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요즘 나의 관심사를! 신간평가단 책을 다 읽었는데 리뷰를 쓰기 싫어 페이퍼를 쓴다. 4월, 나는 요즘 오스카 와일드에 빠져 있다. 사실 야심차게 알베르 카뮈 읽기 계획을 세우고 몇 권을 사 읽었다. 그 중 『시지프 신화』를 읽다가 집중도 안 되고, 잘 모르겠어서 머리도 식힐 겸 인터넷 창을 켰다. 그런데 민음사에서 개정판이 나온댄다... 민음 북클럽에 가입하면 세계문학 3권이랑 출간예정작 3권을 준다길래 목록을 보았더니 눈이 뜨인다. 알베르 카뮈! 오스카 와일드! 루이스 스티븐슨! 내가 무슨 힘이 있나... 결제하고서 민음사 『오스카 와일드 작품선』을 손에 넣었다. 은행나무에서 나온 『거짓의 쇠락』이 너무 좋아서, 조금 늦게 『심연으로부터』를 구입하였는데 여기서도 조금 뻘짓을 벌였다. 글항아리에서 나온 앙드레 지드의 『오스카 와일드에 대하여』도 같이 샀는데 여러분, 이 원고는 『심연으로부터』에 부록으로 실려있습니다. 네...


앙드레 지드의 『배덕자』, 『지상의 양식』도 샀다. 좋은 리뷰를 읽었기도 하지만 결심이 구매로 이어진건 순전히 오스카 와일드 때문이다.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으면』은 지드의 자서전이기도 하고 쇼팽이랑 와일드 얘기도 나오고 또 지드 월드를 구성하려면 사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무엇을 샀느냐. 카사노바 자서전인 『불멸의 유혹』을 샀다. 안 그래도 이 책 역시 고민중이었는데 오스카 와일드 글에 나오길래 일단 구매. 또 무엇을 샀느냐. '오스카 와일드'를 전도해주신 박명숙 번역가의 『전진하는 진실』을 샀다. 『거짓의 쇠락』, 『심연으로부터』를 번역한 분이다. 알고보면 에밀 졸라를 전문적으로 번역하고 계신데 『목로주점』, 『제르미날』,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등이 있다. 근데 오스카 와일드 글을 읽으면 에밀 졸라를 엄청 디스한다. 유미주의와 자연주의 추구하는 바가 너무 다른 것. 그런데 어떻게 오스카 와일드를 번역하게 되었느냐, 하면 이것도 운명이라 할 수 밖에... 번역 후기에서 확인하시길...


그렇다면 그의 대표작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왕이면 박명숙 선생님 역으로 읽고 싶은데... 민음사에서 여름쯤 『오스카 와일드 명문선』이 나올 예정이기도 하고, 다른 번역가 분의 작업으로라도 출간예정에 없나 문의를 넣었는데 없다고 한다. (민음사, 문학동네) 그래도 와일드의 명문선집이랑 다른 타이틀로 나올 수도 있대서 기대중. 그렇게 오스카 와일드 핑계로 구매한 책만 벌써... 일단 민음사에서 나온 『오스카 와일드 작품선』에는 희곡 「살로메」가 실려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 희곡은 원래 불어로 썼다가 와일드가 직접 영어로 옮겼는데 나중에 그 아들이 다시 번역하고 그랬던가.. 갑자기 기억이 가물가물... 그리고 또 볼 만한 책은 문학동네에서 나온 『켄터빌의 유령』과 열린책들에서 나온 『오스카 와일드, 아홉가지 이야기』가 있다. 세 권에 실린 작품들이 겹치는데 또 열린책들 역자는 또 눈에 익은 분이라 고민중. 막 새 책이 나왔을 때 사두지 않으면 꼭 이런 고민을 하게된다. 결국 살 거면서, 그 때 사뒀으면 이런 고민 안 해도 되잖아 같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도 찾아보니 옛날에 나온 금성출판사 역이 정확하다는데 그 책은 사기 힘든 것 같고, 열린책들과 펭귄클래식으로 좁혀졌다. (새번역도 안 나온다고 하고, 황금가지판은 전자책이라 제외) 아마 펭귄을 살 것 같다. 표지 싫지만...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영화 무지 재밌어요. 예전에 콜린 퍼스 나온대서 봤습니다. 영화 보면 콜린이 싫어질 수 있지만 팬이라면 괜찮아요.


또 무엇을 샀느냐 하면 『돈키호테를 읽다』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집』을 샀다. 매년 4월 23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책의 날'이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두 문호가 사망한 날이기도 하고... 올해는 서거 400주기이기에 뜻깊은 행사가 많다. 각 출판사에서도 준비하는 책이 꽤 많고, 영국문화원에서는 연초부터 셰익스피어 관련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고 있다. 그렇잖아도 출간예정 목록에서 〈셰익스피어 자서전〉이 나온다길래 알림문자를 신청하고, 출판사에도 정말 4월에 나오는지 물어보고 그랬는데 이젠 주문이 된다! 주문하면 3일 후 출고예상 이러더니, 문제는 책장에 공간도 부족하고 최근에 책을 너무 많이 사서 이 책을 지금 주문하나, 딴책이랑 모아두었다 사나 이러고 있다. (이외에도 전자책도 몇 권 더 질렀다.) 원래 계획은 『저항의 미학』을 사는 거였는데 평가단 도서로 선정될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희망을 품고 있어서... 뭐 그렇게 되었다. 또 구매예정인 책은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인데 원래 구매하려고도 했지만 오스카 와일드 글에서 또... 


뻘글로 벌써 이만큼 채우다니. 역시... 뻘글 최고. 신간도 보고 있는데 페이퍼 쓰는 김에 한꺼번에 정리해야겠다.






『여신의 언어』. 1989년에 나온 책이다. 저자 마리야 김부타스는 당시 하버드 내 유일한 여성학자로서,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문명 이전에 돌봄과 배려, 평등한 사회를 가진 여신 전통의 문명이 존재했으며 이것이 진정한 유럽 문명의 뿌리임을 밝혀낸다.


"그간 여신을 남신의 어머니나 남신의 딸로 호출하는 가부장적 시각에서 벗어나 스스로 온전한 여신의 이미지를 찾아가게 된 것은 김부타스의 업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세계를 향한 의지』는 셰익스피어 평전으로,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기를 맞아 특별 서문을 포함하여 얼마 전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가격대가 좀 있긴 한데...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이랑 같이 읽으면 될 듯 하다. 후자는 약간 추리소설 느낌으로 쓰여졌다. 역자의 단독 첫 번역일까? 난 왜 이런 게 궁금하지...


『치킨의 50가지 그림자』는 북클럽 메일이 왔는데, 네이버 포스트에서 연재중이고 댓글 달면 선물도 준다고 하니 한번 방문해보시길... 황금가지 네이버 포스트(클릭) 이 책은 영미소설로 분류되는데 카피가 이렇다. “이렇게는 처음이에요.” “지금까지 아무도 당신을 바삭하게 구워 주지 않았다고?” 


부코스키의 유년기~청소년기를 담은 『호밀빵 햄 샌드위치』이다. 부코스키에 이렇게 딱 맞는 한국어로 작업하시는 박현주 번역가이다. 『우체국』, 『여자들』, 『팩토텀』에서 열연했던 헨리 치나스키가 출연한다. 예상도 못했는데 오늘 신간목록에서 발견했다.


『가족어 사전』은 무솔리니의 시대를 살아가는 유대계 가정의 이야기인데, 역사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요즘 유대계 작가가 쓴, 이 시기의 책들이 많이 보이는 느낌이다. 이 외에도 신간을 봐둔게 몇 권 더 있고, 위에 쓴 책들도 정리하려고 했는데 힘이 빠져서 그만... 언급한 책들을 소개하고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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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16-04-19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에이바 님이 쓴 글 같지 않네요. (단순히, 약간 과도하게 여겨지는 `ㅋㅋㅋ` 때문일는지요? ㅎㅎ)


아무려나- 호밀빵 햄 샌드위치 담아 가여...^^


에이바 2016-04-19 22:56   좋아요 0 | URL
그래요? 너무 업된 상태에서 써서 글이 중구난방 같긴 해요 `ㅋㅋㅋ` 앞뒤만 지워봤어요 ㅎㅎㅎㅎ 부코스키 너무 반갑죠. 그 탓일지도 몰라요.

한수철 2016-04-20 00:23   좋아요 0 | URL
고백하건대

나도 알라딘에 리뷰를 쓰고 싶어서- 그러니까 상식적인 수준에서- 에이바 님의 글을 열심히 읽었던 적이 있었어연.

제 생각엔 리뷰 쓰기는 에이바 님이 가장 뭔가 틀림없다는 느낌을 받았어연.

....이상이에연.

ㅎㅎㅎㅎㅎㅎ

잘게요.^^

(좋은 글에 공연한 시비를 붙인 게 아닌가 하는 공연한 생각에 글 남겼습니다, 이해바랍니다.)

에이바 2016-04-21 16:33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저도 좀 그래서 수정할까 했는데 전체적 어조가 별로라 수정이 불가능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ㅎㅎ 그건 그렇고 한수철님... 감사합니다. ㅋㅋㅋ

단발머리 2016-04-20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햐~~ 지름신을 부르는 이 아름다운 페이퍼^^

요즘 오스카 와일드에 빠지셨군요. 멋져요, 멋져~~
저는 위의 무수한 책 리스트 중에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펭귄판이 집에 있다는 것, 읽은 게 아니고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책을 구입할려고 해도 알아야 되는게 많네요. 번역자도 꼼꼼히 봐야하고...
저는 무조건 최근에 나온 번역판을 선호하는 편이예요. 잘 모르기 때문이지요.
민음사는 좀 믿음이 가고, 문동은 감각이 있고. ㅎㅎ

셰익스피어 400주기만 알고 있었는데, 셰익스피어랑 세르반테스가 같은 날 사망했다니, 우연 아닌 우연이군요.
천재들은 서로 통하는가....
셰익스피어 <소네트집>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반가운 건지, 미운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참, <치킨의 50가지 그림자>는 완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대한민국 치킨전>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한국 치킨의 역사를 잘 정리했더라구요. 맛있는 얘기, 계속 치킨얘기만 나오니까요.
왜 후라이드가 정석인가. 염지닭이란 무엇인가. 프랜차이즈, 피할 수 없는가. 뭐 이런 식이요.ㅎㅎㅎ

에이바 2016-04-21 16:41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고전은 어떤 버전으로 접하느냐에 따라서 작품에 대한 애정도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출판사마다 편집 스타일이 다르고 그러니까요... ㅎㅎ 그거 아세요? 문동에서 5월에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나온대요. 박형규 교수님 역으로 말이죠. 안 그래도 절판이고 그래서 어떡하나 했는데... 예습 차원에서 BBC 드라마를 볼 때입니다. 단발머리님.

요즘 EBS에서 세계테마기행 셰익스피어 편을 방영해주고 있어요.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주말에 재방도 해주니 시간 괜찮으시면... 우리가 사랑하는 제인도 비판할게 많잖아요. 셰익스피어 포기하지 마세요!!! 단발머리님!!!

치킨책도 꼭 보려고요. 표지부터 너무 재밌지 않아요? 대한민국 치킨전은 제목을 들어본 적 있는데 진짜 치킨의 역사군요. 최근에 삼대천왕 치킨편을 봤는데 역시 치킨의 세계란... 심오(?)하더라고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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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모디아노의 작품을, 정확히는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예전에 읽었던 작품, 정확히 발췌는 시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검색을 해도 모디아노의 시를 모르겠는거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라디오, 스페인어 이런 내용이 나왔던 것 같고 노트를 뒤져보니 다행히 제목을 적어두었다. 1989년에 출간된 소설 『유년기의 옷장Vestiaire de l'enfance』이었다. 문고판 버전으로 나온 1991년 버전. 기억이 난 김에 써둔다...


모디아노의 소설들은 기억을 헤매는 공통점이 있다. 대가들은 말년으로 갈 수록 작품이 더욱 단순하고 명료해지는 경향이 있다. 아마 이 소설도 그렇지 않을까. 이번 기회에 제대로 그의 글을 만나고 싶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존 니컬슨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스티븐슨의 '크리스마스 작품'을 엮어 나왔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 대한 괴상한 사건』과 『존 니컬슨의 불행한 모험들』이다. 『존 니컬슨의 불행한 모험들』은 국내 초역으로, 스코틀랜드 작가로서의 특색이 잘 투영된 작품이라 한다. 몰랐던 사실인데, 에든버러의 '작가 박물관'에서 기념하는 작가 세 사람 중 스티븐슨이 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작가인 것! 지킬과 존 니컬슨의 성격과 마지막이 다른 것도 흥미롭다. 지킬이야 알려져 있고... 존 니컬슨은 다소 띨한 인물인데 우여곡절 모험 끝에 해피엔딩으로 끝난다고 한다.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가 있을 듯 하다. 역자 역시 스티븐슨의 문체를 살리는데 고심을 다했다고 하니, 더욱 관심이 간다.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지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신진 작가의 작품이며, 많은 문학가들이 격찬하고 유수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이다. 전 세계 마약의 80%를 공급하던 마약왕이 건재하던 시절의 콜롬비아 역사와 개인의 운명을 교차시킨 작품이다.


나는 내 삶 전체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 불과 며칠 동안에 일어난 것을 얘기할 것인데, 이 이야기가 동화에서처럼 이미 과거에 일어났지만 미래에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주 명징하게 인식하면서 얘기할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게 된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16쪽) 


"똑똑함, 위트, 에너지 등 바스케스는 많은 능력을 타고났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을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해서 독자들은 그의 놀라운 능력을, 그의 이야기가 가져오는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마법을 망각하게 된다." (니콜 크라우스의 평)




저항의 미학 / 페터 바이스 지음


세 권 모두를 읽겠노라 추천하는 것은 아니고(될 리도 없지만) 대산문학총서의 새 작품이 나와 소개한다. 『저항의 미학』은 페터 바이스가 생애 마지막 10년을 바쳐 쓴 역작으로 원고가 무려 6,700매에 달한다.


유럽을 휩쓸었던 파시즘과 그에 대항하는 사회주의 세력의 저항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기록된 사건들은 모두 사실이자 실제 사건의 생생한 재현이며, 언급되는 책과 미술작품들은 실제 비평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작품이 출간되고, 세월이 흘러 우리말로 번역되었다는 것 모두 대단하다. 


"전후 독일 사회의 ‘망각’에 저항하는 소설." (위르겐 하버마스의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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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4-01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 ,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에이바 2016-04-01 18:57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저녁 되시길 바라요.

우끼 2016-04-01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순하고 명료해지지 않는 대가들 중 아시는 분이 있나요? 단순하고 명료해지면, 고착화되는 걸까요..

에이바 2016-04-01 19:08   좋아요 1 | URL
존 쿳시와 폴 오스터의 서간집을 읽고 있는데, 존 쿳시가 예술가의 삼단계에 대하여, 바흐와 톨스토이가 좀 더 단순해지는 예로 들었고요. 그와 반대되는 작가는 오스터에 따르면 제임스 조이스, 헨리 제임스가 있군요. 하지만 대체로 일관성 있다고 볼 수 있고 그렇기에 군더더기를 더 빼도 덜 빼도 똑같다고 합니다. ˝예술가의 삶에 규칙이 있을까요?˝ (폴 오스터는 이렇게 말하네요)

CREBBP 2016-04-2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됐나요? 세어보셨나요? 모디아노가 읽고 싶어져서요. 그리고 오스터의 아내 시리가 쓴 책도 독특한 것 같아서 관심이 가요.

에이바 2016-04-28 23:24   좋아요 0 | URL
댓글을 이제 봤네요 ㅠㅠ 오늘 보니 추락하는 것들의 소음이랑 편혜영의 홀이 되었더라고요. 왜 모디아노가 안 된건지 ㅜㅜ 저도 시리 허스트베트 책에 관심이 생겼어요. 미리 알았더라면 추천에 넣었을텐데 말이죠...
 
아틸라 요제프 시선 : 일곱 번째 사람 - 개정증보판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3
아틸라 요제프 지음, 공진호 옮김, 심보선 서문 / 아티초크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개정판을 읽다 구판을 꺼내었다. 첫 구매 감사카드가 꽂혀 있었다. 그 카드를 받을 무렵, 꽤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열일곱 편의 시가 추가된 개정판의 표지는 여전히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들이다. 아틸라와 빈센트의 곤궁한 삶과 예술성이 통하는 바 있기에,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번역이 다듬어져 더 부드럽게 다가오는 시들은 전보다 더 마음을 울린다. 심보선 시인의 서문을 읽으며 꽤 오래 생각에 잠기었다. 아틸라 요제프는 서른두 살이 되던 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른 둘…. 아아, 서른 둘…….


가난은 시인이 세상에 날 때부터 함께 해온 벗이기에 시에는 가난이 배어 있다.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지긋지긋한 존재. 거기 존재하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나는 곤궁…. 아껴 먹던 빵에 곰팡이 슬어 던져 버린 후, 며칠 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 시인은 펜을 든다. 이 가난에 굴복하지 않으리라. 머리가 울리고 뱃속이 요란해도 내 마음은 깨끗하고 아름다우리. 가진 것 이십 년 세월의 인생, 역사가 다이지만…. 그럼에도 시인은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잃지 않는다. 시를 읽으며 전해오는 따스함이 아련히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세탁부였던, 가난과 노동 때문에 젊음이 달아났던 그 여인, 늘 구부리고 일하던 모습의 어머니와 미국으로 떠난 아버지. 아틸라는 가족의 가난으로 인해 고아원에서 자라다 입양되었지만 그 집도 상황은 비슷했다. 일곱 살에 이미 돼지치기 일을 시작해 성인이 될 때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아틸라가 쓴 〈자기소개서〉는 그가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인생은 이 청년에게 신경쇠약증을 남겼다. ‘삶은 나를 강인하게 단련시킨 반면 더 이상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게 만들었다.’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소설 『시스터 캐리』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세상은 항상 스스로를 표현하려고 애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지요. 그래서 천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이는 음악으로 그들의 욕망을 표현하고 또 어떤 이들은 시로 그렇게 하지요. 연극으로 하는 이들도 있고요.”(629쪽) 그렇다. 예술은 타인의 표현을 빌려 내 마음을 보살피고, 때로는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하므로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시를 새롭게 쓰는 행위일는지 모른다. 아틸라 요제프의 언어는 번역가를 통해 새로 씌어지고, 독자의 가슴에 와 박히되 각기 다른 의미로 남을 것이다. 그렇게 예술은 새로운 곳에서 계속 발전하는 것이다. 사랑하던 이를 상실하고, 꿈꾸던 이상은 좌절되고 남은 것은 가난, 외로움 그리고 설움뿐이던 시인. 그가 쓴 시는 긴 울림을 남긴다. 시집을 들고 나갔다가 우연히 좋아하는 얼굴을 보았다. 그를 볼 때 입안에 맴돌던 시어들은 뭉클하기만 하였다.


하늘도 땅도

침묵은 가난한 자들의 것이라더라


안개와 침묵은 빛나지 않아

나는 그것들을 내 것으로 삼았지


〈안개 속에서, 침묵 속에서 〉중, 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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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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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을 읽기 전부터 아주 기대했었다. 반년 전, 『읽는 인간』을 읽고 위로를 얻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작가 인생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고른 단편들은 초기, 중기, 후기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초기 작품들은 오에의 청년기를 반영하는 듯 보다 선연한 색채와 개성이 보인다. 중기의 연작들은 모두 실리진 않았지만 서로 유기성을 보인다. 장애를 가진 장남 히카리(소설에서는 이요)와 아버지인 자신의 관계와 ‘읽기’를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하는 노력들이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 후기 소설은 중기 작품들보다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많이 덜어졌고,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초기 작품들은 모두 무척 재미있다. 이 시기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고립된 이미지들이다. 오에가 청년기를 보낸 1950년대 이후의 일본 사회 분위기를 예상케 하는 일종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독서 중 떠오른 단어들은 개인과 공통체, 무지와 이해, 폭력과 울분 그리고 무기력이다. 「남의 다리」에서의 구분짓기, 「사육」에서의 고립과 야만적 시선,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 전복, 「인간 양」에서 느껴지는 끝없는 수치, 「세븐틴」에서의 정치와 성의 문제... 작품에서 드러나는 현시성을 생각하면 이 작품들이 1957년에서 1961년 사이에 발표되었다는 것이 놀랍게 느껴진다.


문제는 중기 작품들이다. 『읽는 인간』에서 언급된 맬컴 라우리와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들을 탐독하는 시기이다. 오에의 읽기는 개인적 상황과 더불어 작품 속에 녹아든다. 대체로 현실을 소설에 반영하되 그 경계를 흩트리는 식으로 진행된다. 독서에서 얻은 문장과 사유를 발전시키는 과정에 글쓰기 또한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인 트리’ 연작은 오에의 관심사가 모두 담긴, 그만큼 밀도가 높은 작품이기에 읽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이 단편선에서 어떤 작품을 읽어야겠느냐 묻는다면 이 연작을 추천하겠다. 이 작품은 다케미쓰 토오루에게 작곡의 영감을 주었고, 소설에서 음악 발표회에 참석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장남 이요의 머리에 있는 수술 자국은 오에 자신이 어릴 적 얻은 상처와도 비슷한데, 소설 속에서 유년 시절 황어 떼를 보려고 잠수했다가 익사할 뻔 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요 역시 의도했는지 모르겠으나 잠수하다가 목숨을 잃을 뻔 한다. 겐자부로는 어릴 적 사고에서 어머니가 구해주셨음을 어렴풋이 기억하지만, 정작 장남이 목숨을 잃을 상황에서는 행동을 취하기보다는 블레이크의 시를 떠올리는 것이다. 오에는 죽음에 대해 그리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는 술을 마시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 힘이 빠지면 그대로 죽고 싶다는 충동을 행동에 옮기고 이타미 주조(친구이자 아내의 오빠)의 목소리로 깨어나게 된다.


이렇듯 삶에 대한 의지가 약해 보이는 오에를 붙든 것은 (해설에서 언급되듯이) 장남 히카리라고 볼 수 있는데, 아들의 장애는 이십대 후반의 그를 절망에 몰아넣었다.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꿈을 꿀까 하는 것은 작가이자 아버지에게 어떤 숙제와도 같은 것이다. 그를 이해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딸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조용한 생활’ 연작에서도 드러나는데, 이요는 모두에게 부담인 동시에 삶의 활력이자 사랑 그 자체다. 예상치 못한 순간, 너무 힘들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 이요의 한 마디는 오에에게 구원을 준다. 「불을 두른 새」의 마지막 대사처럼 말이다.


오에 겐자부로를 모르고, 그의 작품과 일생동안 벌인 활동을 잘 모르기에 위대한 작가를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글 잘 읽고 왜 딴지냐 하면, 오에의 청년 시절 잘 구비된 세계 문학들을 통해 『읽는 인간』에서 느낀 일본 문화의 자양분이 어디서 왔는가 하는 울분이 슬금슬금 피어오르다 중기작품에 등장하는 ‘원폭 난민’이라는 단어 때문에 터졌기 때문이다. 파리 현대미술관에서 이 ‘원폭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행위예술가의 오리가미 뭐 그런 전시를 마주친 기억이 났다. 그 전시가 있는 그대로 와 닿지 않았던 이유는, 비판의식이 결여된 인류애로 포장한 서양인의 예술 활동이 결국 전범국을 미화하는데 한 몫 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런 역함이 일었던 것일까. 동행한 이도 같은 의견이었다.


「거꾸로 선 '레인트리'」에는 핵 폐기 운동과 관련하여, 등장인물 간 논쟁과 결과가 묘사된다. 이 대목에서 해당 사안에 대한 오에의 입장을 짐작케 하는데... 오에가 9조회 활동과 일본 왕가로 상징되는 폭력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혀 왔으나, 원자폭탄 투하라는 사안만을 고려한다면 과연 일본의 편에 서지 않을 수 있냐는 의문이 들었다. 원폭으로 인한 피해자들(개인)과 그 결과를 생각하면 이는 단연 비극이고, 반복되지 않아야 할 역사이다. 그러나 그가 참여하는 핵 폐기 운동이 ‘일본은 피해자’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고 전범국의 역사를 미화하는데 어떠한 영향도 없을 것인가? 일본의 양심으로 불리는 작가에게 실례이겠으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은 위키의 발언을 참고하였다. 그러나 의문은 작품을 읽고 떠오른 것이며 오에의 다른 저작을 읽지 않았고, 그의 활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글을 썼음을 밝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집은 오에 겐자부로 입문서로 더할 나위 없다. 초기 단편들부터가 아주 훌륭하고, 진입장벽은 후기작품으로 갈수록 높아지니 부담이 덜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작가 인생을 오에 스스로 정리하는 의미에서 작품들을 추려내고 개고하는 노력을 들인 선집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시간을 들여 좀 더 깊이 읽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움과 의문은 뒤로 하고, 지성의 역사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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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6-03-25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익사를 읽으면서 너무 이해가 잘 안갔었는데 그의 삶을 전반적으로 설명해주는 거 같아요. 다 읽고 다시 올께요

에이바 2016-03-25 16:52   좋아요 0 | URL
이 선집으로도 왠만큼 커버가 가능한 듯 해요. 기회가 닿으면 만엔원년의 풋볼, 개인적인 체험 이 정도 작품만 더 읽어 보려고요. 익사, 제목만 들어도 숨이 막히네요 ㅜㅜ 본문에 쓴 일화와 관련이 있으려나요?

CREBBP 2016-03-25 18:27   좋아요 0 | URL
리뷰에 언급하신 중기 작품들의 내용과 후기 작품 내용이 익사의 일화들과 꽤 겹쳐요

맥거핀 2016-04-16 0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나온 소설들만 보자면 오에 자신도 아마 그런 고민들을 내내 해왔던 것 같습니다. 가해자이자 현재에도 어떤 군국주의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일본인으로서 반전과 반핵을 이야기한다는 것의 내재한 어떤 위험들 말입니다. 이런 행보가 본인들은 원치않을지라도 또한 군국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일본정부에 이용되는 것도 사실이구요. (비슷하게 소설에도 반전과 반핵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쫓아버렸다는 한 일본남성의 이야기가 나오죠.) 말씀하신대로 한국인으로서 껄끄럽게 여겨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과연 간단하게 말해서 그럼 일본인으로서 반전과 반핵을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다른 것을 덮기 위한 시도인가, 라고 묻는다면 또 그것에도 예스라고 답하기는 어려운 것도 분명 사실인 듯 합니다. 가해자로서의 일본과 피해자로서의 일본, 그 둘 사이는 분명히 분리하여 짚고 넘어갈 지점이 있지만, 그것이 단순히 분리되지만은 않으니..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마 이 경우에는 단순화시키는 것이 보다 위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부분이 소설에도 복잡하게 남아있는 것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리뷰 예전에 읽었는데, 시간이 나서 다시 댓글달러 들렀습니다만..처음에 리뷰를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과는 무엇인가 다른 얘기만을 하고 가는 것 같습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

에이바 2016-04-17 11:56   좋아요 0 | URL
맥거핀의 말씀과 비슷한 내용을 리뷰에 썼다 지워버렸는데요. 그 이유는 원폭 피해자와 반전, 반핵문제에 대한 저의 지식이 피상적이라 느껴서 입니다. 정보를 찾다 겐자부로 위키에서 박유하의 저서 발췌문을 봤는데 가져오면- 한국에서 열린 강연에서 한 청중이 원폭피해에 대한 글은 결국 일본이 피해자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하자 오에가 말하길, 글쎄요 한국인 피해자도 그렇게 말할까요?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답변에서 파생되는 의문은 해당 위키에 잘 전개되어 있고 일부 답변도 되어 적당히 참고하였습니다만 의견을 전개하여 밝히기엔 제가 아는 것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글을 읽으며 가끔 두려워지는 것은 나의 읽기가 오독이진 않을까 하는 것인데요. 오에 겐자부로의 글은 이번이 두 번째라 판단할 깜냥이 되질 않고, 그에 대한 인상은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작가에 대한 존경이고요. 그렇기에 편견, 그러니까 일반화할 수 없는, 일본인과 그 사회에 대한 저의 체험과 오에 겐자부로의 글과 인생에 대한 몰이해가 부당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좀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제 체험을 밝히고, 의문점을 제시했는데요. 감정적이군요... 아무튼 이 단편집을 읽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기에 반핵운동에 대해 공부할 의욕도 타오르질 않고 무엇보다 아주 방대하더라고요.

그러면 적어도 오에 겐자부로가 쓴 히로시마 노트를 읽어봐야지 했는데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마는 저의 단점이 발현하여 그만... 이렇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당시에 떠오른 생각은 오에 겐자부로가 성찰하는 지식인이기는 하나 일본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편견을 제하고 조심해서 접근하고 싶다 해도 한국인이기에, 저를 구성하고 있는 정체성에서 오는 한계점이 있듯이 (비교하긴 송구하나) 오에 겐자부로라는 대작가 역시 그러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말씀하셨듯이 복잡한 문제이기에 단순화시키고 싶지 않았고요. 다음에 관련 글을 읽게 되면, 혹은 이 책을 재독하면 지금의 심정과 다르겠지 하는 마음에서, 훗날의 저를 위해 저 문단을 남겼습니다. 맥거핀님의 댓글 감사드립니다. ^^
 
[시스터캐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시스터 캐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6
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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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채워지지 않는 꿈. 정신을 갉아먹고 유혹하는 이 허망한 환상은 우리를 손짓하며 부르고, 손짓하고 또 부르다가 마침내는 죽음과 소멸이 그 힘을 녹여버리고 눈먼 우리를 자연의 품으로 되돌려보낸다. (383쪽)


이 작품의 미덕은 일단 아주 재미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19세기 말, 20세기 초 도시화되는 미국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케이크를 한 조각 깨끗이 잘라 접시에 올려 내듯이, 아주 예리한 시선으로 사람들의 욕망과 허위를 포착해낸 그야말로 칼날 같은 소설이다. 당시엔 ‘저속하고 문란한 책’이라는 악평을 받았으며, 그 여파로 인해 드라이저의 두 번째 소설은 십년이 지나고 출간된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의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니, 역사의 승리자라 할 것이다. 반발이 거세 사장되기를 기다렸던 초판은 1008부가 제본되었다고 하는데 왠지 중국인들이 좋아할 숫자라는 생각을 좀 했더랬다.


주인공은 열여덟 소녀 캐리. 고향마을을 떠나 시카고에 도착해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지만 생활비를 보태야 할 언니네 집의 검약적 분위기에 곧 주눅이 든다. 겨우 구한 일자리는 집세를 내고 나면 교통비도 모자라는데 그마저도 비를 맞고 앓아누워 잘리고 만다. 귀향해야 할 상황에 만난 드루에는 캐리를 데려다 인형 놀이를 시작한다. 그의 집에서 가장 반짝이는 가구가 되어, 그의 욕망을 채워주는 캐리. 그녀는 똑똑하지는 않지만 감성이 풍부했고, ‘쾌락을 좇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드루에는 경제적 원조와 환경을 통해 문화를 제공함으로써, 그녀에게 우아한 몸짓과 태도를 학습시킨다.


한편 시카고의 성공한 이들이 모이는 술집 지배인 허스트우드는 처자식을 속물처럼 여기지만, 자신의 삶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 드루에의 초대로 캐리를 만난 그는 딸뻘인 그녀를 유혹하려 애쓴다. 언제나 더 나은 것을 지향하는 캐리는 허스트우드의 노련한 매너에 끌린다. 우연히 출연한 연극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캐리를 보고 드루에는 그녀를 재평가하며, 결혼할 마음을 먹는다. 허스트우드 역시 그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아내의 의심이 한껏 깊어진 상태였다. 결국 그는 캐리를 거짓으로 불러내 뉴욕으로 데려가 새로운 시작을 희망하지만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캐리는 예쁘고 감성적이며 성공 후에도 친절함과 고운 심성을 잃지 않는다. 혼전동거를 하게 된 것에는 캐리의 욕망도 작용하였지만, 그녀와 결혼하겠다던 남자들의 기만 때문이기도 했다. 아직 어려 경험이 부족한 여성을 손에 넣은 후, 불성실해진 남성들의 변화는 캐리의 젊음과 열정과 대비되며 그녀가 이 관계를 종료하는데 힘을 실어준다. 결국 캐리를 ‘준비’시켜 인생이라는 무대로 내보낸 선생은 드루에와 허스트우드였던 것이다. 두 남자에게서 얻은 교훈으로 캐리는 성공한 여배우가 된 이후 찾아오는 어리석은 유혹들에 반응하지 않는다. 또한 에임스를 통해 그녀가 갖지 못한 것,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욕망하게 된다.


시카고에서의 캐리가 저임금 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주었다면, 뉴욕의 허스트우드는 성공했던 삶이 어디까지 추락하는지를 보여준다. 이혼은 경제적 몰락을, 범죄는 사회적 몰락을 가져온다. 인생의 절정기, 장년을 넘긴 허스트우드의 변화는 서서히 이루어진다. 그 나름대로 분투하나 옛 광영에는 이르지 못하며, 분명한 위기에 대처하기보다는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자리를 구하려던 노력은 경제 불황으로 인한 노동쟁의와 맞물려 그를 좌절시킨다. 결국 허스트우드는 현실을 부정하며 과거에 취해 낮에도 백일몽을 꾸며, 무기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가 궁핍과 비참의 세계에 들어서는 과정은 너무도 생생하며, 캐리의 성공과 대비되어 비극성을 더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욕망에 이끌리는 삶을 산다. 해외여행과 경마장 정기권으로 상류층이 되고픈 욕망을 드러내는 허스트우드의 가족들, 아름다운 여성을 유혹하고 만족을 얻는 드루에,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욕망하며 사회적 지위를 팽개치게 되는 허스트우드,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감성에 안주하는 캐리에 이르기까지... 욕망에 따라 행동한 누구는 부와 명예를 누리고, 누구는 몰락하는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 세계관에서 인간은 결정적인 운명에 저항할 수 없기 때문인데, 사회상을 충분히 녹였기에 설득력을 얻는다. 그리고 수동적인 캐리, 욕망에 충실한 캐리가 성공의 길에 이르는 장면에서 고개 돌려 비난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그녀의 성장을 지켜봐온 데서 오는 연민도 있을 테지만, 그러한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정직한 노동이 보수가 적고 견디기 힘든 것이라면, 그 길이 너무나도 멀고 멀어서 발과 마음만 지칠 뿐 아름다움에는 결코 닿을 수 없다면, 아름다움을 좇는 끌림이 너무나 강렬하여 칭찬받는 길을 버렸다면, 그래서 자신의 꿈에 빨리 닿을 수 있는 멸시받는 길을 택했다면, 그 누가 먼저 돌을 던질 것인가? 악이 아니라 더 나은 것에 대한 갈망이 그릇된 길로 이끄는 경우가 더 많다. 악이 아니라 선이, 이성적인 사고에는 익숙지 않고 느낄 줄만 아는 정신을 유혹하는 일이 더 많은 것이다. (651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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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6-03-24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막 끝냈어요. 초 중반에는 좀 지루했는데, 반 넘어가서는 너무 재밌어서 밤새도록 읽었다는. 인터넷 치면 원문 Audiobook 이 있어요. 가끔 그거 들으면서 들었어요.

에이바 2016-03-25 12:33   좋아요 0 | URL
방대한 분량임에도 힘들이지 않고 읽었어요. 별 다섯 주려다 참았다는... 이번 리뷰도 부족함이 많군요. 쓰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못 쓴 듯... 리뷰 읽으러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