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에서 나온 제임스 서버 단편선을 읽다가 구글창에다 제임스 서버를 넣어봤다. 트위터가 하나 떠서 보니, 서버와 카포티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일단 제임스 서버가 누구냐면,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원작인 「월터 미티의 이중생활」의 작가다.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 출신이고(배우 마동석도….) 일곱 살 때 형제들과 빌헬름 텔 놀이를 하다 왼쪽 눈에 화살을 맞아 실명했다. 카투니스트이자 단편소설로 유명한 유머작가였다. 서른아홉을 지나면서 작가로서 명성을 떨치며 오른쪽 눈마저 시력을 잃지만 글쓰기는 계속했다.



제임스 서버 관련 카포티 전기 내용.


After the editors had their decisions, Truman would pass them along to the artists, commiserate with those whose drawings had been rejected, and generally hold their hands. For Thurber, who was almost blind, he had to do a good bit more. It was his onerous duty to lead Thurber around, convey him to his assignations with one of the magazine´s secretaries, and even wait in her living room while the two of them consummated their loud passion in the bedroom. Their lovemaking, he later complained, sounded as romantic as squeals of hogs being butchered. When the noise had stopped, he would help Thurber on with his clothes. Once he put Thurber´s socks on wrong side out, and a sharp-eyed Mrs.Thurber, who had put them on correctly that morning, noticed the difference. The next morning the artist accused him of having made the mistake on purpose. ˝Thurber was the rudest, meanist man I´ve ever seen,˝ Truman said. ˝He was terrifically hostile―maybe because he was blind―and everybody hated him but that one secretary he was going to bed with. She was the ugliest thing you´ve ever seen, but he didn´t care because he couldn´t see her.˝ (Capote: A Biography by Gerald Clarke)


트루먼 카포티가 〈뉴요커〉에서 사환으로 일할 적에 편집자들의 결정을 작가들에게 알려야 했는데 거절되는 작가들을 동정하여 보통은 위로해 주었다. 제임스 서버는 거의 맹인인지라 조금 더 친절을 베풀었는데 그를 정부의 집에 실어다주는 극한 직업이었다…. 심지어 그들이 침실에서 일을 치르는 동안 거실에서 기다려야 했고 끝나면 서버의 옷도 입혀주었다. 한번은 양말을 뒤집어 신겼는데, 매의 눈 서버 부인에게 딱 걸려 다음날 서버가 일부러 그랬지! 라면서 비난한다. 훗날(?) 카포티는 제임스 서버가 고약한 인간이라 사람들이 다 싫어했다고 정부도 못생겼었다고, 근데 서버는 눈이 안 보이니까 상관없었다고 디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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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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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베니스의 상인』은 소설 형식으로 된 글이었고 그것이 셰익스피어와의 첫 만남이었다. 기억 속의 앤토니오는 선량하며 샤일록의 악독함은 그를 돋보이게 했다. 포오셔는 현명하고 멋졌다. 하지만 희곡을 읽으니 기억 속 이미지가 깨어진다. 앤토니오와 그 친구는 반유대주의자로, 기독교인이지만 그 교리에 따른 베품은 유대인을 비껴간다. 늙은 샤일록은 유대인이며 고리대금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조롱과 모욕을 받는데, 읽다 보면 그가 불쌍하고 복수심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이해되는 구석이 있다.

앤토니오가 친구 바싸니오를 위해 신체포기각서를 작성하여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고, 포오셔가 남장하여 판결을 내리고 하는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니 생략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관계에 있어 샤일록이 진짜 악인이냐 하는 것이다. 사회구조상 고리대금업이 미치는 영향은 차치하고, 개인으로서 샤일록은 직업정신이 투철한 인물이다. 또 법을 잘 지키는 시민이기도 한데 이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받는 페널티 때문이다. 방식이야 어찌됐든 샤일록은 경멸을 감추지 않는 기독교인들에게 나름 예의를 갖춘 모습을 보인다.

샤일록의 발언들은 한스럽기 그지없다. 고리대금업자나 상인이나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건 같은데, 샤일록과 앤토니오가 다를 바 무엇이 있냐는 것이다. 평소 샤일록을 보며 경멸을 감추지 않은 앤토니오의 만행을 보자. 사업을 방해하며 개라고 부르고, 침을 뱉고 발로 걷어차기 일쑤였다. 이제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돈을 빌려달란다. ‘평소라면 너에겐 돈을 빌리지 않았겠지만’ 이라며 목을 뻣뻣이 세우고서 말이다. 상선이 난파됐다는 소식에, 앤토니오 친구들은 샤일록에게 진정 살 1파운드를 취할 것이냐 묻는다.

이에 샤일록은 분통을 터뜨린다. 왜 못할 것이냐. 자신이 유대인이기에 미움을 받고 상거래를 방해하고 민족을 싸잡아 경멸한다. 유대인도 기독교인들도 똑같이 밥 먹고 다치면 피가 나고 병에 걸리면 치료한다. 앤토니오도 동의한 차용증서를 법대로 처리하는 것이며, 이제껏 당한 것을 갚는 것인데 왜 복수를 하면 안 되는가? 유대인이 기독교인에게 해를 끼쳤다면 그들이 가만있겠는가? 복수하지 않겠는가? 시종일관 그를 대하는 앤토니오 무리들의 태도와 재판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이제 그의 분노는 정당해 보인다.

재판정에서 대공도, 법학박사로 꾸민 포오셔도 샤일록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강요한다. 이는 기독교인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덕이기 때문이다. 마땅히 옳은 일이니 따라야 한다는 설교 앞에 샤일록의 울분은 무시당한다. 법대로 하자니 그 유명한 ‘피 한 방울 흘리지 말라’는 조건이 붙는다. 그냥 빚을 갚으랬더니, 이젠 시민의 목숨을 앗으려는 불순한 의도 때문에 재산도 몰수당한다. 대공은 ‘자비’를 베풀어 목숨은 살려준다고 한다. 샤일록은 그냥 다 취하라며 망연자실하고 이에 그라쉬아노는 재산이 없어 끈을 살 돈도 없으니 국비로 목 맬 끈을 하나 주자고 조롱한다. 이 얼마나 자비로운 발언인가.

앤토니오와 바싸니오, 포오셔의 관계도 생각해봄 직하다. 일단 바싸니오에 대한 앤토니오의 감정은 진한 우정을 넘어섰다. 누가 사치로 빚더미에 앉은 친구를 위해 사채를 써 돈을 마련해주겠는가. 그것도 바다 건너 상속녀한테 청혼하러 가는 뱃삯과 예물을 준비하기 위한 비용이다. 친구의 생명을 저당잡히고 바싸니오는 벨몬트에 도착해 시험을 치른다. 세 상자 중 옳은 상자를 골라 포오셔를 얻는다. 베니스로 친구를 구하러 가는 남편에게 포오샤는 아내에 대한 사랑과 신실을 상징하는 반지를 준다. 바싸니오는 절대 빼지 않겠노라 맹세한다. 

이 대목이 재밌다. 앤토니오는 빚을 갚지 못해 재판이 열린다며 ‘너를 한 번만 더 봤으면 좋겠어. 나를 사랑한다면 와 줘, 그렇지 않다면 안 와도 돼.’라는 편지를 보낸다. 너그러운 포오셔는 앤토니오의 빚을 두 배, 세 배로 갚고 구하라고 한다. 바싸니오는 아내의 돈을 들고 베니스로 가고, 우유부단한 남편을 믿지 못한 포오셔는 시녀 니리서를 데리고 그를 뒤따른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내 생명도 아내도 이 세상도 앤토니오 너에 비할 순 없지!’라는 바싸니오에게 일침을 가하는 포오셔.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바싸니오의 성급함과 포오셔가 비교된다….

친구를 살려줘 감사의 인사를 하고싶다는 바싸니오에게 아내의 반지가 갖고 싶다는 (남장한) 포오셔. 바싸니오는 이는 소중한 반지라며 거절한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앤토니오는 자신의 목숨값과 공로가 포오셔의 명령에 비견하지 않냐며 반지를 줘 버리라 한다. 그랬더니 바싸니오는 또 반지를 얼른 갖다 준다. 이거 완전 질투 아닌가? 이후 삼자대면에서 포오셔는 그 반지를 앤토니오 손으로 남편에게 건네게끔 한다. 무서운 사람들…. 찌질하고 우유부단하고 씀씀이도 마음가짐도 헤픈 바싸니오가 왜 좋을까? 잘생겼나? 애는 착한 것 같더만….

내 생각에 앤토니오는 게이가 맞고, 바싸니오도 약간 그런 구석이 있다. 이 번역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어디서 읽은 기억에, 바싸니오가 남장한 포오셔에게 추근대는 느낌이란다. 그렇다면 비슷한 선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내노라하는 스펙의 남자들이 무서운 조건(옳은 상자를 고르지 못하면 살아있는 동안 누구에게도 청혼하지 말 것)에 동의하고 얻으려는 아름답고 현명하다는, 돈까지 많은 포오셔. 그녀가 모두를 제치고 바싸니오를 선택한 것은(비록 그 과정은 정반대이지만) 자신이 남편을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가 미덥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출간된 이후 반유대주의를 공고히 하고, 나치에게도 이용되었던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사상과 작품 이해에 있어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어찌 되었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말로는 인간적으로 안 됐다. 딸도 자신을 배신하고, 법도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 빈털터리가 된 늙은이는 개종까지 해야 한다. 남은 자산은 아비의 재산을 훔쳐 달아난, 기독교인과 사는 타지에 있는 딸에게 갈 것이다. 제목이 가리키는 주인공 앤토니오의 고결한 우정과 덕을 기리지만 샤일록의 거대한 존재감에 가린다. 샤일록이 극에서 고작 다섯 장면에만 출연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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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05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토니오 게이설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웠습니다. 샤일록이 워낙 유명한 캐릭터라서 앤토니오를 진지하게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에이바 2016-09-05 21:46   좋아요 0 | URL
희곡으로 보니까 우정을 넘어선 그냥 사랑이더라고요. ㅋㅋㅋ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어〉, 1852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서 거트루드 왕비가 아들의 짝으로 점찍은 오필리어는 햄릿 왕자를 고결한 분이라며 흠모한다. 편지, 선물……,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을 전한 듯 느껴진다. 동생을 아끼는 레어티즈는 프랑스로 떠나기 전 타이르기를, 그 사람이 좋은 이라 하더라도 그가 앉은 자리는 너무 무거우니 흔들리지 말 것을 다짐하게 한다. 아버지 폴로니어스 역시 권력은 그런 것이니 햄릿을 멀리하라 이른다. 오필리어는 이에 순종하지만 햄릿을 향한 연정은 여전해서, 그녀를 이용하여 왕자의 광증을 캐내려는 자리에서도- 그녀를 모욕하는 왕자를 염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매춘의 장소를 뜻하는 속어이기도 한 수녀원에 가라거나, 연극을 관람할 때 처녀의 무릎 속에 눕겠다거나 하는 왕자의 희롱에서도 굳건했던 오필리어. 그런 오필리어가 아비의 죽음, 그것도 사랑하는 이의 칼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죽음에 넋을 놓은 모습은 모두의 동정을 받는다. 뒤늦게 햄릿은 그녀를 진정 사랑했음을 고백하지만……. 오필리어의 마지막 역시 너무도 비극적이다. 오필리어는 버드나무 가지, 미나리아재비, 쐐기풀, 데이지, 자란으로 화관을 만든다. 그 화관을 버드나무 가지에 걸려다 가지가 부러져 시내에 빠지는데,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렇게 마치 자살처럼 익사하는 것이다.


 ▷ 토머스 프랜시스 딕시의 〈오필리어〉, 1873


오필리어의 마지막은 거트루드 왕비의 무운시로 몹시 아름답게 전달되는데, 이 비극에서 풍기는 낭만성은 화가들에 영감을 제공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은 라파엘 전파를 대표하는 존 밀레이 경의 〈오필리어〉이다. 밀레이는 그림의 배경이 될 셰익스피어 희곡에 일치하는 장소를 찾기 위해 런던 근교 서리(Surrey)를 수개월 답사했다. 사실적 묘사를 위한 노력, 야외에서 하는 작업의 어려움을 토로한 글도 남아있다. 살짝 입을 벌리고 꿈을 헤매는 듯한 오필리어의 표정과 더불어 그녀를 품은 둔치에 그려진 배경의 빛과 꽃들은 환상과 사실의 경계에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오필리어의 위로 향한 양팔처럼 뻗어진 버드나무 가지, 고통을 의미하는 쐐기풀과 순수를 의미하는 데이지, 나를 잊지 말아요- 물망초와 죽음을 의미하는 양귀비, 진실된 사랑과 충실함을 의미하는 제비꽃……. 특히 제비꽃으로 만든 목걸이는 오필리어의 캐릭터 자체를 반영한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캐릭터들을 자주 그렸던 토머스 프랜시스 딕시의 오필리어도 미나리아재비, 데이지, 쐐기풀로 만든 화관을 손에 들고 있다. 신화를 소재로 한 작품들로 유명한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또한 오필리어를 주제로 한 그림을 여럿 그렸다. 그 중 1894년에 그려진 이 그림에서 오필리어는 마치 임신한 것처럼 배가 살짝 나와 보인다. 오필리어의 머리칼에서 보이는 양귀비, 무릎에 얹힌 데이지 화관 역시 각각 죽음과 순수를 의미한다.


 ▷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오필리어〉, 1894



 ▷ 루미니어스의 〈오필리어〉, 2016



  ▷ 루시아(심규선)의 〈오필리어〉, 2016



  ▷ 존 에버렛 밀레이경의 〈오필리어〉 작품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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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04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레이가 그린 오필리어의 모델이 화가의 애인입니다. 물을 채운 욕조 안에 오랫동안 누워 있어서 고생했다고 합니다.

에이바 2016-09-04 15:07   좋아요 0 | URL
오필리어의 모델은 훗날 로제티의 아내가 되는 엘리자베스 시달인데요, 라파엘 전파 화가들의 뮤즈이긴 했지만 밀레이와 사귄 사이인 줄은 몰랐어요. 영문으로 찾아봐도 딱히 나오지 않는데요? 밀레이와 에피 러스킨, 단테 로제티와 리지 시달 이야기가 더 강렬해서... 말씀하신대로 리지 시달이 오필리어 모델 서다가 죽을 뻔 해서 아버지가 밀레이를 고소하고 밀레이는 병원비 대주고 그런 에피소드도 있죠. 작품해설 영상에도 시달 이름이 나와요 ㅎㅎ

cyrus 2016-09-04 15:08   좋아요 0 | URL
제가 착각했어요. 오필리어 모델이 로제티의 아내였군요. ^^

에이바 2016-09-04 15:29   좋아요 0 | URL
오필리어 그릴 땐 밀레이와 에피, 로제티와 리지 두 커플이 연애하기 전인 것 같긴 해요. 엘리자베스 시달 삶이 정말 비극적이죠...ㅠㅠ

AgalmA 2016-09-04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햄릿 마니아시여, 10월에 lg 아트에서 영국 컬트밴드 타이거릴리스 밴드의 음악극 <햄릿>이 공연되는데, 오필리어 죽음 장면도 압권이라 하옵니다. 놓치지 마옵소서!

타이거릴리스 예전에 내한했을 때 본 적 있는데 정말 추천에 주저가 없습니다^^! 위 그림들의 환상을 실제 느낄 수 있게 해줌!
안 그래도 <햄릿> 공연보기 전에 책 다시 읽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에이바님의 햄릿 퍼레이드 주간이 그걸 계속 상기시켜 주네요 ㅎㅎ

에이바 2016-09-05 13:28   좋아요 0 | URL
아갈마님 감사합니다... 그렇잖아도 더 플레이 광고 보고 있었는데 이런 꿀정보를 주시다니요. 엘지아트센터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찾아보니 평일에 공연하네요. ㅜㅠ 타이거릴리스 기억해두겠습니다...

단발머리 2016-09-04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읽고 못 배기리~~ <햄릿>
예뻐서 보고 또 보리~ 오필리어~~^^

에이바 2016-09-05 13:28   좋아요 0 | URL
햄릿을 읽어주시와요ㅎㅎ 정말 좋았어요...
 


햄릿은 왜 끝없이 망설이고 고민하는 것일까? 레어티즈처럼 복수하겠다며 무대포로 밀고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포틴브래스처럼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는 타입도 아니다. 아마도 햄릿이 현대적 인물이라 일컬어지는 데는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 햄릿은 덴마크의 위대한 지배자 햄릿 왕의 외아들이다. 용맹하고 존경받는 왕과 아름다운 왕비에게서 태어난 왕자는 덴마크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서른 살 왕자는 정치적 세력이 전무한 학자 타입으로 보인다. 극 초반에서 그가 여태 대학에 있었다 하며 연극에 대한 깊은 이해는 이를 뒷받침한다.


작고한 햄릿 왕은 왕비 거트루드를 깊이 사랑한다. 그 생전에 이미 동생 클로디어스와 간통해왔던, 부도덕한 아내를 여전히 아낀다. 어머니에게 ‘숙덕이 없다면 있는 척이라도 하십시오’ 일갈하는 아들에게 나타나 아비의 복수를 하되, 어미를 미워하지 말라고 한다. 자신이 죽고 얼마 되지도 않아 재혼한 무정한 배우자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러겠냐는 말이다. 햄릿은 선왕의 깊은 사랑을 봐 왔을 것이다.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데 어찌 장례식 후 너무도 행복해하는 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이 크나큰 배신감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남편을 사별한 아내는 재가를 하면 안 되느냐, 그런 것이 아니다. 햄릿은 자신의 부재중 일어난 급격한 변화에 휩쓸린다. 게다가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라니! 이 근친상간적이며 왕위찬탈을 연상시키는 결합이라니. 클로디어스에 아부하는 신하들, 연회를 벌이며 즐거워하는 모습들……. 덴마크는 썩었다는 햄릿의 자조에는 클로디어스라는 좀, 병증이 있다. 보라, 어머니에 대한 혐오를. 상(喪) 중인 사람은 자신 밖에 없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엘시노 궁을. 햄릿은 염세를 느끼고 자살 충동에 이른다.


금빛 갑옷을 입고 나타난 유령은 햄릿에게만 말을 건넨다. 유령의 말은 햄릿에게만 들린다는 것은 어쩌면, 선왕의 이야기, 그 죽음에 대한 의혹을 풀고자 하는 ‘관심’을 가진 이는 왕자 밖에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햄릿은 정치적 세력이 없는, 대학에서 공부만 한 인물처럼 보인다. 그의 지성은 현 상황에 대한 회의를 낳는다. 유령의 말이 진실인가? 진실이라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아, 나는 겁쟁이로구나. 살해당한 아버지의 아들인 나는 신세타령만 할 뿐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구나.


그것이 바로 ‘살 것이냐 아니면 죽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이다. 햄릿은 죽음에 집착하고 있다. 생에 대한 혐오로 염세와 우울이 깊어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연극을 통해 클로디어스에 대한 혐의를 확증한 이후에도 고민하고 결정을 미루는 것- 그것은 결국 복수를 성공하더라도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데 있다. 클로디어스로 상징되는 덴마크의 부패는 그를 죽인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의 능력 밖 일이기 때문에, 고민하다보면 자꾸 분별심이 끼어들어 핑계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결국 ‘신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려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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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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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의 원전은 덴마크 사학자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덴마크 역사책』 불역판인 벨포레의 『비극 이야기들』로 여겨진다. 1600∼1601년 집필되었으리라 추정되는 이 비극은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들 중에 가장 유명하며, 가장 많이 회자되고 연구되는 작품이다.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극본을 읽어보지 않은 이도 들어봤을, 유명한 대사가 있지 않은가. 여기서 죽는 것은 햄릿인가 아니면 복수의 대상인 클로디어스인가. 문맥을 보아 햄릿의 자살에 좀 더 타당성을 두어야 할 것이다.


어릿광대와의 대화에서 추정할 수 있는 햄릿 왕자의 나이는 서른이다. 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아버지, 햄릿 왕의 장례식에 왔더니 어머니 거트루드가 재혼을 한단다. 상대는 왕위를 이어받은 숙부 클로디어스다. 장례식 음식이 결혼식 음식으로 탈바꿈되는 상황, 용맹하고 존경받던 햄릿 왕을 애도하는 이는 왕자 뿐이다. 신하들은 숙부에 아첨하기 바쁘고, 클로디어스는 형의 사망이 슬프지도 않은지 연회가 계속된다. 아버지를 그리워하지 않는 어머니와 왕궁 사람들, 숙부를 싫어하던 이들이 자연스레 초상화를 사는 모습은 어이가 없다.


근친상간적인 이 결합 앞에 절망한 왕자는 자살을 생각한다. 신이 자살을 금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텐데! 아들 속도 모르고 어머니는 대학에 돌아가지 말고 궁에 남으란다. 숙부는 왕위계승자는 너라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 참된 친구 호레이쇼만이 이 고통을 알아주는데, 밤에 선왕의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다. 노르웨이를 무찔렀던 그 갑옷을 입고서. 왕자에게만 들리는 유령의 말인즉, 클로디어스가 형수 거트루드를 차지하기 위해 형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거트루드와의 간통은 남편이 죽기 전부터 이어져온 것이란다!


유령은 왕자에게 아비의 복수를 할 것을 맹세하게 한다. 햄릿 왕자는 고통스럽다. 유령의 말이 사실인가? 그가 악령일 수 있지 않은가? 아버지의 죽음에 어머니도 연관되어 있지는 않은가? 그의 계략으로 덴마크 왕이 숨진 것이 사실이라면, ‘숙질 이상의 인척관계가 되었지만 부자지간은 될 수 없는’ 클로디어스를 언제, 어떻게 죽여야 하는가? 왕자는 클로디어스가 자신을 경계하지 않도록 미친 척 하며, 연극을 이용하여 클로디어스의 의중을 떠보기로 마음먹는다. 호레이쇼와 함께, 그는 유령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알아차린다.


그럼에도 햄릿은 복수를 자꾸 미루고, 이 우유부단함은 레어티즈와 포틴브래스와 비교된다. 아버지 폴로니어스가 죽자 레어티즈는 프랑스에서 돌아와 복수를 다짐하는데, 부친 살해자를 교회에서도 죽일 수 있다는 각오를 보인다.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에 어쩌면 정당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 노르웨이 왕의 복수를 위해 포틴브래스는 군사를 모은다. 포틴브래스의 이런 행동력은 이후 폴란드의 작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행군하는 모습으로, 행위의 ‘정당한’ 사유가 있음에도 복수를 미루던 햄릿을 깨우친다.


햄릿의 우유부단함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가? 왕자는 사색하는 인물이며, 어머니의 부정과 클로디어스로 상징되는 덴마크의 부패로 인해 염세에 빠진다. 깊은 우울증을 앓는 그는 클로디어스의 악덕을 확인한 후, 복수에 대한 회의감으로 인해 긴 독백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


햄릿  (…) 내적 반성은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들며,

이리하여 결심의 본색은

우울이라는 창백한 색으로 덮여서

지고의 중요한 거사들은

이로 인해 노선이 바뀌고,

실행의 이름조차 잃게 된다. (3막 1장, 101쪽)


햄릿 왕자의 신중함과 분별력은 분노에 찬 와중에도 착실히 기능하고 있고, 여기에 우울증이 더해지니 결정의 순간을 미루게 되는 것이다. 복수의 방식과 때 또한 문제가 된다. 클로디어스가 홀로 기도할 때, 햄릿은 그를 죽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죽은 방식으로 죄의 공과를 더하기 위해 적절한 순간을 기다리겠단다. 그러나 클로디어스가 햄릿의 광증에서 석연찮음을 느끼고, 그를 영국으로 보내 처리하게됨으로써 이 결정은 저지된다. 놀랍도록 적절한 ‘해적’의 개입으로 돌아온 햄릿은 이제 복수를 신의 섭리에 맡기려 한다.


우유부단함, 이 결점은 햄릿 자신을 포함하여 폴로니어스, 오필리어, 레어티즈, 로즌크랜츠, 길던스턴, 거트루드와 클로디어스의 죽음을 불러온다. ‘고결한 심성’을 지닌 햄릿이 복수라는 목적을 달성하지만, 본인 역시 살아남지 못하기에 이 극은 더욱 비통해진다. 이는 햄릿이 앞서 말했던 ‘타고난 성격적 결함- 그 작은 악덕이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라도 큰 불명예를 입게 한다네.’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왕자는 자결하려는 호레이쇼에게 그 ‘천복(天福)’을 미루고 세인들에게 이 비극을 알려줄 것을 부탁한다.


햄릿  살 것이냐 아니면 죽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것이 더 숭고한 정신인가.

변덕스러운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허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파도처럼 몰려오는 많은 고난에 대항하여

물리치는 것일까. (3막 1장, 100쪽)


그는 변덕스러운 운명을 견디기로 했고, 복수를 미루었으나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을 피하지는 못했다. 등장인물들의 계획들은 성공하지 못하며 결국 그들을 극에서 퇴장하게 한다. 햄릿의 우유부단함은 그가 고매한 지성인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 효에서 비롯된 복수심, 숙부에 대한 증오와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 죽는 것이 천복이며, 어차피 끝이 오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일찍 떠나는 것이 무에 아쉽겠는가 묻는 햄릿의 운명은 복잡한 그의 인물됨만큼이나 비극적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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