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과학 2 - 과학에서 출발해 철학으로 나아가는 1분 드라마 1분 과학 2
이재범 지음, 최준석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억이란 우리 정신이 시간 여행을 하는 것과 같지요."

기억 속에 있는 경험과 추억을 떠올릴 때 우리는 마치 그 공간에 있는 것처럼 그때의 향기, 소리, 촉감을 기억하며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과거로 우리의 정신이 시간 여행을 한다면 어떨까?            p.74~75


여름의 불청객 모기가 생태계에 꼭 필요한 존재라면? 현대인들의 정신 질환이라고 여겨지는 우울증이 수십만 년 전에도 있었다면? 인간보다 뛰어난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시대가 온다면? 현실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우리의 호기심을 해결해주는 책이 있다.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동물은 바로 인간이라는 점을 진화의 과정을 통해 설명해주고, 겨드랑이에 털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화학적인 이론을 통해 알려 준다. 사라지지 않는 과학계의 거짓말을 리스트로 정리해 보여주고,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알고리즘'에 대해 철학적으로 사유한다. 그야말로 과학이라는 창을 통해 일상 전반에서 일어나는 일에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이자 유튜브의 과학 채널 ‘1분 과학’을 운영 중인 과학 크리에이터 이재범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채플힐에서 공부하던 때 우울증을 앓다가 처방받은 항우울제로 상태가 곧 호전되는 놀라운 경험을 한 후 과학의 경이로움에 푹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에피소드가 이번에 나온 2권에 수록되어 있다.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세로토닌이 분비되는 약을 통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이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가 된 기분이 들었고, 어쩌면 그동안 자신이 가상의 세계에서 살았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하니 말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알약 하나로 바로 행복해지는 경험이라니 그럴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가상의 세계와 진짜 세상에 대한 사유가 그를 과학의 세상으로 이끌었다니 그또한 놀라운 일이었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과학의 세계를 만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기름 없이 전기로 500km를 달리며 운전자 없이 스스로 운전을 하고 주차까지 하는 자동차를 상상하지 못했다. 기술의 발전은 멈출 줄 모르고 인간이 만든 기계는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 로봇들 중 하나는 언젠가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시점을 싱귤래리티, 혹은 '특이점'이라고 말한다. 이런 비현실적인 날이 온다는 것을 의심하는 과학자는 별로 없다.                 p.148~149


구독자 90만 명의 유튜브 교양 과학 채널 ‘1분 과학’의 두 번째 책이 다. 누적 조회 수 9000만 회를 돌파하며 '과알못'도 빠져들게 만드는 꿀잼 과학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1분 과학의 대표 에피소드를 만화로 풀어낸 것이 바로 이 시리즈이다. 무엇보다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과학 이야기라는 점과 요점만 콕콕 찝어서 만화로 보여준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1권에서 커피, 고양이, SNS 같은 생활 속 주제부터 유전자, 시간, 진화 등 무게 있는 주제까지 다양한 과학 이야기를 들려 주었었다면, 2권에서는 모기, 우울증, 사랑에 관한 이론부터 인공지능, 신, 가상의 세계에 관한 철학까지 다루며 시의성 있는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이번 2권에서는 특히나 미래를 다루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인공지능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로봇들에 대해서, 증강현실과 종교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중에서도 종교를 증강현실 게임으로 해석하는 부분이 상당히 새로웠는데, 각 종교별로 지켜야 하는 규칙과 최종 목표, 그리고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만 보이는 존재와 믿음에 대한 부분은 진짜 설득력이 있어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다. 1분 과학 채널은 '과학 채널을 가장한 철학 채널이 아니냐’는 말이 많을 정도로 과학 이야기의 범주를 넘어선 주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과학과 철학을 이렇게 함께 읽어 낼수도 있구나 감탄하게 되었다. 게다가 최신 과학 이론을 굉장히 단순화시켜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 과학 공부의 문턱을 낮추고 싶거나, 과학이라는 분야를 폭 넓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면 꼭 읽어 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승달 엔딩 클럽 티쇼츠 2
조예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까지 찾아와 놓고 죄송하지만, 제발 누가 좀 구해 주세요...... 간절하게 빌었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실에서도 없는 기적이 이곳에서 벌어질 리 없었다. 달리면서 양옆을 돌아봤다. 듬직하기만 하던 수림은 얼굴을 잔뜩 구기며 울었다. 거친 욕설을 지껄이며 "괴물 미친 새끼."를 연발했다. 우리가 엔딩을 얕봤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죽는 건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죽음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다. 가만히 앉아서 닥쳐 오기를 바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p.83~84


모든 학교에는 괴담이 있게 마련이다. 보름달이 뜨는 날, 별관을 통해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괴담도 그중 하나였다. 제미는 괴담이나 괴물보다 더 무서운 건 가정 불화로 인해 막막한 자신의 앞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또 가상 화폐 투자 실패로 오천만원을 잃었고, 엄마는 너 죽고 나 죽자고 외치며 칼을 들고서 아빠에게로 간다. 엄마의 행동은 순전히 위협용이었고, 아빠가 비명을 지르며 욕을 하기 시작하면 진정한 싸움이 시작된다. 그쯤 되면 제미는 자리를 피한다. 왜냐하면 엄마와 아빠가 다투기 시작하면 그 공간에서 제미는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날은 이 모든 게 지긋지긋해져 간단한 세면도구와 복대형 전기장판까지 챙겨 집을 나온다. 기숙사에 있는 우등생 친구 연준에게 하루 신세를 지기 위해 학교로 향했고, 기다리다 생물실 실험대 밑에서 깜박 잠이 들고 만다. 그리고... 소문만 무성했던 실제 괴담 속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그런 끔찍한 게 다 진짜일 리 없다고, 꿈이었을 거라고 애써 생각하다가 제미는 그 세계가 진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나아질 구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가족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고,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라리 괴물에게 잡아먹혀 다시는 이쪽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아야겠다고 '초승달 엔딩 클럽'을 만들게 된다. 다음 보름달이 뜨기까지는 한 달가량이 남았고, 차근차근 끝을 준비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학교 대나무숲 SNS에 올린 글을 통해 데뷔조에서 떨어지고 절망한 아이돌 연습생 환희와 학교 폭력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수림까지 초승달 엔딩 클럽의 멤버가 된다. 세 사람은 '죽고 싶다'는 공통점으로 모여 함께 행동하기로 결심 한다. 마침내 디데이가 되었고, 그들은 계획대로 그곳에 도착하지만, 젤라틴 괴물을 마주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도망치고 만다. 죽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 이들의 엔딩은 어떻게 될까. 





정말 우리가 다녀온 붉은 생물실이 죽은 화문이 만들어 낸 저주의 공간이라면, 그 모든 걸 멈출 수 있는 열쇠 역시 그쪽 세계에 있을 테다. 그리고 화문은 나에게 구해 달라고 말했다. 그건 스스로는 멈출 수 없다는 말이었고, 또한 멈추고 싶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화문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이 도망친 세상에 갇혀 버린 기분을. 족쇄 같은 모든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을 작은 아이를 이제는 편하게 해 주고 싶다고.                 p.136


위즈덤하우스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짧은 청소년 문학 시리즈 '티쇼츠', 그 두 번째 작품이다. 박서련 작가의 <퍼플젤리의 유통 기한>에 이어 이번에는 조예은 작가가 <초승달 엔딩 클럽>을 선보인다. <스노볼 드라이브>, <만조를 기다리며>, <적산가옥의 유령>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조예은 작가는 언제나 강렬한 임팩트가 있는 작품으로 이야기가 끝이 나도 긴 여운을 남겨주는 서사를 보여주었었다. 호러라는 장르적 요소를 매우 섬세하게 풀어내며 조예은표 새로운 호러 소설을 만들어내곤 했던 작가라 이번 작품 역시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누구나 가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답답한 현실 앞에서 입버릇처럼 죽고 싶다고 말하더라도 결국은 평범하게 잘 살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조예은 작가는 그런 십대들의 마음을 사려깊게 헤아려 괴상하지만 어딘가 뭉클한, 무섭지만 이상하게 다정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죽으려고 괴물을 찾아갔으면서, 어쩌다 보니 괴물을 구하고 싶어 계획을 세우게 된 이 작품 속 친구들처럼 사람의 일이란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오늘이 아무리 절망스럽더라도, 불투명한 미래의 어느 날 뜻밖의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거다. 혼란스럽고, 걱정도, 고민도 많은 청소년들이 조예은 작가가 그려낸 이 작품을 통해서 조금은 위로 받기를, 응원이 되어 주기를 바래본다. '티쇼츠' 시리즈는 한 손에 잡히는 가벼운 판형과 두께로 청소년들이 가장 궁금해 할만한 주제로 풀어내고 있는 이야기라 부담 없이 읽어볼 수 있다. '독서가 좀 더 보편의 취미가 되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을 통해 책과의 심리적 거리를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등 과학 신문 - 최신 개정 교육과정 반영
김선호 지음 / 경향BP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해 한국에서만 약 100억 마리의 꿀벌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많은 꿀벌이 사라진 것일까? 매우 온도가 낮은 남극 빙하 아래에도 동물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영하 200도보다 더 낮은 데다 산소도 거의 없는 그곳에서 어떻게 생명체가 살 수 있을까? 식물이 자신을 괴롭힌 사람을 기억하고 반응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는데, 믿을 수 있는 이야기일까? 태양계에는 많은 소행성이 우주를 날아다니고 있는데, 만약 그중 하나가 지구와 충돌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가 모르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과학 연구가 세상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상상한 것을 현실로 만드는 마술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초등학생이 꼭 알아야 할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 50가지를 담고 있다. 신기한 생물 세상, 놀라운 지구와 드넓은 우주, AI, 유전공학, 첨단과학, 친환경 등 미래 과학과 호기심 가득한 도적 과학이라는 네 가지 카테고리로 구성했다. 


특히나 과학 분야 신문을 초등학생들의 언어와 사고 구성에 적합하게 바꾸어 설명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최신 과학적 정보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이 어떤 흐름과 관심을 갖고 발전해 나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최신 개정 교육과정이 반영되어 있어 과학을 어렵게 느꼈던 아이들에게 과학을 보다 재미있고, 쉽게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삼겹살을 먹고 남은 돼지기름으로 자동차를 움직일 수 있다면, 그 원리는 대체 뭘까? 버려지는 소변을 이용하여 비누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거리낌없이 사용해도 괜찮은 것일까? 인간의 팔이 날개로 바뀐다면, 혹은 큰 날개를 달면 하늘을 날 수 있을까? 만약 개인이 집에서 폭탄을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뒷마당 창고에서 핵폭탄을 만든 시도를 한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게 가능한 일일까? 우주선에서 감기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총알보다 빠른 자동차가 있다는데, 정말일까?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 교과의 내용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연관되어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과학 원리가 숨어 있고, 과학이란 사실 우리의 생활과 아주 밀접하고 친근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을 '공부'라는 수단으로만 접근하게 된다면 이러한 재미를 전혀 느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런 책을 통해서 과학과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아주 도움이 될 것 같다. 




과학의 내용을 신문 형태로 읽어 보고, 본문 내용의 중요한 부분들을 짚어 보며 어휘와 내용을 탐색하고, 마지막으로 해당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 써 보기까지 하면 하나의 챕터가 끝이 난다. 과학 이야기를 통해 논술의 기초가 되는 어휘력, 문해력, 사고력, 논리력까지 키울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질문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보고, 현실과 연결시키게 되면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바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찾아서 골라 읽으면 되고, 그러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덜 좋아하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우주에 관심이 있다면 우주부터, 공룡에 관심이 있다면 공룡부터 읽으면 된다. 해당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는 과정을 즐기다 보면, 과학자다운 자세도 배우게 될테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과학 지식도 쌓고, 생각도 깊어지는 시간을 가져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말의 바보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내 인생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믿고 있었다. 때문에 그러는 사이 야스코가 먼저 사과하지 않겠나, 라고 배짱을 부린 것도 사실이다. 설마 그 이듬해에 '남은 수명은 앞으로 8년'이라는 선고를 받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것도 '내 수명'이 아니라 '세상의 수명'이었으니, 실로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 '종말의 바보' 중에서, p.17


우유부단한 후지오는 어떤 일이든 선택할 수 있는 경우가 오히려 더 괴로웠다. 매번 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해 고민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보다 두 살 위인 아내 미사키는 그와 성격이 정반대이다. 그런데 이번에 어쩐 일인지 아내가 후지오에게 결정권을 쥐어 줬다. 부부는 오랫 동안 아이가 생기길 바래왔었는데, 드디어 아이가 생긴 것이다. 임신 8주라는 진단을 받고 아내는 낳을지 말지, 후지오에게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결혼한 지 7년 만에 찾아온 새 생명, 당연히 기뻐해야 할텐데 왜 후지오는 고민하는 걸까. 이유는 3년 뒤에 소행성 충돌로 세상이 끝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태어나봤자 3년 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 세상의 종말을 앞두고 그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4년 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혼자 남겨진 미치는 세 가지 목표를 정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책을 전부 읽는다, 죽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막 두 번째 목표를 달성하고, 세 번째 목표는 아직 달성 중이다. 아버지의 서재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책들은 어림잡아 3천 권 정도였을 것이다. 하루에 한두 권, 마음이 내키면 세 권, 그런 식으로 계속 읽어오는데 꼬박 4년이 걸렸다. 대부분의 학교가 종말 소동 이후 문을 닫고, 방송도 끊겼고, 아파트에 남아 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미치는 하루하루를 책 읽는 데 소비하며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지냈다. 음식 재료를 사러 식료품 가게에 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외부 세계와의 접촉도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진짜 해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두 번째 목표를 완성하고 나선 슈퍼마켓에서 오랜 만에 동창을 만나게 된다. 동창이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새로운 목표가 생기게 되는데, 앞으로 3년이면 끝나버릴 세상 속에서 미치의 새로운 목표는 이뤄질 수 있을까. 





"소행성이 떨어질 때, 죽을 때는 어떤 느낌일까요?" 나는 무심결에 물어보았다. 쓰치야 씨는 운동장에 핀 아지랑이라도 보는 표정으로 "눈 깜짝할 새 아닐까?"라고 말했다. "깜짝 놀라겠지만, 분명 눈 깜짝할 새에 의식이 사라질 테지. 아마 죽었다는 것도 모를 거야."

"그건 싫네요."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싫어?"

"아무 생각도 못 하게 되는 게 두려워요. 예를 들면 아, 죽었다, 이런 생각도 못 하게 되겠죠? 그건 무섭고 싫습니다."             - '심해의 지주' 중에서, p.345~346


앞으로 몇 년 후에 지구에 운석이 떨어져서 세상이 멸망한다면 어떨까. 누구나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엉망이 되지 않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종말의 바보> 원작 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은 8년 후에 소행성이 충돌하여 지구가 멸망한다는 충격적인 발표가 있은 지 5년 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소행성 뉴스를 들었을 당시 자포자기한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물건을 훔치는 온갖 범죄를 저질렀고, 그렇게 폭동, 방화, 살인, 강도, 사기 등 지상의 모든 곳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들은 치안을 지키기 위해 가차 없이 거친 수단을 취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완만한게나마 범죄는 줄어들고, 거리는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 대혼란에 빠졌던 세상도 이제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불안한 평화가 유지되고 있었다. 이제 지구의 멸망까지 남은 것은 단 3년,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일상을 견뎌내야 할까. 


이야기는 지방 도시 센다이의 아파트 힐즈 타운의 살아남은 주민들의 하루하루를 통해 보여진다. 세상의 종말을 앞두고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 이들의 여덟 편의 이야기는 담담하지만, 뭉클한 감동을 전해 준다. 어떤 비참한 상황에서라도,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면 삶의 의미 자체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만약 내일 죽는다면 인생이 바뀔 것인가, 혹은 몇 년 뒤에 지구가 멸망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작품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세상의 끝이 정해져 있다면, 대체 무슨 일을 해야 사는 게 의미있을까. 어떻게든 남아 있는 나날을 버텨내려면 뭘 해야 할까. 소행성이 떨어질 때 죽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나 혼자만 죽는 게 아니라 세상 전체가 사라지는 거라면 조금 위로가 될까. 이사카 고타로는 대재앙이라는 소재를 매우 인간적인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삶의 의미를 묻기 위해 죽음을 눈앞에 가져온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고,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원한 천국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마무시하게 돈이 많은 미국의 한 생명공학 회사가 인간이 죽지 않는 방법을 찾았다는 거야. 아니다, 죽지 않는 게 아니지.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새로운 인종이 된다지, 아마. 뭐든 가질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는데, 내 생각엔 그 정도면 신과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신이야. 아무튼 그 회사가 세계 최고의 게임 회사와 손을 잡고 신들이 거처할 세상을 만들었다 이거야. 부자도 없고, 가난한 자도 없고, 병든 자도 없는 세상.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사는 영원한 천국."                 p.106


가상세계에서는 뭐든 하고 싶은 일을 실제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으며, 도덕적 부담을 짊어질 필요도 없다. 불량하고 불건정한 환상을 원한다면 술과 약의 세계가 소망을 이뤄주고, 어디론가 가고 싶은 사람은 심해든, 에베레스트든, 태양이든 어디로든 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남자든, 여자든, 영웅이든 악당이든, 혹은 동물로도 살아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인 '롤라'는 거대 네트워크이자 빅 테이터이며 통합 플랫폼이다. 해상은 롤라의 세계 속에서 1인칭 가상 극장 ‘드림시어터’를 만드는 설계자이다. 이야기는 해상에게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드림시어터를 만들어 달라는 한 남자의 기이한 의뢰가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의뢰자인 경주는 도수치료사로 이름을 날리다 의료 사고로 인해 병원에서 잘리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동생인 승주는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점점 상태가 나빠졌다. 정신과에 끌고 가 치료를 시작했지만 좀체 나아지지 않았고, 참다 참다 아버지의 기일에 폭발한 경주는 승주에게 차라리 나가 죽으라고 모진 말을 내뱉고 만다. 그 길로 집을 나간 동생은 두 달 동안 연락이 없었고, 결국 노숙자 촌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실의에 빠진 경주는 급여가 높고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노숙자 재활시설 삼애원의 보안요원으로 일하게 되는데... 그곳은 이상기후로 인해 유빙이 떠내려 오는 외딴 곳이었다. 경주는 그곳에서 노숙자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을 듣게 되는데, 어떤 기업이 인간이 죽지 않는 방법을 찾아냈고, 그 실험 대상으로 노숙자들에게 무작위 티켓이 발부되었다는 거였다. 그 티켓을 얻기 위해 노숙자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경주는 동생의 죽음이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 자신과 함께 보안요원으로 입사한 동기 제이가 비밀리에 뭔가를 찾아 다니다, 차가운 눈밭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발견되는데... 의식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그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 그 이름은 바로 '해상'이었고, 경주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해상은 그의 룸메이트 제이가 자신의 제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쪽 세상에서 살 때 나는 내가 누군지 안다고 생각했어요. 사는 게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살다 보면 나아질 거라 믿었고. 결국 그런 믿음은 허상이었어요. 내가 왜 사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된 거죠."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삶을 이해할 사람이 있을까요."

내가 되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영원히 살고 싶어서 롤라에 온 게 아닙니다. 그저 도망친 겁니다. 그것도 아주 성급하게. 이곳에 와서야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때 도망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내 삶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p.390


이야기는 현재 롤라의 해상, 그리고 과거 삼애원의 경주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 진행되면서 이야기는 점점 밀도를 높여 나간다. 악명 높은 암초 지대이자 유빙으로 둘러싸인 세계는 온갖 암투와 모략이 판이 치는 수상한 곳이다. 마치 '복마전'처럼 끊임없이 비밀과 욕망이 뒤엉켜 나쁜 일들이 벌어진다. 해상의 세계에서 등장하는 제이는 삼애원의 제이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게 된 장소는 카이로의 사막이다. 폭설과 한파로 점철된 차가운 세계와 뜨겁고 건조한 모래 사막의 세계라는 장소의 대비처럼 두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흘러가다 어느 한 지점에서 중첩된다. 그리고 특유의 힘있는 문장으로 이끌어 가던 서사가 폭발하기 시작한다. 제이가 롤라의 초기 개발자였고, 해상에게 롤라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그가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을 뺀 나머지, 한 개체의 고유한 의식과 무의식, 본성, 반사작용, 감각이나 신경 회로 같은 것들을 모두 정보 형태로 네트워크에 업로드 한다는 것이 과연 현실 세계의 삶에 얼마만큼 가까워질 수 있을까. 자신의 정신과 몸을 완벽하게 홀로그램으로 구현해내,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와 똑같은 가상현실처럼 만들어냈다고 해도 말이다. 


국내 작가 중에 스릴러 장르를 이렇게 잘 쓰는 이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매번 감탄하며 읽게 되는 정유정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완전한 행복>에 이은 욕망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악의 3부작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에서 인간의 ‘악’과 대면하고 그것과 처절한 사투를 벌였던 작가는 이제 인간의 ‘욕망’과 정면 승부한다. 전작에서 '자기애의 늪에 빠진 나르시시스트, 즉 병리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삶을 휘두르기 시작할 때 발현되는 일상의 악'을 그렸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인간성의 가장 먼 미래, 현실 너머로 질주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탐구한다. 특히나 이번 소설을 위해 홋카이도의 아바시리와 이집트의 바하리야 사막을 직접 오가며, 거대한 유빙에 포위된 어둠의 바다와 황량하고 메마른 대지의 한복판에 글을 썼다고 하는데... 덕분에 장소에 대한 실감 나는 묘사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불멸의 삶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야 이야기의 소재로 아주 고전적인 것이지만, 정유정 작가는 인간의 본성 그 깊은 곳으로 내려가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심연을 들여다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몰입감을 안겨주는 힘도 여전하다. 역시 정유정은, 정유정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