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 컬렉터 링컨 라임 시리즈 11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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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가 돌아왔다. 국내 번역이 2년마다 출간되고 있어 기다리다 목이 빠질 지경이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링컨 라임 시리즈는 단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이번 <스킨 컬렉터>는 시리즈의 열한 번째 작품이다. 제목에서 다들 눈치챘겠지만,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본 컬렉터>와 연결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설적인 본 컬렉터의 모방범, 혹은 그렇게 보이는 범죄가 전면에 등장한다.

 

이야기는 옷 가게 여직원이 지하실에 내려갔다 한 남자를 마주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바로 빌리 헤이븐, 인간의 피부에 집착하는 문신 전문가이다. 그는 여자의 복부에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문자를 문신으로 새긴다. 그런데 그는 잉크대신 독을 사용한다. 게다가 그가 자신의 계획을 완성시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해 도서관에서 몰래 찢어온 책의 페이지는 바로 링컨 라임이 해결했던 본 컬렉터 사건에 대한 내용이 담긴 책의 일부였다. 과연 그는 본 컬렉터의 모방범일까.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는 스킨 컬렉터가 피해자들의 몸에 남기는 문신을 통해서 그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범인도 접착 롤러를 갖고 다닌 게 분명해요. 최대한 주변을 밀고 다닌 것 같아요."

"난 영리한 범인이 싫어."

그럴 리가. 색스는 생각했다. 라임은 멍청한 범인을 싫어했다. 영리한 범인은 도전적이고 훨씬 재미있었다. 색스는 N95 호흡기 아래에서 미소 지었다.

"이제 대화 중단해요, 라임. 출입 통로를 조사해야겠어요. 맨홀요."

 

링컨 라임 시리즈에서는 메일 플롯만큼 서브 플롯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여러 개의 서브 플롯이 동시에 함께 진행되며, 어느 순간 반전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결말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인물들의 과거로 다가가기도 하며, 새로운 등장 인물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이번 <스킨 컬렉터> 역시 본 컬렉터의 모방범을 쫓는 수사 과정 외에 여러 개의 서브 플롯이 이야기를 풍부하게 이끌어가고 있는데, 그 중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이야기의 초반부터 등장하는 '시계공의 죽음'이다. 시계공이 죽었다니, 그것도 감옥 안에서. 누군가에게 피살당하거나 자살도 아니었고 심장 마비라는 진부한 사인으로. 이 무슨 김빠지는 전개란 말인지. 내 눈을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리즈를 여태 따라왔던 독자들이라면, 링컨 라임에게 시계공이란, 셜록 홈즈에게 모리어티와도 같은 숙적이자 라이벌 아닌가. 시계공은 시리즈의 일곱 번째 작품 <콜드문>에서 화려하게 등장한 이후로 계속 시리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서브 플롯으로 매번 등장해왔다. 그러다 자신이 주인공이었던 <콜드문>에서가 아니라 조연으로 잠깐 등장했던 <버닝 와이어>에서 성형 수술후 링컨의 타운 하우스에 쳐들어 왔다 체포를 당하고 만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이 이 작품에서 죽음으로 등장하다니.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두뇌형 인간인 링컨 라임이 그의 죽음을 나름의 방식으로 애도하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다. 시계공은 라임이 만난 범죄자 중에 가장 흥미로운 인간이기도 했고, 라임을 앞질러 생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범죄자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라임이 그의 사망을 애도하면서 꽃을 보낸다는 설정은, 그 동안 라임을 알아왔던 그 누구라도 놀랄만한 일이었기에 매우 유쾌하기까지 했다. 물론 라임의 머릿속에 애도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는 플라스키에게 언더커버 임무를 주면서 언제나 수수께끼였던 시계공의 배후와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그의 죽음을 활용해보기로 한다. 그리고 시계공 만큼이나 그 동안 시리즈에 자주 등장했던 팸은 어느덧 열아홉 살로 대학에 다니면서 뉴욕에서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팸은 시리즈의 첫 편에서 어머니와 함께 본 컬렉터에게 납치당했었고, <콜드문>에서 엄마가 우익 테러리스트로 밝혀져 수감이 되고, 양부모와 함께 살게 되면서 현재는 색스의 여동생처럼 지내오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새로 생긴 남자친구와 같이 1년 정도 여행을 하면서 함께 살 거라고 해서 그녀를 부모처럼 걱정하는 색스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전편인 <킬룸>의 마지막에 결국 고생하던 퇴행성 관절염 수술을 받았는데, 그것이 마술 같은 효과를 발휘해 매 시리즈마다 항상 등장했던 그녀의 고질적인 관절염 통증에 대한 언급이 사라진 것도 이번 작품에서 보여지는 굉장한 변화라 하겠다. 

 

어떻게 나를 찾아냈지? 아니, 그건 정확한 질문이 아니다. '라임은' 어떻게 나를 찾아냈지? 그녀도 물론 솜씨가 좋다. 하지만 라임이 더 좋다.

좋아. 어떻게? 정확히 어떻게?

예전에 병원에 들른 적이 있었다. 어쩌면 거기서 미량 증거물을 묻혀서, 조심했음에도 나도 모르게 클로이 무어의 시체 옆에 조금 떨어뜨렸을지도 모른다.

 

링컨 라임 시리즈는 항상 링컨과 색스를 비롯한 수사팀의 시선과 범인의 시선으로 교차 진행되는데, 매 편마다 경찰이 어떻게 자신을 찾아냈는지, 자신의 범행 수법을 알아냈는지 궁금해하는 대목이 등장해왔다. 연쇄 살인범이 자신의 기가 막히게 완벽한 범죄 행각에 자신만만해 하는 순간 갑작스럽게 경찰이 그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음을 감지하게 되는 순간, 그와 동시에 범인이 라임과 색스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지하게 되면서 범행 타겟이 원래의 목적과 함께 그들에게로 향하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매번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는 죽음의 위기를 겪게 된다. 목 위 부분과 왼손 약지만 운동 가능한 전신마비 환자로 처음 시리즈에 등장해 이제는 오른손으로 글록을 잡고 범인을 겨냥할 정도로 오른손 기능이 회복하긴 했지만 여전히 라임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범인에 비하면 너무 쉬운 타겟이기도 하고, 직감이 뛰어나고 권총 명사수이지만 언제나 현장 감식을 혼자서 진행해야 하는 색스는 전직 모델 출신에다 늘씬한 몸매와 긴 빨강 생머리는 어디서나 눈에 뛸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특히나 이번 신작은 이들 두 사람을 처음 만나게 했던 <본 컬렉터> 사건을 변주한다는 점에 있어서 더욱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경찰 애인에게 배신당해 경찰이라는 직업 자체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순찰 경관 색스와 사고로 전신마비를 당하고 경찰을 퇴직해 삶을 포기하려던 라임이 인간의 뼈에 집착하는 본 컬렉터 사건을 맡으면서 시리즈가 시작되었고, 수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연인이 되고, 든든한 동료가 되어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라임의 투덜거림을 다 받아주는 톰과 여전히 신참 같은 매력을 풍기는 론 풀라스키를 비롯해 멜 쿠퍼, 론 셀리토 등 라임의 수사팀들도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고 말이다.

 

 

제프리 디버에게 반전의 제왕이라는 수식어 자체는 평범할 수도 있지만, 링컨 라임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반전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는 수준이다. 반전에 반전, 거기다 다시 이야기를 완전히 뒤집고, 꼬면서 몇 번의 반전이 거듭되어도, 개연성에 대한 의심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의 탄탄한 플롯을 자랑한다. 게다가 디버의 범인들은 너무도 치밀하고, 집요하고, 잔악하고, 완벽해서 잡는다는 게 더 이상해 보일 정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링컨 라임이 실패를 거듭하다 결국에는 승리한다. 어찌 보면 전형적인 선악구도에다, 여러 번의 반전 롤링과 익숙한 패턴에서 반복감을 느낄 수도 있는 공식이지만, 사실 스릴러 작품이 이 정도 수준쯤 되면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링컨 라임 시리즈 자체가 하나의 장르처럼 느껴질 정도이니 말이다.

<스킨 컬렉터>를 읽고 서평을 쓰면서 정작 작품에 대한 줄거리는 별로 없고 엉뚱한 얘기만 늘어놓은 것 같지만, 사실 링컨 라임 시리즈를 읽고 나서 줄거리며 플롯을 자세하게 분석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아직 작품을 읽지 않는 독자들에 대한 굉장히 매너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줄거리만 따라가는 것은 이 시리즈의 매력 중에 겨우 절반만 느끼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 보시라. 시리즈를 꼭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흥미를 느끼는 시리즈 그 어디서 시작해도 상관없다. 기왕이면 이번 신작에서 출발해도 좋고 말이다. , 한번 시작하면 절대 발을 뺄 수 없으리라는 것만은 장담한다. 무조건 전 시리즈를 정주행하고 싶어질 테니 말이다. 링컨 라임 시리즈는 현재 열두 번째 작품 <스틸 키스>가 이미 출간되어 있다. 부디 이번에는 2년이나 기다려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고대해본다. 그리고 올해에는 중순쯤에 제프리 디버의 또 다른 히로인 캐트린 댄스 시리즈의 그 세 번째 <XO>가 출간될 예정이다. 이 작품에는 우리의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도 찬조 출연한다고 하니, 설레 이는 마음으로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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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코다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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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금 상황에 큰 불만은 없다. 이발사 일에 자긍심도 느끼고, 자신의 기술도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인생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전히 야스히코를 괴롭히고 있다. 쉰세 살이나 된 중년 남자가 이 꼴이다.

쉰세 살의 야스히코는 스물여덟에 아버지로부터 이발소를 물려받은 후 가업을 이어 이십오 년째 이발소를 꾸려오고 있다. 대학 졸업 후 광고 회사에 취직해 바쁘게 보내다, 아버지의 허리 디스크로 귀향을 결심했고, 이용학원에 다니면서 기술을 배워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스물셋의 맏아들 가즈마사가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발소를 맡겠다고 선언한다. 이대로 가다 젊은 사람이 싹 없어지면 언젠가는 동네가 아예 없어질 지도 모른다며, 고향을 어떻게든 하고 싶다는 거다. 아내인 교코는 아들의 앞날을 걱정하면서도 내심 기뻐하는 눈치고, 할머니 역시 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좋아하실 거라며 눈물까지 글썽이지만, 정작 야스히코는 복잡한 심정을 풀 길이 없다. 인구가 날로 줄어드는 이런 시골에서 이발소에 앞날이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아버지로서는 아들이 좀 더 큰 뜻을 품어 주었으면 했던 것이다.

도마자와는 한때 탄광 덕에 번성했던 마을이지만, 지금은 쇠락한 마을로 인구가 격감해 사람보다 소가 더 많은 시골이다. 그렇다면 보통은 시골을 벗어나 도시로 나가려는 자식들과의 갈등이 남겨진 노인들의 쓸쓸함과 대조를 이루는 드라마가 상상이 될텐데, 오쿠다 히데오가 그리는 건 그 반대다. 자식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주기를 바라지 않는 나이든 세대와 그리고 쇠락한 고향을 어떻게든 일으켜보려는 젊은 세대의 대립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들이 유쾌하고 따뜻하게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고장 살리기'에 열을 올리는 공무원들과 야스히코의 아들 가즈마사를 비롯한 젊은이들로 구성된 청년단은 어떻게든 동네를 살려보려고 여러 방면으로 기획을 짜고 그로 인해 마을은 점점 시끄러워지지만, 야스히코를 비롯한 윗 세대들은 내 자식을 침몰하는 배에 그대로 남겨두고 싶지 않다고, 그들의 계획을 허황된 그것으로 치부한다.

나이 든 사람은 나이 든 사람끼리 얘기가 통하는 것일까. 괜한 간섭이라면 삼가야겠다는 생각에 야스히코는 한동안 지켜보기로 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옆에 누가 없으면 외로워할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현역 세대의 오만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여든이 된 어머니도 매일 하는 일이 없는데도 재미나게 살고 있다.

도미자와에서 매년 이어지던 여름 축제의 계절이 찾아오고, 여든둘인 바바 할아버지가 쓰러지시면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그들을 돕는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야스히코는 자신의 노후에 대해서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도미자아와에 노인네 혼자 사는 집이 수두룩했지만, 막상 가까운 이웃이 그렇게 되자 별다른 노후 대책도 없이 어영부영 살고 있는 자신들이 불안해진 것이다. 그렇게 축제가 끝나고 또 한번 마을을 떠들썩하게 한 것은 중국의 농촌에서 서른 살의 처자가 시집을 온 이야기로, 쉽게 결혼할 수 없는 농촌 총각들의 현실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거기다 조그만 술집이 새로 문을 열면서 마흔두 살의 매력적인 마담이 등장해 아저씨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고, 유명한 배우를 포함한 영화 현지 촬영진이 오게 되어 또 한번 마을 전체가 들썩이고, 마을의 한 집의 장남이 도쿄에서 사기단으로 엄청난 사건을 일으켜 전국에 지명수배령이 내려지면서 시끌시끌해진다.

이렇게 눈으로 뒤덮은 쇠락한 탄광 마을이 조용해 보이면서도 끊이지 않는 사건으로 좌충우돌하는 동안 어른 세대와 젊은 세대의 화합이 자연스레 어우러지고, 사생활이 없어 아무 생각 없는 선의마저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시골 생활의 단점이 누군가를 따스하게 포옹해줄 수 있는 계기로 변화하기도 하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보이는 철없던 아들이 아버지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깊은 속내를 보여 감동시키는 등 따뜻한 유머와 푸근한 감성과 아기자기한 재미로 왁자지껄하게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우울할 때는 오쿠다 히데오를 읽어라'는 출판사의 소개 문구처럼, 이렇게 우울한 뉴스가 도배하는 연말, 달력이 넘어가도 별다른 희망은 보이지 않는 새해에는 이런 작품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평범한 듯 지루하지 않으며, 유쾌한 듯 보이지만 감동스럽고, 조용한 듯하지만 활기차고 말이다.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명랑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희망이 느껴지는 따스한 작품이, 당신의 내년 한 해를 힘차게 시작하게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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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감옥 모중석 스릴러 클럽 41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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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끝이 보이지 않은 지평선과 맞닿아 있는 바다, 그림 같은 풍경 속의 호수 모두 바라보는 건 좋아하지만, 수영을 하거나 물에 들어간 적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는 인감의 심연과 닮아 있어 오싹하고, 잔잔한 표면 아래 뭘 숨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호수 또한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전혀 다른 걸 감추고 있는 우리네 사회와 닮아 있어 무서울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 물의 감옥에 갇힌 한 남자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잠수를 잘하는 남자라 스스로를 칭하는 그가 호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이유가 뭘까.

그녀는 마비된 느낌이었다. 프랑크가 들려준 이야기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은 자기 삶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내용이 명백하게 담겨 있어서 허무했다. 살아가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은 늘 발생하고, 상황이 좋게 변할 때도 있고 나쁘게 변할 때도 있다. 그녀 스스로도 이런 일을 겪었고, 수잔 살인사건 이후로 잃어버린 행복의 흔적을 되찾기 위해 지난 3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그녀가 되찾았다고 느낀 안전은 착각이었다. 살인범은 나를 언제나 지켜보고 있었어. 그러니까 이렇게 쉽게 다시 찾은 거지. 조금 빨리 걸었으면 나를 성큼성큼 따라잡을 수 있었을 거야.........

누군가 한 여인을 물속으로 세차게 밀고 있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여자의 몸을 에워쌌고, 죽고 싶지 않아 물속에서 숨을 쉬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던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고 만다. 목으로 들어온 물 때문에 숨이 막혀왔고, 폐가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제멋대로 날뛰던 경련이 서서히 느려지고, 그렇게 마지막 숨을 내쉬고는 침묵이 찾아온다. 이 작품은 물 속에서 죽는 한 여자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모든 형태의 죽음이 그러하겠지만, 익사는 그 대상에게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카운트 다운을 알리는 방식이라 특히 잔인한 것 같다. 여자들을 익사시키면서 그것을 그녀와 함께 춤을 춘다고 표현하는 이 남자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강변에서 익사체가 발견되고, 타살이 분명한 시신의 배에는 전기인두를 사용한 경찰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 대상은 바로 에릭 슈티플러 경정으로 한때는 잘나가는 경찰이었지만, 지금은 싸구려 브랜디에 기대며 명예퇴직할 날짜만 기다리고 있다. 마누엘라 슈페를링 경위는 이제 막 경찰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강력계 살인 담당 부서에 배정된 참이다. 그녀는 자신을 무시하는 오만한 상사와, 살인사건 전담팀 내 다른 남자 형사들의 은근한 따돌림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일을 해야만 한다. 의류 할인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라비니아는 그 남자가 자신을 찾아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의 그림자에 쫓기는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녀의 외로움은 사방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여전했다. 그러다 여전히 정체 모를 남자에게 쫓기다 우연히 탄 택시에서 택시운전사 프랑크를 만나게 된다. 프랑크는 신경계 질환을 앓고 있었고 그로 인해 수면발작과 수면장애, 탈력발작 증세를 겪으며 일상을 버티고 있다.

 

범인의 사적 복수심은 분명 에릭을 향해 있고, 뭔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그의 모습은 수상하기 짝이 없으며, 그 와중에 갖은 핍박을 받으며 수사를 하는 마누엘라의 고군분투는 어떤 면에서 애처롭기까지 하다. 범인은 물과 관련되어 에릭과 어떤 연관이 있어 보이고,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라비니아는 프랑크를 만나 위로를 받지만, 그들은 각각의 이유로 여전히 외롭기만 하다. 그렇게 각각의 인물들이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자신만의 플롯을 차곡차곡 쌓아가다 맞닥뜨리게 되는 조그만 반전은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고, 범인과 피해자의 내면까지 리얼하게 그려내는 심리 묘사는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킨다.

남녀 무용수가 두 개의 몸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이듯이 남자도 녹아서 여자와 하나가 되었다. 그의 심장도 여자의 박동에 맞추어 같은 박자로 뛰었다.

여자 얼굴은 그의 얼굴과 겨우 1센티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여자는 크게 치켜 뜬 기괴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지금 자기가 당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그 눈은 그저 불안과 공포로 가득했고, 눈앞에 닥친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둘은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춤이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사라진 소녀들> <창백한 죽음>, 그리고 <지옥계곡> 이은 안드레아스 빙켈만의 네 번째 국내 출간 작이다. <사라진 소녀들>에서는 시각장애인 소녀의 실종사건을 통해 인간의 사악한 본능에 대해 그렸었고, <창백한 죽음>에서는 소시오 패스의 실체를 생생히 추적해서 수사하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지옥계곡>에서는 절친이었던 친구들간의 관계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멀어지는데, 모두 다 악인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더 나쁜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었다. 세 작품 모두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그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내면을 집중적으로 묘사해 숨어 있는 악을 그리고 있으며,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가 매 장면마다 긴박하고 섬뜩한 공포를 느끼게 만들어 주었던 공통점이 있다. 아마도 그래서 그를 심리 스릴러의 제왕이라 칭할 것이다. 우리가 도덕성이라고 부르는 그것이 얼마나 나약한 토대 위에 세워진 모래성 같은 것인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일상 속의 지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말이다. 그는 스릴러와 호러를 오가며 인간 내면에 자리한, 가장 원초적인 본능과 악을 다루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언제나 말해왔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지옥을 겪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의욕 넘치게 일에 뛰어 들지만 혼자만 따돌림 당하며 겪는 마누엘라의 망연자실도, 친구를 잃고 몇 년간 불안감에 시달리는 라비니아의 공포도,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된 인간 관계조차 할 수 없는 프랑크의 외로움도, 품위와 명예와 자존심, 그리고 주변 사람들까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에릭의 허무함도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안드레아스 빙켈만은 매 작품마다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깊고 어두운 심연을 바라보며 그들만의 지옥을 그려내고 있다. 심리 스릴러란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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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12-21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표지는 그림이 아닌가봐요. 이전 책들은 일러스트 (?) 같았던거 맞죠?

피오나 2016-12-21 13:11   좋아요 1 | URL
넹ㅎㅎ 사라진소녀들과 창백한 죽음은 뿔에서 나왔고요. 지옥 계곡과 물의 감옥은 비채에서 나왔거든요. 그래서 표지 이미지 느낌이 좀 다르죠^^

[그장소] 2016-12-21 18:35   좋아요 0 | URL
아.. 출판사가 달랐네요! 알려주셔서 감사~ ^^
저는 지옥계곡을 안봐서요. 그 전 뿔 것은 본거네요. ㅎㅎ

오드득 2016-12-24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피오나님 전작주의자시군요. 혼다 테츠야 때도 놀랐지만 설마 안드레아스 빙켈만도 다 가지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대단하세요. 피오나님 앞에서 전 감히 미스터리 매니아라고 말도 못 할 것 같네요. 저는 지금 ‘물의 감옥‘ 읽고 있는데 ‘지옥 계곡‘과 너무 다른 스타일이라 과연 빙켈만 맞나 하는 생각을 했네요. 피오나님 말씀대로 ‘심리 스릴러의 제왕‘답게 더 깊어진 심리 스릴러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피오나 2016-12-24 17:03   좋아요 0 | URL
전작주의자맞습니다ㅋㅋ 그래서 시리즈가 한두편 나오다가 말면..정말 아쉽더라구요. 괜찮은 작가의 시리즈도 많이 팔려야 계속 나올테니 출판사의 입장도 이해는 되지만..ㅋㅋ
 
찬바람 불 땐, 나베 요리 - 쉽고 빠르고 건강한 나베 요리 레시피!
이와사키 게이코 지음, 이소영 옮김 / 윌스타일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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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계절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부터 뜨끈한 국물 요리가 생각나기 시작한다. 남편도, 나도 국물 요리를 좋아해서 집에서도 전골, 나베 요리를 많이 해먹는 편이다. 한때 유행이었던 밀푀유나베, 반찬 없이 한그릇으로 충분한 돈까스나베, 달큰한 국물이 맛있는 스키야키, 간단하게 육수만 준비하면 되는 샤브샤브나 냉동 만두로 금방 만들 수 있는 만두 전골도 우리 집 식탁에 자주 오르곤 하는 메뉴들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류의 국물 요리가 한정적이라 몇 가지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색다른 메뉴가 없게 마련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나베 요리가 이렇게 종류가 많은 지 처음 알게 되었다.

나베라는 것이 보통 냄비로 만드는 국물 요리를 칭하는 것인데, 일본식이다 보니 아무래도 일본 요리 연구가가 알려주는 레시피들이 정석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이 책은 크게 카테고리가 밤늦게 먹어도 살찌지 않는 '건강 요리' 5분이면 완성되는 '간단 요리', 버리는 재료 없는 '알뜰 요리'로 구분되어 있다. 거기에 추가해서 조금 사치스런 재료로 만드는 명품 나베 요리 몇가지와 나베 요리에 쓰이는 조미료와 향신료, 수제 양념장 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그 종류가 얼마나 많고 다양한지, 이 책에 소개된 나베 요리만 그대로 따라하면 일년치 저녁 식탁은 걱정없을 것 같기도 하다. 일본 가정식 레시피가 간단한 데 비해 재료가 낯선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레시피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평범한 재료들로 되어 있어 바로 따라해보기 쉽다는 장점도 있겠다.

나베 요리 하면 기본적으로 고기, 생선, 채소, 밥까지 함께 포함해서 식사할 수 있는 메뉴라 그 간단함에 비해 영양적으로도 균형된 식사를 할 수 있다. 특히 1인 가구가 늘어나 혼밥이 유행하고 있는 요즘, 대충 먹다보니 특정 재료에만 편중된 식사를 하기 쉬운데, 이 책속에 1인분씩 표기된 나베 요리 레시피들은 그런 1인 가구들에게도 유용하게 활용될 것 같다.

그리고 주 재료가 버섯, 채소, 두부, 생선 등 칼로리가 낮기 때문에 국물 요리이지만 부담이 적다는 점도 장점이다. 짜고 매운 것에 익숙한 우리나라이지만, 나베 요리는 기본적으로 국물이 담백하고, 그걸 보완해 줄 양념장을 별도로 곁들일 수 있기 때문에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요리이기도 하고 말이다.

특히나 제대로 재료를 준비하고 다듬어 요리할 시간이 없는 바쁜 이들을 위해 초스피드로 요리할 수 있는 재료 냉동 보관법도 꽤나 유용한 팁이 될 것 같다. 생선이나 바지락 등은 기본 손질 후 신선할 때 바로 냉동해서 사용하는 것이 좋고, 고기 종류는 필요한 만큼 1인분씩 소분해서 냉동 보관하면 바로 편리하고, 푸른 채소류는 한번 데쳐서 물기 제거 후 밀봉한 뒤 냉동하면 되니 말이다.

국물 요리의 백미는 건더기를 다 먹고 난뒤 국물에 면을 넣거나 밥을 넣어 죽으로 만들어 먹는 것인데, 생면이나 우동, 소면을 넣을 수도 있고, 밥을 넣어 죽으로 즐겨도 좋고, 밥에다 치즈를 추가하면 리소토풍으로 완성되고, 떡을 살짝 익혀 먹는 것도 나베 요리를 더 맛있게 즐기는 방법이 되겠다.

냉동식품인 만두나 함박스테이크를 이용해서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나베도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두유를 이용한 나베가 인상적이었다. 두부 두유 나베와 깨 우유 나베가 있는데, 두유는 설탕 등이 들어있지 않은 무첨가 제품으로 사용하고  육수와 두유의 비율을 적절히 해서 국물을 만든다. 두부와 표고버섯, 양상추를 넣은 나베와 국물에 깨를 갈아 넣고 대패 삼겹살과 시금치, 양배추를 넣은 나베는 정말 맛있어 보였다. 게다가 육수에 두유를 넣다니, 너무 참신하지 않은가. 비주얼로도 훌륭했고,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레시피였다.

사실 연어를 좋아하는 편인데, 생연어로 스테이크를 해먹거나 훈제연어로 샐러드를 해먹는 게 다였다. 생연어를 국물 요리에 활용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해봤는데, 연어와 양배추 수프 나베와 연어와 버섯 된장 버터 나베도 흥미로운 메뉴였다. 일본식 미소된장과 연어가 어우러지고, 거기에 버터를 조금 넣어 깊이와 부드러운을 더하는 나베도 맛있어 보였고, 담백하게 만든 수프 나베도 비주얼 만큼 맛있을 것 같았다. 닭날개 삼계탕 나베, 중화풍 산라탕 나베, 순두부 나베, 탄탄 나베, 똠양꿍 나베 등 중식, 태국식, 한국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레시피들도 매우 흥미로웠다.

 창문에 낀 서리 너머로 눈 쌓인 풍경을 바라보면서 먹는 따끈한 사케 한잔과 뜨거운 나베 요리는 겨울에 일본으로 여행을 가면 꼭 연출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사실 돈까스와 우동, 그리고 나베 요리야말로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일본가정식 메뉴 아닌가. 그 중에서도 요즘처럼 찬바람 부는 계절에는 몸까지 따뜻하게 덥혀주는 나베 요리가 그야말로 제격이고 말이다.

오늘은 또 뭘 먹어야 하나, 매일 같이 식사 메뉴에 고민 중이신 주부에게도, 오늘도 혼자 먹어야 하는데, 밥먹기 싫은 1인가구에게도 이 책은 온기 가득한 일본 가정식 요리의 세계로 당신을 인도하는 초대장이 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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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 - 범죄심리학자 이수정과 프로파일러 김경옥의 프로파일링 노트
이수정.김경옥 지음 / 중앙M&B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최근에 읽었던 혼다 테쓰야의 <짐승의 성>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모든 범죄에 이유를 밝힐 가치는 없지만, 사람들은 범죄의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범죄가 발생하는 정신적, 사회적 구조를 해명하고 범죄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거기서 도출된 이론을 통해서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자신이 피해자가 되는 건 당연히 무섭지만, 가해자가 되는 것도 똑같이 무서운 일이기에, 자신과 범죄자는 뭐가 다른가. 그들과의 경계선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과연, 범죄자가 되는 사람과 되지 않는 사람과의 경계선은 어디에 있는 걸까. 어쩌면 나는 그 해답을 이 책을 통해서 찾고 싶었던 것 같다.

T는 겨울만 되면 여성을 납치하여 강간, 살해한 후 국도변에 암매장했다. 그가 바로 경기 서남부권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의 장본인이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동일범이 여러 해에 걸쳐 저지른 연쇄살인이었고, 부녀자만 무작위로 골라 잔혹하게 죽였다는 점에서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다. 검거된 범인의 선한 얼굴과 서글서글한 성격이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평소 이웃 주민과도 잘 어울리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외국이나 영화에서나 보던 두 얼굴의 사이코패스가 바로 우리 곁에 있었던 것이다.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는 몇 달 전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사이코패스에 대해, 미해결사건 해결을 위해 프로파일링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해서 인상적이었다. 프로파일러 김경옥 박사는 유영철 사건 이후로 여성 프로파일러들의 활약에 대해 언급한 기사를 통해 만났었는데, 두 분 모두 언론 매체의 단골 패널이기도 하다. 혼란스러운 사건현장에서 놓치기 쉬운 단서를 여경들이 찾아내는 경우가 많으며, 여성들만이 가질 수 있는 섬세함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피의자의 입을 열게 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실제로 강력범죄 피의자들을 직접 면담하는 그들 직업의 특성이 여성이라는 강점을 만나 어떻게 범죄분석 업무와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도 매우 궁금했고, 실제 범죄자들의 심리를 구체적인 검사 자료와 관련 연구 자료 등을 토대로 세밀하게 분석해낸 그들의 프로파일링 노트도 굉장히 기대가 되었다.

이 책에는 마치 경쟁하듯 살인을 게임처럼 즐겼던 연쇄살인범, 우발적 살인이 계획 살인으로 진행되었던 보험사기극, 단지 웃음소리가 거슬려 살인을 저지른 소시오패스, 아이에게만 성적 만족을 느끼는 소아기호증 범죄, 죄의식조차 가지지 않는 연쇄강간범, 산후우울증으로 아기를 죽인 엄마, 환청과 환상으로 인한 범죄, 게임 중독, 병적 도벽, 방화광으로 인한 충동조절장애를 가진 버인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범죄, 가정폭력이 낳은 비극, 한국의 음주 문화가 만든 범죄까지.. 우리가 숱하게 뉴스 보도를 통해서 만나보았던 수많은 범죄들이 분류되어 있다. 크게 범주를 사이코패스, 성범죄, 정신질환, 성격장애, 충동조절장애, 한국형 범죄로 나누고, 각각 하위 분류로 세분화되어 들어가면 실제로 벌어졌던 범죄의 사례, 그 범죄자와의 면담을 통해 밝혀낸 사실, 그리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실제 사건 속 범죄자들의 심리적 매커니즘이 범죄심리학자와 프로파일러의 분석을 통해 보여지고 있다. 범행 동기가 불분명한 사건 발생시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윤곽을 파악하기 위해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들은 문제를 분석하고 이해해서 재범을 막고, 범죄의 순환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대량 살인이나 묻지마 형태의 살인은 개인 차원의 예방이나 보호가 가능한 범죄가 아니며, 사회 정책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이들의 근본적 범죄적 동기가 응축된 분노, 불만 등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하며, 따라서 개인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불만, 분노에 직면했을 때 즉시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의 정신건강 관리 시스템이 일반화될 필요가 있다. 또한 더불어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듯,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의 심리적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사실 나는 프로파일링이라는 것이 이미 벌어진 범죄에 대해 자료를 통해 '사후분석'을 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프로파일링팀이 사건이 발생하면 바로 현장에 투입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들은 사건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훼손되지 않은 현장을 관찰하여 현장에 남겨진 물리적 증거뿐 아니라 범인의 행동 흔적을 찾아내고, 범행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하여 범죄자를 분석한다고 한다. 그러니 유능한 프로파일러는 명확하게 나타난 증거뿐 아니라 직접 볼 수 없는 범인의 행동이나 생각까지도 현장에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셜록과도 같은 존재가 진짜 현실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내가 프로파일러가 하는 역할이라고 막연히 추측했던 것은 바로 범죄심리학자였는데, 그들은 실무자가 아니라 연구자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검거된 시점 이후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진 학문이기도 한데, 일반적인 정서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사회가 그들의 동기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면서부터이다. 이들 범죄심리학자들은 범행 당시 피고인의 정신 상태를 설명하거나 책임 능력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고, 향후 재범 위험성을 평가하기도 하고, 교정 단계에서도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한다. 이들 모두 사회의 어두운 이면에 관심을 가지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끝없는 탐구를 지치지 않고 해나가면서 변화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살인사건 검거율이 무려 97퍼센트로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하지만 미해결 사건들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게다가 범죄의 원인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게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 그러니 누구나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범죄자와 일반인이 크게 다르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 겪는 갈등과 스트레스는 대동소이하니까 말이다. 평범한 사람도 극단적인 순간에 자기 조절 능력을 잃어버리면 범죄자가 될 수 있다. 범죄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나누는 차이가 결국 순간적인 자제력뿐이라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지만, 덕분에 이 책에 등장하는 실제 범죄자들의 사례에 그릇된 편견 없이 만날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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