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비밀 마탈러 형사 시리즈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거의 2년 반 만에 나오는 마탈러 형사 시리즈이다. 전작인 <너무 예쁜 소녀>에서 치명적인 미모의 소녀가 남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이야기를 했던 얀 제거스는 이번 <한 여름 밤의 비밀>에서 더욱 탄탄해진 플롯과 빠른 전개로 흡입력 있는 스토리를 보여주고 있다. 전작에서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어린 소녀가 연쇄 살인범일수도 있다는 매혹적인 전제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결말이 다소 허약해 끝나고 나면 어딘지 낚였다는 기분이 들어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주인공 소녀 마농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설명도 너무 없어서 뭔가 부족했는데, 그에 비해 마탈러 형사와 그의 팀원들이 사건 해결을 위해 뛰어다니는 부분은 매우 탄탄해서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서두가 길었지만, 그렇게 다소의 걱정과 기대감으로 이번 작품을 읽었는데, 전작보다는 훨씬 풍부한 배경과 진행으로 몰입도를 만들어 주었다.

사람들은 영문을 모른 채 그의 얼굴만 쳐다봤다.

몇 장 넘기니 악보가 나왔다.

"이건 악보예요." 그가 말했다. "오페레타 악보죠. 이 곡의 제목은 <한여름 밤의 비밀>." 그는 계속 미소 지었다.

"무슨 말씀이시죠?" 발레리가 물었다. "전 지금까지 그런 제목의 오페레타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세계적인 음악가의 친필 악보가 새로 발견되는데, 수백만 유로의 가치가 있는 미발표곡이라 여기저기에서 저작권을 사려고 전화가 빗발친다. 악보를 가진 이는 파리에서 극장을 운영했던 70대 노인 호프만, 그는 티비 생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우연히 자신이 유대인이며 60년 동안 독일에 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밝힌다. 방송이 나간 직후,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고 그의 아버지가 아우슈비츠에서 자신에게 남겼다는 봉투를 건네 받게 된다. 그것의 정체가 바로 오페라 거장의 미출간 친필 악보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 엄청난 유명세를 치르게 되고, 또한 부자가 될 수 있지만 그 모두에 관심도 없고, 다시 독일로 돌아갈 생각도 없는 호프만 대신, 그를 방송 출연으로 이끌었던 기자 발레리가 그의 대리인으로 저작권 계약을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향한다.

, 짧은 서막은 여기까지, 그 이후로는 프랑크푸르트의 선상 레스토랑에서 벌어진 무차별 살인으로 인해 다섯 명이 살해되고, 한 명이 실종된 사건 수사에 이야기가 집중된다. 우리의 마탈러 형사가 등장하고, 그의 팀원들이 현장을 수색하고, 증거를 수집하고, 용의자를 추려 사건의 중심에 다가가는 스토리는 꽤나 짜임새 있다. 동기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살해 현장, 신원 미상의 사체 다섯 구에서 시작하여 피해자들의 신원이 밝혀지고, 현장의 증거로부터 누군가 그곳에 더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누군가가 파리에서 온 방송 기자 발레리라는 것까지 찾아낸다. 그리고 그녀의 행방을 찾으면서, 그녀가 프랑크푸르트에 온 이유로부터 사건의 배경과 동기에 대해 파악하게 된다.

마탈러는 나치 만행에 대한 사실의 대부분은 잊고 있었다. 마음이 불편하고 끔찍하다는 생각 그 이상은 아니었다. 불편한 심기와 흐릿한 죄책감이 항상 마음속에 자리 잡고는 있었다. 동료 중 누군가가 유대인에 대한 우스갯소리를 하면 동료들에게 뼈 있는 한마디를 던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까. 끔찍했던 역사의 기록에 대해서 자신도 모르게 무관심해지려고 하거나, 굳이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어느 정도 그것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당시에 일어났던 믿을 수 없는 일에 대해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과거의 끔찍한 그것에 대해 너무 자세히 알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탈러 형사처럼, 그것에 직접적으로 다가가보면 자신이 얼마나 막연하고 불확실하게 생각했었는지 깨닫곤 한다. 특히나 그것이 나치의 만행,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있었던 일이라면 사진과 기사, 자료들을 보면서도 눈앞에 있는 내용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끔찍할 테니 말이다. 

얀 제거스는 사건의 동기에 잔인했던 역사적 사건을 두고 전형적인 추리 소설의 방식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었던 사건을 담아내었다. 사건 현장에서 사라진 거장의 미발표 악보로 시작하는 이야기라, 음악적인 배경이 함께 진행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정작 사건이 시작되면 그것은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진 다는 점이 좀 아쉽지만, 전작보다는 더 풍부한 이야기로 지루할 틈은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갑작스런 결말 또한 살짝 아쉬웠는데, 두 편 모두 이런 방식이다 보니 어쩌면 이건 여운이 남는 결말을 위해 독자들로부터 뭔가 부족함을 느끼도록 하는 작가 특유의 스타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독일에서는 이 작품이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마탈러 형사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이런 류의 시리즈 작품은 중심에 있는 캐릭터 구축이 가장 중요하다 보니, 주인공 형사에게만 감정 이입이 되어도 중간 이상의 재미는 보장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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