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블러드 - 테라노스의 비밀과 거짓말
존 캐리루 지음, 박아린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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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는 환자의 손가락 끝을 살짝 찔러 채취한 단 한 방울의 혈액만으로 모든 검사를 시행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기를 바랐다. 그 아이디어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엘리자베스는 직원이 공개 취업 설명회에서 빨간색 허쉬 키세스 초콜릿에 테라노스의 로고를 박아 전시했다는 사실에 무섭게 화를 내기도 했다. 허쉬 키세스 초콜릿은 소량의 혈액을 상징했는데,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생각한 혈액의 양을 전달하기에 키세스 초콜릿의 크기가 너무 크다며 화를 냈다.   p.35

엘리자베스는 환자의 집에 카트리지와 판독기를 배치하여 환자가 정기적으로 혈액을 검사 받을 수 있도록 계획했다. 판독기의 통신용 안테나는 진단 결과를 중앙 서버를 통해 환자 주치의의 컴퓨터로 보낸다.  그렇게 하면 환자가 채혈 센터에 방문하여 혈액 검사를 받거나 다음 병원 방문을 기다릴 필요 없이, 의사가 환자의 처방전을 신속하게 조정할 수 있게 될 터였다. 이러한 테라노스의 캐치프레이즈는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이러한 혈액 진단 기술 덕분에 환자 개개인에게 약품이 섬세하게 맞춤화되는 세상에 대해 설명하며,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을 테라노스가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말 그대로 생명을 구하는 일이었다. 저렴하고도 편리하게 질병을 발견 및 예측해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그녀의 말은 비싼 의료비에 시달리던 미국인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20대의 젊은 CEO 엘리자베스 홈즈는 존재하지 않는 기술로 세상 모두를 속였던 것이다. 2015 10, 월스트리트저널의 특종 기사로부터 이 거대 사기극이 폭로되기 시작하자 홈즈는 촉망받는 기업가에서 중대 범죄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처음 의혹을 감지하고 정보들을 하나로 모으기 시작한 것은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월스트리트저널의 간판 기자 존 캐리루였다. 캐리루는 테라노스를 퇴사한 직원 60명을 포함해, 160명의 용기 있는 내부 고발자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엘리자베스 홈즈와 회사의 운영진들이 저지른 각종 비행에 대한 증거를 샅샅이 파헤치기 시작한다.

엘리자베스와 대니얼은 이메일을 무시했다. 테라노스에 입사한 지 8년이 된 안잘리는 윤리적 기로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회사가 연구 개발 과정에서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에게서 혈액을 자의로 제공 받아 제품의 문제점을 해결하려 할 때는 괜찮았지만, 월그린 매장에 제품을 출시한다는 것은 승인조차 받지 않은 연구, 실험 단계의 기계를 대중에게 그대로 노출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안잘리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였다. 그래서 그녀는 사임하기로 결심했다.    p.251

2003, 스탠퍼드대학교를 자퇴한 갓 스무 살의 엘리자베스 홈즈는 첨단 의료기술 스타트업 테라노스를 창업한다. 손가락에서 채혈한 몇 방울의 피만으로 약 200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휴대용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개발했다는 그녀에게, 담당 교수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인물이 열혈팬을 방불케 하는 지지를 보냈다. 2015년 초에 이르자 테라노스는 실리콘밸리 최고의 스타트업 기업 중 하나가 되었고, 기업 가치는 무려 10조 원까지 치솟았다. 그렇게 '2의 스티브 잡스'라고 불리던 엘리자베스 홈즈의 가짜 성공 신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기업가치 10조원의 기업이 왜 몰락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스토리는 웬만한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읽다 보면 이 책이 경제경영서인지 소설인지 잊어 버릴 만큼 빠져 들게 되니 말이다.

"테라노스가 운영되는 방식은 버스를 운전하면서 동시에 버스를 만들고 있는 것과 같아요. 도중에 누군가는 죽고 말 거예요."

이 책은 뉴욕타임스 48주 베스트셀러이자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아마존 베스트셀러 10권을 지키고 있다. 그만큼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치고 몰락한 기업 테라노스의 실화는 사람들에게 충격적이었기 대문이다. 그리고 제니퍼 로렌스 주연으로 영화가 제작 중이라고 한다.  범죄 스릴러보다 박진감 넘치는 테라노스의 성공 신화와 몰락, 그리고 아찔한 폭로전은 그 실화 그대로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엘리자베스 홈즈라는 희대의 사기꾼을 스크린에서 재탄생시킬 제니퍼 로렌스도 기대가 되고 말이다. 실리콘밸리를 뒤흔든 전대미문의 사기극의 실체가 궁금하다면, 희대의 테라노스 스캔들,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지금까지 이런 경제경영서는 없었다. 소설 같은 짜임새와 줄거리가 돋보이는, 웬만한 범죄 영화보다 긴장감 넘치는 특별한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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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헤르만 헤세 지음, 박희정 그림, 서유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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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내면에는 야만적이고 무질서하고 교양 없는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다. 이것부터 깨트려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위험한 불꽃을 일단 끄고 밟아 없애 버려야 한다. 자연이 창조한 인간은 종잡을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존재다. 미지의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줄기와 같고 길도 질서도 없는 원시림과도 같다. 원시림의 나무를 베어 내고 정비하고 강제로 제재를 가해야 하듯이 학교도 자연 상태의 인간을 깨부수고 굴복시키고 제재를 가해야 한다.   p.76

한스 기벤라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재능이 뛰어난 아이였다. 진지한 눈망울과 총명해 보이는 이마, 단정한 걸음걸이, 명석한 두뇌까지.. 선생, 이웃, 목사, 동급생 등 모두가 그를 특별한 존재로 인정했다. 슈바르츠발트의 작은 마을에서 이제껏 한스 같은 인물이 나온 적이 없기에, 마을 어른들이 한스에게 거는 기대는 컸다. 그래서 그의 장래는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결정되었다. 이 지역에서 부모가 부자가 아닌 이상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에게는 오직 한 가지 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주에서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해서 신학교를 거치고, 신학대학에 진학해 목사나 교수가 되는 길이었다.

주 선발 고사는 국가가 주의 수재들을 선발하기 위해 매년 실시하는 힘겨운 시험이었고, 한스는 이 작은 마을에서 내보낼 수 있는 유일한 후보자였다. 모두의 바람대로 한스는 부지런히 공부해 시험해 합격하고,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하라는 대로 공부만 하며 살았던 그는 그곳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헤르만 하일너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한스가 보기에 하일너는 활동적이고 자유분방했고, 자신만의 생각과 언어를 가지고 있었으며, 남다른 고뇌가 있었고, 우울과 슬픔을 소중한 것인 양 즐겼다. 사람들이 보기에도 두 사람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친구 관계였다. 경박한 학생과 성실한 학생, 시인과 공부벌레의 조합이었으니 말이다. 공부에 대한 끊이지 않는 압박과 동급생의 죽음을 겪으며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던 한스는 하일너와 가까워지면서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한스는 우정에 열정적이고 행복하게 매달릴수록 학교와는 점점 더 멀어졌다. 새로운 행복감이 갓 담은 포도주처럼 한스의 피와 생각을 짜릿하게 지배했고 리비우스는 물론 호메로스도 중요성과 광채를 잃어 갔다. 교사들은 지금까지 흠잡을 곳이 전혀 없는 학생이었던 기벤라트가 문제 학생으로 변해 가고 수상쩍은 하일너에게 나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경악했다.   p.151

같은 작품인데도 읽을 때마다 다른 경우가 있다. 문학이라는 장르, 그 중에서도 특히 고전 문학들이 그러하다. 학창시절 읽었던 책을 10년 뒤에, 혹은 20년 뒤에 다시 읽었을 때, 여전히 그 작품이 같은 의미로 다가오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10대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는 지금 다시 읽는 헤르만 헤세와 전혀 다른 느낌이다. 우리가 고전을 읽고 또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할 것이다. 특히나 학창시절에는 어렵게 느껴지거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작품인데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고 보니, 쉽고도 보편적인 이야기로 바뀌어 읽히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 말이다. 게다가 개성이 무시된 권위적이고 규격화된 제도와 교육으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적인 삶의 모습은 현대의 그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여전히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계 명작 고전을 감각적인 일러스트로 재해석하여 보다 젊고 새로운 감성으로 표현한 위즈덤하우스의 비주얼 클래식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이다. 이번 작품은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는 헤르만 헤세가 실제로 경험하고 괴로워했던 삶의 한 조각을 담은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박희정 만화가와 함께 콜라보레이션해서 섬세하고 감각적인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이미 오래 전에 읽었고, 여러 판본으로 가지고 있는 책이지만 이렇게 매혹적인 표지와 일러스트로 재탄생한 작품이라 설레이는 마음으로 다시 읽게 되는 것 같다. 특히나 박희정 작가의 감각적인 일러스트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한스와 하일너의 모습 또한 너무도 매력적이다. 그러니 이미 다른 판본으로 가지고 있더라도, 이 작품은 소장용으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혹시 아직까지 이 작품을 읽지 않았다면, 이번 기회에 아름다운 표지와 일러스트로 무장한 이 작품으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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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Tour 카페 투어 - 카페에 빠진 인스타그래머가 추천하는 국내 카페 105
장인화 지음 / 책밥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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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카페 흐름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서울.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카페가 많은 연남동을 비롯해 성북동, 송파동, 성수동 주변에 개성 있는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특히 연남동은 이름난 카페들이 가까이에 모여 있어 투어 하기 편리한 편. 한갓진 분위기를 원한다면 성북동을, 개성 잇는 카페를 경험하고 싶다면 성수동을 추천한다.

이제 카페라는 공간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기 위한 이유만으로 가는 곳은 아닌 것 같다. 카페 투어가 하나의 취미에서 문화로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나 역시 워낙 커피와 디저트를 좋아하고 즐기기도 하지만, 친구와 만나 하루에 카페만 연속으로 두 세 곳을 가본 적도 있고, 카페 투어를 위해서 하루에 커피를 서너 잔 마신 적도 있다. 특히나 요즘은 인스타그램에 예쁜 카페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기에, 나도 시간이 나면 새로운 카페를 찾아보기 위해 SNS를 찾아 다니곤 한다.

이 책은 카페에 빠진 인스타그래머가 추천하는 국내 카페 105군데를 담고 있다. 저자가 잡지사 에디터였기도 하고, 현재도 프리랜서 에디터로 카페, 음식, 리빙숍 등을 취재해서 그런지 사진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마치 잡지를 보는 듯 트렌디하고 세련된 책이다. 얼마 전에 일본의 파워 인스타그래머들이 소개하는 카페들을 다룬 책을 읽은 책이 있었는데, 국내의 카페들도 그렇게 소개해주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바로 이 책이 그간의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었다. 특히나 서울의 핫한 명소들만 소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천, 수원, 경기도, 청주, 대전, 대구, 강원도, 부산, 제주 등등 정말 우리 나라 곳곳을 다니며 취재한 것이라 이 책을 통해 카페 투어 여행을 아예 계획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서울과 쌍벽을 이룰 만큼 감각적이고 근사한 카페가 많은 부산. 특히 일본과 가까이 접해 있어 일본풍 분위기의 카페가 많다. 참신하고 아기자기한 디저트를 선보이는 카페는 물론, 눈앞에서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그림 같은 경치의 카페도 다양하다. 카페 투어만 하며 3 4일 여행을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

사진 찍기 좋은 카페도 있고, 시그니처 메뉴가 유명한 카페도 있고, 디저트가 정말 근사하게 플레이팅되어 나오는 카페도 있다. 이국적인 감성을 담고 있는 곳도 있고, 런던, 스위스, 교토에 온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분위기의 카페도 있었다. 서울은 웨이팅을 많이 해야 하는 대신 트렌디한 카페가 가장 많은 곳이고, 인천, 수원 등은 그에 비해 조금 여유롭게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전통문화의 도시답게 고즈넉한 분위기의 전주와 완주 카페,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거제와 통영 카페,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일본풍 분위기가 많은 부산의 카페, 감귤밭이 드넓게 펼쳐진 제주의 카페 등등... 전국의 아름다운 카페들을 여행하고 싶어 졌다.

보통 SNS에 소개되는 카페들은 시그니처 메뉴 위주의 사진들이 많은데, 이 책에는 각 카페의 감성을 살릴 수 있는 사진들이 많아 더욱 좋았다. 카페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볼 수 있어 한 눈에 어떤 카페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카페의 주소, 전화번호, 오픈 시간과 대표 메뉴, SNS주소와 주차장 유무 등에 관한 정보를 각각 담고 있어, 실제로 여행 가이드처럼 이 책을 들고 카페 투어를 가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카페 정보 아래에 QR코드가 수록되어 있어 위치를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 길 찾기가 너무 어렵다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카페를 간다는 것은 빡빡한 일상 속에서 누리는 나만의 작은 사치이자 힐링 포인트가 된다. 지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가까운 '카페로 여행'을 떠나 보는 건 어떨까. 그러한 소소한 행복들이 쌓여 내일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고, 조금 더 일상을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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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왜 완벽하려고 애쓸까 - 완벽의 덫에 걸린 여성들을 위한 용기 수업
레시마 소자니 지음, 이미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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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들은 아기 때부터 착한 아이가 되어야지, 예의 바르고 우아하게 행동해야지.라는 수백 가지의 암시를 받으며 자란다. 부모는 여자아이들에게 흠잡을 데 없이 조화롭게 맞춘(리본까지 색을 맞춘) 옷을 입혀놓고는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여자아이들은 A를 받는 착한 학생이라고, 남을 도울 줄 아는 예의 바른 아이라고, 협조를 잘 하는 아이라고 크게 칭찬받는다. 하지만 한 끗 차이로 조금만 지저분하거나, 자기주장을 하거나, 혹은 시끄러우면 야단을 맞는다(제아무리 부드럽게 말해도 꾸지람은 꾸지람일 뿐이다).   p.36

'넌 여자애가 왜 그렇니?' '좀 여자답게 행동할 수는 없니?' 라는 말을 듣지 못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있을까. 그 말이 나에게 하든, 내 친구에게 하든, 혹은 지나가다가 다른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든 말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다움', '남자다움'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너무도 당연했고, 사실 그러한 인식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답다'는 것이 남자에게는 너무도 너그러운 반면, 여자에게는 제한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근본적으로 남자아이들은 용감해지는 법을 배우고, 여자아이들은 완벽해지는 배우기 때문이다.  남자아이들은 잘하지 못하더라도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인정받고 칭찬받지만, 여자아이들은 뭔가를 시도해보기도 전에 일단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부터 자연스레 배우게 되니 말이다.

이 책의 저자인 레시마 소자니는 인도계 이민자 2세로,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법조계, 금융계에서 최고의 위치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진정한 성취감을 느낀 건 의회 진출 실패를 경험하고서였다고 한다. 처음으로 정답의 틀을 깨뜨린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서른세 살이 되어서야 마침내 사회생활에서 용감해지는 법을 배웠고, 덩달아 사생활에서도 용감해지는 법을 깨우쳤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너무나 오랜 세월 완벽 추구라는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 했기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세 번이나 끔직한 유산을 했지만 인공수정을 시도했고, 코딩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첨단 기술 스타트업 회사를 설립했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모든 일을 시도했기 때문에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방식대로 이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다고 말이다.

실제로 완벽의 경지에 다다르면 얼마나 허무한지 아는가? 그런데도 완벽해지려고 분투한다니 참으로 우스울 따름이다. 반면 용기는 한때 완벽함에 위협당해 빼앗길 뻔했던 모든 것을 되찾아준다. 진정한 즐거움, 성취감,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맞서는 능력, 새로운 모험과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태도, 실수와 실패, 오점을 받아들이는 태도 같은 것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을 되찾을 수 있다. 용기만 있다면.   p.124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어떻게 완벽함을 요구하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그녀들이 포기해야 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완벽한 학생이자 딸은 나중에 완벽한 전문직 종사자, 여자 친구, 아내, 엄마가 되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러게 바라고 바랐던 완벽한 경지에 오른 그녀들이 마음은 공허하다고 말한다. 흠 하나 없이 완벽한 상태에 도달해도, 예전보다 더 행복하지도 행복을 보장받는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저자는 '완벽한 인생'이 실제로는 그렇게 완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을 세상의 모든 그녀들에게 건넨다. 그리고 예쁘게, 착하게, 똑똑하게 완벽해야 했던 여성들에게 완벽의 덫에서 헤어나고 용감해지기 위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완벽은 지루하다. 이는 완벽에 관한 모든 통념의 이면에 있는 가장 중요한 진실이기도 하다. 언제나 모든 것이 완벽하다면 배움이나 노력의 재미를 어디서 느낄 수 있겠는가? 자신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여야 인생의 재미와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성들의 용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거였다. 이러한 책을 통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다양한 형태로 용기를 보여주는 세상이 되면 좋을 것 같다. 뿌리 박힌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자기주장을 펼치고, 불의에 저항하고, 유리 천장을 뚫고 올라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자답게, 용감하게! 용기 근육을 단련해보자. 실수해도, 실패해도, 넘어져도 괜찮다. 매일 언제나 새로운 역경과 더 큰 도전이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고, 그러한 난관에 대처하려면 용기를 평생의 습관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키워야 한다. 이 책이 바로 그러한 용기를 향해 나아가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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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지도 - 우리의 습관과 의지를 결정하는 마음의 법칙
이인식 지음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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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수수께끼에 도전한 인지과학자들은 천재나 범인 모두 문제해결 방식이 동일한 과정을 밟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다시 말해 천재와 보통 사람 사이의 지적 능력 차이는 질보다 양의 문제라는 것이다. 천재들은 보통 사람들도 갖고 있는 능력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양적인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질적인 차이로 비쳐져서 천재들을 범인들과 완전히 다른 두뇌의 소유자로 보게 된다는 설명이다. 요컨대 천재들은 우리가 갖지 못한 그 무엇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것을 약간 많이 갖고 있을 따름이다.   p.58~59

현대과학의 발전으로 생명과 물질의 본질에 관한 비밀은 어지간히 밝혀졌지만, 아직도 상당부분이 미지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에 관한 수수께끼이다. 저자는 과학칼럼니스트로서 30년 가까이 집필 활동을 하면서 인공 지능과 인간의 마음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왔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은 인지과학의 등장으로 비로소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었는데, 저자는 국내에 인지과학이 도입되기 시작할 무렵인 1992년에 국내 최초의 인지과학 개론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고 미래인류의 모습을 예견할 수 있는 연구들을 선별해 집대성한 것이다.

조사 기간 30, 언급된 학자 500여 명, 참고문헌 200여 편에 이르는 작품이다 보니 그 내용이 굉장히 방대하다. 250년에 걸쳐 인류가 이뤄낸 마음 연구의 성취를 책 한 권에 집대성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뇌과학, 진화생물학, 심리학, 철학, 행동경제학, 정신의학, 인공지능, 네트워크과학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어 이야기 자체도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그리고 책에 소개된 연구들은 심리학은 물론 경제학과 정신의학, 정치학, 로봇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표된 최신 결과이기 때문에 인지과학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마음의 능력도 저하시킬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뇌 안에서 물이 부족할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물이 충분하지 못하면 뇌세포가 오그라들면서 뇌 조직이 수축되어 정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게 된다. 젊은이는 기억이나 집중력이 손상되지만 나이 든 사람음 건망증이나 언어장애가 나타난다.    p.348

심리학자들은 사람의 성격에 차이를 부여하는 다섯 가지 측면을 지적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친화성, 정서 안정성이라고 구분한다. 이러한 성격의 5대 특성은 인류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진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누가 문제를 일으키면 성격부터 고치라는 충고를 서슴지 않는데, 사실 모든 환경에서 항상 유리한 성격 특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각각의 성격들이 나름으로 상황에 맞춰 쓸모가 있다는 애기일 테니 말이다. 저자는 마음의 본질을 밝히기 위한 이 책에서 다양한 종류의 마음을 카테고리로 나뉘어 설명하고 있다. 보통 사람의 마음으로 시작해, 천재나 영웅 등 특별한 사람의 마음, 사회적 마음과 폭력적 마음, 그리고 경제적, 비이성적, 정치적, 집단의 마음 등을 거쳐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심령현상, 죽음, 신앙, 인공지능 등에 이르는 단계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논리를 뛰어넘어 단숨에 상대를 납득시키는 초설득, 사회적 협력과 이타적 행위, 잠재된 폭력성의 발현이나 데이트 심리 등 우리가 타인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겪는 심리 현상들이 망라되어 있는 '사회생활을 지배하는 마음'이 가장 재미있었다. 첫인상으로 친구와 적을 알아보는 방법, 비만이 사회적 전염병인 이유, 만지면 믿게 되는 스킨쉽의 법칙, 순식간에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기술, 남자는 언제 수다쟁이가 되는지, 누가 대통령을 쏘았는가에 대한 음모 이론 등등.. 누구라도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무엇보다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생생한 성취들이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습관과 의지를 결정하는 마음의 법칙이 궁금하다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수수께끼를 해독하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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