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랜지션, 베이비
토리 피터스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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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리즈는 엄청난 실패를 겪어본 사람들에게만 마음이 간다고 말하곤 했다. 엄청난 실패를 한 번 겪어보아야만, 모든 희망이 완전히 짓밟혀보아야만 흥미진진한 삶을 꽃피울 수 있다고 믿었다. 가지치기를 한 나무는 웅장하고 아름답게 자라지만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나무는 이기적으로 최대한의 햇빛을 받으며 수직으로,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만 자라는 것처럼. 에이미와 헤어지고 난 뒤에야 리즈는 어쩌면 에이미야말로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실패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p.255


트랜스젠더 여성 리즈는 항상 엄마가 되고 싶었다. 엄마가 된다면 외로움과 결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고, 자연스럽게 배어나던 여성성을 마침내 가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삼 년 전 리즈는 에이미라는 이름의 트랜스 여성과 레즈비언 커플로 지냈다. 에이미는 IT 업계에 괜찮은 직장이 있었고, 리즈는 그녀와 함께 트랜스 여성으로서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가정을 꾸리는 데 상당히 근접했다. 하지만 이제 리즈는 삼십대 중반으로 접어 들었고, 다시 미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리즈와 연인이었던 에이미는 육 년 동안 에스트로겐 주사를 맞으면서 테스토스테론 억제제를 먹었다. 당시에 의사는 영구 불임이 될 거라고 했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트랜스로 사는 게 지긋지긋해진다. 자신의 젠더를 실현하기 위해 이런 거지 같은 꼴을 당할 필요가 없다고, 자신은 트랜스가 맞미나 꼭 트랜스로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트랜스 혐오로 가득한 사회에 지쳐 성환원(디트랜지션)을 결정했고, 현재는 에임스라는 이름의 생물학적 남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 에임스는 직장 상사인 카트리나와 연애 중이었고, 그녀가 아기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문제는 이혼한 이성애자인 카트리나는 에임스가 과거에 트랜스젠더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그로서는 젠더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두려움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남자였다가 여자가 되었고, 이제 다시 남자가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대체 어느 시점에서, 엄마는 아무 아기를 원하다가, 그 아기를 원하게 되는 걸까? 그런 변화가 언제 일어나는 걸까? 리즈는 카트리나가 유산을 하고 나서 안도감을 느꼈다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아마도 그 첫 번째 유산에서 카트리나는 그녀의 아기가 아닌, 아무 아기를 잃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또 그 일을 치르려 할 수 있을까? 리즈는 늘 아무 아기의 아무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야 미처 몰랐던 진실을 깨닫는다. 리즈는 바로 그 아이의 바로 그 엄마가 되고 싶었다. 정체성과 거의 상관없는 애착이 생긴 것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 아기일 것이다.                 p.508


트랜스 여성으로서의 삶은 너무도 고달프고,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게 된다고 한다. 성전환이라는 것조차 가족들에게 절연당할 결심을 해야 할 만큼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어려운 것을 다시 되돌리는 성전환 환원(디트랜지션)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연인의 임신 소식에 고심하던 에임스는 항상 아이를 키우고 싶어했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리즈를 떠올린다. 그렇게 자신은 사랑하는 카트리나와 함께 있을 수 있고, 카트리나는 임신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고, 리즈는 원하던 아기를 키울 수 있게 되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들면 어떨까 고민하기 시작한다. 카트리나는 연인으로부터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얻을 수 있고, 리즈는 아기를 갖게 되고, 에임스는 여성이지만 여성이 아니고 아버지이지만 아버지가 아닌 모습으로 두 사람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것이다. 과연 생물학적 엄마와 일종의 아빠, 그리고 아빠의 트랜스인 전 여자친구 세 사람이 함께 살며 아기를 키울 수 있을까. 


이번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토리 피터스는 트랜스젠더 여성 소설가이다. 주류문학계에서 벗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작품을 무료 배포하며 활동을 시작해 자신의 경험을 살린 글쓰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트랜스젠더 문학의 판을 넓히기 위해 트랜스젠더 온라인 커뮤니티에 작품을 무료로 배포하고 소규모 자비출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작품 <디트랜지션, 베이비> 부터이다. 이 작품은 트랜스젠더 작가 최초로 여성문학상 후보에 올라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일반적인 퀴어 서사의 금기를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두 명의 트랜스젠더와 한 명의 시스젠더 여성을 통해 오늘날 사랑과 관계의 의미를 묻는다. 기존의 젠더 규범과 가족 구조를 해체하면서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놀라운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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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밀크 그래피티 - 양장, 음식과 사람, 인생의 비밀을 찾아 떠난 이균의 미국 횡단기
에드워드 리 지음, 박아람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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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모든 요리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그 이면에는 역사와 가족, 시간과 장소에 얽힌 복잡한 서사가 숨어 있다. 종이 한 장을 꺼내 현재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적어보자. 대여섯 개쯤 떠오를 것이다. 이제 눈을 감고 오래전에 먹은 음식, 어린 시절의 음식을 떠올려보자. 그런 다음 배우자나 친구, 동료, 혹은 여행을 통해 좋아하게 된 음식을 적어보자. 목록이 점점 길어질 것이다... 바로 그런 이야기 속에 개개인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풍미와 질감이 들어 있고, 거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먹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p.27


<스모크 & 피클스>에 이은 에드워드 리 셰프의 두 번째 책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다시금 셰프들의 인기가 높아졌는데,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사람이 바로 에드워드 리, 이균 셰프일 것이다. 흑백요리사의 우승자보다 더 주목받고, 사랑받는 준우승자이니 말이다. 그는 이민자로서 미국 남부 요리와 한국 전통 음식을 결합하여 독창적인 요리 세계를 보여주었는데, 요즘은 자유로운 스타일과 위트있는 말솜씨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사실 그는 그는 요리사이지만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문학도이기도 하다. 이번에 나온 <버터밀크 그래피티>에서 유려한 그의 글솜씨를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 책은 요리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상을 받기도 했다. 


사실 이 책에는 레시피가 있고,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시종일관 나오지만 요리책은 아니다. 무려 4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분량의 이 책에는 그가 2년 동안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과 음식,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문화와 정체성에 관한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각 챕터가 끝날 때마다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음식에 대한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지만 사진이나 그림은 없다. 그는 일부러 사진을 넣지 않았다고 하는데, 정해진 이미지가 없으면 자유롭게 상상하며 자신만의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거라고, 부디 자신의 직감을 믿고 따르면 된다고 말한다. 그는 "당신이 어떤 음식을 만드는지 알려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라고 말한다. 요리는 개인으로서뿐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요리 못지않게 그것을 만든 사람에 관해서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이런 책이 만들어 진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의 관심사는 요리이지만, 그의 태도는 항상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음식의 세계를 여행하며 수많은 이민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 과정은 고스란히 이민자들의 요리와 미국 음식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모든 학습 과정의 첫 단계는 모방이다. 아말도 모방을 통해 영어를 배웠고 나도 같은 식으로 요리를 배웠다. 이제 인터넷과 요리책만으로도 어떤 요리든 배울 수 있지만 여전히 글이나 영상만으로는 익힐 수 없는 신비로운 요리들이 있다. 사워도우나 크루아상이 그렇다. 스멘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차이가 맛을 좌우하는 요리. 스멘을 만드는 과정은 복잡하지 않지만 전부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 거기에는 모종의 리듬이, 여러 번 반복해야 배울 수 있는 움직임이 있다. 모로코인 친구에게 그것을 직접 배우는 행운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다.             p.225


사실 에드워드 리 셰프는 국내에는 흑맥요리사로 알려졌지만, 2010년 <아이언 셰프>라는 프로그램의 우승자로 여러 유명 요리 대회와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미국의 스타 셰프이다. 이 책을 통해 받은 제임스 비어드 상 수상뿐 아니라 백악관 만찬 셰프이기도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요즘에는 티비만 틀면 광고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만큼 한국인들에게도 이제 유명인이 되었는데, 그를 통해서 다양한 문화의 이민자들에 대한 삶에도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미국인 친구들에게 집에서 먹는 한국 음식을 숨기려 했던 어린 소년이 이제는 자신의 식당에 오는 모든 미국인에게 자랑스럽게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있다. 그는 '한 사람의 일생에서 이렇게 커다란 도약이 일어나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지만, 이건 그저 운이 좋은 것도, 누군가 도와줘서 이룬 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에드워드 리 셰프가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이야기가 모두 그렇듯 중요한 것은 결말이 아니라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요리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각각의 음식에 얽힌 이야기는 같은 요리라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고, 추억과 사랑, 그리고 과장 한 꼬집이 들어 있다. 그런 이야기가 흡족한 맛을 더해주는 것이다. 이 책은 문장 자체도 굉장히 뛰어나지만, 그 속에 담긴 아름다운 사유와 깊이, 그리고 음식과 사람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도 놀라웠다. 미국 각 도시의 이민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이 만든 각양각색의 음식을 먹어보고 여러 세대를 걸쳐 변형되고 재조합된 다양한 문화와 삶을 배우는 과정은 음식이 사람을 어떻게 연결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맛에 대한 놀랍도록 완벽한 비유, 주방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존중, 요리의 이면에 있는 역사와 가족, 시간과 장소에 얽힌 복잡한 서사가 너무도 흥미로웠다. 마치 소설을 읽듯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며 읽었다. 지름길을 택하지 않고 인내와 친밀함을 담아 느리게 만든 음식처럼 시간을 들이고 끊임없이 도전해서 탄생한 이 아름다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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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군 昏君 -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었던 조선의 네 군주들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32
신병주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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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조선 시대의 혼군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해야 하는 인물은 연산군이 아닐까 싶다. 연산군은 향락과 사치에 빠져 나라를 망친 잔인한 폭군이었으며, 조선에서 최초로 탄핵을 당한 왕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군주제의 나라에서 왕이 탄핵을 당할 수 있었을까? 도대체 어떤 일을 했기에 왕이 탄핵까지 당하게 된 것일까?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연산군의 아버지인 성종부터 알아야 한다.              p.15~16


대한민국 대표 교수진이 펼치는 흥미로운 지식 체험, ‘인생명강’ 시리즈의 서른두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전국 대학 각 분야 최고 교수진의 명강의를 책으로 옮겨 다양한 분야의 지식 콘텐츠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나온 것은 조선 시대 왕실 연구 권위자인 신병주 교수가 역사의 오명을 남긴 네 왕의 비틀어진 권력 이야기를 밝히는 책이다. 


이번에 나온 것은 조선 시대 왕실 연구 권위자인 신병주 교수가 역사의 오명을 남긴 네 왕의 비틀어진 권력 이야기를 밝히는 책이다. 역사 속에는 성군과 혼군이 함께 존재했다. 국가와 백성을 위한 정책 수립에 소임을 다하고 능력 있는 참모들과 힘을 합해 국정을 운영했다면 성군이고, 국가와 백성을 위험에 빠뜨리고 이를 조장하는 간신과 함께한 군주는 혼군이다. 이 책에서는 조선을 대표하는 혼군 네 명, 연산군, 광해군, 인조, 선조에 대해 알아본다. 우선 이미 수차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더욱 유명해진 연산군과 광해군이 있다. 폐비 윤씨 사사 사건 이후 조선 최초로 탄핵당한 연산군의 광기와 폭정에 대해서는 너무도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누구라도 복수의 피바람을 떠올리면 그가 혼군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광해군에 대해서는 좋은 이미지가 남아 있어 그가 왜 탄핵을 당했는지 의문을 가지는 이들도 많다. 그렇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연산군과 광해군을 혼군이라고 표현했다. 폭정과 사치를 일삼았던 연산군과 같은 취급을 하자니 조금 다르지만, 광해군 역시 폐위를 당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책을 통해 그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두 차례의 반정이 있었다. 쿠데타와는 달리 옳지 못한 임금을 폐위하고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새 임금을 세우는 일을 반정이라 하는데, 1506년 9월에 연산군을 폐위하고 중종이 왕위에 오른 중종반정, 1623년 3월에 광해군을 폐위하고 인조가 왕위에 오른 인조반정이 조선 시대의 반정이다. 두 번의 반정은 비슷하면서도 큰 차이가 존재한다. 중종반정으로 왕이 된 진성대군, 즉 중종은 반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추대된 왕이지만 인조반정으로 왕이 된 능양군, 즉 인조는 직접 반정 세력을 규합해 병력을 거느리고 적극적으로 주도했다. 그렇다면 왜 인조는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반정에 참여했을까? 광해군과의 악연이 큰 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p.170~171


선조는 우리에게 임진왜란이 일어났음에도 도성을 버리고 자신의 안위에만 급급했던 왕, 열악한 전장에서 활약한 이순신 장군이나 곽재우 장군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고 시기했던 속 좁은 왕이라는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즉위 초반에는 꽤 능력 있는 왕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조선의 학문과 문화를 발달시켰다. 하지만 사림파의 등용은 당쟁의 시작이 되었으며, 문을 중시한 나머지 국방이나 국외 정세를 파악하지 못했으니, 선조에 대한 평가가 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선의 암흑기에 굴욕의 왕으로 알려진 인조는 명분만을 중시하는 고루한 사상으로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을 두 번이나 치렀다. 왕 또한 수모를 당하기는 했지만 백성들의 치욕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수많은 조선인이 포로로 끌려가 노예 시장에서 팔렸고, 가족과 재산과 땅을 빼앗겼다고 한다. 두 번의 호란이 조선 땅에 이토록 큰 생채기를 남겼으니,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혼군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폭정과 사치로 조선 최초의 탄핵을 당한 핏빛 군주 연산군, 뛰어난 정치력과 패륜이 공존했던 두 얼굴의 군주 광해군, 반정으로 왕위에 올라 삼전도의 굴욕을 겪은 무능의 군주 인조, 임진왜란에서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책임 회피형 군주 선조의 행적을 통해 국가와 백성 위에 군림했던 권력이 어떤 비극을 초래했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히 혼군들의 잘못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선택이 어떻게 나라를 뒤흔들고, 백성의 삶을 무너뜨렸는지를 보여주며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들어 준다. 혼군이 왕이 되었을 때, 나라가 위태로워졌다는 사실은 역사 속 혼군들의 사례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오늘날 리더십과 권력이 지녀야 할 책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다.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라는 뜻의 '혼군'이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왜 지금 수백 년 전 군주들의 이야기를 다시 들여다보아야 하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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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관절 자세력 - 타고난 관절을 바로잡고 두뇌까지 책임지는 기적의 자세교정 33 인생백세 3
윤제필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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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금 어떤 자세로 책을 읽고 있는가? 편안하게 의자에 앉아 있는가, 아니면 서서 스마트폰으로 읽고 있는가? 

우리 몸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맞는 자세를 찾고, 자연스레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자세를 선택한다. 우리의 하루는 수많은 움직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밥 먹고, 일하고, 운동하고, 잠자는 모든 순간 몸을 움직인다. 하지만 우리 삶의 모든 선택이 항상 최선은 아니었듯 우리의 움직임도 항상 올바른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잘못된 자세로 인해 몸이 틀어지기도 한다.          p.5~6


대한민국 대표 의료진이 펼치는 흥미로운 지식 체험, ‘인생백세’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전국 대학 각 분야 최고 교수진의 명강의를 책으로 옮긴 것이 '인생명강' 시리즈라면, 이 시리즈는 의학 지식들을 엄선해 백세시대를 위한 가장 실용적인 건강교양 콘텐츠를 제공한다. <초관절 자세력>의 저자는 메이저리그 추신수, 테니스 선수 이형택 등 스타선수들의 주치의이자 TV 건강프로그램을 통해 국민 관절주치의로 널리 알려진 한방재활의학 전문의 윤제필 원장이다. 


25년간 3만 명의 인생을 바꾼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자세교정의 바이블’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외과적 수술을 하지 않고도 일상에서 교정 가능한 ‘통증 해방 건강 비책’을 제안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상에서 허리, 목, 무릎, 어깨 등의 통증을 한번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특히나 현대인들은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는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사용 시간이 길다. 이러한 생활 방식은 다양한 건강 문제를 유발시킬 수 있다. 생활 습관, 움직임, 자세... 우리가 무심코 반복해온 습관들이 단순한 통증을 넘어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심각한 질병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운전, 식사, 수면, 업무 등 일상생활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서 잘못된 자세를 유지하거나 반복적인 동작을 취하는 경우, 장기적으로 근골격계의 문제뿐 아니라 소화, 호흡, 심혈관, 신경계, 정신 건강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니 잘못된 자세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습관도 지속하지 않으면 잊혀져버린다."

바른 습관도 마찬가지이다. 설거지를 잘 못하고 힘들 때는 다시 일회용품 사용으로 돌아가고, 운동 계획을 세웠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운동을 포기하는 등, 인간은 변화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실천만이 답이다. 치유가 시작되면, 종종 우리는 안주하려 한다. 잠시 나아지는 듯하면, 불건정한 습관이 다시 기어 나와 운동을 멀리한다. 그러나 관절 건강을 위한 진정한 치료는 지속적으로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근력 운동을 하는 데에 있다!              p.221~222


한번씩 허리가 심하게 아파서 일상 생활에 심각한 지장이 생기곤 했다. 디스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그러곤 했다. 대부분은 파스를 붙이거나, 정형외과의 물리치료를 받는 정도로 해결이 바로 되지 않아 몇주씩, 길게는 한달씩 고생을 하곤 했다. 아마도 문제는 자세일 것이다. 책을 심각하게 많이 보는 편이고, 책을 읽다 보면 허리부터 목, 어깨, 팔목 여기저기가 아파오곤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책상에서 허리를 쫙 펴고 정자세로 책을 오랜 시간 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누워서 볼 수 있는 독서대를 사용해보기도 하고, 앉아서 보기 편한 눈높이에 맞는 독서대로 활용해 보았지만 딱 맞는 걸 찾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궁금했는데, 읽다 보니 여러 가지 부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관절별 통증 원인과 증상을 점검하고, 부위별로 실천 가능한 자세교정 스트레칭과 운동법을 소개해주었던 부분이다. QR코드를 수록해 바로 시범 영상을 보며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좋았다. 이렇게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생활 습관 교정부터 지속 가능한 건강 습관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소리 없이 무너진 자세가 관절 통증은 물론 소화기, 호흡기, 심혈관, 뇌 건강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살펴보고, 외과적 수술을 하지 않고도 일상에서 교정 가능한 ‘통증 해방 건강 비책’을 제안한다는 점도 이 책만의 훌륭한 점이다. 통증 예방의 제일 첫 걸음은 나의 체형과 습관을 아는 것부터 시작이라는 것, 건강 기능 식품은 질병 치료제가 아니기 때문에 건강한 식습관,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 등의 생활 습관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도 저자는 강조한다. 매일의 작은 움직임이 모여 건강을 이룬다. 그렇기에 일상에서 스트레칭과 가벼운 운동은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생명력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자, 오늘부터 건강한 미래를 위한 작은 변화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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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 -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지침서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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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수 있을까?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삶의 후회를 줄이고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며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일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끝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더 충실하게 살기 위한 다짐이자 생의 매 순간을 음미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죽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곧, 오늘을 더욱 사랑하고 내일을 준비하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것이 우리가 남은 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이다.              p.156~157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의 죽음에 익숙해지게 된다.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던 죽음이 가까운 이의 부고 소식을 차츰 접하게 되면서 더 이상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낯설고, 두렵게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까. 다가올 죽음을 조금은 편하게 맞이할 수는 없을까. 


이 책은 서가명강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었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썼던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가 6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27년간 3,000건 이상의 부검을 수행하며 죽음을 통해 삶을 배워온 그는 우리에게 '좋은 삶'을 고민하는 것만큼이나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좋은 죽음없이 좋은 삶도 없다고 말이다. 그는 이 책에서 유한한 삶과 필연적 죽음을 마주하는 ‘실천적 방법’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을 담았다. 그리고 그 시작점으로 '나만의 엔딩 노트 작성'을 권한다. 실제로 자신도 일 년에 한 번 유언을 쓴다고 말하는 그는 이것이 단순히 죽음을 준비하는 것을 넘어 남은 인생을 더 의미 있고 소중하게 만드는 여정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나는 일 년에 한 번 유언을 쓴다. 그때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정리하면서 현재 나의 위치를 스스로 알아차리게 된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앞으로의 삶을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유언은 내게 삶을 향한 다짐이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얻게 되는 가장 큰 선물은 삶의 진정한 우선순위를 발견하는 것이다.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무엇을 위해 시간을 써야 하는지,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통찰을 제공한다. 삶이 끝날 것임을 알기에 우리는 더 진지하게 삶을 고민하고 더욱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p.228~229


저자는 법의학자로서 국내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 및 범죄의 부검과 자문을 담당하며 특별히 죽음과 인연 깊은 삶을 살아 왔다. 그 인연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욱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아닌 삶이라고 그는 말한다. 죽음을 생각하고 살피고 돌아보는 과정에서 삶의 경건함과 소중함이 더욱더 절실해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매일 죽음을 마주하면서 '죽음은 우리를 절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니 죽음을 준비할 시간은 더더욱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의 마지막 준비를 죽음이 눈앞에 있을 때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신체와 정신이 건강할 때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건강할 때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말이다. 삶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그 유한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한다면, 적어도 죽음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후회할 일이 적지 않을까.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사유와 유한한 삶과 필연적 죽음을 마주하는 실천적인 방법에서 더 나아가 상실과 애도, 연명의료와 존엄사에 대한 논의로 확장한다. 현장 사례와 데이터, 여러 문헌과 연구를 근거로 ‘좋은 죽음’과 ‘좋은 삶’을 둘러싼 다양한 질문과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책 구매 시 받을 수 있는 '더 잘 살기 위한 30일 유언 노트'에는 매일 그날의 주제에 맞는 질문과 체크리스트, 오늘의 미션이 수록되어 있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별책부록이 책만큼 값진 내용을 담고 있는데, 초판 한정 증정품이니 놓치지 말고 활용해보길 추천한다. 죽음을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다면, 이 책을 통해 그 또한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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