설의 방식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었던 사건을 담아내었다. 사건 현장에서 사라진 거장의 미발표 악보로 시작하는 이야기라, 음악적인 배경이 함께 진행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정작 사건이 시작되면 그것은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진 다는 점이 좀 아쉽지만, 전작보다는 더 풍부한 이야기로 지루할 틈은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갑작스런 결말 또한 살짝 아쉬웠는데, 두 편 모두 이런 방식이다 보니 어쩌면 이건 여운이 남는 결말을 위해 독자들로부터 뭔가 부족함을 느끼도록 하는 작가 특유의 스타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독일에서는 이 작품이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마탈러 형사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이런 류의 시리즈 작품은 중심에 있는 캐릭터 구축이 가장 중요하다 보니, 주인공 형사에게만 감정 이입이 되어도 중간 이상의 재미는 보장하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안한 낙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불안한 낙원
헤닝 만켈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곳은 어디 일까. 말도 안 되는 미신을 철썩 같이 믿는 사람들이 있고, 침팬지가 웨이터의 흰색 조끼를 입고 서빙을 하며, 흑인이 중심가에서 신발을 신고 있지 않으면 경찰이 체포하는, 미신과 두려움, 기만과 아첨이 섞여 있는, 거짓말이 진실을 압도하는 세상. 이 도시에서 살을 빼려면 우유에 촌충 한 마리를 넣어 마시기만 하면 된다. 촌충은 몸 안에서 최고 5미터까지 자라서 사람이 먹은 음식의 대부분을 갉아먹어 그를 날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감옥에서 탈출하는 방법도 남다르다. 특수한 달팽이의 껍질을 빻은 다음 19년에 한 번 개화하는 나무의 꽃잎을 말려 섞은 것을 먹으면 나비 같은 날개가 생겨난단다. 그래서 감옥에 있는 사람이 훨훨 날아 감옥을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1904, 이곳은 바로 아프리카이다. 오직 백인들만이 과장되게 크게 웃는 슬픈 대륙, 흑인들의 눈에는 적의와 슬픔, 백인들의 웃음에는 금세 두려움으로 번질 수 있는 염려가 담겨 있는 이상한 나라.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흑인들과 현재의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백인들이 공존하는, 거짓말과 위선 위에 세워진 나라.

"흑인들은 노예일 뿐이라고요. 이곳처럼 잔인한 사람들 천지인 곳도 드물어요. 그리고 그들은 죄다 백인이죠. 당신이나 나처럼."

그가 다시 고개를 젓고 자리를 떴다.

그녀는 그의 말에서 혐오감을 읽었다. 며칠 전 흑인 인부들의 눈에서 분노와 증오를 읽었듯이.

스웨덴 북부 산간벽지의 열일곱 한나는 아버지가 이미 세상을 떠난 집안의 장녀였기에, 온종일 어머니를 도와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다. 극심한 여름 가뭄은 그들 가족에게 극한의 곤궁을 가져왔고, 한나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집을 떠날 것을 권한다. 아이 셋까지는 어떻게 해보겠지만, 넷은 어렵다고. 넌 이제 다 자랐고 네 한 몸쯤은 챙길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한나는 자신이 해안으로 나간다고 해서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겠냐며, 자신을 내쫓으려는 거냐고 되묻는다. 그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녀는 갑작스레 어른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제 세상에 홀로 남았다는 것. 이곳을 떠나고 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그녀는 열여덟 살이 되었고 친척들이 살고 있는 먼 해안도시를 향해 집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먼 친척들과는 연락을 할 수 없고, 그녀는 우연히 호주 왕복 항해선에서 선상 요리사로 일하게 된다. 그 여정에서 2등 항해사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그는 치명적인 열병에 감염되어 주고, 그녀는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미망인이 되고 만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배가 아프리카 도시에 정박했을 때 아무도 몰래 배를 떠나기로 한다. 항해를 계속하는 한, 죽은 남편이 아직도 배에 남아 있었으므로 자신이 슬픔에 굴복하고 말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나 렌스트룀이었던 여성이 한나 룬드마르크가되어 낯선 도시에 발을 내딛는다. 그곳은 포르투갈 령 동아프리카의 로우렌소 마르케스라는 항구 도시였다.

"그들 말을 믿지 말아요. 하나도 안 믿는 게 좋아요. 여기 흑인들이 할 줄 아는 건 거짓말뿐이에요."

한나는 아프리카에서의 첫 밤을 숨 막히는 더위와 끈질긴 복통으로 사경을 헤매며 보낸다. 무심코 투숙한 호텔의 매춘부가 그녀를 보살펴주었고, 한나는 조기 유산을 하고 겨우 기력을 회복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곳은 이름만 호텔일 뿐 실제로는 매음굴이었고, 그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그녀는 포르투갈인 매음굴 주인으로부터 청혼을 받아 그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또 몇 달 만에 그가 죽게 되어 미망인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렇게 한나 룬드마르크는 한나 바즈가 되어 남편이 남긴 매음굴과 그곳에 소속된 여자들에 대한 책임감을 떠맡게 되고, 더불어 엄청난 부도 함께 가지게 된다. 그녀의 인생은 너무도 짧은 시간에 마치 폭풍우를 만나기라도 한 듯이 휘청대며 그녀를 변화시킨다. 삶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보잘 것 없이 미약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왜 그녀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을까? 나도 절대 진실을 말하지 않는 듯 보이는 이 도시의 사람들과 닮아가기 시작한 것일까? 처음에는 한나도 흑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세뇨르 바즈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차츰 그 주장은 백인들에게도 인도인들에게도 아랍인들에게도 모두 적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식은 서로 다를지 몰라도 어쨌든 모두가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거짓말과 위선 위에 세워진 나라에 살고 있었다.

헤닝 만켈은 다들 알다시피 작가로 성공한 뒤 아프리카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작품의 배경이기도 한 모잠비크에 극단을 세워 운영했고, 죽기 전까지 평생 아프리카의 현실과 고통을 세상에 알리는 일에 헌신적으로 몰두했다. 백 년 전 당시 동아프리카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20세기 후반까지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흑인들은 단지 피부색이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열등 인종이 되어 백인들의 지배를 받았다. 그는 인종과 문화적 편견, 탐욕이 증오와 폭력으로 이어지고 두려움이 서로를 지배하는 세계를 한 여인의 삶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흑인들은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백인들은 현재의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다른 사람들, 아랍인들과 인도인들은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 진실이 파고들 여지가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

아프리카에 익숙해지면서, 한나는 백인들의 위선과 기만을 낯설고 이상하게 느끼다가 자신도 모르게 어느순간 익숙해지기도 한다. 흑인들은 당연히 열등한 존재라고 믿는 백인들은 흑인들을 자신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어둠속에서 그들을 보지 않아도 되게 신이 흑인들을 검게 만들었으니 그들에게는 색깔이 없다며 말이다. 그런 백인들의 행동이 곤혹스러웠던 한나는, 남편이 죽고 매음굴의 여자들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게 되면서 점점 자신만의 기준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처음 들은 말이 흑인들이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니 믿지 말라는 거였지만, 사실 백인들도, 인도인들도, 아랍인들도 모두 마찬가지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흑인들의 폭동이 일어나지만 소동은 다시 잠잠해지고, 남편의 배신으로 그를 죽여 감옥에 갇힌 한 흑인 여인을 목격하면서 그녀의 인생은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렇게 그녀는 한나 바즈로서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아나 브랑카로 남편의 살해 혐의로 투옥된 흑인 여인을 사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에게 이것은 불가능한 것을 얻으려면 불가능한 일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전조 같은 사건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결의는 백인 사회의 공분을 사고, 거기다 흑인들로부터도 소외된다. 왜냐하면 흑인들은 언제나 백인들의 보이지 않는 보복을 느끼며 살고 있기에, 자신들을 위해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애를 쓰는 그녀를 지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백인들이 스스로와 흑인들을 기만하느라 모든 기력을 소진하는 흑인 세계에서 살고 있어, 그녀는 생각했다. 그들은 이곳 사람들은 백인 없이는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흑인들은 돌과 나무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열등한 인종이라고 생각해. 반면에 흑인들은 어떻게 신의 아들을 모질게 학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지. 그리고 백인들이 심장이 곧 멎어버릴 만큼 늘 바쁘게 움직이며 부와 권력을 향한 끝도 없는 추구에 휘둘리는 걸 보고 놀라기도 해. 백인들은 삶을 사랑하지 않아. 대신 시간을, 언제나 부족하기만 한 시간을 사랑해.

우리를 망치는 것은 바로 그 모든 거짓말들이야.

 

결국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받은 모든 재산을 매음굴 여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아프리카를 떠나기로 한다. 그곳에서는 백인인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흑인들과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었기에 말이다. 그녀가 배에 오르는 마지막 장면은 뭐랄까,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해야 하나. 분명 슬픈 장면도, 감동적인 장면도 아니었는데 어쩐지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내가 함께 살아낸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무겁고 숙연해졌다. 그렇다. 이렇게 줄거리 요약만 길게 늘어놓고 말았지만, 이것은 그저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이었다. 피부색만으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고 학대하는 그런 세상이, 실제로 존재했었으니 말이다.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며 착취하고, 온갖 부를 독점했던 백인들 조차 마냥 행복하지 만은 않았던 이상한 세계, 가진 자도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세계, 영혼을 지키기 위해 차라리 죽음을 택해야 했던 슬픈 세계, 침묵이 정말 엄청난 무기가 될 수도 있는 무서운 세계, 나는 그런 이상한 세계를 이곳에서 경험했다. 이곳은 바로 세계의 끝, 아프리카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콩고양이 2 - 밥 먹어야지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집 강아지 토토가 아주 어렸을 적에, 종일 집에 혼자 두는 것이 걱정이 되어 회사가 끝나자 마자 집에 달려가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놈이 집 안을 아무리 뒤져도 안 나오는 것이었다. 어라, 대체 어디 갔지? 혼자 밖에 나갔을 리는 없고, 어디 숨어 있나..로 시작했지만, 점점 보이지 않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그 짧은 몇 분 사이에 온갖 생각이 다 머릿속으로 지나간 것이다. 설마, 도둑이 와서 우리 토토를.....!!!! 아냐, 말도 안돼. 그냥 낯선 사람에게 당할 토토가 아니지. 하지만 이 놈은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아무에게나 덥썩 안기곤 하니 그럴 수도.... 온갖 허황된 상상이 머릿속에서 춤추다 한 순간 딱 하고 멈춰버렸다. 토토를 찾은 것이다. 옷방 한 켠에 미처 개지 못하고 흐트러져 있던 옷들이 한군데 쌓여서 그럴듯한 옷 무더기를 만들었고, 그 속에 쏘옥 들어가서 자고 있다 깬 것이었다. 푹 잠이 들었는지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뒤늦게 듣고는 그제야 부시시 눈을 뜨고는 꼬리를 흔들던 모습이라니. 대체 어떻게 이 옷들을 하나로 모아서 그 속에 쏙 들어갈 생각을 했을까 어이가 없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강아지나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에피소드들이 일상의 잔잔하고도 소소한 즐거움으로 남고는 한다. 이번 <콩고양이> 두 번째 이야기는 배경이 겨울이라 그런지, 유독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 토토가 떠올라서 더 애틋하게 읽을 수 있었다.

 

'팥알이와 콩알이가 생애 처음 만난 겨울'이 두 번째 이야기의 테마이나 보니, 감기에 걸리는 에피소드도 있고, 추위를 피해 폭신폭신하고 따뜻한 곳만 찾아 다니고 고타쓰를 유독 좋아하는 것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고양이랑 강아지 등의 동물은 몸에 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추위를 덜 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그게 사실이 아닌지 우리 집 토토도 집에서 유독 따뜻한 곳만 쏙쏙 찾아 다니곤 한다. 찬바람 드는 창문 근처보다는 침대 곁에, 맨 바닥보다는 두툼한 카펫을 깔아놓은 곳으로, 이불이라도 덮고 앉아 있노라면 어느 샌가 옆에 와 있기 일쑤이고 말이다. 사람의 체온을 좋아하는 동물이라 그런지 언제나 몸을 딱 붙이고 앉아 있길 좋아하는데, 그게 겨울에는 유독 심하다 보니 강아지도 겨울인 걸 아는 구나, 추위를 타는 구나 싶었던 적이 참 많았다. 그런 소소한 공감들이 가득 그려진 에피소드들이 많아 절로 팥알이와 콩알이에게 감정 이입이 되기도 했다.

  

 

 

할아버지 내복씨 곁의 잠자리를 사수하고 싶지만, 마당이 추울까 방에 들여놓은 닭이 무서워서 살금살금 몰래 방에 진입하는 팥알이와 콩알이도 너무 귀엽고, 밤눈 어두운 닭 덕분에 몰래 잠자리에 들어왔지만, 다음날 아침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입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꼬꼬 닭 덕분에 이불 속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땀만 삐질 대는 건 정말 너무 귀여웠다. 이번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고양이 주인님과의 에피소드보다는 할아버지 내복씨와 마담 북슬, 그리고 집동자귀신 아저씨와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어 첫 번째 이야기와는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까칠한 마담 북슬은 더욱 사나워(?)졌고, 집에서 존재감 제로인 아저씨가 선보이는 의외의 활약(?)은 흥미진진하고, 생긴 것 과는 달리 너무도 마음 따뜻한 할아버지 내복씨는 겨울에 더 빛을 발한다. 매일같이 한파 주의보에 몸도 마음도 시린 이 계절, 팔알이와 콩알이와 함께 알콩달콩 따뜻한 겨울을 보내는 건 어떨까. 아무 페이지나 쓱 펼쳐도 네코마키의 심플하고 위트 있는 드로잉은 시선을 사로잡고, 천방지축 팥알이와 콩알이의 활약은 중독성 있게 자꾸만 빠져들게 만들어준다. 게다가 이들과 함께 북적대는 가족의 풍경은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더욱 공감되고, 미소짓 게 해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