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생거 사원 을유세계문학전집 73
제인 오스틴 지음, 조선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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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생거 사원』은 제인 오스틴의 첫 소설이지만 그녀의 유고작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수전』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동명의 타 소설이 출판되어 오스틴이 판권을 회수했다. 여주인공의 이름이 캐서린으로 바뀐 것 외에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고 하며, 제목이 『노생거 사원』이 된 것은 유족의 뜻이었다고 한다. 첫 소설이라 그런지 능숙함이나 세련미는 부족하지만 풋풋함이 있으며 화자의 빈번한 개입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노생거 수도원』으로 나온 펭귄클래식 버전을 먼저 읽었는데, 내 취향에는 을유판 『노생거 사원』이 더 맞았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등장인물 간의 대화나 문맥을 보다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역자의 주석과 해설도 꼼꼼하여 기쁘게 읽었다.

 

어떻게 보면 『노생거 사원』은 전형적인 <오스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 적령기의 두 남녀가 만나 무도회에서 춤을 추고, 대화를 나눈다. 집 구경도 하고 편지도 보내고 그러다 결혼을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독특한 여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작가가 서두에서 밝히고 있듯이, 캐서린 몰란드는 여주인공이 되기에 부족한 자질을 지니고 있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외모로 태어나 무엇 하나 뛰어난 점이 없기 때문이다. 여동생도 잘 외는 시를 겨우 외는데다 활동적인 성격이다보니 숙녀다운 몸가짐을 익히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적한 시골 출신이기 때문에 경험이 없어 사람을 대하는 매너가 부족하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이 빠져있는 고딕소설의 프레임에 맞춰 현실을 해석한다. 자신의 고향 풀러튼은 현실이고, 바쓰와 글로스터셔(노생거 사원)에서 접하는 상황들은 새롭기 때문에 고딕 스타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그녀는 현실과 소설을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자벨라는 그가 목사라서 더 좋다며 "난 그 직업에 끌려"라고 했다. 이렇게 말할 때 한숨 비슷한 걸 쉬었다. 그 애틋한 감정이 무엇인지 캐서린이 캐묻지 않은 건 실수였다. 사랑의 섬세함이나 우정의 의무에 대한 경험이 일천하다 보니 친구에게 어느 시점에 미묘한 농담을 적절하게 던져야 하는지 또는 어느 시점에 말해 달라고 졸라야 하는지 몰랐다. -38p

 

참신하고도 분별력 있는 사랑스러운 감정 표현을 듣고 캐서린은 알고 있는 모든 여주인공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녀의 친구는 다른 때보다 화려하게 말할 때 가장 사랑스러워 보인다. -136p

 

캐서린이 자기 딴에는 나름의 예의를 차리느라, 대화를 할 때 자기 주장이 그리 강하지 않다. 게다가 눈치가 없어서 소통이 잘 되지 않는데 이럴 때는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경험이 부족한 탓에 자신의 사고방식에 갇혀, 남을 의심한다거나 그의 속마음을 짐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캐서린과 그의 오빠 제임스는 쏘오프 남매의 약은 꾀에 놀아나게 된다. 그녀의 이런 점은 헨리에 의해서도 일깨워지는데, 이자벨라의 바람기에 대한 대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캐서린은 이 말도 못 알아듣는다...

 

헨리가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의 행동 동기를 별생각 없이 그냥 받아들이는군요." "네? 무슨 말이죠?" -149p

 

반면 헨리는 매력적이고 똑똑하며 짓궂은 인물이다. 그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어떤 면에서는 캐서린의 교육-회화 강연과 전반적인 매너-을 담당한다. 그의 말을 듣노라면 우월감을 바탕으로 상대를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성들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은 그의 여동생 엘레노어에 의해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다.

 

"지금으로서는 더 진지한 사과를 듣긴 틀렸어요, 몰란드양. 멀쩡한 기분이 아니라서 저래요. 하지만 오빠가 혹시 어떤 여성에 대해 부당한 말을 하거나 내게 불친절한 말을 하는 것 같다면 그건 전적으로 오해라고 확신해요." -129p

 

사실 헨리는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다. 여성들을 무시한다기엔 다른 남성들이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무시했던 <고딕 소설>을 모두 읽었으며 이에 대해 캐서린에게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또한 캐서린이 범한, 아버지에 대한 치명적인 실례에도 성숙한 태도로 그녀의 잘못을 고쳐 주며 그녀가 <상식> 선에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헨리가 캐서린을 가르치는 모습이 자주 나오다보니『노생거 사원』은 젠트리 버전의 『마이 페어 레이디』란 생각도 든다. 

 

소설 말미에서 작가가 밝히고 있듯이 헨리가 캐서린에게 진지해진 것은 사실 캐서린이 그를 너무 좋아해서다. 캐서린은 헨리에게 첫 눈에 반했고 아주 노골적이었다. 거기서 나아가, 캐서린은 말 그대로 헨리를 숭상한다.

 

캐서린은 헨리 틸니가 잘못할 리가 없다고 쉽게 믿었다. 가끔 그의 행동에 놀랄 때가 있지만 그의 의도는 언제나 옳았다. 이해하지 못해도, 이해한 것을 좋아하는 만큼이나 그것도 좋아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129p

 

하지만 소설을 잘 읽어보면 헨리 역시 캐서린을 좋아하는 티를 냈다. 쏘오프의 얼쩡거림에 <저 작자는 누구냐> 질투를 보이는 것이 하나요, 그녀의 필사적인 사과에 흐뭇해하는 것이 둘, 그리고 그녀를 놀리지 말라던 여동생에게 <익숙해지도록 연습을 시킨다>고 대답하는 것이 셋이다. 사실 틸니 장군이 캐서린을 며느리감으로 고려하게 된 계기도 둘째 아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 소설은 금사빠(?) 캐서린이 순진한 사랑스러움으로 <이성적이고 잘 교육받은 남성> 헨리를 손에 넣는 과정인 것이다!

 

『노생거 사원』은 단순한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소통> 그리고 <성장>에 관한 글이다. 작품 초반에 캐서린은 가족을 떠나 새로운 도시로 간다. 앨런 부부가 함께이지만 친구를 사귀고 사교 활동을 하는 것은 스스로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마치 우리가 대학을 가거나 이사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 캐서린이 종종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보이는, 노련하지 못한 어수룩한 모습들은 성장하는 과정이며 곧 누구나 거쳤을 법한 경험이기도 하다. 상대방과 <소통>하기 위한 진실성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캐서린을 손에 쥐고 흔들려는 쏘오프 남매의 획책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틸니 남매와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다. 풀러튼에서 바쓰로, 글로스터셔로 그리고 우드스턴에 이르기까지 캐서린은 조금씩 매너를 갖추어 간다. 여주인공으로서 부족했던 자질은, 그녀가 소설과 현실을 더 이상 혼동하지 않고 매너를 갖춤으로써 채워진다. 일종의 성장기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에 어필하는 점이며 제인 오스틴의 글이 가지는 힘이 아닐까 한다.

 

역자 해설인 <책 읽는 여성을 위한 옹호>도 아주 좋다. 기회가 되면 꼭 읽으시길 권한다.

 

 

2007년, 영국의 ITV에서 제인오스틴 시즌이라고 오스틴 원작소설을 토대로 한 티비영화를 방영한 적이 있다. 96년작인 『엠마』를 제외하고 새로 찍은 작품은 『맨스필드 파크』, 『노생거 사원』 그리고『설득』 세 편이다. 『노생거 사원』의 영상화는 각색이 많이 된 편으로, 특히 캐서린의 고딕풍 상상이 일품이다. 심지어 여주인공이 펠리시티 존스라 너무 이쁘다. 헨리 역할로 나오는 JJ 페일드도 잘생겼고, 엘레노어도 기품이 흐른다. 요즘 잘 나가는 캐리 멀리건이 이자벨라 역을 맡았다. 『맨스필드 파크』의 여주인공은 빌리 파이퍼가, 『설득』에서는 샐리 호킨스가 열연을 했다.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바로 『설득』으로, 나무랄 데 없는 연기가 펼쳐지는 바쓰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냈다. 시대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볼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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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4-03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권의 책이 도착했는데도 아주 그냥 장바구니에 또 책을 쓸어담고 있네요.
사실 저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두 권 읽었고, 두 권다 그닥 매력적으로 느껴지진 않았거든요. 노생거 사원도 여러번 구매를 망설이던 책이었는데, 이 리뷰를 읽으니 이것이 바로 내가 읽을 소설이다! 하는 느낌이 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특히나 헨리와 캐서린의 관계가 `캐서린이 너무 좋아해서` 시작됐다는 부분이 아주 강하게 끌려요. 조만간 구매할건데, 땡투입니다, 에이바님. 후훗.


아. 리뷰의 제목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

에이바 2015-04-03 13:46   좋아요 0 | URL
오스틴 소설은 영상화가 제 맛이죠ㅋㅋㅋ 저도 소설이 오히려 지루하게 느껴지는 희한한 경험을 하다 딱 맞는 역자를 만난 것 같아요. 오스틴 연구하셨더라고요. 캐서린이 헨리를 너무 좋아하는, 모냥 빠지는(?) 여주긴 하지만 무척 귀엽답니다. 을유판에선 그 순진함이 잘 드러난 것 같아요! 다락방님께도 재밌게 읽혔으면 좋겠어요. 제목이 너무 노골적이었나요? 하핫

cyrus 2015-04-03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을 읽고 나서, 저도 오스틴의 소설을 읽어보기 시작했어요. <이성과 감성>을 읽고 있는데, 지금이나 그때나 매너 좋은 남자가 짱입니다요. ㅎㅎㅎ 집필, 발표 연도순으로 소설 한 권씩 읽어나가려고 합니다. <노생거 사원>을 구입하게 되면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판본을 선택해야겠습니다. 역자 해설이 궁금합니다. ^^

에이바 2015-04-03 13:52   좋아요 0 | URL
오스틴이 매너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런지 남주들이 매너남이에요! 훈훈하고 바람직합니다. <설득>의 남주는 좀 냉랭한데 이것도 여주 잘못이라 ㅠㅠ 저도 이번 기회에 오스틴 다시 읽기를 해볼까 해요. <노생거 사원>은 을유판이 제일 좋았습니다.ㅎㅎ

AgalmA 2015-04-03 1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 제인 오스틴 마니아 수준의 분석이시네요!
혹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은 어떤 판본이 좋은가요?
죄송합니다. 제가 여성작가 고전쪽은 초보라서 너무 무식한 질문을...;

에이바 2015-04-03 19:27   좋아요 1 | URL
Agalma님 과찬이세요. 전 을유판 <워더링 하이츠>가 좋더라고요. 이 작품은 문학동네 판이 인기가 많은 것 같아요.

AgalmA 2015-04-03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제인 오스틴으로 착각해서 얼른 고쳤더니 그새 걸렸네요ㅎ...약간 성가신 질문일 수도 있었는데 고맙습니다^^

에이바 2015-04-03 19:29   좋아요 1 | URL
아니에요! 제 을유 사랑(?)을 표현할 수 있어 좋았어요ㅎㅎ

네오 2015-04-2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요새 설득을 읽고 있기는 한데,, 읽었다고는 하지만 첫페이지요 ㅋ 그전에 다시 연보를 읽었봤어요,,티비시리즈로 봤지만 책을 볼때는 또 다른 느낌 이더라고요, 그런데 너무 남성을 수호천사로 보더라고요 ㅎ

에이바 2015-04-28 23:25   좋아요 0 | URL
네오님 정확하게 보셨어요. 앤 엘리엇에게 웬트워스는 수호천사가 맞습니다ㅋㅋㅋ 설득 리뷰 쓰려고 했는데 자꾸 미루고 있네요. 드라마보다 책이 더 정적이고 앤은 더 답답하고 그래요.

네오 2015-04-28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네, 그런데, 제인이 연애경험이 없어서 그런가 아닐까라는 추측만 하고요, ㅋ 제가 보기에는 빅토리아 시대에 이만큼 남성통틀어서 가장 펀하게 쓰는 작가는 없었다는게 저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만,,

에이바 2015-04-28 23:41   좋아요 1 | URL
지금도 재밌는데 그 시절엔 진짜 날렸겠지 싶어요. 좀 더 열린 사회였다면 인세부자가 되었을텐데요. BBC 드라마 중에 오스틴 말년을 그린 작품에선 아가씨들이 제인보고 팬이라며 꺅 소리지르고 그러더라고요. 각색은 있겠지만요.

2015-04-28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28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야리바바 2019-11-13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생거사원을 읽고싶었는데, 어느 출판본이 좋을지 미리보기를 읽어가며 비교하다가 에이바님의 글을 읽고는 신뢰가 확 가서 을유로 정했습니다. ^^
 
엄청멍충한 - 기묘한 이야기에 담아낸 인간 본성의 아이러니
한승재 지음 / 열린책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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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여행지에서 만난 니안niian이란 인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다음에 전개될 이야기들은 자신이 쓴 것이 아니라, 니안의 글을 받아 번역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마치 톨킨 옹이 <나는 프로도 배긴스의 레드북을 번역했을 뿐이다.>라고 했듯이! 참신한 시작이었다. 이 책이 나오게 된 연유도 인상 깊다. 홍대 앞 놀이터에서 파는 책들을 열린책들의 편집자가 보게 되었고, 읽어보니 재미있어서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이 편집자는 에필로그에서 니안의 하수인4로 격하되었다. 이런 뒷얘기를 듣고보니 유행어 <될놈될>이 생각난다. <될 놈은 뭘해도 된다.>는 뜻이다. 내 생각엔 한승재 작가가 그런 이가 아닌가 한다. 등단 없이, 내가 쓴 글이 국내 유수 출판사에서 출간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것도 아주 우연한 방식으로? 책 얘기를 하기에 앞서 작가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엄청멍충한』에는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비둘기파티」는 1,2편으로 나뉘어 있어 하나로 쳤다.) <멍충>이라는 표현이  나올 때마다 표시해봤는데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미처 헤아리지 못한 부분도 있겠지만 다섯 군데를 찾았다.

 

27p 멍충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43p 성실하지만 멍충했던 이들의 종착지, 성실하고 멍충한 사람들

154p 이렇게 멍충한 애국자

159p 부지런한 멍충이들

 

이 단어를 노골적으로 사용한 부분은 몇 군데 되지 않지만, 제목이 『엄청멍충한』인 이유는 말 그대로 멍충한 이들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멍충>이라는 말은 어감이 세지 않고 애교스럽다고 해야 할까. 약간의 핀잔이 섞인 듯한 기분이 든다. 멍청하다고 하는 것보다 조금은 덜 멍청한 느낌이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그런 의미의 <멍충이들>이다. 「비둘기파티」에서처럼 실소를 뿜어낼 정도로 우스운, 멍충이들이 있는가 하면, <뒤돌아보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검은 산」의 멍충이도 있다.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벌이는 <멍충한> 일들은 무심코 읽으면 바보같이 느껴지지만 돌아서면 그것이 나의 모습이 아닌가, 하여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독특하고 기발하게 버무려내는 얘기들은 함께 실린 일러스트를 통해 시각화되기도 한다. 작가가 건축가라 그런지 그림도 발군의 실력이다. 한편 「비둘기 파티」와 「자살에 의한 타살」에서 그려내는 상황들은 다소 기괴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각각의 단편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한번쯤 겪어봤을 법한 일들을 소재로 다루고 있으며, 그 때의 막연했던 느낌을 잡아내는 장면에서는 공포물이 아님에도 등허리가 선뜩해진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성인용 라벨을 붙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미성년자 열람 불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설명하긴 힘든데... 약간 위험한 책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재미있단 얘기다.

 

조금 더 사족을 붙이고 싶은 단편은 「직립 보행자 협회」이다. 제목만 봐도 그럴싸한 이 글은 라디오헤드의 「Just」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영감을 받은 글이다. 노래만큼이나 수작인 뮤직비디오는 스틸 사진으로 책에 실려있는데 시간이 허락한다면 한번은 감상하길 권한다.(영상은 아래에) 이 글에서는 척추가 푸딩처럼 녹아내리는 현상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이 현상의 흑막으로 등장하는 톰 요크(라디오헤드의 보컬)은 특유의 춤사위로 유명한 사람이다. 팬들이 애정을 담아 오징어춤이라 부르는 그의 춤실력은 「Lotus Flower」에서 예술성이 만개하였다. 나아가 「Atom for Peace」에서는 행위예술처럼 느껴진다. 전지적 팬 시점에서, 이 사람의 본업이 뮤지션이 아니라 댄서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오징어춤의 시초는 「Idioteque」의 라이브 영상이었다. 「Just」에도 잠깐 나오긴 하는데... 글 속에서 <척추가 녹아내리는 기분>을 춤으로 표현한다면 톰의 오징어춤이 아닐까 한다.

 

이 단편을 재미있게 읽어서 그런지 라디오헤드 멤버들에게도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실력이 된다면 번역이라도 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톰 요크의 이름을 <Thom Yorke>라고 써 줬으면 더 좋았겠다는 것이다. 일부러 그렇게 쓴 것 같기도 하지만 뭐, 라디오헤드를 대놓고 언급했는데 무슨 일이 있으랴?


뒤에 실린 「불필요할 수도 있는 독후감」을 읽고보니, 무릎을 탁 치게 된다. 교통카드에서 거울 속의 비친 상에 이르기까지 니안은 내안에 들어와 한바탕 휘젓고 갔구나!

 

 

61p 그가 순간 일어서면서 느낀 것은 남자들에게는 흔히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는 이른바 <오르가슴>이라는 따사로운 폭풍이었다. 분명히 그랬다. 몸속의 연유와 꿀과 햇빛이 뒤섞여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 겪는 나른한 느낌에 눕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63p「어후, 그동안 직립 보행 하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습니까?」 아, 직립 보행이란 얼마나 눈물 나도록 슬픈 일이던가. 미고는 그동안 서서 보낸 자신의 시절이 힘겹게 느껴져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등허리가 출렁이는게 느껴졌다. 너무 간지럽고 야릇한 기분에 그는 신나게 웃어 버렸다. 정확하게 미친놈의 형상이었다.

 

89p 멜팅 현상이 지구를 뒤덮기 시작할 무렵, 허리가 녹아내린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나뒹구는 모습은 그리 좋지만은 않은 광경이었다. 런던에서는 최초로 응급 침대 제도를 도입했다. ... 공무원들은 매시간 도시를 돌며 응급 침대를 깨끗이 닦아 두었다.


92p 신체 퇴화는 인류 진화 역사상 최초의 역주행이었다. 이것은 인류 진화 그래프가 하향 곡선으로 꺾이는 점을 의미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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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3-30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가 컬러링북 같습니다. 열린책들 출판사에 나온 책치곤 표지 디자인이 엄청 심플하군요. ^^;;

에이바 2015-03-30 19:40   좋아요 0 | URL
작가가 그린 일러스트를 바탕으로 한 디자인이에요. 단편 중 하나인 비둘기 파티인데 처음엔 저도 심플하다고 생각했는데 글 읽고 나니 표지가 색달라 보여요. 말씀대로 컬러링북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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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바 유지 지음, 이영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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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대넓얕』이라는 책이 인기다. 서점가 동향을 취재한 기사에 따르면, <지식을 보여주는> 행위가 트렌드가 되었기 때문에 이 책이 인기라나. 그래서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들을 방송에서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일단 <뇌섹남>이 뇌가 섹시한 남자의 준말인 것은 맞다. 하지만 처음 이 용어가 등장했을 때의 뜻은 <지식이 풍부한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소통할 수 있는 남자>가 섹시하다는 거였다. 여성과 남성의 입장을 아울러 대화할 수 있는 남자, 말이 통하는 남자 그래서 이 말이 등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면, 어떤 뇌섹남은 페미니스트가 아닐까? 페미니스트가 무엇이고, 여성주의가 왜 출현하게 되었는지 알고있는 이 말이다. 페미니즘의 시작은 남성과 여성 두 개의 성 중에 어떤 것이 우월하고 열등한지 논하는 것이 아니라 양성이 평등하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었다는 걸 알고있는 사람... 어쨌든 여성의 입장을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남자가 뇌섹남의 첫 의미였다. 단어의 뜻이야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서 기사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육체미의 시대를 떠나 지성미의 시대가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똑똑하고, 풍부한 지식으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남자가 무조건 섹시한 것은 아니다. 섹시하다고 느낄 수 있는 매력 중 하나인 것은 맞다. 이것도 어느 기사에서 봤는데, 사회가 발전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날수록 꽃미남이 인기가 많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사회가 발전한만큼 다양한 매력을 찾게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여성이 남성에게 찾는 매력이 외모나 능력보다 <소통>에 집중함으로써 현실적으로 변한 것 같기도 하다. <말이 안 통하는데 어떻게 살아!>라는 뜻 같기도 하고...

 

얘기를 하다보니 옆으로 샜는데... 아무튼 다양한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대화의 물꼬를 틀어주고, 결과적으로 흥미로운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교양>을 쌓는 것 자체가 유행이라니,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현상이라 생각한다. 넓고 얕은 지식을 쌓았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이 될까. 바로 사고력 증진이 아닌가 한다.


<생각 좀 하고 살아야겠다.>는게 요즘 내가 하는 다짐이다. 대화를 할 때, 단어가 부족한 것을 많이 느낀다. 적확한 단어 하나면 설명이 될 말인데, 장황하게 설명을 해야하는 상황이 종종 생긴다. 이런 일이 계속되니까 이미지 관리가 안 된다.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하는 나도 힘들고 듣는 사람도 답답하다. 말뿐만 아니라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생각은 많은데 정리가 안 되니, 두서 없이 글을 쓰게 되고 흐지부지 결말을 맺게 된다. 그래서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생각 좀 하고 살자고 다짐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책을 읽었다. 확실히 책을 읽으니 생각을 좀 하게 되었다. 근데 그 생각을 나눌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리뷰를 써보자 싶었다. 막연했던 생각을 글로 옮기면 좀 더 구체화되지 않을까 싶었다. 근데 리뷰를 쓴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의식 과잉(?)인지 솔직하게 쓰는게 힘이 들었다. 편협해보이는 것 같고, 잘 써보려고 하니까 시간만 오래 걸리고 결과물은 신통찮았다. 그러다보니 리뷰 쓰는게 귀찮아서 책 읽기에만 치중하는 결과가... 그러면 리뷰가 아니더라도 메모라도 조금씩 남겨보자 했는데 메모는 한 곳에 쓰지 않으면 어디다 뭘 썼는지 모르겠다는 맹점이 있었다. 진짜 마지막으로, 일기라도 쓰자 했는데 작심삼일... 나름대로 고민은 했으나 해결이 안 되는 상황에서 『0초 사고』를 읽게 되었고 나는 유레카를 외쳤다.


나는 사실 자기계발서가 싫다. 무지무지 싫다. 자기계발이라는 미명 아래 그냥 책 팔려고 찍어낸 책이라고 생각한다. 개중에는 정말 도움이 되는 멋진 책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저자의 자기자랑 혹은 지인자랑, <당신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라고 헛된 희망을 주거나 노력이 부족하다며 독자를 회초리질하는 영양가없는 조언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매킨지 스타일 컨설팅>이라는 카피와, 저자의 빵빵한 이력을 보고선 잠깐 편견을 가졌다. <메모하기>는 여느 책에서나 강조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머리말을 펼치면서 그런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내 상황을 그대로 담았을까. 내 안에 들어갔다 나온 것만 같았다. 저자가 강조하는 메모쓰기는 생각나는대로 줄줄 써내려가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책장을 넘기면서 <꼭 종이에 손으로 써야만 할까? 워드로 타이핑하면 안되나?> 하고 생각하기 무섭게 <노트나 워드, 일기면 안 되는 이유>가 나온다. 이쯤되면 저자가 무섭다.

 

내가 깊이 공감한 점은 다음과 같다.

 

일단 메모를 쓰면서 자의식을 버리고 종이에 생각을 쏟아낸다. 그렇게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시야를 가리는 잡생각이 사라지니까 결과적으로 생각이 깊어진다. 이 연습이 반복되면 적확한 단어를 사용해서 효율적인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메모를 활용한다.

 

이 책을 읽고 며칠간 메모쓰기를 실천하고 있다. 막연하던 생각들이 정리되는 것을 느낀다. 역시 컨설팅은 매킨지(?)다. 생각에도 정리정돈이 필요하다면, 글을 잘 쓰고 말도 조리있게 잘 하고 싶다면... 나처럼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분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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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3-29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대넓얕> 열풍에 기대서 깊이가 떨어지는 지식을 모아놓은 잡식성 도서가 자기계발서처럼 포장되면서 나올까 걱정입니다.

에이바 2015-03-29 20:0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트렌드를 잘 꿰뚫은 기획이라... 한편으론 그런 류의 도서가 나오긴 하겠지만 이만큼 성공하진 못할 것 같기도 해요.
 
웰컴, 삼바
델핀 쿨랭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난 이름들을 하나씩 잊어, 삼바. 그래도 난 네가 누군지 알아.」343p

 

프랑스에 온지 10년, 삼바는 체류증을 신청한다. 5개월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 초조해진 그는 진행절차를 알아보려고 경찰청에 자진 출두한다. 한참을 기다려 담당자를 만났더니 대기실에서 기다리란다. 그리고 잠시, 느닷없이 수갑이 채워져 벵센 유치소로 호송된다. 이유는 2개월 전, 경찰청은 삼바의 체류를 거절하는 답변을 보냈다는 것. 따라서 그는 (인지하지 못한) 불법 체류자 신세로 추방 직전의 상태에 직면한다. 삼바는 자신의 사적이고 가족적인 삶(Vie privee et familiale: 표지에 있는 체류증의 체류목적)을 지키기 위해  <시마드Cimade>라는 시민단체에 연락한다.

 

작품의 원제는 「Samba pour la France」로 <프랑스를 위한 삼바> 혹은 <프랑스에 삼바를>이라고 번역된다. 전자는 <삼바>로 상징되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민자들>을 의미하는 듯 하다. 후자는 삼바라는 춤의 흥겨운 특성을 미루어 볼 때, (자유와 인권의 수호자인) <프랑스에 보내는 갈채>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비꼼이라고 해도 될까? 델핀 쿨랭은 삼바라는 청년의 눈과 입을 빌려 프랑스를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프랑스의 시스템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프랑스에 온 삼바가 가장 처음 배운 것은 바로 <동화>되는 것이었다.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이처럼 보이기 위해, 스웨터(후드 달린 티셔츠)를 입고 그들의 말투와 몸짓을 흉내내야 했다. 모든 것은 프랑스에 체류하기 위해서, 어색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다. 월급의 일부는 집세와 생활비로 사용했지만 대부분은 말리에 있는 고향집으로 송금해야만 했다. 합법적으로 머무르는 이들과의 봉급 차이에도, 그를 바라보는 파리 사람들의 차가운 눈길에도 불구하고 삼바는 프랑스를 사랑했다. 그에게 프랑스는 <내 나라>였던 것이다.

 

삼바의 소망은 프랑스에서 성공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집을 짓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합법적으로 이 나라에 머무르는 것이 필수다. 체류증이 있으면 더 이상 가슴 졸이며 돌아다닐 필요도 없고, 사회의 안전망 안에서 제대로 된 직장을 얻어 일정한 수입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19살에 프랑스에 도착하여 다시 10년. 그런 이치고 삼바는 너무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고생 끝에 도착한 프랑스였기 때문일까. 삼바는 그가 부딪치면서 겪은 부당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 대한 꿈을 놓지 않는다. <자유와 인권의 수호자>로, 깨질 수 없는 신화적 존재처럼. 체류증을 얻으면 따라올 <보상> 때문일까? 그것을 얻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고생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프랑스에 도착하고 나서 6개월 임시 체류증을 받았고, 갱신을 한 번 했다. (유효기간은 언급되지 않음) 그리고 10년 후 처음으로 체류증을 신청한다. 벵센 수용소에서 삼바는 자신이 프랑스에 머무른 10년 동안 세금과 사회 보장 부담금을 꼬박꼬박 냈음을 강조한다. 체류 목적인 <사적이고 가족적인 삶>에 걸맞는 생활을 해왔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프랑스에 온 첫 해의 서류가 미비하여 문제가 생긴다. 우여곡절 끝에 유치소에서 풀려난 뒤에야, 깨닫게 된다. 자신이 꿈꾸던 프랑스와 현실의 프랑스는 다르다는 것을.

 

전쟁 후, 노동력이 부족해진 프랑스는 여러 차례에 걸쳐 노동이민을 적극 장려했다. 처음에는 이탈리아와 폴란드에서 온 사람들이, 그리고 마그레브(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프랑스 사회 재건에 힘을 보탰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의 가족들을 초청, 도시 주변에서 모여 살기 시작했고 이 곳은 지금의 시떼(Cite)가 되었다. 처음 시떼는 단순히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주택 단지를 가리켰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의미로 바뀌었다. 프랑스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민 1, 2세대(가톨릭 문화권)와는 달리, 마그레브 출신의 이민자들은 프랑스 사회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향유하는 문화가 다르기도 했거니와, 프랑스 사회의 재건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결국 동화되지 못한 이민 3세대, 4세대들이 느끼는 괴리감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를 다룬 프랑스 영화로 「증오」가 있으며, 영화 「언터쳐블」의 주인공 드리스도 도시외곽(Banlieu), 시떼에 산다.) 이 문제는 <외로운 늑대>로 상징되는 자국민에 의한 테러, 그리고 IS의 출현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

 

프랑스의 황금기였던 영광의 30년(Les 30 glorieuses)은 이민자들이 이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지금의 이민 세대들이 프랑스 사회에서 거부당한다고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의 입장에서도, 이민자들이 꾸린 공동체에서의 문화와 규범이 프랑스 사회의 전통적인 문화와 규범과 충돌하는 상황을 좌시할 수는 없다. 또한 경제 위기가 대두되면서 교육과 복지예산 등의 수혜자들을 프랑스 국민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문턱은 높아졌고, 시스템은 까다로워졌다. (지금은 바뀌었을 수도 있는데, 몇 년전까지만 해도) 경찰이 신분증을 요구했을 때 체류증을 제시하지 못하면 경찰에 의해 즉각적인 추방이 집행될 수 있었다. 살벌하지 않은가? 그만큼 프랑스에 불법적으로 체류하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체류증과 관련한 사례로, 니콜라 사르코지와 세골렌 루아이얄의 대선 토론 클립을 본 적이 있다. 당시 이슈였는데, 손자를 등교시키던 할아버지가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문제는 손자의 눈 앞에서 체포되었다는 것. 사르코지는 할아버지가 Sans papier, 체류증을 제시하지 못했음을 강조했다. 사회당 당수였던 세골렌 루아이얄은 단호하게 말했다. <Ce n’est pas notre France. 그것은 프랑스가 아니죠.> Sans papier인 할아버지를 체포해야하는 상황과 법은 인정하지만, 손자 앞에서 집행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아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져야 했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삼바가 머물렀던 벵센 유치소에는 끔찍한 일들이 전해진다. 출신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면도칼을 삼키는 등 자해를 하는데, 어떤 이는 의식을 잃은 상태로 고향에 도착했다고도 한다. 삼바가 비정한 현실을 깨닫는 장면이기도 하다. 유럽연합에 루마니아가 포함되면서 각국은 집시로 불리는 이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그들의 문화적 특성상,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고 걸식과 절도 행위 등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타국에서는 이들을 즉각적으로 추방하지만 인권 보호국인 프랑스는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타협점은 그들을 비행기에 태워 출신국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비행기 편도 비용은 프랑스 정부가 부담하는데 이것이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어째서 불법체류자들을 추방하는데 <세금>을 사용하느냐는 것이었다.

 

여기에 대한 뉴스도 기억하고 있는데 인터뷰에 응한 집시들les Romes이 체류하는 목적이 소설 속 삼바 시세와 마찬가지로 <사적이고 가족적인 삶>이었다. 뉴스에서 봤던 이들은 일정한 거주지가 없었다. 즉 세금을 내지 않는다. 이 마을, 저 마을로 이동하면서 길이나 숲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촌을 꾸린다. 마을은 이들이 투척한 오물등으로 더러워지고, 이들의 이동 경로에 따라 절도 사건이 늘어난다. 걸인 행위는 마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을 강제 추방하는 프랑스를 성토하며 자신들의 삶을 파괴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소설 속에서 열심히 살아온 삼바 시세의 체류 목적도 <사적이고 가족적인 삶>이라는 것이다.


그는 하나의 몸에 불과했다. 저녁마다 그는 지쳐 쓰러졌다. 가끔은 먹지도 않고 잠만 잤다. … 그는 하루 종일 일을 했다. 계속, 더 많이 했다. 프랑스 경제를 좀먹는 이주민의 이미지와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 그렇게 십년을 보냈다. 119p


체류증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당국이 요구하는 서류를 갖춰야 한다. 일정 기간 동안 프랑스에서 체류목적에 맞추어 거주하고 있었음을 <서류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결국 <나>라는 사람의 존재는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 서류가 <나>라는 사람 자체를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조나스가 주머니에서 팸플릿을 꺼내더니 입을 쑥 내밀고 일부러 사투리 억양을 써가며 읽어 내려갔다.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와 프랑스인은 문화와 근본적인 가치들에 충실합니다. 함께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가치들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는 계속 읽었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고 살아가며, 평등한 권리를 갖습니다.> 웃기고 있네!」 300p


삼바는 체류증을 받아,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반면, 조나스는 프랑스에 대한 인상이랄 것도 없었는데 난민 인정을 받아 합법적으로 이 나라에 머무르게 되었다. 하지만 삼바처럼 프랑스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불만이 가득하며 조롱하기까지 한다. 프랑스 당국이 요구하는 서류는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심지어 삼바는 체포될 때, 체포되는 이유도 잘 알지 못했다. 아마도 삼바가 못 알아들었으리라 추정된다. 경찰청이 답변을 보낸 사실은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었지만 삼바는 답변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그는 진척 상황을 알아보려고 자진 출두했으며, 이러한 상황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압적으로 체포되었다. 담당직원으로부터 모멸감을 받았으며, 삼촌과 연락도 거부당했다. 그곳에서 그는 불법 체류자로 <분류>되어 인간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시스템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시스템은 프랑스가 수호하는 가치인 인권을 보호하지 못했다. 즉 인간적이지 않은 <오류>를 범한 것이다.

 

위선. 그는 함께 쓰레기를 분류하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공식적으로는 채용이 안 되는 그들이 비공식적으로 프랑스 경제 전체가 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쓰기 편하고,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들은 지하 프랑스에서 거리를 청소하고, 쓰레기를 분류하고, 노인네의 똥을 닦아 주고, 밤에 사무실 바닥을 청소했다. 낮이 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갈 수 있게, 마치 때, 노쇠, 쓰레기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마치 그들 자체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중략) 그는 이 나라보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 더 실망했다. 그는 그들의 멸시에 침을 뱉었다. 지난날 자신의 순진함에 침을 뱉었다. 인간의 본성에 침을 뱉었다. 283p

 

프랑스에 대한 순정이 여러 차례 거부당하면서, 삼바는 타락한 프랑스가 나 역시 타락시켰다며, 아픔을 토해낸다. 프랑스가 요구하는 <삼바>가 되기 위해, 그는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꾼다.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하여, 다른 방식으로 프랑스에 머물기를 택한다. 고향, 말리에도 돌아갈 수 없다. 좋으나 싫으나, 삼바의 나라는 프랑스인 것이다. 그리고 소설 막바지에서 그가 염원했던 두가지-프랑스와 그라시외즈-중 또 다른 하나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 Gracieuse. 우아한 여인은 돌아오지 않을 이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은 그녀에게 갈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서바이버의 우승자였던 권율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지만 승자만이 성공을 독식한다는 것이다.> 삼바가 원한 프렌치 드림도 비슷했다. 기억 속의 라쿰바 사내가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는 승자가 아니었다. 프랑스가 내세우는 가치와 달리, 그들의 요구에 맞지 않았을 때 인간적인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법원으로 받은 답변도 (삼바에게 있어서) 석연치 않았다. 결국 그는 시스템에 의해 거부당했고, 그 시스템을 이용하여 기회를 잡을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코리안 드림을 좇아 한국에 온 노동 이민자들을 생각해본다. 계획적으로 이민자들을 받아들인 프랑스가 겪고 있는 문제점들을, 우리 사회도 겪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삼바가 특이한 케이스일 수도 있다. 타국에서 일하면서, 능력상의 이유로 혹은 법적인 이유로 자국민과 다른 대우를 받으면서 그 나라를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불법 체류자가 되기를 택한 그의 행보를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가 좌초하는 운명 속에서 인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삼바>는 어쩌면,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에 맞추려고 노력중인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닐까? 그렇다. 서류상으로 기재된 숫자와 문자들로 존재가 증명되는, 소음 속에서나마 내 이름을 외칠 수 있는, 기쁠 때 추는… <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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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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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를 복원하고 싶다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

공산주의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면 심장이 없는 사람이다. - 블라디미르 푸틴

 

내 안의 러시아는 극단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차있다. 상상을 뛰어넘는 행동을 일삼으면서도 시를 외는 것이 자연스러운 나라. 낭만과 살벌함 이면에 순수함을 간직한 나라.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는 그런 이미지를 잘 반영한다. 어지럽고 스물스물한 변화하는 시대에, 끝없이 펼쳐지는 설원만큼이나 오랫동안 이별해야 했던 연인들. 차르를 신처럼 생각했던 순박한 농민의 나라. 그런 차르를 혁명으로 끌어내려 인민들의 나라를 만든 이들. 재기를 위해 무서울 정도로 성장하는 나라. KGB, 스페츠나츠, 마피아, 신나치의 살벌한 이미지. 보드카와 강의 얼음을 깨 냉수마찰을 즐기는 패기. 예술과 낭만의 나라. 문학과 발레, 클래식. 타이가에 부는 바람과 시베리아에 눈 내리는 소리. 이토록 극단적인 이미지의 나라. 『리모노프』를 읽으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에두아르드 베니아미노비치 사벤코.

 

레몬과 수류탄을 합친, <리모노프>라는 이름을 스스로 짓기까지 사벤코 청년은 (어쨌든지) 열심히 살았다. 군인이 되어 멋지게 살아보리라 했지만 시력이 좋지 않아 그 꿈은 포기하고 <살의>를 가진 사람으로, 모두를 압도하는 이가 되기로 마음 먹는다. KGB의 하급 관리였던 아버지를 <루저>로 칭했지만 그 역시 공장에서 일하는 프롤레타리아의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살 기도를 하고 정신병원에 수감되기도 한다. 문학 서클에 가입하게 되고, 그 곳에서 만난 여자, 안나의 기둥서방 노릇을 한다. 모스크바에서 만난 엘레나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 제트족의 예쁜 러시아 인형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엘레나와의 결별 이후 뉴욕의 빈민으로, 노숙자 생활을 하기도 하고 그의 인생을 바꿔 줄 경험을 쓴, 남성과의 섹스를 <경험>하기도 한다. 파란만장한 그의 삶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문인들과 유명인들이 거쳐가며, 모스크바에서 그의 책이 출간된 후 20년만에 조국 땅을 밟게 된다.

 

주철 배관 위에 광택 스테인리스 세면기를 얹어 단순하면서도 깔끔하게 디자인한 수용소 세면대는 80년대 말에 그가 출판사 편집자의 초청을 받아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필립 스탁이 실내 디자인을 맡았다는 뉴욕의 한 호텔에서 봤던 세면대와 똑같았다고 그는 회상했다. … 그, 에두아르드 리모노프처럼, 볼가 강변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 수감된 일반범의 세계와 필립 스탁의 디자인 속에서 유영하는 멋쟁이 작가의 세계, 이토록 이질적인 세계들을 두루 경험한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아니, 틀림없이 많지 않아, 라는 결론에 이르는 순간 그는 자긍심을 느꼈다. 그 심정, 나도 이해한다. 바로 그 때문에 내가 이 책을 쓰려는 것이다. 37p

 

작가는 러시아의 정치인 에두아르드 리모노프의 인생을 전기의 형태로 늘어놓는데 종종 자신의 체험과 생각을 곁들인다. 소설은 허구임을 알고 있지만, 기사를 읽는듯한 기분이 들어서인지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리모노프의 삶은 적나라하게 해체된다. 뉴욕 시절 제트족 부부가 선물한 텔레비전에 나온 솔제니친을 조롱하며 항문 섹스를 한다던가, 군인이 되고 싶었던 열망을 세르비아 전쟁에 참전하면서 이룬다던가. 기행으로 가득 찬 전기를 쓰던 엠마누엘 카레르조차, 그의 세르비아 참전을 다룰 때는 글쓰기에 회의를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두아르드에게 있어 이러한 점은 인정해줘야 한다.>는 대목이 등장할 때면 카레르가, 리모노프를 꽤 괜찮게 생각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남들을 무시하고 신랄하게 조롱하며, 매력적인 웃음 뒤로 칼날 같은 야망을 숨긴 남자. 모스크바로 귀환하여 만난 노파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해줘요!>라고 애원할 수 있는 남자. 수용소에서 만난 이들을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는 남자. 파시스트에, 이기적이며 야망이 들끓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 인간이 무엇을 바라는거야? 의문마저 들지만 리모노프라는 사람의 속성은 극단적인 러시아의 이미지만큼이나 매력적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우크라이나의 하리코프에서 뉴욕과 파리, 모스크바에 이르기까지 그의 장대한 인생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기 러시아인들의 삶 또한 들여다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하리코프의 공장에서는 나사를 죄는 일을 하면서도 시 낭송, 외기가 취미인 이들을, 서점에서 일하며 문학 서클을 꾸려 사미즈다트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깊은 대지애를 떨쳐내고 미국으로 이민을 희망한 러시아 이민자들의 모습을. 뉴욕의 제트족 세계에 입성한 줄로 착각하고 뒤이은 좌절로 인해 빈민의 생활을, 주인을 보필하면서도 그를 조롱하기를 멈추지 않은 집사 시절. 결국 스스로를 상품화, 자신의 일대기를 자극적으로 그려낸 소설 『나, 에디치카』는 『러시아 시인은 덩치 큰 깜둥이를 좋아해』라는 이름으로 파리 문단의 시선을 모으는데 성공한다.

 

하리코프와 모스크바, 뉴욕, 파리에 이르기까지 <이쯤이면 됐다> 싶을 만큼 그들을 <경험>한 리모노프는 돌아온 조국에서 <리몬카>라는 잡지를 통해 젊은 세대의 지지를 얻게 되고, 이는 하나의 문화현상이 된다. 이후 <나츠볼>이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은 정치적 집단으로 성장하게 되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러시아의 중소도시에서 온, 찌질하게 느껴질 정도로 섬세한 시골 청년들에 불과했고 여전히 그러하다.

 

러시아의 지방 도시가 어떤 곳인지부터 아셔야 합니다. 그곳에 사는 청년들의 따분한 삶, 전망 없는 미래, 조금이라도 감수성과 열망이 있는 청년이라면 당연히 느낄 절망감을 말이죠. 410p

 

소련 체제하에서 그들이 보낸 유년기는 청소년기나 청년기보다 행복했다. … 그들은 평범하지만 자긍심이 넘치던 부모들의 좌절과 수모를 곁에서 지켜보았다. 가난에 쪼들리는, 무엇보다 자긍심을 잃어버린 부모를, 나는 그들이 무엇보다 참기 힘들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으리라 짐작한다. 412p

 

정치 활동으로 노동 수용소에 수감된 에두아르드는 명상을 통한 깨달음과 한결 같은 자기 관리로 기인과도 같은 모습을 자아낸다. 이로 인해 동료 수감자들의 존경을 얻게 된다. 그가 한 단계 더 성장했구나 감탄한 것도 잠시였다. 출소 후 그를 기다려온 어린 연인을 버리고, 미모의 여배우와 결혼하는 모습에서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두아르드 사벤코, 에두아르드 리모노프라는 다층적인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서 긴 여정을 달려왔다. 책의 끝에서 카레르는 푸틴과 사벤코의 차이점을 성공 여부에 두고 있다. 푸틴은 성공했고, 리모노프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 푸틴의 정책을 반대하면서도 크림반도 합병에는 찬성하는 에두아르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픈 그의 러시아적인 열망은, 책 속에 등장하는 이들이 리모노프를 평가할 때 그리 나쁜 말들이 아닌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속물적이면서도 순수한 구석이 있는 그의 극단적인 모습들도, 모두 러시아적인 것이며 그가 열망하는 성공과 강한 조국 역시 러시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마무리짓기 위한 인터뷰에서 카레르가 느꼈던 낯섬, 어색함 역시 에두아르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가 살아온 삶은 현재의 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현재의 그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말은 어정쩡하다. 이 글을 쓴 카레르도, 주인공 리모노프도, 독자인 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결말이다. 그의 인생이 자극적인 만큼, 자극적인 결말을 원했기 때문이었을까? 에두아르드의 말처럼 정말 <개떡같은 인생>이다.

 

책 속에서는 브로드스키와 함께 예로페예프가 종종 언급되는데, 그가 에두아르드와 비슷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러시아식 만취, 자포이를 다룬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고, 존경을 받았지만 에두아르드는 그를 싫어했다. 그보다 일찍 태어났기에, 성공을 가로챌 수 있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의 강연장에서 받은 질문- 황색 신문 장사치인 율리안 세묘노프의 후원을 받는 걸 보고 찾아와 악수를 청해도 거절하겠다는 예로페예프의 말에 에두아르드는 별 다른 심정이 없으며, 그와 자신은 동지 사이가 아니었다고 대답했다.『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를 통해 하리코프 시절의 에두아르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전체주의의 속성은 눈에 검정색이 보이는 사람들에게 흰색이라고 말하게 하고, 이것을 되풀이하다 못해 종국에는 진짜로 그렇게 믿도록 강요하는 것인데, 이런 권위주의적 측면에 있어 소련은 사민주의 독일보다 훨씬 극단적인 양상을 보였다. 소련의 경험이 지니는 환상성, 끔찍하면서도 동시에 끔찍하게 희극적인 환상성은 바로 이러한 측면에 기인하는 것이며, 자먀틴의 『우리들』부터 플라토노프의 『체벤구르』, 지노비예프의 『입 벌린 고지』에 이르는 지하문학이 조명한 것도 바로 이런 측면이었다. 필립 K. 딕이나 마틴 에이미스, 나 같은 작가들이 지난 세기 러시아에서 인류에게 벌어졌던 일을 기록한 것을 무조건 찾아 섭렵하는 것도 이러한 측면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 전공 역사학자 마틴 말리아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전체적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특정한 악습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공격이다. 이것은 현실을 폐기하려는 기도이고, 이러한 기도는 장기적으로는 실패하지만 일정 기간 동안은 비효율과 결핍, 폭력을 최고의 선으로 간주하는 모순이 지배하는 초현실적 세계를 만들어 낸다.> 2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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