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수상작
기타가와 에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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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십여 년 정도 하고 있는 내 동생은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간수치 검사를 하고, 약을 타온다. 잦은 야근과 휴일 근무로 인한 스트레스에다, 불규칙적인 식사 습관까지 더해 간수치가 높아져 한 동안 병원에 입원도 했었지만, 의사는 스트레스 받지 말고 좀 쉬어야 한다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가. 결국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져 회사를 그만두고 6개월 정도 휴식을 취했지만, 마냥 놀 수 만은 없어 다시 일을 시작했고, 현재는 여전히 주6일 근무, 가끔은 7일 근무도 하면서 휴일 없이 일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 회사가 야근에 휴일 근무를 해도 별도 수당이 없는데다, 직원들을 복지 정책도 현저히 낮다는 것. 그러니 능률도 떨어질뿐더러 성취감도 생길 수가 없고, 스트레스는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다. 하지만 사실, 어디 내 동생만 그렇겠는가. 이 땅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내용만 다를 뿐, 거의 비슷한 강도의 스트레스로 자신의 건강까지 해쳐가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을 것이다.

나도 한때는 매일같이 회사를 때려 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던 직장인이었다. 물론 지금은 육아에 치여 직장 생활보다 더한, 24시간 풀 타임 근무(?)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래서 한 동안 잊고 있었던 직장 생활의 악몽을 이 책 속의 아오야마를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언제부터 웃지 않게 되었을까. 비디오를 되감은 듯한 시간을 그저 소화해 나갈 뿐인 하루하루.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월급은 제자리걸음. 실적을 올리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상사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직원에게는 조금의 서비스도 없으면서 서비스라는 이름의 잔업만이 늘어간다.

토요일 출근은 당연지사. 일요일에 죽은 듯이 자고 있다가 요란한 휴대전화 소리에 억지로 눈을 뜬다. 수화기 너머로 부장이 거래처에서 클레임이 들어왔다고, 내 담당이라고 미친 사람처럼 외친다.

뭐야, 원래는 선배 담당이었잖아. 까다로운 거래처만 떠넘기지 말라고. 내가 입사하기 전 일을 이야기하면 어쩌라는 거야. 애초에 선배가 그만둔 것도 네놈 탓이잖아. 망할 상사.

매일 같이 6시에 기상해서, 8 35분에 회사에 도착하고, 19 35분에 상사가 퇴근하고 나면 나머지 일을 마무리하고 21 15분이 되어서야 마침내 퇴근, 늦은 전철을 타고 22 53분에 집에 도착하면 25시에 잠자리에 든다. 이것이 바로 아오야마가 일주일 중에 무려 엿새를 보내는 규칙적인 스케줄이 되겠다. 새벽에 출근해서 점심 시간에 잠깐 숨 돌리고 야근까지 하고 집에 돌아오면, 이미 녹초가 되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쓰러지듯 잠에 빠져 들고 나면 어느덧 새벽, 다시 좀비처럼 일어나 회사에 가고 반복적인 생활은 마치 기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출퇴근만 반복하다 보면 연애를 할 시간도,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사라져 인간 관계까지 나도 모르게 정리가 되고 만다. 그렇게 나이를 먹다 보면 어느 순간 불쑥,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대체 내가 이 일을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는 거지?'

아오야마가 입사하고 석 달 동안 생각했던 '사람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처럼 말이다.

<미생>에서 장그래는 김 대리에게 직장을 다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김 대리는 김 대리는 딱히 다른 게 없다면 결국 돈과 승진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과연 그럴까. 어쩌면 돈과 승진만 바라보며 직장 생활을 하기에, 우리의 매일매일이 지옥 같았던 건 아닐까.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있나.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정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인생이니 말이다.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다들 잠시 숨을 멈추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꾸기는커녕 이 사회 하나, 이 부서 하나, 마주한 사람 한 명의 마음조차 바꿀 수 없는, 이토록 보잘것없고 장점 하나 없는 인간이 나예요."

어느새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런 나라도 한 가지만은 바꿀 수 있어요. 바로 내 인생입니다."

아오야마는 여느 때처럼 늦은 퇴근 길 지하철 승강장에서 상사의 전화 연락을 받고는 한숨을 푹 내 쉰다. 어차피 내일도 출근할 텐데 왜 이리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고, 그는 끈질기게 울리는 진동을 무시하고 휴대전화 전원을 꺼버린다. 집에 돌아가서도 항상 다음날 출근에 대한 부담으로 늦게까지 잠이 들지 못했기에 차라리 여기서 자버릴까 싶은 생뚱 맞은 생각을 하며 천천히 눈을 감는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선로에 떨어질 뻔한 순간, 누군가 자신의 팔을 꽉 잡고는 그를 구해준다. 떨어진다고 각오한 순간, 갑작스런 힘에 이끌러 다시 현실로 돌아와 멍해 있는 아오야마에게 자신이 초등학교 동창이라며 오랜만이라고 반갑게 떠든다. 정작 아오야마는 그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엄청난 기세로 말을 이어가며 반가워하는 그의 모습에 얼떨결에 자신도 그의 동창이라고 믿어 버린다. 그렇게 만난 그들은 자주 연락을 하고, 만나서 술도 마시고, 쇼핑도 함께, 좋아하는 영화도 보면서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커플처럼 지낸다.

야마모토는 아오야마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하면서 그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고, 어느 순간 아오야마는 직장에서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소리도 듣게 되고, 영업 성적도 조금씩 올라가며, 일에도 점차 자신감이 붙게 된다. 하지만 그러다 야마모토가 자신의 동창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에 대해 찾아보다 그가 3년 전 자살했다는 뉴스 기사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여태 자신의 곁에 있었던 야마모토는 누구인가? 유령이란 말인가? 이야기는 가벼운 에피소드로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어내기 시작하자, 미스터리 적인 요소를 도입해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더욱 빠르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궁금증을 증폭시킨 상태에서, 아오야마는 대형 사고를 치게 되고 자신이 거의 체결해놓았던 큰 계약 건에서 밀려나게 된다.

역시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건가.

아오야마는 한계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자신은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고, 회사 옥상에서 높은 펜스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열려 있는 그 순간만을 기다리게 된다. 그는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리고 대체 야마모토의 정체는 무엇일까. 제목만 보고 별 생각 없이 가볍게 읽기 시작했던 이 책은 미스터리한 긴장감과 유쾌한 재미와 따뜻한 감동까지 안겨주었다. 세상 살기 참 힘들지만, 그래도 한번뿐인 내 인생 내 맘대로, 멋지게 한번 살아보자 싶은 의욕까지 불러일으키며 말이다. 오늘도 희망 없이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밥벌이의 고단함에만 치여 있지 말고, 언젠가는 웃으며 회사를 나가는 그 날이 오기를 바래본다. 인생이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잊지 말라고, 살아만 있다면 인생이란 의외로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자신을 믿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을 기억하고, 내일을 위해 다시 한번 발걸음을 내딛어 보자. 당신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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