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스의 사자 와타세 경부 시리즈 2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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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벽에는네메시스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본부장님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네메시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복수의 여신인데 올바른 어원은복수가 아닌의분입니다. 정확하게 보면 살인의 동기도 의분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이지?”

“피해자와 가까운 사람이 저지른 복수라면 사분이라고 불러야 하겠죠. 하지만 의분이라면 집행자는 제삼자가 됩니다.”

“자신을 정의의 사도라고 믿는 사람이 벌인 짓이라는 건가?”   p.50~51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범행 현장에서 피로 쓰인 '네메시스'라는 문구가 발견된다. 네메시스, 인간이 저지르는 몰상식한 행위에 대한 신의 분노를 의인화한 여신이다. 대부분 복수의 여신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 어원은 의분, 즉 불의에 대하여 일으키는 분노라고 한다. 피해자는 범죄를 저질렀지만 사형이 아니라 무기 징역을 선고 받은 사람의 가족이었다. 누군가 가해자 대신 그 가족을 벌하려는 것일까. 하지만 사적 복수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개인이 모두 사적 복수를 하려고 나선다면 정의라는 것 자체가 무너져 버릴 테니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범인은 누구인가' 보다 '범인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과연 네메시스의 행동은 사적 복수인가, 사법 체계에 대한 테러인가.

나카야마 시치리의 와타세 경부 시리즈 그 두 번째 작품이다. 원죄 사건을 다루었던 <테미스의 검>에 이어서 이번에 만난 <네메시스의 사자>는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형제도에 관해서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 형벌의 목적을 교화로 보는 입장, 오판의 가능성, 정치적 악용의 가능성 등을 근거로 해서 폐지하자는 주장과 이를 남용할 것은 아니지만 극악한 범죄를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아주 폐지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 여전히 대립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사형제도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한국과 일본은 아직 사형제도가 있는 나라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로 사형을 시행하지 않고 있기에, 실질적으로는 사형제도 폐지국가와 마찬가지이긴 하다. 반면 일본은 조사에서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사형을 존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쪽에 가깝다고 한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이야기를 통해서 사법과 사형제도의 정당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의 진짜 적은 '네메시스'가 아니다.

바로 우리와 사법 체계를 향한 일반 시민의 불신이다. 그 불신이 '네메시스'를 낳았고, 행동하게 하고, 감싸고 있다.

바꿔 말해 '네메시스'는 모두의 가슴 속에 존재하는 정의의 사도인 것이다. 국가가 내세우는 법치주의의 정당성을 비웃고 판례가 나타내는 거짓말 같은 법의 정의를 베어 넘어뜨리는 신의 대행자다.   p.293

최근 국내에서 한 동안 뉴스에 오르내렸던 흉악 범죄를 저지른어금니 아빠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런데 2심에서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많은 논란이 되었고, 덕분에 사형제도에 대한 찬성, 반대 논란도 다시 일어나고 있다. 형법의 목적은 인간이 저지른 죄에 합당한 처벌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범죄의 원인을 교정하고 갱생시킴으로써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사법이라는 것은 얼마나 정의를 지켜내고 있는가. 피고인의 인권만 중시하면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법의 보호 아래 살려두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네메시스'가 등장해 법정 바깥을 복수의 장으로 선택하게 된 것은 아닐까. 사법 체계를 향한 일반 시민들의 불신이 '네메시스'라는 존재를 만들게 된 것은 아닐까. 하지만 국가가 내세우는 법치주의의 정당성을 비웃고 판례가 나타내는 거짓말 같은 법의 정의를 베어 넘어뜨리는 신의 대행자라니. 그는 피해자 유족의 대변자인가, 희대의 연쇄 살인마인가?

'원죄'를 다루었던 <테미스의 검>에서는 원죄를 감추려는 경찰 조직 전체에 맞서 외롭게 싸움을 했던 와타세의 고군분투가 리얼하게 그려졌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사형제도에 대해 물을 던지고 있는 <네메시스의 사자>에서는 네메시스를 쫓는 와타세 경부와 고테가와 형사가 등장하지만 사건 해결보다는 제도 자체를 둘러싼 문제점에 더 중점을 두고 있어 미스터리로서의 매력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대신 그 동안 나카야마 시치리의 다른 작품들에도 등장했던 캐릭터들이 모두 등장하고 있어 '나카야마 월드'만의 소소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늦깍이로 등단해 엄청난 집필 속도를 자랑하며 많은 작품들을 써내고 있는 작가이다. 2018년에도 출간 일정이 가득 잡혀 있고 현지에서도 두 달에 한 권꼴로 책이 나오고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국내에서도 곧 <날개가 없어도>라는 악덕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와 형사 이누카이 하야토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 출간될 예정이고, 내년 초에는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악덕의 윤무곡> 을 만날 수 있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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