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스의 사자 와타세 경부 시리즈 2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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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벽에는네메시스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본부장님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네메시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복수의 여신인데 올바른 어원은복수가 아닌의분입니다. 정확하게 보면 살인의 동기도 의분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이지?”

“피해자와 가까운 사람이 저지른 복수라면 사분이라고 불러야 하겠죠. 하지만 의분이라면 집행자는 제삼자가 됩니다.”

“자신을 정의의 사도라고 믿는 사람이 벌인 짓이라는 건가?”   p.50~51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범행 현장에서 피로 쓰인 '네메시스'라는 문구가 발견된다. 네메시스, 인간이 저지르는 몰상식한 행위에 대한 신의 분노를 의인화한 여신이다. 대부분 복수의 여신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 어원은 의분, 즉 불의에 대하여 일으키는 분노라고 한다. 피해자는 범죄를 저질렀지만 사형이 아니라 무기 징역을 선고 받은 사람의 가족이었다. 누군가 가해자 대신 그 가족을 벌하려는 것일까. 하지만 사적 복수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개인이 모두 사적 복수를 하려고 나선다면 정의라는 것 자체가 무너져 버릴 테니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범인은 누구인가' 보다 '범인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과연 네메시스의 행동은 사적 복수인가, 사법 체계에 대한 테러인가.

나카야마 시치리의 와타세 경부 시리즈 그 두 번째 작품이다. 원죄 사건을 다루었던 <테미스의 검>에 이어서 이번에 만난 <네메시스의 사자>는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형제도에 관해서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 형벌의 목적을 교화로 보는 입장, 오판의 가능성, 정치적 악용의 가능성 등을 근거로 해서 폐지하자는 주장과 이를 남용할 것은 아니지만 극악한 범죄를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아주 폐지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 여전히 대립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사형제도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한국과 일본은 아직 사형제도가 있는 나라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로 사형을 시행하지 않고 있기에, 실질적으로는 사형제도 폐지국가와 마찬가지이긴 하다. 반면 일본은 조사에서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사형을 존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쪽에 가깝다고 한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이야기를 통해서 사법과 사형제도의 정당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의 진짜 적은 '네메시스'가 아니다.

바로 우리와 사법 체계를 향한 일반 시민의 불신이다. 그 불신이 '네메시스'를 낳았고, 행동하게 하고, 감싸고 있다.

바꿔 말해 '네메시스'는 모두의 가슴 속에 존재하는 정의의 사도인 것이다. 국가가 내세우는 법치주의의 정당성을 비웃고 판례가 나타내는 거짓말 같은 법의 정의를 베어 넘어뜨리는 신의 대행자다.   p.293

최근 국내에서 한 동안 뉴스에 오르내렸던 흉악 범죄를 저지른어금니 아빠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런데 2심에서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많은 논란이 되었고, 덕분에 사형제도에 대한 찬성, 반대 논란도 다시 일어나고 있다. 형법의 목적은 인간이 저지른 죄에 합당한 처벌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범죄의 원인을 교정하고 갱생시킴으로써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사법이라는 것은 얼마나 정의를 지켜내고 있는가. 피고인의 인권만 중시하면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법의 보호 아래 살려두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네메시스'가 등장해 법정 바깥을 복수의 장으로 선택하게 된 것은 아닐까. 사법 체계를 향한 일반 시민들의 불신이 '네메시스'라는 존재를 만들게 된 것은 아닐까. 하지만 국가가 내세우는 법치주의의 정당성을 비웃고 판례가 나타내는 거짓말 같은 법의 정의를 베어 넘어뜨리는 신의 대행자라니. 그는 피해자 유족의 대변자인가, 희대의 연쇄 살인마인가?

'원죄'를 다루었던 <테미스의 검>에서는 원죄를 감추려는 경찰 조직 전체에 맞서 외롭게 싸움을 했던 와타세의 고군분투가 리얼하게 그려졌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사형제도에 대해 물을 던지고 있는 <네메시스의 사자>에서는 네메시스를 쫓는 와타세 경부와 고테가와 형사가 등장하지만 사건 해결보다는 제도 자체를 둘러싼 문제점에 더 중점을 두고 있어 미스터리로서의 매력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대신 그 동안 나카야마 시치리의 다른 작품들에도 등장했던 캐릭터들이 모두 등장하고 있어 '나카야마 월드'만의 소소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늦깍이로 등단해 엄청난 집필 속도를 자랑하며 많은 작품들을 써내고 있는 작가이다. 2018년에도 출간 일정이 가득 잡혀 있고 현지에서도 두 달에 한 권꼴로 책이 나오고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국내에서도 곧 <날개가 없어도>라는 악덕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와 형사 이누카이 하야토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 출간될 예정이고, 내년 초에는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악덕의 윤무곡> 을 만날 수 있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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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디스 파트
틸리 월든 지음, 이예원 옮김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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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녀는 여느 평범한 10대들처럼 서로와 많은 것을 공유하는 단짝 친구이다. 함께 음악을 듣고, 어려운 숙제를 도와 주고, 가족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각자의 취미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낸다.

 

너 나 좋아하니?

엄청.

다행이다, 나만 그런 거면 어쩌나 했는데.

 

두 사람의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우정을 넘어,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된다. 서로를 아끼고 너무 좋아하지만, 그들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사이를 알리지 못하는 건 아닐까 고민한다. 아직은 너무 어려서 서로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도 잘 모르고, 사람들에게 밝힐 수 없는 자신들의 감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될까.

 

 

이 책은 두 10대 소녀의 사랑을 서정적으로 그린 그래픽노블이다. 틸리 월든은 영미권 그래픽노블계가 지금 가장 주목하는 작가로 <아이 러브 디스 파트>는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작품이기도 하다.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인 작가는 이 짧은 사랑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 그 누구보다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제목인 아이 러브 디스 파트는 좋아하는 음악을 하나의 이어폰을 나눠 들으면서 나는이 부분이 제일 좋다"라고 말하는 그들이 함께 했던 시간 속에서 비롯되었다. I love this part. 난 이 부분이 듣기 좋더라. 난 이렇게 하는 걸 좋아해. 난 이 넓은 세계 속에서 유일한 바로 너를 사랑해.

두 사람이 이제 더 이상 하나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게 되지 않더라도, 그들은 함께 공유했던 그 특별한 시간을 통해서 여전히 같은 노래를 들을 때마다 서로를 떠올리고, 같은 표정을 짓게 될 것이다. 

 

어른들의 만화라고도 불리는 그래픽 노블은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띤다. 만화책의 한 형태이긴 하지만 보통 소설만큼 길고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에 비해 이 책 <아이 러브 디스 파트>는 단순한 스토리를 감성적인 드로잉으로 풀어내고 있어 어렵지 않게 읽힌다. 그 동안 만나왔던 그래픽노블이 예술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문맥적으로 이해하기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거나, 글은 적고 그림은 너무 상징적이어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면, 이 작품은 굉장히 쉽게 술술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보라색을 주조로 한 담백한 컬러 사용과 여백을 충분히 활용한 컷 구성도 인상적이고, 스토리 자체도 시간의 순서와 상관없이 단편적인 장면들을 부각시키고 있어 더 여운을 남겨주고 있다.

사랑하지만 더는 못하겠어. 너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았는데 미안해.

난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그렇지만 내가 널 어떻게 미워 하겠어.

 

누구나 이들처럼 순수하고, 풋풋했던 시절을 지나 왔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세상에서 단 한 사람, 자신에게 유일한 존재를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 그러니 이 작품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읽히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또 자신이 사랑할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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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 어른인 척 말고 진짜 느낌 좋은 어른으로 살아가기
박산호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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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또 넘어질 것이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 넘어져도 될 순간과 안 될 순간을 구분하는 지혜를 기르고, 그렇게 넘어지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것. 무엇보다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지니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이를 먹어가고 어른이 되는 묘미란 걸 요즘은 조금 알 것 같다.    p.50

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도 전에, '어른'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당신의 외로운 분투를 응원하며, 라는 문구때문에 뭉클해졌다. 사실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라는 명사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도 알다시피, 그 책임이라는 것의 무게가 생각만큼 만만치가 않아서 그것에 따른 제대로 된 어른 구실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저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었거나, 물리적으로 나이를 먹긴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아이에 가까운,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들 투성이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라고. 왜냐하면 다들 나이 드는 건 처음이니까. 다들 사는 게 처음이니까, 세상에는 처음인 것 투성이니 말이다.

박산호라는 번역가의 이름을 처음으로 머리에 새긴 건은 톱 롭 스미스의 걸작 <차일드 44>를 읽으면서부터였다. 이후로 존 하트, 스튜어트 맥브라이드, 로렌스 블록, 제이슨 매튜스, 존 코널리 등의 작품을 거쳐 최근 돈 윈슬로의 <더 포스>에 이르기까지.. 관심 있게 지켜보는 작가들의 작품에 항상 이름을 같이 하는 믿고 보는 번역가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어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인 경우에도 옮긴이가 박산호라는 걸 알게 되면, 어쩐지 작품이 궁금해져서 찾아서 일게 되곤 한다. 그런 그녀가 써낸 에세이라고 해서 이번 작품은 정말 기대가 되었다. 영어나 번역에 대한 글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과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어른'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고 하니,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궁금했다.

 

 

준비하다 탕 소리가 나자마자 달리는 경주 같은 인생에서 경주마처럼 눈이 가려진 채 헉헉거리며 달리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끝나버리는 인생이라면 너무 허망하다. 그보다는 이번 도쿄 여행에서 호텔을 찾아가다 길을 잃고 우연히 들어간 골목에서 담장 너머로 보이는 우아한 정원에 넋을 잃은 것처럼 인생에서 만난 우연한 순간에 감탄하고 싶다. 목적지로 최대한 빨리 직진하는 것보다 그 여정을 즐기는 것이 여행의 참 맛이란 걸 느끼는 것처럼 인생도 그렇게 작고 사소한 순간들을 알알이 느끼며 살고 싶다.    p.189~190

통역가를 꿈꾸다 읽고 쓰는 게 좋아 번역가가 된 후 16년 넘게 번역을 하고 있는, 이제는 베테랑 번역가로 이름만 들어도 믿고 지지하는 독자가 있는 위치에 있는 저자는, 여전히 자신이 진짜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지, 자각도 자격도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결혼과 출산 후에 찾아온 우울증때문에 힘겨운 시간을 보냈고, 이혼 후 아이와 함께 건너간 영국에서의 삶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고 한다. 번역가로서 일을 하면서도 프리랜서로 자리 잡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던 그 모든 날들을 겪으면서 그녀는 깨닫는다. 인생이란 완벽하지 않으며,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건강한 어른이라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일이 생겨도 멈칫하지 않으며, 인생이란 선의를 주고받으며 서로 돕고 사는 걸 이제는 알았다고 말이다. 그리고 몸과 영혼을 갈아 넣으면서까지 무리해서 아둥바둥할 필요는 없다고도 말한다. 무엇보다 내 몸을 아끼고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살다 보면 누구나 넘어지게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넘어지고 실패하면서 배우는 것이 분명 있고, 넘어지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며, 그런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실패하면서도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있을 거라는 말에 위로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만하면 괜찮아. 이만하면 아주 잘했어. 라며 나를 다독여주고, 나이를 먹어서 서글퍼지는 게 아니라 나이가 주는 위안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책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어른, 괜찮은 어른, 느낌 좋은 어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누구나 어른이 되는 건 어렵다. 그러니  어른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당신 혼자만 힘든 것이 아니다. 사는 게 마음 같진 않지만 분명 인생이 다정해지는 시기가 온다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 보자. 분명 내일이 되면 또 다른 희망이 당신을 찾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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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의 심리학 -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김영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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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동은 대부분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 욕망 중에는 식욕이나 수면욕처럼 금세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다. 그래서 인간은 지금 당장 채우기 어려운 욕망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참고 견딘다. 좋은 학교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고 싶고 놀고 싶은 당장의 욕구를 억누른다. 학자들은 이런 행동이야말로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말한다.   p.50

25년 차 베테랑 검찰 수사관이 파헤치는 놀라운 속임수의 세계라니 책을 읽기도 전부터 호기심이 들었다. 저자는 현직 검찰청 수사과장으로 재직하며 사기, 횡령 등 각종 형사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생생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과 심리학 이론을 넘나들며 속임수의 사기의 수법에 대해서 낱낱이 알려준다. 신종 보이스 피싱과 전자 금융사기, 다단계 사기, 애정을 미끼로 한 결혼 사기 등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다양한 속임수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 대체 인간은 왜 이렇게 쉽게 속는 걸까. 검찰 수사관으로 각종 사기 사건을 수사해온 저자는 그러한 속임수 뒤에 숨어 있는 흥미로운 심리 법칙에 대해 이야기 한다.

최근 교사, 의사, 약사, 기자 등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가 보이스 피싱에 속아 돈을 송금한 사례가 제법 있었다고 한다. 학력이 낮거나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만 속임수에 걸려들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는 얘기이다. 저자는 말한다. 속임수 기법에는 공통적으로 세 가지 심리가 있다고. 바로 '욕망' '신뢰, 그리고 '불안'이라고 한다. 만약 우리가 이 세가지 심리를 이용한 속임수의 기술을 제대로 알고 숙지한다면 수만 종의 사기와 속임수에 절대 걸려들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지만, 그 자유의 대가는 생각보다 무시무시하다. 한 사람의 물질적,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은 물론, 평생 정신적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피의자가 아닌 피해자의 '사회적 생명'을 끊어놓을 수도 있다. 그러니 타인이 보내는 신호를 잘못 읽고 엉뚱하게 해석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p.103

"설마 30년 죽마고우인 친구가 나에게 사기 칠 줄은 몰랐습니다." 친구 때문에 전 재산을 날린 피해자가 검찰청에 와서 한 말이라고 한다. 저자가 사기 사건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는데, 바로 사기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전혀 모르는 남이 아니라 서로 잘 아는 사이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라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아는 사람'의 위력은 이렇게 대단하다. 심리적으로 친구나 친척, 지인 등의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하기 힘든 점을 이용해 '좋은 사람' 일수록 잘 속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고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하다. 의리남, 의리녀가 더 잘 속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러한 감정과 의리가 주로 작용하는 관계인 가족이나 친구, 동료와의 관계를 이용하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속임수와 사기가 난무하는 현실에서는, 분별력을 갖춘 냉철한 의리가 필요한 요즘이다.

놀랍게도 저자 역시 젊은 시절 사기꾼에게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재세 공과금만 부담하면 고가의 물건을 받을 수 있다는 경품 이벤트에 속아 넘어갔고, 아는 선배에게 낚여 다단계 인지도 모르고 들어갔다가 간신히 빠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니 속임수에 걸려드는 데는 나이도, 학력도, 직업도 없다는 것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문자메시지 하나에 40만 명이나 속았던 까닭은? 똑똑한 사람이 어쩌다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까? 처음 보는 점쟁이는 어쩜 그렇게 내 상황을 잘 알고 있을까? 저자는 수많은 실재 사례들을 통해서 속임수를 간파할 수 있는 기술들을 알려 준다. 이 책을 통해서 속임수 뒤에 숨은 인간의 심리와 이를 이용한 사기꾼들의 전략을 알게 된다면, 그들이 말하지 않은 진실들을 명백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세계 사기 범죄율 1라는 부끄러운 타이틀을 지닌 대한민국에서, 사기꾼에게 걸려들지 않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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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그림 하나 - 오늘을 그리며 내일을 생각해
529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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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9일 일요일

사소한 것들이 나를 지탱해 주고 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서 간신히 씻고 누웠을 때 이불에서 풍기는 좋아하는 섬유 유연제 향이나, 언젠가 마음에 와 닿아 책갈피로 표시해 둔 책 속의 구절이라든가, 별 내용도 없이 시시콜콜한 친구와의 전화 한 통 같은 것들. 정말 아주 사소한 것들이 계속해서 힘을 내어 날 나아가게 한다.    p.34

매년 새해가 되면 다짐을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일기 쓰기이다. 하지만 학창 시절 이후로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한 번도 꾸준히 써보지 못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일기를 써서 선생님께 칭찬도 받고, 상도 받고 그런 재미로 또 부지런히 글을 쓰곤 했었다. 이사를 하면서 지금은 그 많은 일기장들을 다 잃어 버렸지만, 몇몇 대목은 아직도 기억이 날 정도로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게 만드는 기억들이다.

일기를 쓰면 좋은 점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좋은 건 비슷비슷한 나의 하루가 특별한 순간으로 오래도록 남을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싶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사진을 찍어서 남기는 것처럼, 일상의 한 대목도 그렇게 순간 포착해서 기록으로 남겨 두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꺼내어 볼 수 있으니 참 쉽고도 멋진 일이 아닌가. 이제 올해도 두 달여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마 나는 내년 초가 되면 또 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을 할 것이다.

이 책은 1년간의 삶을 365편의 일기로 기록한 감성 일러스트레이션 북이다. 일러스트레이터로 회사에서 근무하다 퇴사 후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529는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포근한 색연필 드로잉으로 몽글몽글 그려낸 365일 그림일기는 귀엽고 착한 일러스트만큼이나 소소하고 솔직한 일상들을 담고 있다. 나도 그림을 이렇게 그릴 수 있다면, 그냥 일기가 아닌 그림 일기를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따뜻하고, 예쁜 일기장이다.

 

4 5일 수요일

늦은 저녁 돌아오는 길에 아껴 읽던 책을 꺼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나는 종이 냄새와 팔랑이는 소리가 듣기 좋아, 듣던 노래를 멈추고 종이 넘기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두워진 길을 달리는 버스의 살짝 열린 창 틈으로 비 냄새가 났고, 책 속 구절처럼 완연한 봄이었다.    p.104

오래 결심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고민, 라섹 수술 이후에 불편했던 일상들, 우연히 본 꽃집에서 산 튤립 세 송이의 기쁨, 본가에서 가족들을 만나고 돌아오던 길에 발견한 아빠가 사주시던 도시락집, 인터넷으로 선물할 책을 고르려다 어느새 내가 읽고 싶은 책만 한 가득 장바구니에 넣고 만 어느 밤, 작년 이맘때의 그림들을 정리하며 치열했던 여름을 돌아보던 시간, 늦은 시간 돌아오는 길에 들른 빵집에 내가 좋아하는 빵이 남아 있어 기분 좋은 날, 정신 없던 이사를 끝내고 한숨 돌리던 순간의 평화, 처음으로 만들어 마신 아이스 밀크티가 너무 맛있어서 하루에 세 잔이나 내리 마셨던 날 등등...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지만 그 솔직 담백함이 누구에게나 공감을 주는 내용들이다. 게다가 너무 착해 보이는 그림들 속에서 따뜻함과 소박한 진심이 느껴져서 더 편하게 읽히는 책이기도 하다.

일러스트레이터 529는 어느 날 문득, 일이 아닌 자신의 생활에 대한 건 전혀 기억으로 남은 게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일에 치여, 일상에 매여, 스스로를 돌보기는커녕 쫓기듯이 살아가는 날들이 쌓이다 보면 자연스레 지나간 하루가 어떠했는지 잊어 버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단 한 줄이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참 작업 중인 늦은 새벽에, 혹은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뜬눈으로 누워 있다 일어나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녀가 그리고 쓴 1년간의 그림 일기를 읽으면서 나도 이제는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끊임없이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좀 돌보고, 내 일상들이 그냥 지나가 버린 하루로 사라져버리지 않도록 붙잡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처럼 사소한 단상들을 끄적여 일기의 형태로 남겨도 좋을 것 같고, 짧은 메모나 사진으로 남겨도 좋을 것 같고 말이다.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있을 때, 의기소침해진 나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을 때, 따뜻하고 포근한 그림 일기를 통해서 소박한 행복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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