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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각의 여왕 - 제2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유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평점 :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지금 당장이든, 혹은 내일이든, 아니면 수십 년 후라도. 시기만 다를 뿐이지 태어난 이는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니 말이다. 바쁜 일상에 치여 정신 없이 하루를 보내느라, 우리가 잠시 잊어 버리고 살 뿐, 죽음은 그렇게 우리 곁에 함께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여태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장례 지도사 혹은 유품 정리사 등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참 낯설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언젠가는 겪게 될 죽음인데, 뭐 하러 나와 상관없는 타인들의 수많은 죽음을 곁에서 목격하는 직업을 선택했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파지에 빠져 들다 보면 작가가 직접 그녀 귀에 대고 말해줄 때가 있다.
'왜 태어났는지 왜 사는지 왜 죽는지 아니?'
열심히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아니 몰라.'
'모르는 게 당연해. 태어나고 죽는 데는 이유가 없거든.'
해미는 냉소적 비웃음이라고 생각했다. 작가가 세상에 보내는 냉소와 조롱과 야유. 그것이 실은 위로의 말이라는 걸 해미는 그 순간 깨달았다. 죽고 사는 데 아무런 이유가 없다...... 해미는 손에서 힘을 빼고 물러섰다. 이유가 없다잖아.
해미는 재수학원을 다닌 지 석 달 만에, 고물상을 운영하는 아빠의 일을 돕기 시작한다. 할머니도, 엄마도 병을 앓다가 떠나 버린 뒤 그들에게 남은 거라고는 고물상 밖에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아빠가 몰래 하던 유품정리 일을 시작하게 되고, 본격적으로 유품 정리사로 살아가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던 첫 번째 그녀의 작업 현장에서는 오래도록 앓아 누워있던 흔적이 남는 방에는 유황 타는 냄새도 심하게 났고, 분뇨 냄새에, 생선 썩는 내도 났다. 그녀는 방독면을 쓰고, 위생복도 입고, 모자도 쓰고는 악취 제거 제부터 꺼내 들었다. 쓰레기를 모두 처리한 뒤 쓸만한 유품을 정리해서 박스에 담고, 냄새의 진원지를 하나씩 처리하고, 덩치 큰 가구들을 해체하고, 분해하며 죽음의 흔적들을 차례로 지워나갔다. 마지막으로 폐기물 처리장에서 유품들을 소각하고는 아파트로 돌아와 샤워를 여러 번 하고 구석구석 몸을 씻었지만,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몸이 푹 꺼지는 듯한 기분으로 그녀는 아빠의 손에서 바통을 이어 받게 된 것이다.
해미라는 캐릭터가 워낙 밝고, 엉뚱하기에 그렇겠지만, 그녀는 죽음을 꽤나 무심하게, 덤덤하게 여기며 말한다. "자연사를 했든, 자살이든 살인이든, 죄다 똑같아. 부패가 되고 가스로 복부가 부풀어오르고 복부에 든 가스가 새어나오면서 부패액이 흘러나와. 인간이라는 형태가 무너져 내리는 거지...." 유품 정리사 업무를 장에게 설명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인간도, 죽음도 모두 그저 티비 속에 나오는 만져지지 않는 형태의 무엇인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짐작하던 '죽음'과 실제의 '죽음'은 이렇게 다르구나 싶어, 서글퍼지기도 했고 말이다.
"있는 줄도 몰랐네."
"일이 끝나니까 따뜻하게 데운 보리차를 가져다 주더라는데?"
"그게 그애가 준 거였구나."
해미는 소파에 몸을 더 깊숙이 묻으며 말했다. 전혀,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기억할 필요도 없었다. 해미는 종종 작업장에 나타난 의뢰인이나 집주인을 보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데도 몰랐다. 안과에 가봤지만 눈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정씨는 안과가 아니라 정신과에 가보라고 했지만 그녀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보고 싶지 않으니까 보이지 않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스스로의 죽음을 부탁하려는 자살 시도자가 있는가 하면, 동거 남이 자살한 방을 정리해달라고 요청한 여자는 며칠 뒤 뱃속 태아를 버려두고 도망가 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죽음을 함부로 취급하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들 또한 죽음이 누군가를 파괴해도 삶은 계속된다는 작가의 덤덤한 목소리를 묵직하게 전달한다. 어릴 때부터 작가가 될 거라고 믿었던 작가는 어머니가 서른 후반에 병으로 돌아가신 뒤, 책을 인공호흡기처럼 끌어안고 살았다고 한다. 자신의 생이 중학생이었던 그 나이에서 끝난 거라고 느껴졌기에, 이후의 삶이 일종의 덤 같다고 생각하면서. 너무 어린 나이에 겪은 죽음은 이렇게 한 사람의 삶의 행로를 완전히 바꾸어 놓기도 한다. 그녀는 “죽음에 지배된 삶”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하는데, 이 작품은 그런 그녀의 생과 이어져 죽음을 독특한 형식으로 풀어놓고 있다.
갈수록 유품 정리사가 필요한 일이 많아진다고 한다. 고령화도 그렇고, 생활고로 인한 5-60대의 자살률이 높아서란다. 매년 증가하고 있는 독거노인들의 홀로사도 그렇고, 50대 중 장년들의 고독사도 그렇고, 쓸쓸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에게는 연락할 가족도 없고, 특별한 지인도 없기에, 죽는 순간까지 외롭고, 죽은 이후에도 아무도 그들을 수습하지 않기에 더욱 고독하다. 엄마의 죽음에 방관 혹은 기여했을지 모른다는 트라우마 속에서 죽은 자들의 유품을 처리하며 살아가는 해미의 이야기는 끔찍한 일에 무심하고, 무거운 일엔 활기차게 진행되다 어느 순간 스스로 소멸하게 된다. 이 험난하고 서글픈 세상 살면서 그저 그런대로 괜찮다면, 그것이 오히려 비정상인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