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모에가라 지음, 김해용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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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오리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는 《은하철도의 밤》을 받아 들었다.

“미야자와 겐지는 도호쿠에서 성장기를 보냈어. 누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도쿄로 이주해 살았지만 단 한 번도 일본을 떠나본 적이 없었지. 그런 사람이 은하여행을 그린 책을 쓴 거야.”

가오리가 차창으로 들이비치는 아침햇살에 눈이 부신 듯 커튼을 반쯤 내리며 말했다.

가오리가 내 눈을 바라보며 한 마디 덧붙였다.

“어디로 떠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미야자와 겐지는 아마도 병든 누이와 은하여행을 떠나고 싶었을 거야.”

만약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시간 속으로 가고 싶을까 생각해 본다. 누구에게나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 혹은 그런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게 첫사랑일 수도 있고, 뭔가에 대한 첫 번째 경험일 수도 있고, 잊을 수 없는 이별의 순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모에가라는 과거에 만났던 연인 가오리를 평생 잊을 수 없었다. 분명 그녀를 만난 날 자신의 인생이 달라졌으며, 비로소 오래도록 멈춰 서 있던 고장 난 생의 시계가 째깍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고 기억한다. 이 책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생의 가장 특별했던 순간, 바로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들어 준다. 나 자신보다 더 소중했던 존재가 누구의 삶에서나 단 한번은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이 책이 만들어진 배경은 굉장히 특별하다. 일본의 평범한 샐러리맨이 트위터에 올리기 시작한 글이 9만 명이나 되는 팔로워로부터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내며 결국 단행본으로 출간이 된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트위터에 140자씩 글을 써서 올리다 보니 ‘140자 문학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고. 게다가 저자인 모에가라는 문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도 없는, 그저 평범한 마흔 세 살의 중년 남자에 불과했다. 그저 자신이 살아온 생의 경험들을 글로 풀어내는 것만으로는 소설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모에가라는 수많은 독자들의 열광과 공감을 얻어냈던 것일까.

"국회도서관에는 우리가 앞으로 50년쯤 더 살고,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는다고 해도 끝내 다 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출판물들이 있어. 세계인구는 70억을 넘어 점점 더 불어나고 있지. 우리가 앞으로 50년을 더 산다고 해도 모든 인류를 다 만나볼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야.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만난 건 기적이나 다름없어."

그렇다. 세키구치가 그나마 이런 녀석이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까지 함께 해올 수 있었다.

아트디렉터로 일하는 모에가라는 흔들리는 전동차 안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가 '알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글과 함께 한 여성의 이름을 보게 된다. SNS를 하다 보면 종종 내가 아는 사람 혹은 아는 사람과 연결된 다른 아는 사람들이 추천 목록에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여성은 바로 지난날 자신보다 더 소중했던 여자 가오리였다. 지나치게 친절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덕분에 그는 가오리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현재 남편과의 생활과 일상들을 둘러보게 된다. 그러다 전동차 안의 밀려오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그만 실수로 가오리에게 친구 신청 버튼을 누르게 된다. 그렇게 그녀와 함께했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20대 초반 시절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별다른 꿈도 없이 에클레어 공장에서 포장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취업정보지 펜팔을 통해 가오리와 연락을 하다 만나게 되고, 연인이 되었다. 이야기는 17년 전 펜팔로 만났던 연인을 17년 후 페이스 북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의 그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가 살아낸 시간과 사는 동안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평범하고 소소하게 들리지만 8,90년대의 색채와 풍경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어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불운의 연속이었던 어린 시절을 거쳐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귀여워해주었던 스트립걸 누나, 에클레어 공장의 인간미 넘치는 동료 나나미, 오랜 세월 함께 일해 온 동료 세키구치 등등... 지금의 그를 잊게 만든 소중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들 속에 잊을 수 없는 연인 가오리도 있었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담담한 어조로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내 이야기가 된다. 자연스럽게 지나온 내 생을 돌아보며 나를 스쳐간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었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이를 만난 것이 바로 기적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우리가 만난 건 기적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그런 기적이 찾아올 것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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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래빗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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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거야. 우리는 꾹꾹 참으며 규칙을 따르는데 너는 왜 안 참느냐, 너 때문에 질서가 망가진다, 라고 느끼도록 되어 있지. 큰 영향이 없는 규칙 위반이나 소소한 반칙이라도 화가 나. 거기에다 상대가 부끄러워하는 기색 하나 없으면 더더욱 용서가 안 돼. 집단을 위기에 빠뜨릴 가능성이 있으니까 자신이 피해를 입든 말든 불쾌해져."

우사기타 다카노리는 젊은 기업가가 설립한 벤처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사람을 유괴하니까 제대로 된 회사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의 담당은 지정된 사람을 끌고 오는 역할로 매입 담당이다. 30분 전에도 여자 하나를 매입해 회사의 다른 담당자에게 넘긴 참이다. 그리고는 느긋하게 아내가 퇴근하기를 기다리는데, 밤늦도록 아내 와타코 짱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끔찍한 상상을 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그날 밤 자정이 되기 직전에 전화가 온다.

"네 아내를 유괴했다."

 

유괴범의 아내가 유괴되다니, 대체 이게 무슨 어이없는 사건이란 말인가. 이사카 고타로는 이 심각한 장면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1년간 하늘에 대고 뱉은 침이 한 덩어리로 크게 뭉쳐서 머리에 떨어졌다.' 라고. , 대충 이 작품의 분위기가 짐작이 되는지. 이번 작품 역시 언제나 그래왔듯이 이사카 고타로만의 위트와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는 이런저런 일이 있다. 그 말마따나 나쓰노메는 날마다 크고 작은 다양한 사건과 크고 작은 다양한 잡일에 힘쓰며, 지금은 이렇게 딸과 함께 걷고 있다. 우주를 기준으로 보면 찰나에 불과할 시간을 슬로모션처럼 늘려서 자신들의 인생을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그건 그것대로 득을 보는 기분이었다.

사실 우사기타의 아내를 납치한 것은 바로 그가 일하는 조직의 보스였다. 조직의 컨설턴트였던 오리오오리오가 경리를 꾀어 조직의 돈을 빼돌렸는데, 보스 입장에서는 조만간 거래 상대한테 돈을 보내야 해서 급박한 상황이었다. 보스인 이나바는 오리오오리오를 찾기 위해 우사기타의 아내를 납치해 그를 협박하고, 다급해진 우사기타는 사라진 컨설턴트를 쫓다 센다이시의 어느 단독주택에 침입하게 된다. 그리고 세 사람을 인질로 잡고, 경찰들에게오리오오리오를 찾아내라며 농성을 시작한다. 이게 바로 일명흰토끼 사건의 서막인데, 사실 이야기는 '유괴범의 아내가 유괴된 희대의 사건'이 시작에 불과할 정도로 기발하고 예상치 못한 반전까지 더해 놀라움을 준다.

이사카 고타로는 이 작품의 서문에서 10대 시절에 읽었던 '누워서 읽다가 어느 부분에 다다르면 놀라서 몸을 벌떡 일으킨다'는 아이라 레빈의 <죽음의 키스>처럼, 독자가 읽다가 깜짝 놀랄 만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 마음으로 완성한 작품이라 그런지 독특한 트릭과 깜찍한 반전과 구성으로 세상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인질극을 만들어 낸 것 같다. 특히나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흰토끼'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그리고 별자리 '오리온자리'가 이야기의 중요한 코드로 작용하는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을 즐겨 읽어 왔던 독자라면 이번 작품 역시 대만족일 것이고, 처음 만나는 경우라면 제대로 이사카 월드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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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의 기술 - 추락하는 의지를 상승시키는 심리 스프링
제이슨 워맥.조디 워맥 지음, 김현수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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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음속에는 타성에 안주하고 싶은 고장 난 스프링이 있다. 이 스프링은 처음에는 탄력이 강해 조그만 자극에도 쉽게 튀어 오르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탄력을 잃고 만다. 솟구치던 의욕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하기 싫은 일에 뛰어들어 야 할 때, 성과는커녕이만하면 됐지라는 타성에 지쳤을 때 우리는 마음속 스프링에 탄력을 주어야 한다.

누구나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하길 원하고, 어제와는 조금은 달라지기는 변화를 바란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하지만'이 있다는 게 문제라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뭔가에 정체된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말들은 이렇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늘 하던 대로 살래요. 이 정도로도 괜찮아요. 예전에 시도했지만 실패했어요. 새로운 걸 해보고 싶긴 하지만, 그랬다가 제 삶의 다른 것들을 망치면 어떡해요? 제가 정말로 원하는 변화는 너무 엄청난 것이라서 엄두가 안 나요. 등등..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변명들이다. 저자는 솟구치던 의욕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심리 스프링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진정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한 행동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추진력'이라는 뜻의 '모멘텀'을 저자는 '의욕을 솟구치게 만드는 심리적 스프링'으로 정의하고 있다.

솟구치던 의욕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하기 싫은 일에 뛰어들어야 할 때, 심리 스프링의 스위치를 켜라!!

저자가 독자들에게 권하는 것은 전세계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직접 실천하며 증명해 보인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들이다. 무엇보다 뜬구름 잡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시도해볼 수 있는 행동들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당신에게 무엇이 가능한지 보여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당신이 따라가고,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들을 찾아내서 만나고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공유하도록 한다. 당신의 목표인나는 어떤 사람으로 알려지길 원하는가?”의 진가를 인식하는 멘토를 만나면, 당신은 힘을 받아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빨리, 쉽게 배울 수 있다.

포춘이 선정한 변화를 선도하는 500대 리더 중 한 명이자 미국의 100대 최고 행동 변화사상가인 제이슨 워맥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도 시작을 미루거나, 인생을 붙잡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미루는 사람들의 심리를 연구해왔다. 그는 의욕을 갖지 못해 꽉 막힌 상태에 머무른 사람들에게서 공통된 행동 특성을 발견했고, 그 속에 숨겨진 심리와 행동의 비밀에 관해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시작부터 이야기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동기나 부여하자고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진부한 문구들로 가득 찬 자기 계발서를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읽어 왔다. 이 책은 그런 뻔한 말들이 아니라, 실제로 용기를 내고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전략들을 제시한다.

행동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지점을 정확히 간지럽혀라.는 문구 아래 이미지는 과녁의 중앙을 건드리는 깃털이다. 심리 스프링의 스위치를 켜라는 문구 아래에는 머릿속에 숨겨 있던 스프링을 통해 뛰어 오르는 사람의 이미지가 있다. 잘 정리되어 있어 한 눈에 쏙 들어오는 글만큼이나, 중간중간 삽입된 도표나 이미지들 또한 인상적이다. 이미지를 보는 것만으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거나, 너무 유쾌하고 재미있어 깔깔대면서 읽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지점에 쿠션을 깔아둬라. 한 번에 세 달씩 나의 미래를 창조해보라. 당신의 현재 상황을 수치화하라. 당신의 내비게이션은 믿을 만한가? 잘못 들어선 길이란 걸 어떻게 재빨리 알아챌까?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 가다 보면 어느 새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해 있다. 그만큼 흥미진진하고, 유익한 책이었다. 일단 제일 쉬운 것부터 시작해보자. 남의 속도에 억지로 맞추지 말고, 속도를 늦춰 자신의 페이스로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면 결국엔 나만의 작은 승리를 거머쥐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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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잘 먹겠습니다 1~2 세트 - 전2권 여행, 잘 먹겠습니다
신예희 지음 / 이덴슬리벨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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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사람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똥을 싸기. 이것은 내 마음대로 공표하는 내 여행의 핵심이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그 나라, 그 지방, 그 민족의 맛있는 음식들 속에는 기후가, 지형이, 역사가, 그리고 문화가 오롯이 담겨 있다. 냠냠 씹어 꿀꺽 삼키는 이 행복한 행위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삶에 필요한 활력소를 얻고, 일상에서 얻지 못하는 지혜를 얻고,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이라는 선물까지 받는다. 거기에 하나 더,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 먹는 것이야말로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고, 현지의 생활을 느끼고 이해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그래서 나에게 여행이란 맛있는 음식, 현지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음식들을 찾아 다니며 즐기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자 즐거움이었다. '한 나라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곳의 음식을 직접 맛보는 것'이라는 말처럼 요즘은 아예 '미식여행'을 작정하고 떠나는 경우도 많고, 예능 프로그램 중에는 '원나잇푸드트립'이라고 해서 1 2일 내내 먹고, 또 먹는 먹방 해외 여행이 있기도 하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미식여행의 결정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저자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40회가 넘는 해외 미식여행을 다녀온 이력으로 세계 음식 탐방을 리얼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나라는 총 네 곳인데, 불가리아, 신장 위구르, 말레이시아, 벨리즈이다. 그저 요거트가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동유럽의 불가리아, 베이징에서 기차를 타고 50시간이나 쉼 없이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낯선 곳 신장 위구르, 멜시코와 과테말라 사이에 있는 아주 작은 나라인 벨리즈는 나에게 너무도 낯선 나라들이어서 어떤 음식이 소개될 지 너무도 궁금했다. 그나마 싱가포르에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익숙한 말레이시아의 음식들만 덜 낯설었는데, 여기서 소개되는 음식들 중에는 먹어보지 못한 것들이 더 많았다. 불가리아의 아침을 책임지는 바삭한 페이스트리 바니차, 귓속까지 얼얼해지도록 매운 벨리즈의 하바네로 고추, 신장 위구르의 양고기로 속을 채운 따끈한 군만두 쌈싸, 말레이시아의 국민 음료인 달콤한 떼 따릭 등... 다양한 음식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고, 감칠맛 나는 저자의 설명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이게 만들어 준다.

 

 

먹는 것 좋아하지, 여행 좋아하지, 신기한 음식이다 싶으면 일단 입에 넣고 우물우물 해봐야 직성이 풀리지, 저 같은 사람에겐 다문화 거리는 놀이공원이나 다름없습니다. 길게 늘어선 노점들, 외국어 간판이 붙어있는 식당들. 그곳에서 만나는 음식 한 접시 한 접시에 각각의 길고 짧은 얘깃거리가 가득합니다. 때로는 이건 대체 무슨 맛이냐며 기겁하기도 하고 때로는 접시의 영혼까지 핥아먹을 기세로 열광하기도 합니다.

<여행, 잘 먹겠습니다> 1권은 <여행자의 밥>의 개정판이다.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2권은 굉장히 독특한 구성이다. 바로 '동네 속 세계 음식 탐방'이라고 해서 국내에서 지하철로 떠나는 세계 여행이라고 할까. 국내에서 해외의 맛을 찾는다는 설정도 흥미롭지만, 실제로 책에 실린 화보들을 보면 이게 대체 국내가 맞는 걸까 싶을 만큼 이국적인 풍경들이다. 이태원의 이슬람 거리, 가리봉동의 연변 거리, 광희동 몽골,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거리, 안산 다문화 거리, 건대 양꼬치 거리, 평택 미군부대 앞 거리, 인천 차이나타운 등등... 내가 알고 있던 곳은 이 중에서 겨우 몇 곳, 나머지는 전부 처음 듣는 곳들 투성이었다. 굳이 여권 챙겨서 비행기 탈 필요 없이 세계의 음식들을 현지인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주는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가. 이태원에 가면 달달한 중동과자가 있고, 가리봉동에 가면 대륙 스케일의 엄청 큰 왕 꽈배기가 있고, 광희동의 양고기 음식들과 혜화동의 따끈한 오리알과 코코넛 밀크향 디저트 등등... 세계의 매력적인 요리들을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아직도 나는 여행지의 추억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그곳에서 인상적이었던 음식을 떠올리게 된다. 괌에서 먹었던 단맛의 극치를 보여주는 끝장나게 달콤했던 시나몬 롤, 오키나와에서 먹었던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하고 은은한 닷맛이 인상적이었던 슈크림빵, 싱가폴에서 먹었던 매콤, 달달했던 칠리 크랩과 그 소스에 푹 찍어 먹었던 바삭한 튀긴 꽃빵, 오사카에서 먹었던 국물에 달랑 유부와 면만 들어 있었지만 쫄깃한 면발이 살아 있어 너무 맛있었던 우동과 대만에서 먹었던 엄청난 크기의 치즈카스테라 등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 추억들. 그 음식들을 먹던 당시의 날씨와 풍경이 고스란히 머릿속으로 재현되면서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 나는 잠시 그곳에 다녀오는 기분이다. 그러니 맛있는 음식은 미각에 기쁨을 줄 뿐 아니라 그곳의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는 통로 역할을 해낸다고 말하고 있는 이 책들이야말로 당장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위로이자 힐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생생한 사진과 유쾌한 카툰으로 만나는 세계 여행, 당신도 지금 떠나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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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흉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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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농담하지 마. 그럼 그게 여자가 한 짓이라는 거야? 여자가 경찰 목을 졸라 죽였다고?"

준야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두 손을 들었다. 그러나 쇼코는 진지한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보통 여자가 아냐. 어릴 때부터 센도 밑에서 자랐어. 물론 평범하게 키우진 않았겠지. 너희들이 상상도 못 할 일이 그 아이에게 행해졌을 거야."

한밤중, 호숫가의 별장에 전직 국가대표였던 이들 네 명이 몰래 숨어 든다. 허들 육상선수였던 유스케, 체조선수였던 쇼코, 단거리 육상선수였던 준야, 역도 일본 챔피언인 다쿠마까지. 이들은 별장의 주인인 스포츠 닥터 센도가 가지고 있던 자료를 찾으려 하지만 우발적으로 센도를 살해하고 만다. 그들은 살인의 흔적과 함께 찾지 못한 자료도 없애기 위해 저택 전체를 태워버리자고 방화를 하고, 그 모든 것을 브라운관을 통해 지켜보고 있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남자 셋, 여자 하나로 이루어진 침입자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 자들이 그를 죽였다.... 죽이고, 불태웠다.

 

처음에는 단순한 절도범의 소행처럼 보였던 화재 사건은, 별장 뒤 편에 잠겨 있던 창고에서 경찰관이 살해당하면서 살인 사건으로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된다. 체조용 매트와 바벨, 트레이닝 머신 들이 놓여 있어 체육관처럼 보이는 의문의 창고에는 누군가 살고 있던 흔적이 있었고, 그곳에서 사라진 것은 바로 센도가 비밀리에 키우던 강력한 헵태슬론 선수였다. 육상 7종 경기에 능숙한 신체로 실험을 통해 극한의 능력을 끌어올려 만들어진 괴물 같은 여자, 타란툴라. 이야기는 센도의 복수를 하기 위해 타란툴라가 네 명의 범인들을 쫓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그 남자가 말한 대로 하면서 실제로 오랜 염원을 이룰 수 있었다. 신기록, 일본 대표, 국제무대 등등……. 덕분에 준야는 명예와 안정된 생활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달렸던 걸까. 준야는 생각했다.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그게 자신의 능력이었을까? 아니면 이기기 위해? 누가 누구를 이기기 위해……. 나는 이길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달리지도 못했던 것인지 모른다.

타란툴라가 지나간 현장에서 발견된 흔적들이란 도저히 보통 인간의 힘으로 죽였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물며 여자가 한 짓이라는 걸 상상하기엔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괴력을 보여주는 모습에, 네 명의 스타 스포츠 선수들은 자신들을 향해 점점 포위망을 좁혀 오는 그녀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 마치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너무도 거침없이 사람을 죽이고, 괴력을 휘두르는 타란툴라의 모습은 센도가 남몰래 키워온 거구의 인간 병기를 마치 사이보그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세상에 적수가 없는, 천하 무적의 그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에서 운동선수들이 성적을 높이기 위해 자행하는 도핑을 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처음부터 범인을 밝혀 놓고 시작한 스토리인데다, 그 범인을 찾아 복수하려는 인물 또한 명백하게 보여주고 진행되고 있어 미스터리 보다는 서스펜스에 가까운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타란툴라의 복수의 여정 뒤에 함께 하는 것은 바로 과거 센도와 스포츠 선수들이 저질렀던 도핑과 관계된 배경이다. 센도는 단순한 도핑을 넘어서 나치의 인체 실험에 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인간의 육체를 개조하는 연구를 해왔던 걸로 보인다. 특히나 여자가 임신을 하면 근력을 증강시키는 물질이 평소보다 몇 배 더 분비되는 걸 알아내, 여자 선수를 일부러 임신시켜 근육이 붙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 트레이닝하고 일정 시기가 되면 중절을 시켰다는 무시무시한 연구를 해왔다. 혈액 도핑보다 더한 악마의 실험이 아닐 수 없다. 출간된 지 30여 년이 지난 히가시노 게이고 초기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여전히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이번에 리커버 개정판으로 새로운 표지로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내용만큼이나 강렬한 표지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속도감 있는 추격전이 일품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작품이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남겨주는 여운은 인간의 광기 어린 욕망이 불러온 비극 이면의 그것을 보여주고 있어 여운을 남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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