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모자를 벗으십시오! 천재의 등장입니다."


로베르트 슈만이 흥분해서 써내린 쇼팽의 〈작품 2〉 평에 실린 표현이다. 쇼팽 하면 피아노, 피아노 하면 쇼팽이 아니겠는가. 관련 책에서 빠지지 않는 표현인데 바로 그 평이 실린 평론집 일부를 발췌하여 엮은 책이다. (총 4권 분량이라 한다.) 디스카우의 《리트, 독일 예술 가곡》이 먼저 나왔는데 '음악의 글 시리즈'로 엮여 있다. 디스카우의 책은 아직 슈베르트 곡을 시작하지 않아서 잠정적으로 쉬고 있는 상태. 《음악의 기쁨 4》를 사두고서 오페라이기 때문에 펼치지 않은 이유와 같다.


《음악과 음악가》는 낭만주의로 분류되는 음악가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사실 쇼팽의 '두둥 천재 등장' 글을 쓸 때만 해도 슈만은 무명의 대학생이던가 그랬기에, 큰 영향을 끼치진 못했지만 어쨌든 쇼팽의 천재성을 알아본 최초의 평이었다. 이때부터 쇼팽에 대한 슈만의 짝사랑이 시작되는데, 이 책에 실린 쇼팽의 곡만 해도 몇 개가 되는가. 쇼팽 덕후 슈만... 두 사람은 이후 헌정곡을 주고받으나 쇼팽은 예의를 차린 것에 불과해 보인다는 것도 안습이다.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와 쇼팽의 〈발라드 2번〉)


여튼 슈만은 낭만주의 시대를 살았고, <음악신보Neue Zeitschrift für Musikk>에 기고하면서 음악가들을 소개하고 후원한다. 베를리오즈와 쇼팽을 소개하고, 멘델스존과 함께 바흐를 재조명했으며, 슈베르트의 작품을 정리하고 출판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브람스'를 음악계에 소개하고 팍팍 밀어주었다. 이 책은 슈만이 <음악신보Neue Zeitschrift für Musik>  연재글을 모아 직접 주석을 단 총 4권 분량의 평론집 <음악과 음악가에 관한 논집Gesammelte Schriften über Musik und Musiker> 가운데 일부를 발췌하여 엮은 것이라 한다.


물론 샀습니다. 완전 대박 아닙니까.





문제는 이 책, 《쇼팽》인데 부제는 '쇼팽의 삶과 작품을 총망라한 가이드북'이다. 일본의 음악학자 고사카 유코가 쓴 책인데, 쇼팽의 전 작품에 대한 해설과 기타 에피소드들을 수록했다고 한다. 출판되지 않은 작품들도 모두 다루고 있으며 작품은 폴란드의 음악학자인 크리스티나 코빌라니스카(Krystyna Kobylańska)의 작품목록으로 정리하였다. 코빌라니스카는 쇼팽의 작품을 정리한 사람으로, 작품 앞에 KK가 붙으면 바로 이 사람. 솔깃한 것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사료와 악보'가 수록됐다는 것이다. 도대체 뭐길래? 아니 인터넷 세상에서 못 찾는 것도 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폴란드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미리보기를 신청했는데 서비스가 될지 안 될지 모르겠다. 오프라인에서 사야할지도 모르겠다... 미리보기가 등록되었고, 샀습니다. 만족합니다.






《음반의 역사》, 《피아노를 듣는 시간》, 《알프레드 브렌델 아름다운 불협음계》, 《혹등고래가 오페라극장에 간다면》 이렇게 네 권을 묶은 이유는 역자가 같기 때문이다. 역자 소개란을 보면 학부에서 독문학을, 독일로 건너가 음악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사실 위에서 소개한 《리트, 독일 예술 가곡》도 이분이 번역했는데, 굿굿. 다 좋다.


《음반의 역사》는 '녹음과 재생'이라는 기술의 탄생과 여정을 돌아본다. 독일의 저명한 문화평론가 헤르베르트 하프너가 쓴 책으로, 음반의 발달에 따른 음악계와 사회의 변화와 과정 속에 발명가들과 음악가들의 면모를 되짚어본다. 사진 자료도 풍부하고 내용 또한 덕후들에게 어필할 만하다. 에디슨에서 현대의 디지털 시대에 이르기까지 음반 기술뿐만 아니라, 음반사들의 상표권과 시장문제도 다루고 있다. 음반 녹음기술의 발달이 음악가, 작곡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하니 더욱 볼만한 책.


《알프레드 브렌델 아름다운 불협음계》는 새로 나왔다. 자신이 생각하는 수준의 연주를 할 수 없어(고령) 은퇴한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의 음악과 인생, 인물, 영화 이야기이다. 목차를 보면 '음반 녹음 작업을 뒤돌아보며'도 있는데, 60년 동안의 녹음 작업에 대한 회고라 한다. 《음반의 역사》와 연관해서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9개 파트의 단편들을 통해 노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된다. "모든 좋은 음악이 유머를 지닌 것은 아니지만, 유머가 들어간 모든 음악은 좋은 음악이다." 《피아노를 듣는 시간》은 저번에도 소개한 적이 있는데, 브렌델이 들려주는 피아노 A부터 Z까지.


《혹등고래가 오페라극장에 간다면》은 음악학자가 쓴 에세이인데 좀 어렵다. 조금 읽다가 덮었는데 좀 더 공부하고 나중에 다시 펼칠 예정이다.





KBS 클래식방송 구성작가 출신의 방송인 김강하가 쓴 《힐링 클래식》. 동명의 라디오 방송 제목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책들은 나올만큼 나오지 않았나 하는 것도 잠시, 목차를 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바그너의 〈로엔그린〉과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라벨의 〈물의 유희〉를 다루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쇼팽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소개한다. 녹턴이나, 소나타가 아니라! 다양한 사진 자료와 음반 소개, 함께 읽을 문학 작품까지 수록하고 있어 조금 다방면의 지식을 얻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인 듯 하다.





일단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는 예전부터 대학 교재로 사용되어왔으니 소개는 미뤄두고, 이 교재의 역자가 참여하고 집필한 음악세계판 《서양음악사》가 나왔다. 대학의 '서양음악사' 수업 커리큘럼에 맞춘 교재라 한다. 1권은 고대 그리스에서 바로크 시대, 2권은 고전시대에서 현대까지의 음악사를 다룬다.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를 안 읽어봐서 해설의 차이가 어떤지 궁금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음악세계에서 나온 교재가 더 저렴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서양음악사를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미리보기로 조금이라도 볼 수 있음 사겠는데... 도서관을 가야할까?





위에서 소개한 《음반의 역사》와 같이 봐도 좋을 듯 하다. 제목은 《빈티지 오디오 가이드》이지만 오디오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과, 브랜드별 모델 특성 등을 소개한다. 디지털시대에 웬 오디오인가 하지만 고음질 CD를 들으려면 오디오가 중요하니까... 오쿠다 히데오의 《시골에서 로큰롤》이랑 아마도 《아다지오 소스테누토》에서 오디오와 LP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이 취미가 엄청 투자를 요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은 서울에서 오디오샵을 운영하는 사람이 쓴 책이다. 빈티지 오디오(1980년대 이전까지의 생산품)에 대한 정보와 이해를 제공한다. 최저 60만원에서 조금 알려진 기기일 경우는 300~500만원이면 구입이 가능하단다. 간단한 수리법도 알려준다.





'마음산책 뮤지션 시리즈' 3권, 지미 헨드릭스의 자서전이다. 헨드릭스의 전기 영화 제작자와 음반 프로듀서가 뭉쳐, 그의 친필 기록과 육성을 모은 결과물이다. 마음산책의 책답게 예쁘다. 굳이 이 위대한 뮤지션을 소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이 책이 나온 것이 반갑고 설렌다.





조성진의 블루앨범 왼쪽은 라이센스반, 오른쪽은 수입반(예약판매)입니다. 세번째는 작년에 출시된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베토벤 소나타 21번과 29번(함머클라비어), 네번째는 얼마전 출시된 프랑크와 브람스. 다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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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16-03-18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지미 헨드릭스의 리틀 윙을 듣고 싶네요.

죄송한데, 이번 글은 읽지 않고 그림처럼 잠시 쳐다봤습니다.

에이바 2016-03-23 19:36   좋아요 0 | URL
ㅜㅜ 돌아오세요...

2016-03-19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23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9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23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크로메가스.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0
볼테르 지음, 이병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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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의 작품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딱히 떠오르지는 않는데 아마도 그가 18세기의 키보드 워리어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한다. 물론 농담이다. 아마 그의 이름이 익숙하게 느껴짐에도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 그랬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를 어떤 출판사 버전으로 읽을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미크로메가스』가 함께 실린 문학동네 판으로 구입했고 또 책장에 꽂아둔 채로 한참의 시간을 보내버렸다...

 

먼저 『미크로메가스』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하고 넘어가자면, 이 익살맞은 단편에 볼테르는 외계출신의 거인 둘을 등장시킨다. 철학 우주여행 중인 미크로메가스와 토성 난쟁이(미크로메가스에 비하면 난쟁이라는 얘기)는 지구에 도착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 작아 이 행성에 생명체가 살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때 그들에 부딪친 한 탐사선에 좀벌레 철학자(...)들이 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랍게도 지성언어인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거인들은 인간들에게 ‘겉으로 보이는 것을 근거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남기고 떠나버린다. 그가 남긴 사물의 궁극이 담긴 책은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는 순진한 청년 캉디드가 등장한다. 볼테르는 이 불온작품을 가리켜 자신은 어느 독일인의 원고를 번역하였을 뿐이라고 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발뺌이지 않은가! 독일 베스트팔렌의 아름다운 성에 살고 있던 캉디드는 자신의 세계가 언제나 최선의 아름다움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팡글로스 선생의 가르침을 의심하지 않는다. 사촌누이 퀴네공드와 키스했다는 죄로 쫓겨난 캉디드는 불가리아의 군대에 들어가 고문을 받다가 겨우 살아나 포르투갈로 넘어가는데 거기서 종교재판을 받는가 하면, 사랑하는 이들과 재회 하지만 살인을 저질러 도망을 쳐야한다. 도주한 라틴아메리카에서 엘도라도를 발견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서 보물들을 잃어버리는 등 다사다난한 모험을 겪는다.

 

종교재판, 고문, 살인, 식인종, 거짓말, 자연재해 등 인간이 만든 제도의 문제점과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 캉디드는 의문한다. ‘과연 이 세계는 최선의 결과인 걸까?’ 이러한 의문에 응답하는 이로는 그 생각을 심어준 팡글로스(낙관주의자)와 마르틴(비관주의자)이 등장한다. 우여곡절 끝에 사랑하는 퀴네공드와 재회한 캉디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야하는 사람이어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에 캉디드는 수도승과 어느 선한 노인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깨닫게 된다. ‘노동을 통해 권태, 방탕, 궁핍에서 멀어질 수 있’으며, ‘자신의 정원은 자신이 가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낙관주의는 볼테르와 동시대를 살아가던 라이프니츠의 낙관론(신은 전지전능하기에, 그가 만든 세상은 최선의 세계이다)이다. 이 책은 그에 대한 비판이며, 현실적인 악과 부조리 앞에 캉디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낙관주의는 나쁠 때도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우기는 광기야.’(135쪽) 세상 풍파에 시달리며 정신을 단련한 캉디드는 더 이상 낙관주의니 비관주의니 하는 것에 휩쓸리지 않는다. 자신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타인의 생각을 제한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의견의 차이를 인정하고 삶의 지혜를 받아들인다. 캉디드의 모험이 콩트처럼 이어지고, 종자와 함께 여행한다는 점에서 『돈키호테』가 떠오르기도 했다. 철학 이야기를 떠나 버디물, 로드 트립으로 읽어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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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9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23 1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마의 일인자 1~3 세트 - 전3권 (본책 3권 + 가이드북)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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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시작은 기원전 110년 신임 집정관의 취임식에 참석하려는 카이사르 집안의 소개로 시작된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의 가장 오랜 피를 이었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위엄을 가진 가문의 가장. 그는 아마도 마지막 ‘카이사르 원로원 의원’이 될 것이었다. 다른 이들처럼 자녀들을 입양시키거나 부유한 집안과 결혼시키지 못했기에 재산은 한 세기 마다 쪼개져 왔던 것이다. 카이사르라는 이름과 귀족의 혈통은 짐이 되었지만, 로마의 기원에까지 이어지기에 그만큼 영예롭다. 이제 그는 중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다. 아들들과 딸들을 위하여, 그들에게 권력과 재산을 쥐어주고 로마의 중추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한 결정, 아니 거래 그리고 로마의 역사를 바꿀 결합. 이는 훗날 그의 이름을 물려받을 손자, 위대한 시저, 짜르. 카이사르라는 이름을 역사에 길이 새길 ‘그’를 위한 발판이 된다.

 

그것은 바로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혼인으로서 결합하는 것이었는데, 가이우스 율리우스는 이 거래가 마리우스에게 ‘디그니타스’를 줄 것이라 얘기한다. 디그니타스, 즉 ‘위엄’은 한 개인의 인격적 가치와 가문의 가치를 합한 것으로, 원로원 내부에서 그 개인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높은 가문 출신들은 더 높은 위엄을 지녔으며, 지배계층은 이 위엄을 드높일 것을 기대 받았다. 이를 위해서는 글로리아, ‘영광’을 획득해야 했는데, 로마에 있어 가장 큰 영광은 전쟁에서 군대를 승리로 이끄는 것이었다. 원로원의 승인으로 이루어진 개선식에서 군대는 포로들과 전리품을 과시하며 로마 시내를 통과한다. 로마 시민들의 확인을 통해 개선장군은 ‘위엄’을 획득한다. 콜린 매컬로의 작품 내에서 전쟁에서 공을 세운 이들이 개선식에 집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위엄과 영광’은 엘리트 계층에게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했는데, 위대한 선조를 둔 후손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이미 이름에서 가문명(위엄)이 강조되고 있는 파트리키 집안에 자리한 선조들의 마스크는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지만, 후손들의 눈으로 확인하는 개선식이기도 했다. 후손들은 어릴 때부터 선조들의 업적을 계속해서 확인하는 것이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마음을 다잡을 때 선조들의 마스크를 보는 것도 괜한 것이 아니다. ‘위엄과 영광’을 달성하라는 요구는 결국 로마 엘리트끼리의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후손들을 정복전쟁에 몰두하도록 한다. 또한 로마인의 생활과 정치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엘리트 계층은 자유민들과 ‘보호자와 피보호자(피호민)’ 관계를 맺었는데, 피호민에 대한 지원은 귀족인 보호자의 ‘위엄’을 위해 중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엘리트 계층 간의 전쟁, ‘영광’에 대한 갈망은 로마를 팽창시켜 군벌을 탄생시키고 내란을 불러온다. 공화정의 영광을 드높이고, 공화정의 몰락을 가져온 군벌. 그들이 바로 《로마의 일인자》의 주인공,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이다.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아르피눔 출신의 부호이자 원로원의 신진세력으로 타고난 지휘관이며 여러 전쟁을 통해 군 통솔력을 확인받았다.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집정관 선거에 출마하지 못한 것은 ‘라티움 혈통’ 과 유력가문 출신인 메텔루스의 방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리우스의 부족한 ‘혈통’은 율리아 카이사르와의 혼인으로 채워졌으며, 그의 재정 지원으로 카이사르 가 아들들은 정계에 입문한다. 이러한 결합은 카이사르 가문이 로마 공화정 정점에 이르게 하는 바탕이 된다. 한편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파트리키 출신이지만 가문이 몰락하여 빈민가에서 자라났다. 영민한 두뇌와 아름다운 외모를 갖추었으나 주위엔 그를 탐하는 이들만 있을 뿐이었다. 야망을 간직한 술라는 율릴라 카이사르가 엮어준 ‘풀잎관’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그녀와 혼인하여 마리우스와 카이사르라는 든든한 뒷배를 얻는다. 인척으로 엮인 마리우스와 술라는 각각 집정관과 재무관으로 선출된다.

 

누미디아의 유구르타 왕과의 전쟁, 아프리카 원정을 떠나기 위해 신임 집정관은 군대가 필요하다.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시행한 군제 개혁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이후 로마의 최대 문제인 농지 개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로마군은 모두 자영농으로 구성되는데, 재산을 소유하였고 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기에 징병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다수가 전사하거나 땅을 돌보지 못해 파산하게 된다. 빚진 이들은 노예가 되었으며 그렇게 로마의 근간을 책임지는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었다. 전통적 방식의 징병이 불가했기에, 마리우스는 최하층민들을 대상으로 ‘모병’을 실시한다. 이는 커다란 반발을 불러오는데, 로마 5계급에 들지 못한 최하층민들은 의무가 없기에 책임도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결국 마리우스는 최하층민 병사들을 이끌고 출정한다.

 

문제는 최하층민 병사들이 전쟁 후 귀환했을 때이다. 그들은 노련한 군인으로 이전과 같은 대우는 참지 못할 것이기에, 이들을 로마에 정착하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따라서 마리우스는 사투르니누스를 호민관으로 만들고, 농지 개혁 법안을 추진한다. 아풀레이우스 토지법은 최하층민 퇴역군인들을 외국의 로마 공유지에 정착하게끔 하는 것이 골자였다. 마리우스는 이탈리아인 병사들에게 시민권을 주기를 원했고, 이는 원로원의 반발을 불러온다. 두 번째 토지 법안에서 명시한 공유지에는 알프스 너머 갈리아 땅이 속해 있었는데, 이는 많은 이들이 탐내던 땅이었다. 이 법안으로 인해 마리우스의 가장 열렬한 지지계층인 기사계급마저 돌아서게 되며, 마리우스는 이후 사투르니투스와 글라우키아의 급진성으로 인해 정치적 위기를 겪는다. 또한 공유지 확보 과정에서 속주에 무리한 세금을 징수하게 되고, 이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로마시민 전수조사를 실시하게 된다. 이는 2부 《풀잎관》에서 펼쳐지는 ‘이탈리아 동맹시 전쟁’의 배경이 된다.

 

다시 군대 얘기로 돌아와, 자영농으로 구성된 로마군들은 식량을 실은 수레와 노예, 노새를 가지고 참전했다. 그러나 재산이 없는 최하층민들은 군장을 지고 행군하였기에, 그 속도는 자연히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노련한 마리우스는 경험이 없는 병사들을 이끌었음에도 아프리카 원정에 성공하고, 유구르타 왕을 생포함으로써 영웅이 된다. 이 때 게르만족과 붙은 로마군이 참패하게 되는데, 마리우스는 유일한 ‘구원자’로 떠오르게 된다. 로마 시민들은 법을 고쳐 집정관 연임이 가능하게 했으며, 로마에 부재중이라도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모든 것은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집정관으로 만들어 임페리움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점술가 마르타의 예지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예언에 따르면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일곱 번이나 집정관으로 당선될 것이었다.

 

한편 마리우스의 재무관으로서 술라의 활약도 상당하다. 그는 유구르타 왕의 생포에 큰 공을 세웠으며, 아프리카 원정을 성공적으로 보좌한다. 작품에서 술라는 송곳니를 숨긴 위험한 존재처럼 그려진다. 고귀한 혈통이지만 빈민가인 수부라에서 자랐기에 거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반신반인의 혈통이기에 성공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대담함을 지닌 것으로 그려지는 게 아닌가 한다. 이를 통해 다가올 미래에 독재관이 될 술라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 전쟁에서는 본성을 감출 필요가 없기에, 술라는 일종의 역할놀이를 즐기고 있다. 그 정점은 술라가 게르만족 행세를 하며 그들과 어울리면서 해방감을 느끼는 장면이다. 게르만족 여성 헤르마나와의 삶은 의무로부터의 해방을 암시하지만, 술라는 로마의 문명 세계로 돌아와 ‘위엄과 영광’을 위해 자신을 억누르는 배우의 역할을 지속하게 된다.

 

특히 이 게르만 원정에서는 작가 콜린 매컬로가 ‘게르만족의 이동’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 감탄하게 된다. 20년 가까이 알프스 산맥 등지를 돌아다니는 게르만족의 이동경로를 지도로 첨부하여 이해를 돕는 것은 또 어떠한가. 게르만족은 작물재배를 하지 않으므로, 인구 증가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이동을 시작한다. 그들이 원한 것은 이탈리아의 풍부한 자원이었기에 로마와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이들 무리에 잠입한 술라와 세르토리우스에 따르면, 게르만족은 이동의 편이를 위해 일정 조건에 맞지 않는 이들은 죽인다고 한다. 따라서 무리 대부분이 강인한 젊은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게르만족 원정을 성공으로 이끌면서 그의 여섯 번째 집정관 임기를 마무리한다. 이탈리아 촌놈이라고 조롱당하던 인물이 로마를 위기에서 구해낸 ‘제3의 건국자’이자 명실공히 ‘로마의 일인자’가 된 것이다.

 

《로마의 일인자》에서 보여주는 로마는 비단 정치·경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로마인의 생활에 깊이 녹아든 점술과 예언 그리고 건축과 요리, 미술도 아주 상세하며 정확한 고증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특히 로마 도로와 수로에 녹아든 기술력과 군대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자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관련 페이퍼) 콜린 매컬로는 로마 여성들의 삶 또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데, 이를 통해 로마의 가정에서 차지하는 가장의 권위가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가장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자녀의 혼인과 아기를 가정에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했으며, 극단적으로는 성인이 된 자녀를 노예로 만들거나 죽임을 명할 수도 있었다. 파트리키 계층의 혼인은 주로 정치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혼과 재혼이 빈번했다. 부모가 다른 형제가 한 가정에서 자라는 경우도 있었는데 1부에서의 코타와 2부에서의 카토를 예로 들 수 있다.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율리아 카이사르와 혼인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한다.’ 25년을 함께 한 아내 그라니아는 이에 반발하지 못했으며, 가져온 지참금과 함께 떠난다. 신부가 가져오는 지참금은 이혼할 경우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 역할을 한다.

 

가장의 권위는 리비아 드루사의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가장인 리비우스 드루수스의 명령으로 원치 않는 스키피오 2세와 혼인해야 했는데, 리비아의 사례가 더 가슴이 아픈 이유는 그녀가 혼인 이전에 파트리키 여성으로서도 극히 제한된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어머니의 사례 때문에 드루수스는 여동생을 단속하기에 여념이 없었기에, 리비아는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더군다나 혼인에 반발한 후 방에 갇혔으며, 오빠의 ‘명령’으로 남편에게 ‘순종’해야 했으므로 더욱 그러했다. 리비아는 당시 기준에서도 파격적으로 자유로웠던 아우렐리아와 비교되면서 그 비극을 더한다. 기본적으로 로마 파트리키 여성들은 가정에 종속되었고, 순종할 것을 기대받았다. 여성은 대외적인 활동에 참여할 수는 없었으나 종교에 귀의하여 사제로 사는 것은 가능했다. 술라와 관계를 형성하는 클리툼나와 니코폴리스는 파트리키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으며, 헤르마나를 통해 그려지는 게르만족 내 남녀의 역할 기대와도 비교해 생각해볼만 하다.

 

젊은 파트리키 여성으로서 아우렐리아도 비중있게 다뤄진다. 아름다운 외모와 지혜로움, 위엄있는 혈통과 상속금은 그녀를 로마 최고의 신붓감으로 만들지만 구혼자가 너무 많아 골치다. 삼촌의 안배로 아우렐리아는 스스로 남편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카이사르 가 차남과 결혼하게 된다. 독립적인 성향의 그녀는 파트리키의 저택이 아닌 인술라(다세대주택)의 안주인으로 자리잡기를 택한다. 그녀의 인술라가 빈민가인 수부라와 맞닿아 있는 것은 파트리키인 그녀가 서민들의 삶 깊숙이 자리잡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신혼부부는 오래지 않아 이 동네 주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되는데, 이 부부의 아들은 단연 모두의 애정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모두가 알고 있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라는 서민적 이름이 괜히 붙여진 것이 아니었다. 아우렐리아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그라쿠스 형제의 어머니, 코르넬리아라는 점은 당시 파트리키 여성들에게 기대되었던 역할모델을 짐작케 한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아우렐리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만 자신의 아내 율릴라와는 그렇지 못하다. 이는 술라가 정치적인 행보와 마찬가지로 사적인 생활에서도 지극히 가부장적인 인물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그는 순종하는 아내를 바랐는데 율릴라 이후 맞이하는 아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2부 《풀잎관》에서 딸 코르넬리아가 불화를 알리자 술라가 분노하는 지점도 ‘사랑하는 딸’이 아닌 ‘코르넬리우스의 딸’이라는데 맞춰져 있다. 반면 율릴라는 파트리키 여성상에 미치지 못하는 충동적인 인물이며, 카이사르의 이름을 가졌기에 ‘사랑’으로 이루어진 결합을 꿈꾼다. 막내딸에 대한 아버지의 무른 애정은 비극적인 결혼과 결말로 이어지는데, 술라가 ‘위엄과 영광’을 위해 자신을 억누르는 엄격한 인물이라는 점은 아내의 방만함을 참을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인 것이다. 술라와는 다르지만 아우렐리아의 남편인 젊은 카이사르 또한 보수적인 인물인데, 아우렐리아는 이에 요령껏 대처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로마의 일인자’에 등극하는 과정은 독자의 흥분과 쾌감을 이끌어내며, 배경인 로마는 생생하기만 하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읽으며 내린 결론은 로마의 매력은 민주적이고, 도덕을 부르짖으면서도 어느 한 순간에 야수성을 드러내는 데 있다는 것이다. 찬란한 문화와 기술을 발전시키고 향유하는 변덕스러운 시민들,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원로원 의원들과 신관들, ‘위엄과 영광’을 재현하려는 파트리키의 욕망, 이 모두는 ‘로마’의 영속을 위해 기능하는 것처럼 보인다. 콜린 매컬로의 펜 끝에서 재탄생한 이천년 전의 역사는 번역이라는 프리즘 너머로도 광채를 드러낸다. 역사를 뛰어넘은 인물들의 생생한 카리스마에 압도당하고, 또 해체되어 무력함을 느끼면서도 이끌림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로마 공화정의 찬연한 마지막을 장식할 영웅들의 부상과 몰락, 인간적 일화와 초월한 일면들을 활자 위로 돋아내게 만드는 필력. 콜린 매컬로 여사께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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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6-03-06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책을 못읽어서 마지막 문단만 읽었어요. 글 완전 좋아요 다른 분들도 잘 쓰셨겠지만 덕후 기질이 여실히 드러나는 에이바님 글이 심사위원들 눈에 확 띌 것 같아요. Good luck. 상품도 크던데 ㅎ

에이바 2016-03-06 22:09   좋아요 0 | URL
로마의 일인자 뒷권들 아직 안 보셨어요? 진짜 재밌어요 기네스님 더 늦기 전에 빨리 보셔요 왜냐면 6월에 3부가 나오거든요 ㅋㅋㅋ 감사합니다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는데 다른 분들도 잘 쓰긴 것 같아서...ㅜㅠ

한수철 2016-03-06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추해 보건대, 리뷰대회 출품작인 모양입니다. 에이바 님이 안 받으면 도대체 누가 받는 건지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겠습니다.ㅎㅎ^^그나저나 저는 얼마 전에 풀잎관 1권을 읽다가 포기. 요새 음... 책 자체를 읽지 못하는 이유도 있고, 등장인물이 존...너무 많이 나와서 짜증도 났던 것 같고...^^

에이바 2016-03-06 22:54   좋아요 0 | URL
틈틈이 썼는데 마감일이라 에라 모르겠다 하고 제출했습니다. ㅎㅎ 한수철님도 로마의 일인자 읽으셨군요! 반갑네요ㅎㅎ 저도 요즘 통 집중을 못 하는데 이 로마 시리즈는 펼치면 또 너무 재밌게 읽는다는 거죠. 등장인물들이 나이들어가는 걸 보면서 인생무상... 이런 쓸데없는 생각도 하고 그랬습니다...
 

(1월에 읽은 책)




이 책에는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과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입니다. 원래는 각각 출판된 단편이지만 비채 클래식으로 편입되면서 한 권으로 묶이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작품명이기도 한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은 굉장히 아름다운 유년시절 이야기입니다. 알랭 레몽이 깡촌 대가족 출신에, 수도원 생활까지 아주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더군요. 그 밥 딜런을 프랑스에 널리 알린 숭배자이기도 합니다. 소설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캐나다와 이태리 로마, 알제리까지 다녀온 이 트랑 출신 청년이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 가장 나중에 가게 된다는 건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프랑스 시골의 모습은 마치 우리네 전후 사정과도 비슷합니다. 물론 세월의 격차는 있습니다만... 우리가 태어난 것은 축복이지만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별은 어쩌면 삶과 맞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린 알랭이 젊은 알랭으로, 중년 그리고 장년이 되면서 반추하는 과거는 그리움과 사랑을 불러내는데요. 시시콜콜한 묘사들은 마치 내 추억인 양 아름답게 피어오릅니다. 그리고 이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과 이어지는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는 격동의 청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 그리고 화해를 꾀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전작보다 더욱 자신을 위한 글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두 편 다 아주 아름다워요.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책은 사실 읽지 않으려고 했던 책이기도 한데, 모님이 추천을 하셔서... 왜 읽지 않으려고 했냐면, 목소리로 가득 찬 글들을 읽는 것은 버겁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예상과 다르지 않아서 꽤 오랫동안 독서를 해야 했고요. 인덱스는 많았는데... 리뷰에 다 녹여내기엔 그 증언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것 같아요. 따라서 저의 리뷰보다는 다른 분들의 리뷰를 권하고 싶어요.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이들이 너무 여리고 어린 소녀들, 평범한 여성들이다보니 전쟁 이전의 삶을 추억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여성스러움(리본, 레이스,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이 증언을 타고난 여성성을 강조하는 사례로 여길 분은 없다고 생각하고... 기우이지만 약간의 우려가 남더라고요. 그런 해석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승리를 빼앗긴 여성 영웅들의 이야기로 읽어야 하는게 옳다고 여겨집니다. 이 글이 씌어진지 3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역사는 현재진행형이기에 더욱 의미있는 기록이라 생각합니다. 역자의 번역 스타일이 이런건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문체가 이런건지 좀 예스럽다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기 때문에 생긴 궁금증이고요. 최근에 출간된 《세컨드핸드 타임》은 2013년 프랑스 메디치 상 에세이 부문에서 수상한 작품이기도 한데, 국내 번역엔 오역이 있다고 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닥터 글라스》와 관련해서는 글을 세개나 썼는데요. 주된 소개는 베르트랑 샤마유의 〈라벨 피아노 독주곡 전집 앨범〉이 되는 포스트 하나, 소설 리뷰 하나, 리뷰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담은 포스트 하나입니다. 문제는 이러고도 하고 싶은(혹은 해야 할) 이야기를 다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쓴 리뷰와 포스트는 오로지 글라스의 사랑이 향하는 방향에만 치중했기 때문인데요, 사실 이 소설에서 집중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인세의 도덕률과 살인- 죽음과 관련한 가치 판단에 대한 논쟁입니다. 특히 생각을 발전시킬만한 소재는 안락사(존엄사)와 낙태 문제 등이 있는데요. 예전에 존엄사와 관련하여 글을 쓰다 말았는데 그 글이 어디로 가 버렸는지 모르겠어요. 열린책들에서 나온 《죽음을 어떻게 말할까》 라는 책이 있는데요, 적극적 존엄사인 ‘자유 죽음’에 관한 글입니다. 성공한 기업인인 아버지의 조력 자살을 목격하는 아들이 쓴 글인데요. 생각을 늘어놓다 보니 정리도 안되고 글만 길어져서 마무리짓지 못한 기억이 있습니다. 메일이라든가 어딘가 찾아보면 나올 법도 같은데... 음...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작년 이맘 때쯤이었는지 한참 듣던 수프얀 스티븐스의 앨범에 실린 곡 중 하나가 '존엄사'입니다. 링크해 볼게요.







슬픈 마음으로 책장을 덮어야 했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 2부입니다. 왜 슬펐냐고요? 제가 좋아하는 인물이 미치광이가 되어 결국 무대에서 죽음을 맞이하여 퇴장하였기 때문입니다... 참 걸출한 인물이었죠. 3부는 6월쯤 출간예정입니다. 1, 2부에서 등장한 술라도 장년이 되었고, 마리우스라는 큰 별이 저물었으니 드디어 그의 시대가 왔다고 할 수 있는데요. 로마의 왕, 짜르, 시저, 바로 그 카이사르가 현재 청소년기를 겪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제복에 묶여 있지만 우린 역사를 알잖아요. 그가 얼마나 위대한 과업을 완수하는지... 술라의 시대도 가고 나면 곧 그의 시대가 옵니다.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워낙 대작이다 보니 일년에 두 번 정도 출간되는 모양입니다. 7부작이니 2016년에 3, 4부/ 2017년에 5, 6부/ 2018년에 7부 이렇게 생각해도 되려나요? 교유서가 좀 더 힘을 내주세요!!! 사실 《풀잎관》은 《로마의 일인자》보다 흥미가 좀 덜 했다고 할 수 있지만... 또 막상 책을 펼치면 훅 빠져들게 되니까 비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의 덕후들이여 눈을 뜨세요! 깨어나세요! 풀잎관을 봐주세요!






-《불안한 낙원》을 써두고선 빼먹고 글을 올렸더라고요. 추가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읽기를 뒤돌아보며'라는 제목을 쓰고 나니 기시감이 들더군요. 생각해보니 에드워드 벨러미가 쓴 《뒤돌아보며》라는 소설 때문이었습니다. 《불안한 낙원》은 1월에 읽은 첫 소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1월 1일에 처음 펼친 책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기대되는 소설도 아니었고, 흡입력이 대단치도 않았지만 그래도 좋았던 기억은 이야기 중반 쯤에서 짧게 언급되는 쇼팽 덕분입니다. 제 리뷰는 상당히 못 썼다고 생각하고요, 여기 언급해도 될 런지 모르겠는데 우끼님의 리뷰가 참 좋았습니다. 끊임없는 사건을 지켜보는 ‘목격자’였던 한나가 무기력을 떨치고 현실에 개입하는 부분은 답답하면서도 어느 정도 공감을 얻어냅니다. 주인공의 나이와 짧은 시간동안 겪어야했던 인생의 여러 부침들을 생각해보면 놀랍기도 하고요. 불과 몇 페이지 동안 벌어지는 사건들은 꽉 차 있으면서도 빠르게 전개됩니다. 충돌 후 부서지는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요?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좋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헤닝 망켈을 모르기 때문에 막연한 감상만 남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부대》는 할 말이 없어서 생략. 




(2월에 읽은 책)






좀 막연하기는 합니다만 미드 《더 와이어》와 오츠의 소설 《그들》을 연관하여 생각해볼만 한 것 같습니다. 그때 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해두지 않아 지금은 엄두가 나질 않네요. 전자는 ‘볼티모어’가 주인공이고 빈민가에 사는 흑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반면(2시즌 제외), 후자의 주인공을 ‘디트로이트’라기 보다는 ‘화이트 트래쉬’이기에... 어디에 포인트를 잡아 글을 전개해야 할지... 언젠가는 쓸 수 있겠죠. 그러려면 《그들》을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은데 책장을 펼칠 용기는 생기지 않아요... 읽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주인공들이 아니라 제가 그들의 현실과 씨름하는 기분. 비교해볼만한 다른 매체로는 (리뷰에서 언급한) 영화 《8마일》이 있습니다. 공통점은 화이트 트래쉬가 등장하는 디트로이트 배경이고요. 이렇게 묶어서 이야기할 수도 있겠는데 제가 너무 게으른가 봐요. 그건 그렇고 《더 와이어》 안 보신 분 꼭 보세요. 정말 대단한 드라마입니다. 안타깝게도 정발된 건 1시즌 밖에 없네요. 개인적으론 《소프라노스》보다 더 좋았습니다. 《제너레이션 킬》 좋아하신 분들이라면 더 재밌게 보실 듯, 같은 제작자가 만든 드라마라서... 리뷰 제목인 ‘위스키 탱고’도 젠킬에 등장하는 NATO 음성 코드, 화이트 트래쉬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HBO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카인》은 재밌게 읽었으나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성서 내용을 안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지요. 올해부턴 별점을 아끼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별 셋이에요. 별 다섯을 아끼기 위한 방침입니다. 별점에 관해서는 어디까지 짜게 줄 수 있나를 고민하고 있는데 리뷰를 쓰다보면 판가름이 나리라 생각합니다. 《카인》의 리뷰는 마음에 들어요.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냈어요. 충격적이면서도 더 생각해볼만한 ‘가서 번성하라’도 언급했고요. 골 때리는 부분들은 모아서 밑줄긋기 페이퍼도 써서 더욱 후회가 없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가서 번성하라’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어요. 여기에도 덧붙여 보겠습니다.

 

-충격적이고 인상적인 부분: ‘가서 번성하라’

 

신이 방주를 건설하는 노아에게 카인을 데려가라 이르는데 그 이유가 놀랍기 그지없다. 네 며느리들에게 아기를 낳게 해줄 남자가 또 하나 생기는 것 아니냐. 이후 방주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더 놀랍다. 노아의 며느리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도 카인과 동침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서 번성하라’는 어떤 제한이나 한계를 두지 않는다. 인류의 손실을 대체할 필요성 때문이리란 짐작이 제시된다. 근친상간은 생산을 위한 롯과 두 딸의 관계, 쾌락을 위한 노아와 그의 아들 함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아비의 나체를 보았다’는 생략어법이란다) 후자를 카인이 목격하게 하는 절대적인 힘은 무엇이었을까? 어쨌든 카인은 소돔과 소돔의 죄 없는 아이들 그리고 노아와 그 아들에게서 비롯될 신인류를 떠올렸을 것이고, 행동을 개시한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카인 역시 근친상간을 피해갈 수 없는데, 그가 죄인이라는 표식을 이마에 새기고 도착한 이름 없는 도시의 주인 릴리스 때문이다. 근동 문명권에서 릴리스는 아담의 첫 부인으로 잠자리에서 여성상위를 주장하며 남편과 싸우고 떠났다고 한다. 물론 이 작품에서 하와가 ‘첫 여인’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영문 텍스트로는 First Lady이기 때문에 열린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땅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음에도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되는 카인은 릴리스와 관계하여 아들 에녹을 얻는다. 카인인 동시에 아벨인 남자, 모든 여자들의 이름을 가진 릴리스 사이에 태어난 도시가 에녹이라 불리는 것은 결국 이 도시를 채우는 사람들이 카인의 자손, 나아가 아담의 자손이라는 것. 그리고 카인도 이 ‘번성하라’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노아의 방주가 떠오르면서 모두 익사하지만 말이다. 그냥 그런 생각을 해 봤다.






《황금 물고기》 리뷰에도 하고 싶은 말을 다 써서 그다지 덧붙일 말이 없군요. 일부를 접한 《사막》,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그때의 느낌 때문에 엄청 기대했었거든요. 르클레지오에 대해 들은 이야기들 덕에 이 문호에 대한 호감이 상당했었나 봅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막 찾아서 읽고 그러진 않나 봐요. 최근 수상자인 앨리스 먼로나 파트릭 모디아노, 모옌의 글도 읽지 않았습니다. 모옌 작품은 《개구리》를 읽으려다 말았고, 모디아노의 시는 읽은 적 있지만... 수상자 목록을 찾아보니 존 쿳시도 받았었군요? 최근에는 《피아노 치는 여자》를 읽다가 덮었는데 그냥 영화를 먼저 볼까 봐요. 미하엘 하네케의 영화는 〈퍼니 게임〉, 〈아무르〉만 봤는데요. 이 감독에 이자벨 위페르라니... 그 이미지가 오래 남을 것 같아서 소설을 먼저 읽으려고 계속 미루고 있었거든요. 소설이 재미없단 얘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드뷔시의 피아노 곡 중에 〈황금 물고기〉가 있어요. 작품번호 111번, ‘영상’의 2집 3곡입니다. 1962년 토리노에서, 미켈란젤리의 연주입니다.







사실 《유로피아나》도 딱히 할 말이 없는데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통해서도 충분히 여러 글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네요. 이 또한 언젠가는 쓸 수 있겠죠... 그건 그렇고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셨을지, 리뷰를 읽고 싶은데 아직 알라딘엔 제 리뷰만 있어요. 리뷰를 부탁합니다...





(언급한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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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6-03-05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읽어보셨다는데 읽은 책이 있으면 막 아는 체 하고 싶은 심리 ㅋ
파트릭 모디아노는 대추천이에요. 두 개 읽었는데 오래된...은 읽을 땐 좀 어려운데 정말 오래도록 아직까지도 먹먹하게 남는 작품이구요. 또하나 뭐지 두 자로된 제목... 그건 읽을 때도 재밌(?)었던 작품이구요.
앨리스 먼로는 단편집 꽤 두꺼운 거 하마 읽었는데 그냥 쏘쏘 읽을만은 해요.

에이바 2016-03-05 17:21   좋아요 0 | URL
오래된 상점들의 거리하고 지평인가요? 검색해보고 왔어요ㅋㅋ 앨리스 먼로는 거의 단편집이라 패스했었는데... 문학상 수상작가 위주로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근데 맨날 미루게 된다는 것 그게 문제라는 것

CREBBP 2016-03-05 17:23   좋아요 0 | URL
지평 맞아요

CREBBP 2016-03-05 17:24   좋아요 0 | URL
먼로 리뷰 하나 퍼오께요

에이바 2016-03-05 17:24   좋아요 0 | URL
그럼 지평 먼저 읽어봐야겠어요! 기네스님 퍼와주신다니 감사감사...ㅜㅜ

CREBBP 2016-03-05 17:25   좋아요 0 | URL
지평이 좀 더 쉽고 오래된은 좀 꼼꼼히 왔다리갔다리 메모하면서 읽었어요.

2016-03-05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3-05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대회 때문에 매컬로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하면 에이바님이 작년에 쓰신 페이퍼가 먼저 생각나요. 이 소설 때문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완독에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어요. 카이사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편이 얼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에이바 2016-03-06 16:3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틈틈히 쓰다가 포기하고 일부만 올리려다가 겨우 다 썼어요. 생각보다 라고요? cyrus님 무지 재밌는거잖아요!!! ㅋㅋㅋ 개인적 의견으로 로마인 이야기는 여기에 비교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cyrus 2016-03-06 18:07   좋아요 0 | URL
제가 역사소설을 잘 안 읽어요. 이게 얼마나 심하냐면 TV 사극도 보지 않습니다. 제 취향이 남들과 좀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분야의 책을 읽기 전에 생각을 너무 많이 합니다. 읽을까 말까? 이 책이 나랑 맞을까? 하고요.

처음에 《로마의 일인자》가 나왔을 때도 시큰둥했습니다. 그러다가 서평대회 때문에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재미있어서 로마 관련 역사책 몇 권 참고할 정도로 읽었어요. 매컬로의 소설이 저를 로마 덕후에 입문하게 만든 책이에요. 그래서 시오노 나나미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군요. 당연히 매컬로가 시오노보다 훨씬 낫죠. 매컬로와 시오노의 책을 비교해서 시오노의 역사 서술의 문제점을 파헤쳐보려고 합니다. ^^

에이바 2016-03-06 22:05   좋아요 0 | URL
역사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아무튼 반갑습니다. 로마 덕후가 되신 걸 환영합니다. 어서 오소서...♤♧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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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들의 집 / 윤대녕


'피에로'가 아니라 '피에로들'이라고 읽었다. 요즘은 한국사람이 썼다고 한국이름을 주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피에로'가 옳은 표기이지만 '삐에로'가 더 익숙해서이기도 하고... 나는 윤대녕을 모른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마련한 소개글과 작가를 기다려왔다는 독자분들의 글을 보고 나니... 나 역시 그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좋은 느낌.


수년 전부터 나는 도시 난민을 소재로 한 소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비롯해 삶의 기반을 상실한 채 실제적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타인과의 유대가 붕괴되면서 심각하게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존재들이다. 나는 이 훼손된 존재들을 통해 새로운 유사 가족의 형태와 그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고 싶었다. 이는 삶의 생태 복원이라는 나의 문학적 지향과도 맞물리는 것이었다. (작가의 한 마디)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 셔우드 앤더슨


윤대녕의 소설과 느낌이 비슷한 표지.


미국 현대 단편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앤더슨의 대표작이다. 20세기 미국 문학강의에서 《위대한 개츠비》와 더불어 가장 많이 읽히는 작품이라 한다. 헤밍웨이의 하드보일드 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포크너에 따르면 "우리 세대 미국작가들과 후계자들이 이어갈 미국 문학의 전통을 낳은 아버지"라 한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는 아모스 오즈 또한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로부터 받은 깊은 영향을 고백한 적이 있다. 산업화가 시작한 마을을 배경으로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그로테스크와 아름다움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 모신 하마드


민음 모던 클래식 중 하나인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를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 내려놓은 적이 있다. 이 작품에 끌리는 것 이상으로 밀어내고픈 마음이 들어서였다. 부담스러우니까. 그럼에도 이 신간 소개-자기계발서의 형식을 차용하여 하고싶은 이야기들을 2인칭으로 쏟아낸다-는 피할 수 없었다. 2013년에 출간된 이 소설이 이제서야 번역되었다는 것은 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바람의 안쪽 / 밀로라드 파비치


《하자르 사전》을 쓴 파비치의 작품. 황금가지의 환상문학전집 시리즈 중 하나로 출간된 적이 있으나 이번에 새로운 출판사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그리스 신화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전설과 베오그라드를 배경으로 두 연인의 이야기가 나란히 펼쳐진다. 헤로와 레안드로스로 구성된 두 개의 이야기는 각각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그 중 어느 것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헤로의 이야기는 20세기 초 베오그라드와 프라하를 배경으로, 레안드로스의 이야기는 17세기 남동부 유럽을 배경으로 한다. 소설은 신화 속 전설의 형태를 그대로 따르고 있어 소설 속 연인들이 서로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렇게 시대를 달리한 연인이 이 소설 속에서 만남으로써 시·공간을 초월한 구성으로 실험적 형식을 선보이고 있다. 즉 뛰어난 문학적 실험과 동시에 무엇이든 허용되는 대중적 환상을 결합시킨 것이다.  (책소개 중 발췌)




브루클린 / 콜럼 토비


《보이 A》의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닉 혼비가 각본을 맡은 영화의 원작. 사실 아주 끌리는 작품은 아닌데 주인공 소개가 좀 새로웠기에 관심 목록에 올려보았다. 1950년대 아일랜드 소도시 출신의 아이리시가 뉴욕 브루클린으로 이민을 가면서 벌어지는 성장 소설.


《브루클린》의 어느 독자가 [아일리시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었다]라는 감상을 밝혔다고 할 정도로,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 아일리시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다. 선천적 결단력 결핍증이라도 있는 건지 아일리시가 혼자서 결정하는 일이란 없고,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지도 못한다. 무슨 일만 생기면 [침대에 누워서 생각해 봐야지]를 주문처럼 외우는 아일리시는, 여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우는 소설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무매력 캐릭터임에 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처음에는 좀처럼 아일리시에게 빠져들기가 어렵지만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아일리시는 사랑스러운 동생이나 친구처럼 느껴진다. 무도장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자신을 창피해하고, 하숙집 사람들과 서로를 의심하며 신경전을 벌이고, 사랑 앞에서 머뭇거리는 아일리시의 아주 사소한 감정의 움직임까지도 놓치지 않는 작가의 집요한 시선 덕분이다. 담백한 문장으로 짚어 나가는 소녀의 내면은 남성 작가가 썼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고 명확하다. (책소개 중 발췌)








일곱 번째 사람 / 아틸라 요제프

충분하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요제프의 시집 《일곱 번째 사람》의 개정증보판에는 심보선 시인의 서문과 함께 20여편의 시가 추가되고 편집이 새로워졌다. 구판과 마찬가지로 반 고흐의 작품들이 표지로 선정되었으며, 더욱 감성적이고 애절한 느낌을 자아낸다.


쉼보르스카의 유고 시집은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시집 《여기》와 사후에 출간된 《충분하다》를 엮은 책이다. 시인 스스로 '충분하다'라고 이름붙였다고 한다. 폴란드 언론들은 이를 '유고 시집' 이 아니라 '신간 시집'이라 보도함으로써 작가의 떠남을 애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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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6-03-05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세 권이나 겹치는데 이번 달에는 딱 원했던 책을 읽게 될 것 같아서 기대됩니다.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는 표지가 예뻐서라도 구매해야겠어요.

에이바 2016-03-05 12:50   좋아요 0 | URL
피에로들의 집이 뽑혔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요. 안 되면 사 보려고요. 와인즈버그도 그렇고, 두 권은 제가 읽고싶은 책이고 부자 되는 법은 기네스님이 말씀하셔서 목록에 올려보았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