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헤르만 헤세 지음, 박희정 그림, 서유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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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내면에는 야만적이고 무질서하고 교양 없는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다. 이것부터 깨트려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위험한 불꽃을 일단 끄고 밟아 없애 버려야 한다. 자연이 창조한 인간은 종잡을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존재다. 미지의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줄기와 같고 길도 질서도 없는 원시림과도 같다. 원시림의 나무를 베어 내고 정비하고 강제로 제재를 가해야 하듯이 학교도 자연 상태의 인간을 깨부수고 굴복시키고 제재를 가해야 한다.   p.76

한스 기벤라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재능이 뛰어난 아이였다. 진지한 눈망울과 총명해 보이는 이마, 단정한 걸음걸이, 명석한 두뇌까지.. 선생, 이웃, 목사, 동급생 등 모두가 그를 특별한 존재로 인정했다. 슈바르츠발트의 작은 마을에서 이제껏 한스 같은 인물이 나온 적이 없기에, 마을 어른들이 한스에게 거는 기대는 컸다. 그래서 그의 장래는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결정되었다. 이 지역에서 부모가 부자가 아닌 이상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에게는 오직 한 가지 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주에서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해서 신학교를 거치고, 신학대학에 진학해 목사나 교수가 되는 길이었다.

주 선발 고사는 국가가 주의 수재들을 선발하기 위해 매년 실시하는 힘겨운 시험이었고, 한스는 이 작은 마을에서 내보낼 수 있는 유일한 후보자였다. 모두의 바람대로 한스는 부지런히 공부해 시험해 합격하고,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하라는 대로 공부만 하며 살았던 그는 그곳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헤르만 하일너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한스가 보기에 하일너는 활동적이고 자유분방했고, 자신만의 생각과 언어를 가지고 있었으며, 남다른 고뇌가 있었고, 우울과 슬픔을 소중한 것인 양 즐겼다. 사람들이 보기에도 두 사람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친구 관계였다. 경박한 학생과 성실한 학생, 시인과 공부벌레의 조합이었으니 말이다. 공부에 대한 끊이지 않는 압박과 동급생의 죽음을 겪으며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던 한스는 하일너와 가까워지면서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한스는 우정에 열정적이고 행복하게 매달릴수록 학교와는 점점 더 멀어졌다. 새로운 행복감이 갓 담은 포도주처럼 한스의 피와 생각을 짜릿하게 지배했고 리비우스는 물론 호메로스도 중요성과 광채를 잃어 갔다. 교사들은 지금까지 흠잡을 곳이 전혀 없는 학생이었던 기벤라트가 문제 학생으로 변해 가고 수상쩍은 하일너에게 나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경악했다.   p.151

같은 작품인데도 읽을 때마다 다른 경우가 있다. 문학이라는 장르, 그 중에서도 특히 고전 문학들이 그러하다. 학창시절 읽었던 책을 10년 뒤에, 혹은 20년 뒤에 다시 읽었을 때, 여전히 그 작품이 같은 의미로 다가오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10대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는 지금 다시 읽는 헤르만 헤세와 전혀 다른 느낌이다. 우리가 고전을 읽고 또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할 것이다. 특히나 학창시절에는 어렵게 느껴지거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작품인데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고 보니, 쉽고도 보편적인 이야기로 바뀌어 읽히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 말이다. 게다가 개성이 무시된 권위적이고 규격화된 제도와 교육으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적인 삶의 모습은 현대의 그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여전히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계 명작 고전을 감각적인 일러스트로 재해석하여 보다 젊고 새로운 감성으로 표현한 위즈덤하우스의 비주얼 클래식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이다. 이번 작품은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는 헤르만 헤세가 실제로 경험하고 괴로워했던 삶의 한 조각을 담은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박희정 만화가와 함께 콜라보레이션해서 섬세하고 감각적인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이미 오래 전에 읽었고, 여러 판본으로 가지고 있는 책이지만 이렇게 매혹적인 표지와 일러스트로 재탄생한 작품이라 설레이는 마음으로 다시 읽게 되는 것 같다. 특히나 박희정 작가의 감각적인 일러스트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한스와 하일너의 모습 또한 너무도 매력적이다. 그러니 이미 다른 판본으로 가지고 있더라도, 이 작품은 소장용으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혹시 아직까지 이 작품을 읽지 않았다면, 이번 기회에 아름다운 표지와 일러스트로 무장한 이 작품으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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