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크 & 피클스 - 이균 셰프가 그리는 음식과 인생 이야기
에드워드 리 지음, 정연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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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크리미하고 아삭하면서 새콤달콤한 맛. 나는 덥석 베어 물면서 생각했다. "대체 입안을 감싸는 이 맛있는 음식의 정체는 뭐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면 더 나은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내 끈질긴 의심이 더욱 힘을 얻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마요네즈를 먹는 사이에 백인은 레물라드를 먹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사치스러운 무엇이 더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여기지만 나는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그런 것들이. 나는 그 이후로 한동안 매일 밤 불안하게 잠을 설쳤다. 그 작은 뇌 주름 사이 어딘가에서 무언가 철컥 소리가 났고, 나는 남은 인생을 음식이라는 유혹을 좇으며 살게 될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24


작년 한해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다시금 셰프들의 인기가 높아졌는데,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사람이 바로 에드워드 리, 이균 셰프가 아닐까 싶다. 흑백요리사의 우승자보다 더 주목받고, 사랑받는 준우승자라니, 재미있는 일이다. 그는 이민자로서 미국 남부 요리와 한국 전통 음식을 결합하여 독창적인 요리 세계를 보여주었는데, 요즘은 자유로운 스타일과 위트있는 말솜씨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흑백요리사의 인기로 인해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예능 프로그램인 <냉장고를 부탁해>가 시즌 2로 다시 돌아온 것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먹방과 쿡방의 인기를 주도했던 프로그램이었기에 새롭게 출연하는 셰프들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도 기대가 되었고 말이다. 에드워드 리 셰프를 비롯해서 흑백요리사에서 활약했던 셰프들이 방송에 나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당분간은 셰프들의 전성시대가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국내에는 흑맥요리사로 알려졌지만, 2010년 <아이언 셰프>라는 프로그램의 우승자로 여러 유명 요리 대회와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미국의 스타 셰프이다. 2019년에는 요리계의 노벨문학상이라 불리우는 제임스 비어드 상을 수상했고, 백악관 만찬 셰프이기도 하다. 요리 레시피와 함께 에세이 형식으로 전개되는 그의 첫 번째 요리책 <스모크 & 피클스>가 이번에 출간되었고, 곧 이어 <버터밀크 그래피티>와 <버번 랜드>도 나올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특히 <버터밀크 그래피티>는 제임스 비어드 수상작이기도 하고, 미국에서 접한 새롭고 다양한 이미자들의 요리와 레시피에 대한 사유를 담아 표현한 에세이라고 하니 궁금하다. <버번 랜드>는 미국인의 소울이 담긴 버번 위스키에 대한 에드워드 리의 러브 레터라고 하는데, 역시나 기대가 된다. 




지금은 음식계에서 모든 일이 엄청난 속도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스페인의 한 마을에서 일어난 획기적인 일이 루이빌의 뉴스를 장식한다. 세상은 140자의 텍스트와 요리 쇼의 DVR 메뉴로 압축되어 있다. 주방에는 값비싼 일본 칼을 든 잘생긴 젊은 셰프가 가득하다. 우리는 당근 하나를 가져다가 해체하고 다시 조립해서 음, 어쨌든 당근 맛이 나도록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지구 구석구석의 음식을 맛보고 먹을 수 있어 다소 지친 양가감정을 가지고 그에 반응한다. 무언가에 대한 검증이 더없이 공개적이고 세밀하면서도 공격적인 시대다. 스포츠로서의 요리는 계속될 것이다... 지금은 셰프에게 귀속된 세대다.              p.148~149


각각의 챕터는 양과 휘파람, 소와 클로버, 돼지와 도축장, 피클과 결혼, 채소와 자선... 이런 식으로 주제가 되는 식재료와 그것을 둘러싼 에드워드 리의 인생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가족들에 대해서, 음식과 요리하는 기쁨에 대해서 풀어내고 있는 이야기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레시피와도 연결이 된다. 에세이로 포문을 열고 폴드 양고기 바비큐, 시나몬 허니 양다리 로스트, 단호박 만두 사골국, 닭고기 미소 조림 등 다양한 레시피들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덮밥' 레시피가 아주 많이 등장한다는 것인데, 소박하고 일상적인 식사의 상징인 밥에 현대적인 기술과 세계 각국의 풍미, 독특한 조합 등 에드워드 리가 익혀 온 모든 것의 총합을 더한 레시피이기에 매우 익숙하면서도 창의적이라 만들어 보고,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에드워드 리의 개인적인 성장 과정과 요리 세계가 확장되는 여정을 따라 소, 돼지, 양, 해산물, 피클, 버번에서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가정에서 다룰 수 있는 모든 식재료를 소개하고 있다. ‘요리’가 단순한 조리 행위가 아닌 문화와 정체성, 가족, 인간관계를 탐구하는 방식이자 자신의 뿌리와, 딛고 사는 터전에 대한 사랑이라는 그의 철학이 페이지마다 담겨 있어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문학을 전공해서인지 글솜씨도 유려한데, 그의 독창적인 요리 레시피만큼이나 에세이도 반짝이는 영감으로 가득하고 매력적이다. 


개인적으로는 피클 챕터에서 소개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 김치 레시피’를 소개하는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김치'라는 단어를 명사보다는 동사라고 생각한다며, 양배추, 오이, 무, 굴, 심지어 과일까지 무엇이든 김치로 만들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여러 재료로 김치를 만들어 왔는데, 책에 수록된 것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김치 만드는 법 네 가지라고 한다. 겨울의 적양배추 베이컨 김치, 봄의 녹색 토마토 김치, 여름의 흰 배 김치, 가을의 매운 배추 김치는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 책에 수록된 모든 레시피들이 가정에서 만들 수 있는 계량과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어 셰프의 요리는 어렵고 복잡할 거라는 편견을 가뿐하게 넘어서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레시피마다 에드워드 리 셰프의 경험담이 담긴 짧은 글들이 함께 곁들여져 있어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게 만들어 준다. 그가 '수없이 실패를 거듭한 끝에 최적의 방법을 찾아낸' 레시피들을 이렇게 책을 읽는 것만으로 알게 된다는 기쁨도 있다. 요리로 표현된 그의 진심을 누구나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자 특권이다. 스타 셰프들과 미식의 전성시대가 다시 돌아온 지금, 그 중심에 서 있는 에드워드 리 셰프의 이 특별한 책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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