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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크로메가스.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0
볼테르 지음, 이병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볼테르의 작품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딱히 떠오르지는 않는데 아마도 그가 18세기의 키보드 워리어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한다. 물론 농담이다. 아마 그의 이름이 익숙하게 느껴짐에도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 그랬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를 어떤 출판사 버전으로 읽을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미크로메가스』가 함께 실린 문학동네 판으로 구입했고 또 책장에 꽂아둔 채로 한참의 시간을 보내버렸다...
먼저 『미크로메가스』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하고 넘어가자면, 이 익살맞은 단편에 볼테르는 외계출신의 거인 둘을 등장시킨다. 철학 우주여행 중인 미크로메가스와 토성 난쟁이(미크로메가스에 비하면 난쟁이라는 얘기)는 지구에 도착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 작아 이 행성에 생명체가 살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때 그들에 부딪친 한 탐사선에 좀벌레 철학자(...)들이 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랍게도 지성언어인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거인들은 인간들에게 ‘겉으로 보이는 것을 근거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남기고 떠나버린다. 그가 남긴 사물의 궁극이 담긴 책은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는 순진한 청년 캉디드가 등장한다. 볼테르는 이 불온작품을 가리켜 자신은 어느 독일인의 원고를 번역하였을 뿐이라고 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발뺌이지 않은가! 독일 베스트팔렌의 아름다운 성에 살고 있던 캉디드는 자신의 세계가 언제나 최선의 아름다움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팡글로스 선생의 가르침을 의심하지 않는다. 사촌누이 퀴네공드와 키스했다는 죄로 쫓겨난 캉디드는 불가리아의 군대에 들어가 고문을 받다가 겨우 살아나 포르투갈로 넘어가는데 거기서 종교재판을 받는가 하면, 사랑하는 이들과 재회 하지만 살인을 저질러 도망을 쳐야한다. 도주한 라틴아메리카에서 엘도라도를 발견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서 보물들을 잃어버리는 등 다사다난한 모험을 겪는다.
종교재판, 고문, 살인, 식인종, 거짓말, 자연재해 등 인간이 만든 제도의 문제점과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 캉디드는 의문한다. ‘과연 이 세계는 최선의 결과인 걸까?’ 이러한 의문에 응답하는 이로는 그 생각을 심어준 팡글로스(낙관주의자)와 마르틴(비관주의자)이 등장한다. 우여곡절 끝에 사랑하는 퀴네공드와 재회한 캉디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야하는 사람이어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에 캉디드는 수도승과 어느 선한 노인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깨닫게 된다. ‘노동을 통해 권태, 방탕, 궁핍에서 멀어질 수 있’으며, ‘자신의 정원은 자신이 가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낙관주의는 볼테르와 동시대를 살아가던 라이프니츠의 낙관론(신은 전지전능하기에, 그가 만든 세상은 최선의 세계이다)이다. 이 책은 그에 대한 비판이며, 현실적인 악과 부조리 앞에 캉디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낙관주의는 나쁠 때도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우기는 광기야.’(135쪽) 세상 풍파에 시달리며 정신을 단련한 캉디드는 더 이상 낙관주의니 비관주의니 하는 것에 휩쓸리지 않는다. 자신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타인의 생각을 제한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의견의 차이를 인정하고 삶의 지혜를 받아들인다. 캉디드의 모험이 콩트처럼 이어지고, 종자와 함께 여행한다는 점에서 『돈키호테』가 떠오르기도 했다. 철학 이야기를 떠나 버디물, 로드 트립으로 읽어도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