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초 사고
아카바 유지 지음, 이영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요즘 『지대넓얕』이라는 책이 인기다. 서점가 동향을 취재한 기사에 따르면, <지식을 보여주는> 행위가 트렌드가 되었기 때문에 이 책이 인기라나. 그래서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들을 방송에서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일단 <뇌섹남>이 뇌가 섹시한 남자의 준말인 것은 맞다. 하지만 처음 이 용어가 등장했을 때의 뜻은 <지식이 풍부한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소통할 수 있는 남자>가 섹시하다는 거였다. 여성과 남성의 입장을 아울러 대화할 수 있는 남자, 말이 통하는 남자 그래서 이 말이 등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면, 어떤 뇌섹남은 페미니스트가 아닐까? 페미니스트가 무엇이고, 여성주의가 왜 출현하게 되었는지 알고있는 이 말이다. 페미니즘의 시작은 남성과 여성 두 개의 성 중에 어떤 것이 우월하고 열등한지 논하는 것이 아니라 양성이 평등하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었다는 걸 알고있는 사람... 어쨌든 여성의 입장을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남자가 뇌섹남의 첫 의미였다. 단어의 뜻이야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서 기사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육체미의 시대를 떠나 지성미의 시대가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똑똑하고, 풍부한 지식으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남자가 무조건 섹시한 것은 아니다. 섹시하다고 느낄 수 있는 매력 중 하나인 것은 맞다. 이것도 어느 기사에서 봤는데, 사회가 발전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날수록 꽃미남이 인기가 많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사회가 발전한만큼 다양한 매력을 찾게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여성이 남성에게 찾는 매력이 외모나 능력보다 <소통>에 집중함으로써 현실적으로 변한 것 같기도 하다. <말이 안 통하는데 어떻게 살아!>라는 뜻 같기도 하고...

 

얘기를 하다보니 옆으로 샜는데... 아무튼 다양한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대화의 물꼬를 틀어주고, 결과적으로 흥미로운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교양>을 쌓는 것 자체가 유행이라니,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현상이라 생각한다. 넓고 얕은 지식을 쌓았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이 될까. 바로 사고력 증진이 아닌가 한다.


<생각 좀 하고 살아야겠다.>는게 요즘 내가 하는 다짐이다. 대화를 할 때, 단어가 부족한 것을 많이 느낀다. 적확한 단어 하나면 설명이 될 말인데, 장황하게 설명을 해야하는 상황이 종종 생긴다. 이런 일이 계속되니까 이미지 관리가 안 된다.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하는 나도 힘들고 듣는 사람도 답답하다. 말뿐만 아니라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생각은 많은데 정리가 안 되니, 두서 없이 글을 쓰게 되고 흐지부지 결말을 맺게 된다. 그래서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생각 좀 하고 살자고 다짐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책을 읽었다. 확실히 책을 읽으니 생각을 좀 하게 되었다. 근데 그 생각을 나눌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리뷰를 써보자 싶었다. 막연했던 생각을 글로 옮기면 좀 더 구체화되지 않을까 싶었다. 근데 리뷰를 쓴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의식 과잉(?)인지 솔직하게 쓰는게 힘이 들었다. 편협해보이는 것 같고, 잘 써보려고 하니까 시간만 오래 걸리고 결과물은 신통찮았다. 그러다보니 리뷰 쓰는게 귀찮아서 책 읽기에만 치중하는 결과가... 그러면 리뷰가 아니더라도 메모라도 조금씩 남겨보자 했는데 메모는 한 곳에 쓰지 않으면 어디다 뭘 썼는지 모르겠다는 맹점이 있었다. 진짜 마지막으로, 일기라도 쓰자 했는데 작심삼일... 나름대로 고민은 했으나 해결이 안 되는 상황에서 『0초 사고』를 읽게 되었고 나는 유레카를 외쳤다.


나는 사실 자기계발서가 싫다. 무지무지 싫다. 자기계발이라는 미명 아래 그냥 책 팔려고 찍어낸 책이라고 생각한다. 개중에는 정말 도움이 되는 멋진 책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저자의 자기자랑 혹은 지인자랑, <당신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라고 헛된 희망을 주거나 노력이 부족하다며 독자를 회초리질하는 영양가없는 조언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매킨지 스타일 컨설팅>이라는 카피와, 저자의 빵빵한 이력을 보고선 잠깐 편견을 가졌다. <메모하기>는 여느 책에서나 강조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머리말을 펼치면서 그런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내 상황을 그대로 담았을까. 내 안에 들어갔다 나온 것만 같았다. 저자가 강조하는 메모쓰기는 생각나는대로 줄줄 써내려가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책장을 넘기면서 <꼭 종이에 손으로 써야만 할까? 워드로 타이핑하면 안되나?> 하고 생각하기 무섭게 <노트나 워드, 일기면 안 되는 이유>가 나온다. 이쯤되면 저자가 무섭다.

 

내가 깊이 공감한 점은 다음과 같다.

 

일단 메모를 쓰면서 자의식을 버리고 종이에 생각을 쏟아낸다. 그렇게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시야를 가리는 잡생각이 사라지니까 결과적으로 생각이 깊어진다. 이 연습이 반복되면 적확한 단어를 사용해서 효율적인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메모를 활용한다.

 

이 책을 읽고 며칠간 메모쓰기를 실천하고 있다. 막연하던 생각들이 정리되는 것을 느낀다. 역시 컨설팅은 매킨지(?)다. 생각에도 정리정돈이 필요하다면, 글을 잘 쓰고 말도 조리있게 잘 하고 싶다면... 나처럼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분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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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3-29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대넓얕> 열풍에 기대서 깊이가 떨어지는 지식을 모아놓은 잡식성 도서가 자기계발서처럼 포장되면서 나올까 걱정입니다.

에이바 2015-03-29 20:0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트렌드를 잘 꿰뚫은 기획이라... 한편으론 그런 류의 도서가 나오긴 하겠지만 이만큼 성공하진 못할 것 같기도 해요.